[스페셜1]
양동근과 기국서의 <관객모독> [2] - 양동근 인터뷰
2005-06-07
글 : 이종도
사진 : 정진환

“만번을 생각해도 탁월한 선택”

양동근이 말하는 연극 <관객모독> 그리고 배우 양동근

‘낯이 익다, 함께 식사도 하지 않았었느냐’며 밥을 먹자고 양동근이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잡아끈다. 흰머리가 있던 것 같다고, 2년 전 기억도 더듬는다. <와일드카드> 개봉 때의 인터뷰를 희미하게나마 기억하고 있다. 긴 질문에 답은 정진영에게 미루어두고 예, 아니오로만 답하며 냅킨으로 종이배를 접던 그가 아니다. 익숙한 솜씨로 버섯 수프, 치킨 샐러드와 립을 시킨 뒤 음식을 접시에 담아주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친숙하기도 하다. 그는 느릿느릿하게 어휘를 선택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곱씹은 뒤 신중하게 내뱉었다.

-기주봉의 소개로 연극을 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따를 만한 남자 선배와 스승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 것 같다.

=연극 한번 보러 오랬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봤는데 (배우 기주봉이) ‘동근이 연극 한번 했음 좋겠다’고 지나가는 말로 했어요. 어른 이야기 듣는 것은 존경이라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인데, 선생, 말 그대로 세상을 나보다 많이 살고 앞길을 제시할 수 있는 분의 말이면 (듣고) 흘러흘러 그렇게 가게 되는 거죠.

-연극 출연에 대해 소속사 반대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소속사를 어떻게 설득했나.

=설득? 그건 아니고요. (소속사가 싫다고) 내색은 안 했겠죠. 제가 먼저 열의를 표한 거죠. ‘연극하면 좋겠습니다’ 제의하고. 흔쾌히는 아니었어요. (공연) 3개월이 너무 길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잘된 선택이었다고 믿나.

=백번, 천번, 만번 잘한 거죠. 무대에서 죽었다고 해도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양동근은 대답이 미진했다 싶었는지 아까 질문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회사 입장. 회사 입장 생각해서 한 것도 몇개 있어요. 대표적인 게 <마지막 늑대>를 들 수 있는데 정말 하기 싫었거든요. 하지만 제 의사를 접고 따라갔던 거고. 회사란 게 누가 위고 누가 아래고 그건 아니잖아요. 파트너십이죠. 이번엔 제 의사를 회사가 따라준 거죠.

-대사량도 많고 힘든 연극인데.

=힘들다? 다 나태함과 게으름에서 오는 변명이죠.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 어디 있겠어요. 누구나 파이팅하면 못할 일 어디 있겠어요. 조금 힘들면 징징대는 게 배우라고 여겨지는 그런 배우들로선 힘든 일이겠죠. 그럼 배우가 뭐예요. 배우 아니죠. 배우 이전에 험한 세상 헤쳐나가는 한 사람이잖아요.

-연극과에 다녔는데 예전에도 연극을 많이 봤나.

=많이 안 봤어요. 27년 평생 다섯편? 문외한이에요. 학교는 졸업 안 되고… 모르겠어요. 하여튼 학교에 대해서는 생각 안 하고 있었네.

-지난해 봤을 때와 이번 공연의 차이는 뭐였나. 양동근의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간 게 최대의 차이가 아닌가.

=그렇게 봐준다면 저로선 영광이죠. 제 아이디어라기보다 음악적인 면에서 제가 좀더 알고 있으니까 (연출가가) 저의 견해를 존중해준 거죠. 아이디어라면 아이디어겠지만. 아이디언가? 연극 중간에 골룸을 흉내내는 건 제가 아니라 선생님 아이디어예요. 먼저 대화를 요구하신 거고 제가 알고 있는 한에서 최대한으로 표출을 하면 (선생님은) ‘그거다’. 뭐든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죠.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그게 안 되어 안 되는 거잖아요. 이 작품이 성공한다면 커뮤니케이션의 승리죠. (자기 표현에 만족한다는 표정을 짓는다.)

-연극 배우들과 함께 오랫동안 호흡하는 일은 어땠나.

=많은 권태가 있다고들 해요. 오랜 공동작업을 하면. 초반에 연출가와 배우 형님들이 걱정들 하시고. (한참을 생각한 뒤) 좋은 책을 몇권 읽고 있는 것과 같은 거죠. 누구나 다 책이 아닌가요. 잡지인 사람도 있고 사기극인 사람도 있고 로맨틱드라마인 사람도 있고 뭐든 읽고 나면 얻는 게 있잖아요. 배움의 장으로 생각하는 거죠.

