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영화의 새로운 구조다”
<실종자들>의 민제휘 감독
천년 묵은 이무기는 용이 되려 하고, 정체불명의 지하집단은 이를 막으려 하며, 주인공은 어느 날 집을 나서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찾기 위해 실종자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방송사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다. 이상은 영화가 시작된 뒤 러닝타임의 3분의 2 정도에 해당하는 시간이 흐를 때까지 진행되는 <실종자들>의 줄거리. 그렇고 그런 말장난과 서툰 비유로 가득 찬 듯 산만하기만 한 이 영화가 보는 이의 뒤통수를 치는 것은, 지하철역 플랫폼에 멍하니 서 있던 주인공이 엄마처럼 보이는 여자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주인공은 지하철에 오르는 그녀를 미처 잡지 못하고, 이무기를 반대하는 지하집단의 누군가가 석유가 가득 찬 통을 들고 그녀의 뒤를 따른다. 플랫폼에 그가 흘린 석유에선 어느새 꽃 한 송이가 피어난다. 끊임없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파악할 수 없는 실체의 주변을 맴돌던 영화는, 그렇게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을 끌어들인다.
덥수룩한 머리, 장난기 어린 눈빛이 인상적인 민제휘(26) 감독의 첫인상은 묵직한 사건을 독특한 시각으로 재해석한 자신의 영화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TV 스타가 되고 싶어 연기전공으로 서울예대 97학번에 입학한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윤리와 구조’. 동네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휴지에 끼적거린 쪽대본으로 찍었다는 40분짜리 첫 영화, 태풍이 다가오는 순간부터 지나간 뒤 폐허가 된 마을의 모습까지를 담은 다큐멘터리 <바람>, 댐건설로 고향을 잃은 가족이 다시 모인 뒤 벌어지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다룬 극영화 <견딜 수 없는 것>, 그리고 <실종자들>까지 그의 모든 영화들은 한결같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소재를 새로운 방식(구조)로 표현하는 작품들이다.
그런 그가 <실종자들>을 만드는 내내, 많은 이들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건을 소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고민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결국 어떤 영화를 만들어도 사건에 관련된 모두의 지지를 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사건의 핵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택했다. 다양한 시각에서 구성될 수 있는 사건을 다 아는 양 설명하려 들지 않고, 자신이 파악한 사건의 이면을 진심을 담아 표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러디 선데이> <아무도 모른다> <엘리펀트>처럼 그가 예시로 삼은 영화들은,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제시하며 사건을 재연하기보다는 감독이 생각하기에 가장 적당한 방식으로 각각의 사건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그렇다면 민제휘 감독이 바라보는 대구 지하철 참사는 어떤 것일까. 그는 “분노의 대상이 교묘하게 감춰진 것이 대구 지하철 참사는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와 달리 그 자체가 상징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엄마를 잃게 된 궁극적인 원인으로 정체불명의 이무기가 등장하고, 이무기에 대항하는 집단이 종교집단과 정치집단을 조금씩 연상시키면서 익숙하고도 낯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은 그러한 분석의 결과.
감독은 이제, 언뜻 황당하고 별다른 개연성을 지니지 못하는 이무기를, 좀더 효과적으로 제시하기 위한 구조를 고민한다. <엄마 찾아 삼만리>를 연상시키는 단순한 내러티브를 토대로 하는 <실종자들>은 그 자체로는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네개의 단락으로 나뉘는데, 감독은 영화의 이러한 구조를 석유시추선의 설계를 참고로 구상했다고. “어느 날 TV에서 석유시추선을 봤다. 텅 비어 있는 네개의 기둥에 공기를 채워 바다 한복판으로 끌고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추선처럼, 영화 역시 개별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듯 보이는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다루려 하는 소재와 전달하려는 주제를 파악한 뒤, 이를 위한 구조를 처음부터 만들어나가는 그의 작업은, 다소 부족하고 또 불완전하게 느껴진다. 관객과 어떻게 접점을 그려낼 수 있을까, 문득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민제휘 감독은 이에 대해, 낙관적인 반응을 보인다. 각종 독립영화제에서 접한 동료 감독들의 고민이 자신의 고민과 분명한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새로움을 꿈꾸는 영화들이 지닌 일말의 공통분모가 영역을 확장하다보면, 새로운 영화 역시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