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쟝센단편영화제 [1] - 사회드라마
2005-06-22
글 : 김수경|
미쟝센단편영화제 [1] - 사회드라마

장르영화, 작은 고추가 맵다니까!




단편 장르영화들의 잔치 미쟝센단편영화제가 6월23일(목)부터 29일(수)까지 제4회 행사를 맞는다. 올해도 예년처럼 감독 12인이 집행위원단을 맡았고, 각각 본선에는 비정성시(사회드라마)에 16편,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멜로드라마)에 12편, 희극지왕(코미디)에 10편, 절대악몽(공포 판타지)에 16편, 4만번의 구타(액션 스릴러)에 9편이 올라 있다. 개막작 1 “본선 진출 감독들의 동영상 자기 소개서” <Moving Self-Portrait 2005>와 개막작 2 <특산품 수출 주식회사>(얄마리 헬렌더)를 위시하여 장르별 패기로 넘쳐나는 작품들이 즐비하다. 올해는 특히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모아 상영하는 비경쟁 부문”을 신설했고, 영화제 본선 출품작을 DVD나 VHS로 일반인에게 판매하는 행사 “MGFF 마켓”도 열린다. <씨네21>은 올해 출품작 중 장르별로 4편씩의 영화를 소개하고, 그중 한편을 ‘씨네 초이스’로 뽑아 좀더 애정을 표하기로 했다. 즐거운 장르영화 잔치로 빠져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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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드라마 장르 단편영화 본선진출작


비정성시


길 위의 사람들, 길 위의 사연들



공포와 더불어 16편이 출품된 올해 비정성시 부문의 키워드는 가족 그리고 거리다. <가리베가스> <골목의 끝> <팡팡퀴즈쇼 커플예선전> <물결이 일다> <조금만 더>는 각자의 이유로 거리를 헤매고 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여정을 다룬다. <흡연모녀> <빨간나비> <산책>은 딸이 어머니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을 그려낸다. 노동자 문제를 다룬 <크레인, 제4 도크>도 남편을 잃어버린 아내의 위기를 통해 갈등을 드러낸다. 다큐멘터리 <흡년>과 애니와 실사를 결합한 <형이상학적 나비효과의 예술적 표현>의 형식의 신선함도 볼거리다.




너는 나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아빠>/ 이수진/ 14분52초/ 2004년





초췌한 중년의 남자가 길거리에서 생면부지의 20대 청년들에게 통사정을 한다. 그의 부탁은 이러하다. “자신의 딸과 자달라는 것.” 그리고 “우리 딸은 이쁘다”라는 설명이 자막으로 이어진다. 그 남자의 딸 민주는 중증 장애아다. 언젠가부터 성욕을 느끼고, 온몸을 자해하는 딸의 고통을 보다 못한 아버지는 무작정 거리로 나선다. 천신만고 끝에 데려온 청년 앞에 딸은 아버지의 맘도 모른 채 똥을 싸버린다. 담당의사는 여기는 외국이 아니라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아버지에게 충고한다. 민주는 계속 자신의 몸을 칼로 그어대고, 손톱은 언제나 피범벅인 채로 몸부림친다. 어느 저녁, 아버지는 조용히 닭발을 손질하여 혼자만의 식사를 마치고, 이윽고 결단을 내린다.



<아빠>는 장애자의 성생활이라는 민감하고 사회적인 소재를 정공법으로 돌파한다. 자해로 얼룩진 민주의 온몸을 비추거나 아버지가 치료를 위해 딸의 치모를 면도하는 장면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이수진 감독의 카메라는 건조하고 공격적이다. 후반부의 민주에게 등을 돌린 채 혼자 밥을 먹는 아버지의 모습과 벽에 몸을 부비며 침을 질질 흘리는 그녀의 모습을 대조시키며 한 프레임에 펼쳐낸 미쟝센은 일상의 잔인함을 포착하고 있다. 작품 속의 아빠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떠올리게 한다. 세상의 윤리나 일반적인 기준은 그에게 ‘어쩔 수 없다’라고만 말한다.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라도 그의 지상과제는 남들보다 몸은 불편하지만, ‘남과 똑같은’ 욕망을 표출하는 딸의 요구를 어떻게든 들어주는 것이다. 그의 결정은 무엇일까.





엄마하고 나하고



<조금만 더>/ 심민영/ 15분/ 2005년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불안한 눈길로 표를 끊는 여자. 두 아이를 데리고 버스에 오른다. 아이들을 맡을 태안의 시어머니는 그녀에게 전화로 불만을 토로한다. 태안에 도착한 아이들과 여자는 걷는다. 마음이 급한 여자는 아이들을 채근하다가 혼자 멀찍이 걸어가버린다. 사라져버린 아이들. 뒤늦게 도착한 아이들에게 여자는 사과하고 그들은 바다로 향한다. “조금만 더” 걷자는 엄마와 아이들의 길지 않은 여정은 뭘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의 요구를 제외하면, 별다른 대화없이 조용히 진행된다. 심란한 여자의 불안감이나 표면화되지 않는 갈등은 길을 걷는 그들을 따라가는 핸드헬드 카메라의 시선으로만 비쳐진다. 로드무비 <조금만 더>는 올해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출품작이기도 하다.





밥벌이의 지겨움 혹은 치사함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손원평/ 30분/ 2005년




수돗물만 마시는 남자와 정수기를 파는 여자는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피아노 조율사 용희는 남의 일에 참견을 잘하는 사람이다. 이웃 건물에 사는 회사 직원들의 회식에 참석하는 것은 기본이고 길에서 터져버린 남의 집 쓰레기도 자신의 손으로 주워담아야 직성이 풀린다. 정수기 외판원 영은은 그런 눈치없는 용희가 싫지만 승진하여 본사로 가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와 ‘동업 아닌 동업’을 시작한다.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은 ‘눈치’와 ‘사회생활’에 관한 비루한 보고서다. 이 작품은 노동석 감독의 <마이 제너레이션> 취업 버전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디서나 존재하는 ‘밥벌이의 지겨움’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손원평 감독은 눈치없고 우직한 한 남자의 비애를 통해 보여준다.





빚 앞에 장사 없다



<채무자>/ 우원석/ 23분/ 2004년



영화가 시작되면 손톱을 깎는 깡패 앞에 알몸으로 무릎을 꿇고 신체포기각서를 쓰는 세 남자. 그들은 빚을 지고 고시원에 숨어 있는 경재, 성진, 문수다. 그러던 어느 날 성진이 자살하고 형사가 고시원에 들이닥친다. 문수는 불안에 떨며 그것이 불량배들의 타살이라고 믿는다. 경재는 문수에게 빈집을 털자고 제안한다. 그들은 김기덕 감독의 <빈 집>에 나오는 태석처럼 트럼프카드를 비어있을 만한 집에 꽂고 며칠이 지나면 그것을 확인하고 빈 집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정작 금고를 열지 못해 애태우던 두 사람에게는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온다. 흑백영화 <채무자>는 정교한 미술과 극단적인 빛의 사용으로 구성된 화면 연출을 보여준다.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삼은 이 작품은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장르영화의 미스터리를 택하고 충격적인 반전을 향해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