-기국서를 어떤 연출가라고 생각하나. 어떤 지시와 주문, 가르침이 있던가.

=제가 아랫사람이니까 그건(윗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그분이 어떠하다는 거 말 못할 거 같아요. 다만 하나는 이야기할 수 있는데 서로가 함께 바라보는 것들을 갖고 있어요. 감독님은 감독님 나름대로의 자물통이 있고 저도 나름대로 있어요. 그런데 서로에게는 서로를 열 수 있는 키가 있어요. 그게 딱 열린 거죠.

-주말 2회 공연을 한다는 게 체력적으로 쉽지 않을 텐데.

=아무래도 혼신의 힘을 쏟아부으니까, 이게 다른 연극보다 어렵대요. 그럼에도 잘되는 건 팀워크예요. 서로 받쳐주고 사랑하니까 얘기는 안 해도 힘든 걸 힘든 걸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요.

-요즘도 밤새 농구 하나.

=요즘 척추교정을 받는데 치료 때문에 전혀 못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춤춰서요. 교정받아서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허리가 아파 군대 안 가는 거 아닌가. 기국서 연출가는 제대하면 연극 함께했으면 좋겠다던데.

=나라의 공인인데, 혜택 하나 못 받는 공인이지만, 빼도 박도 못하죠. 눈에 불을 켜고들 있는데. 제대 뒤는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요.

-술을 끊었다고 들었다. 왜 끊었나.

=그런 건 기사 소재로 다루어지지 않는 게 맞아요. 마음의 결정이 번복될 수 있잖아요. 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이런 개인적 마음의 결정 때문에 사람들이 이질감과 거리를 느끼더라고요. (하지만) 술에 대해 분별력이 생겼어요.

-신앙은 어떤 계기로 얻게 되었나. 삶과 연기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

=얼마 안 됐어요. 세상에 초점 맞춰진 건 다 덧없는 거란 걸 알게 됐죠. 죽으면 그만인데. (그 영향은) 180도(달라진 거)죠. 제 몸은 이 세상에 있고 이 세상의 법을 따르지만 제 영혼은 병든 이 세상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아요. 신앙 얘기가 아니라 큰 사랑 얘기예요. 크은~. (손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그건 교회 안 다녀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 얘기가) 틀린 건 아녜요. 베이스가 깔려 있으면 좋은 거죠. 그러나 저는 논리가 아니라 섭리와 진리를 이야기하는 거죠.

-윤여정씨가 <딴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높은 평가를 했다. 좋아하고 따르고 싶은 배우가 있나.

=특별히 없어요. 같이 연기하고 작품을 한 모든 분이 선생님이기 때문에. 많은 선생님과 하면서 저는 배우는 거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과 함께해서 어깨너머로 배웠어요.

-막 올라가기 전 분장실에서 무슨 생각을 하나.

=이거 답을 하면 말이 길어지는데. 이 대답이 오늘 인터뷰의 하이라이트가 될 거 같네요. 연극이 제겐 단지 연극만이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한참을 생각한 뒤) 공연 불과 며칠 전 같은 장소에서 힙합워십이라는 교회 콘서트를 했어요. 이런 우연의 일치가 또 없는데, 그 장소가 기도를 많이 받은 장소예요. 제가 연극무대(창조콘서트홀)에 선 건 사람낚는 어부가 되어 선 거거든요. 믿거나 말거나인데요, 관객과 배우 여러분은 모를 텐데 공연 처음과 마지막에 기도를 해요. 공연장은 금나팔을 든 아기천사의 놀이터가 됐거든요. 그 아기천사들이 관객에게 하나씩 붙어라 하고 기도해요. 그러니까 권태니 힘든 거니 하는 건 제게 상관이 없어요.

-흔히 영화배우들이 타는 스타크래프트가 아니라 택시를 타고 공연장을 다닌다고 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고 그래서 힘들 수도 있을 텐데.

=영화할 때는 회사차를 이용하는데 연극 연습 때부터는 사실 뭐 필요가 없어요. 아니, 사람들 다 하는 건데 똑같은 건데. 우월감을 버려야죠. 그거 아니거든요.

팬인 아내를 위해 사인을 부탁했더니 양동근은 이렇게 적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 자매님과 그 가족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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