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세 번째 영화 <오!수정>의 촬영을 마친 홍상수 감독(40)은 후반작업 진행중에 이번 행사에 참석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강원도의 힘>은 국내 개봉, 비디오로도 나왔지만 50여명이 필름으로 다시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특이한 건 상영시간에는 한산했던 객석이 감독과의 대화시간엔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꽉 들어찬 점.
일상성의 영화에 대해 그는 스스로 이렇게 설명했다. “나 스스로는 일상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굳이 그런 식으로 부른다면 그건 내가 다룰 수 있는 진흙덩어리 같은 거다. 손에 잘 붙는 진흙은 자꾸 만지게 된다. 내겐 본질적인 냄새, 상징화하기 쉬운 것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게 있다.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 그걸 재생산하는 건 재미없다. 패널로 참여한 영화평론가 김영진씨가 “일상의 리듬에는 슬픔이나 고통도 있지만 행복한 순간도 있고 기쁨도 있다. 하지만 홍 감독 영화는 행복에 금이 가고 기쁨이 끝나는 순간에 시작해 하강하는 국면을 다룬다. 그같은 태도는 어디서 기인하나”고 물었고, 그는 자신의 간략한 영화론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다. ‘무엇’, 다음에 ‘어떻게’가 나온다. ‘무엇’은 삶에 대한 나의 태도이고 배우로 육화된다. 연기를 하는 건 추상적인 그 ‘무엇’을 사람에 대입시켜 테스트하고 개성에 맞게 바꾸고 하는 과정이다. 사람은 피와 행운, 불행, 그리고 빈말 같은 걸로 구성돼 있는 거 같다. 사람은 자기가 뭔지 잘 모르는 거 같다. 기껏 아는 건 자기가 하는 일이 뭔지 정도. 그것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난 사람들이 잘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나서지 않았으면 싶다. 신이 있나 없나를 놓고 얘기한다고 치면 그냥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하면 된다. 사실 모르는 거 아닌가.”
객석에서 “홍 감독 영화를 보면 자기는 자살 안 하면서 자살을 권하는 사람 같다. (웃음) 어릴 때 깊은 외상이 있었던 거 아닌가. 언제나 연애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연애의 힘이 뭐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외상은 글쎄, 어렸을 때, 5살 때 난로를 안은 적이 있다고 들었다. 큰 화상을 입었는데 다 나아서 모두 신기해했다고 하더라. 연애담이 주로 등장하는 건 주위에 있는 거고 사람들 사는 걸 잘 보여주는 거니까 그렇다. 연애감정은 익숙한 패턴으로 진행되는데 거기엔 쓸데없는 고통도 있고 작은 거짓말도 있고 그렇다. 깨끗하지 못한 세상에 자신을 가두는 과정인 거 같기도 하고. 이번에 세 번째 영화를 하면서 군살이 점점 없어지는 느낌이 든다. 예전엔 아주 엄격한 순수주의를 고집한 적도 있는데 굳었던 몸이 풀어지는 느낌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