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시아 감독 3인전, 세 감독에게 묻다 [4] - 이시이 소고
2000-03-21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여성이 리더가 되면 세상이 잘될걸"
<물 속의 8월>

이번 영화제에 <꿈의 미로>(1996) <엔젤 더스트>(1994) <반쪽 인간>(1981, 단편) <셔플>(1986, 단편) 등 4편의 영화가 상영된 이시이 소고 감독(43)은 84년작 <역분사가족>으로 유명해진 인물. <역분사가족>은 중산층 가정의 악몽과 피비린내나는 살육전을 통해 일본사회의 집단적 스트레스를 극단적으로 묘사한 작품. 지난 10일 감독과의 대화에서 그는 <역분사가족>에 대해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영화다. 한마디로 펑크난 타이어 같은 느낌”이라고 신랄하게 자평했다. “유럽에서 호평받기도 했지만, 일본에선 정제되지 않은 영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 거친 느낌 때문에 일본에선 제작비 대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10년 동안 장편을 못찍었다. 제작자가 요구하는 대로 찍긴 싫었고 그래서 가끔 돈이 되는 대로 단편을 찍었는데, <셔플> <도쿄 블러드> 등이 그렇게 해서 만들었다. 어쨌든 찍고 싶은 영화를 찍었다.”고 했다. 10년 만에 만든 장편영화 최근작들이 비교적 차분해진데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내 안에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면만 있는 게 아니라 여성적인 면이 있는 걸 알았고 타인을 포용하고 용서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엔젤 더스트> <물 속의 8월> <꿈의 미로> 등 3편은 모두 여성이 주인공이다. 예전엔 대항해서 싸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여성 주인공을 등장시킴으로써 용서하는 쪽으로 변했다. “개인적인 의견인데 여성이 리더가 되면 세상이 잘될거라고 본다”고 덧붙이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고등학교 시절인 76년 23분짜리 단편 <공포의 고등학교>로 시작해 세 감독 가운데 작품 수는 가장 많다. 차이밍량이나 홍상수와 달리 일상을 섬세히 묘사하는 영화가 아니라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와 파격적인 이미지가 두드러지는 그는 감독과의 대화시간에 자신의 영화경력을 소개하는 듯한 짧은 단편영화를 보여주는 등 자신의 작품을 낯설어하는 한국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지금도 밴드활동을 하고 무대에 서는 열정적이고 다재다능한 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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