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권위가 소멸된 영화를 꿈꾼다”
<해성프로젝트>의 김계중 감독
알쏭달쏭한 이미지와 쉽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 사운드로 이루어져 독해가 쉽지 않은 영화. 실험영화를 향한 일반적인 소감은 대략 이런 식이 아닐까. 새로운 영토를 향한 왕성한 도전은 높이 사지만 막상 그런 영화를 볼 마음은 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영화라면 응당 감독이 전달하고픈 무엇인가, 혹은 감독이 바라보는 세상의 어떤 모습을 담게 마련인데, 아무래도 감독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실험영화에 짜증이 나곤 했다는 불평도 익숙하다. 새로운 혜성을 발견하기 위한 과학자의 고군분투를 다룬 영화로 오해받기 십상인 기이한 제목의 영화 <해성프로젝트>는 실험영화를 바라보는 그러한 편견을 매우 겸손한 방식으로 돌파한다.
해성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책상 위에서 무언가를 끼적이는 영화의 첫 화면 위로 감독의 목소리가 흐른다. “이 영화는 해성이 준 시나리오와 그에 관한 인터뷰로 구성된다.” 그리고 해성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읽어 내려간다. 언뜻 리허설을 하는 것처럼 들리는 해성의 목소리 위로, 그에 해당하는 영화 속 영화의 장면이 계속해서 겹쳐진다. 그런데 그 영화 속 인물들 모두 해성이 연기한다. 관객은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것은 완성된 영화의 장면일까, 아니면 시나리오를 읽는 해성의 상상일까. 그리고 해성이, 자신이 쓴 시나리오에 대해 설명하는 인터뷰 장면까지 삽입된다. 마지막 내레이션은 다시 감독의 몫. “이 영화는 해성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해성프로젝트>는 그렇게 감독과 배우의 의지와 욕망을 한곳에 모으면서, 인생과 예술이 이루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를 재현한다.
홍익대 금속공학과를 1년 만에 그만둔 김계중(33) 감독이 실험영화의 전통으로 유명한 칼아츠에 입학한 이유는 단하나. 영화로 가능한 모든 것을 접한 뒤에 극영화를 만들어도 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1999년 12월31일> <마스터베이팅 머신> 등 칼아츠에서 그가 완성한 실습작 대부분은 기존의 영상과 사운드를 샘플링하여 콜라주한 작품들. 영화제작보다는 인문학 수업에 열중했던 그는 존 케이지와 롤랑 바르트, 플럭서스 운동 등 각종 현대예술과 철학의 자장권 안에서 작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2002년, 졸업을 앞두고 난생 처음(!) 캠코더를 장만한 그가 직접 촬영한 지인들의 이미지를 연결하여 실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그의 영화작업은 전환기를 맞이한다. 그는 당시에, 기존의 영상을 재활용하는 것보다는 새로이 만들어낸 영상물을 이용하는 것이, 자신만의 영화적 화법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회고한다.
미국에서 돌아온 김계중 감독은 ‘작가의 권위가 소멸된 영화’를 구상했다. 감독의 결정을 모조리 배제하고, 순수한 의미의 영화만을 남기는 것,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의 영화작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뜻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배우지망생 해성의 꿈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극영화에 가까운 영화를 만들겠다는 애초의 의도는, 해성을 최대한 반영한 시나리오를 집필하기로 했던 작가가 개인적 사정으로 프로젝트에서 발을 빼면서 지지부진해져갔다. “고다르 등이 시도했던 내용적인 자기반영과 1970년대 미국 실험영화가 시도했던 매체로서의 자기반영을 동시에 이루겠다”는 야심은 간데없고, 학교에서 배운 모든 이론이 무용지물처럼 느껴졌다. 자괴감으로 가득한 나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를 보다 못한 해성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제안했고, 김계중 감독은 그 순간, 지금의 <해성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제작과정은 영화 속 감독의 내레이션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해성프로젝트>를 그 어떤 픽션보다도 다이내믹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해성프로젝트>는 본인의 경험을 반영한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배우 자신의 욕망을 유일한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그 욕망은 매우 친숙하고 일상적이며, 이것을 재현한 영화 역시 친절하고 상식적이다. 김계중 감독은 자신의 욕망을 최소화함으로써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고스란히 반영했고, “이론에 그치지 않는, 일상과 자연스럽게 조우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 역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그는 앞으로도 작업을 계속하여, “새로운 작가의 위치를 담론으로 제시”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실험’은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