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라본트, 킹의 페르소나
<캐리> 이후 시작된 스티븐 킹과 할리우드의 밀월관계는 지금도 변함없다. 최근 개봉한 <그린 마일>만 해도 미국에서만 흥행수입 1억3천2백만달러를 넘어 킹 원작 중 가장 큰 흥행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킹의 원작을 영화화하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은 킹의 에이전트인 CAA에서 영화판권과 관련된 일을 대행하고 킹 자신이 각본 작업에 참여하는 일도 있지만, 킹의 소설이 막 주목받기 시작하던 70년대 후반만 해도 출판사 더블데이에서 영화판권 관련업무를 하면서 초보 작가 킹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팽고리아>와의 인터뷰에서 킹은 78년 무렵 단편집 <나이트 쉬프트> 영화판권이 영국 프로듀서 밀튼 서보츠키에게 팔렸고 이 책에 들어있던 <론머맨>이 그로부터 14년 뒤인 92년에 비로소 개봉했는데 개봉 3주 전에 영화화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개탄했다. 사실 킹의 작품 중 영화화된 것은 비교적 초기작이 많고 일찌감치 킹의 손을 떠난 영화판권은 프로듀서들과 스튜디오 사이를 떠돌아다녔다. <칠드런 오브 더 콘>이나 <공포의 묘지> 등은 킹의 의도와 달리 계속 속편이 나온 영화들인데 그뒤 그는 자기 작품의 속편이 나오지 못하게 했다. 때문에, 호평을 받지 못해도 제작사가 절대 손해나는 일은 없기로 유명한 킹 원작의 영화 중 속편이 나온 경우는 많지 않다.
<론머맨>이 14년 만에 영화화한데서 알 수 있듯, 킹의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데 가장 많이 드는 것은 시간이다. <미래의 묵시록>은 소설에서 영화까지 15년이 걸렸고, <공포의 묘지>는 5년, <랭골리어스>는 6년이 걸렸다. 브라이언 싱어가 영화화한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도 산고가 컸던 작품. 원작은 <스탠 바이 미> <쇼생크 탈출>과 함께 킹의 초기 단편집 <사계>에 포함된 것으로, <크리스틴>을 제작한 리처드 코브리츠가 88년 영국 감독 앨런 브리지스한테 맡겨 촬영에 들어갔다가 스튜디오와의 마찰로 중단됐다. 96년 브라이언 싱어가 작업에 착수했을 때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배급사인 파라마운트는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의 주제가 너무 어둡다는 이유로, 세트가 완성된 직후 손을 뗐고 결국 메이저 영화사가 아닌 피닉스픽처스에 의해 완성됐다.
<시네판타스티크>는 “오늘날 킹 소설의 영화판권을 사자면 돈만으로 안 된다”고 말한다. 초보작가 시절 할리우드에 이용당한 데 상처받은 킹은 80년대 중반 이후 자신이 잘 알고 믿을 수 있는 제작자를 택해서 일해왔다. <스탠 바이 미>로 킹을 만족시킨 로브 라이너와 <공포의 묘지>를 만든 리처드 루빈스타인이 그들. 로브 라이너는 <스탠 바이 미> 성공 이후 캐슬록이라는 제작사를 차려 <미저리> <욕망을 파는 집>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 등 비교적 드라마가 강한 영화를 많이 만든 반면, 로렐엔터테인먼트의 리처드 루빈스타인은 <공포의 묘지> 외에 <크립쇼> <미래의 묵시록> <랭골리어스> <신너> 등 호러적 요소가 강한 영화들을 제작했다.
킹에게 프랭크 다라본트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쇼생크 탈출>이 아카데미 7개 부문 후보에 오른 일은 킹으로서도 기분 좋은 사건이었다. 다라본트는 대학 시절 이미 킹과 인연을 맺었다. 킹은 “학생으로서 영화를 찍던 때 다라본트를 알았다. <방 안의 여인>이라는 나의 단편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해 허락했고 그는 훌륭한 영화로 만들어냈다”고 회상한다. 다라본트가 <쇼생크 탈출>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흔쾌히 승낙한 것도 이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 “다라본트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소한 장기인 스티븐 킹 원작의 감옥 영화를 만드는 재주를 갖고 있다는 농담을 했다.” 킹과 다라본트의 협력관계는 <그린 마일>로 이어졌다. 킹은 작품을 쓰기 전에 다라본트에게 초안에 관해 들려줬고 소설이 나오자마자 다라본트는 각본을 썼다. 다라본트는 최근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다음 영화는 킹 원작이 아닌 <비주>라는 영화라고 밝혔는데, 킹은 <그린 마일> 이전에 <안개>의 영화판권을 다라본트에게 넘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