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미쟝센단편영화제 [5] - 액션
2005-06-22
글 : 김수경
액션 장르 단편영화 본선 진출작

4만번의 구타

쫓아라, 때려라, 웃어라

독립영화진영의 액션영화를 발견하는 텃밭인 4만번의 구타 부문은 출품작 수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어느 영화제에도 없는 섹션이다. 올해 컨셉은 코믹과 반전. 시리즈물로 작년에 이어 출품된 독특한 액션극 <어느날2>, 황당한 인질극 <내 남편을 구해라>, 중국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극 <살인자들>은 액션과 스릴러라는 바탕 위에 유머를 양념처럼 첨가한 영화들. 엽기적인 치정극인 <목구멍 깊숙이>와 연출자가 ‘가정탈주극’이라 명명한 <결혼기념일>은 마지막 반전에 승부를 거는 작품들이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패스오버>/ 안상훈/ 22분/ 2005년

강진안은 108일 전만 해도 형사였다. 연쇄살인범을 쫓던 그는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단독수사를 하다가 옷을 벗는다. 교회 창고에서 이제까지의 자료를 움켜쥐고 범인을 쫓는 진안. 범인은 피해자들의 살을 벗겨내고 해골로 남겨놓은 채 주변에 빵가루를 뿌려놓았다. 모든 사건 현장에 등장했던 유력한 용의자를 발견하고 그녀의 뒤를 쫓는 주인공. 주인공과 마주 앉은 여자 용의자는 엉뚱한 이야기를 그에게 털어놓는다.

<패스오버>는 여러 장르를 ‘패스오버’(가로지르는)하는 혼성적인 영화다. 세명의 피해자들을 둘러싼 주변인물들을 탐문수사하는 과정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되었다. 한편 용의자들의 심문실 장면은 코미디영화처럼 구성된다. 영화 시작부터 등장하는 주인공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은 이러한 다양한 포맷을 내러티브에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마스터숏을 남발하지 않고 클로즈업 중심으로 진행되는 화면구성은 속도감을 느끼도록 한다. 첫 번째 피의자의 유품으로 남겨진 시나리오를 발견한 주인공이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영화과 학생들은 이걸 가지고 영화를 찍는다는 말인가”라고 절망하는 대목이나 캡을 쓰고 경보를 하며 도망가는 용의자를 쫓던 주인공이 터널에 다다라서 갑자기 경보하는 다수의 아줌마들과 마주치는 장면에서는 유머감각도 느껴진다. 용의자와 대화한 후 혼란에 빠진 주인공의 심리를 판타지를 통해 표현하는 결말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극중에서 강진안 형사 역을 맡은 문수는 현재 개봉을 앞둔 원신연 감독의 공포영화 <가발>의 남자주인공을 맡기도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재구성의 매력

<나의 지구를 지켜줘>/김병정/15분/2005년

김 형사는 여고생에게 자신이 납치되었고 살인사건을 목격했다는 제보를 받는다. 그는 수사를 진행하다가 후배 서 형사가 자신을 미행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서 형사가 범인이라고 판단하고 여고생이 납치된 장소를 찾아간다. 그리고 현장에서 서 형사와 마주서는 김 형사. 야마자키 가즈오의 애니메이션 제목이기도 한 <나의 지구를 지켜줘>는 실상 <메멘토>와 닮았다. 기억의 재구성을 통해 사건을 풀어내는 방식, 인물 간의 액션숏과 리액션숏을 따로 분리하여 다른 곳에 재배치하는 구성, 같은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반복해서 보여주는 내러티브가 그러하다. 형식적 측면에서는 상업영화를 연상시키는 매끄러운 편집과 카메라워크가 이러한 복잡한 구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로그인 하고, 자연을 구하세요

<에스페란토>/오자초/14분36초/2004년

비디오게임의 메뉴처럼 로그인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아이디를 확인하는 절차가 끝나면, “미디어를 찬양하라”는 에스페란토어가 들려오고 얼굴을 디스켓으로 가리고 걷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알록달록한 옷차림의 소녀가 무채색의 군중 앞에 나타난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경쾌하게 움직이는 소녀를 비행로봇들이 추격하고 그녀는 디스켓을 내던져 날아가던 우주선을 추락시킨다. 소녀는 형형색색의 큐빅을 손에 넣고 동굴로 돌아와 자연을 되살려낸다. 속도감 있는 편집과 게임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하는 3D애니메이션 <에스페란토>는 인터랙티브한 미디어의 속성을 극대화한 영화다. 시점숏으로 자주 전환되는 프레임이나 아케이드 게임을 떠올리는 화면앵글은 애니메이션보다 게임에 가깝다.

양아치는 여전히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리얼>/진진·변성현·박성진/31분/2005년

여기 “회사를 가느니 깜빵을 가겠다”는 24살의 현수가 있다. 늦잠을 자다가 잔소리를 듣는 현수를 찾아온 승규도 그와 다를 바 없는 우울한 청춘이다. 자취를 하는 본드는 여자 친구와 헤어져 괴로워한다. 공장을 다니는 재호까지 네 사람이 모여 거리를 쏘다닌다. 술을 마시려고 27살 행인에게 돈도 뺏고, 선배에게 빌려준 돈도 받으러 가지만 상황이 꿀꿀하기는 매한가지. 자기들처럼 돈을 갈취하려는 아이들을 붙잡아 두들겨패는 그들. 하지만 아침이 되면 입장이 뒤바뀐다. 흑백으로 그려진 동네 청년 혹은 양아치의 세계인 <리얼>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그려내던 그 시절과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수중에 돈은 언제나 없고, 회사는 가기 싫고, 부모는 잔소리를 한다. 영화의 말미에 회사를 다니려고 대전을 향하는 현수는 행복할 수 있을까.


멜로와 화장실이 짝짜꿍

한국영화 비경쟁 부문- <이유있는 멜로> <공간, 이감(異感)>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미쟝센영화제가 한국영화 비경쟁 부문을 새롭게 마련했다. 프로그래머 스펙트럼으로 명명된 비경쟁 부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먼저 ‘이유있는 멜로’는 단편 경쟁부문을 가진 각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들이 추천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충무로에 입성한 이하 감독의 <1호선>, 김정구 감독의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같은 독립영화 히트작부터 <여름, 위를 걷다> <웃음> <My Sweet Record>, 2004년작인 <도로 눈을 감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멜로드라마가 이 섹션에 포진되었다. 추천에 참여한 프로그래머들은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인디포럼,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활동 중이다. 나머지 하나는 ‘공간, 이감(異感)’이라는 이름으로 구성되는 특정한 공간을 다룬 영화들의 모음. 이번에 선택된 공간은 가장 내밀한 곳인 화장실이다. 장희선 감독의 1996년작 <웰컴>, 조의석 감독의 <환타 트로피칼> <We Can’t Share a Toilet> <조우> <양보의 미덕> <어쩌다 그녀가>가 여기 속한다. 이들을 모두 관람한다면 한국독립영화에서 나타난 화장실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는 통달하게 될 듯하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