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돌아온 탕아 미키 루크 [1]
2005-07-06
글 : 박혜명
잊혀진 할리우드 스타 미키 루크가 <씬 시티>의 마브로 복귀하기까지

그 남자의 세번째 인생

미키 루크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름이다. 그의 화려한 시절은 <럼블 피쉬> <나인 하프 위크> <엔젤 하트> 등을 찍었던 80년대였고 그 시절은 그때로 끝났다. 그는 한심한 액션영화 주연이나 별볼일 없는 조연으로 훨씬 긴 침체기를 보냈다. 6월30일 국내 개봉을 앞둔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신작 <씬 시티>는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끈다. 멋쟁이 반항아 미키 루크가 못난이 부랑아가 되었다. 영화 속 캐릭터 마브가 그와 썩 잘 어울리며, 입체적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해졌는지 궁금해졌다. 미키 루크의 지난 20년을 들춰보기로 하면서 올해 칸에서 만나 나눈 이야기를 함께 실었다.

미키 루크는 늙고 상처입은 곰 같았다. 그의 몸은 아름다움 없이 비대하기만 했고, 넙적하고 푸석푸석해진 얼굴 오른쪽 귓가에는 뚜렷한 흉터가 있었다. 영화 <씬 시티>의 캐릭터 마브의 사포면 같은 목소리는 배우가 만들어낸 변조 음성이 아니라 배우 자신의 상해버린 목소리였다. 그를 둘러싼 10명의 기자들은 한때 반듯한 육체와 심장을 멎게 하는 미소를 자랑하던 배우가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수전증 때문에 커피잔을 제대로 들지 못하고 바지 위로 커피를 쏟는 광경을 보았다.

80년대 할리우드에서 제임스 딘과 말론 브랜도의 후곗감으로 열렬하게 환영받던 배우의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나인 하프 위크>(1986)에서 지긋한 미소 하나로 여자를 유혹했던 매력적인 여피족은 어떻게 <씬 시티>(2005)에서 괴물 같은 외모로 인해 돈 주고도 여자를 살 수 없는 거리의 남자가 되었을까. 20년 사이 미키 루크라는 배우의 캐릭터는 육체를 따라 늙어간 것이 아니라 종류를 바꾸고 말았다. 그 배경과 사연은 영화보다 파란만장하다. 과거의 흔적을 찾기 어려울 만큼 일그러진 얼굴은 프로복싱과 알코올중독, 폭력, 이혼, 파산 등으로 얼룩졌던 삶의 일부분일 뿐이다.

1막-치명적인 미모의 할리우드 스타

<엔젤 하트>

전성기의 미키 루크는 일단 너무 잘생긴 배우였다. 흔한 말로 위험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였고, 그 미모의 저변엔 충동적 기질과 남성미가 뭉쳐 있었다. 자연히 눈썰미 좋은 스튜디오 관계자들과 감독들은 그에게서 몽고메리 클리프트-제임스 딘-말론 브랜도로 이어지는 할리우드 반항아 계보의 피를 발견했다. 미키 루크를 단숨에 핫 캐스팅 리스트에 올린 영화는 로렌스 캐스단의 스릴러 <보디히트>(1981)다. 그의 역할은 범죄자였다. 섹시함과 순진함과 반항기로 버무려진 남자배우들에게 늘 요긴하게 활용되는 반사회적인 캐릭터를 통해 그 역시 경력을 쌓아갔다. 자신의 변호사(윌리엄 허트)에게 방화 기술을 가르치는 단역이었지만, 미키 루크가 스크린 밖으로 뿜은 매력은 여자들의 경계심을 무력화하고 남자들의 경쟁의식을 강화하기 충분했다. 금상첨화로, 그는 뉴욕 액터스 스튜디오 출신으로 나름대로 예술가적인 자의식을 갖고 있었다. “젊은 시절 나는 너무 순진했다. 나는 내가 예술을 한다고 생각했고, 그 마인드라면 스튜디오도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뒤늦게 고백하고 있지만 당시 그는 배리 레빈슨(<청춘의 양지>(1982)),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럼블 피쉬>(1983)), 에이드리언 라인(<나인 하프 위크>(1986)), 앨런 파커(<엔젤 하트>(1987)), 바벳 슈로더(<미키 루크의 술고래>(1987)) 등에게 환영받았고, 작가 감독들은 그의 믿을 만한 연기력을 헛되이 쓰지 않았다. 브루스 윌리스와 멜 깁슨이 <다이 하드>와 <리쎌 웨폰>으로 액션스타의 자리를 굳혀가는 동안 미키 루크는 여자만 생각하는 철없는 한량 청춘에서 세상과 소통을 원하지 않는 모터사이클 보이, 섹스를 열정적으로 탐닉하는 여피족, 나약한 탐정 그리고 삶과 투쟁하는 알코올중독자 시인 등으로 자신이 원했던 “예술가적인” 변신을 거듭했다.

그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거대한 저택, 멋진 차, 아름다운 여자들 그리고 예스맨들. 그가 갱 조직원들과 어울리며 위험천만하고 무절제한 사생활을 노출시켜도 사람들은 그것조차 그 배우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멋이라고 생각했다. 오래 가지는 못했다.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다. 스튜디오 관계자들은 미키 루크와 작가 감독이 붙는다고 해서 장사까지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에게 영화의 비즈니스 논리를 가르치기로 했다. 미키 루크는 자기 삶에 대한 절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예술적인 마인드를 무시하는 스튜디오에 화를 품었다. 정작 작품을 성의껏 고르지도 않았다. 감독을 눈앞에 두고 “당신이 싫어서 출연 못하겠어”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배리 레빈슨이 직접 청해온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먼 역할은 상대 배우인 톰 크루즈가 맘에 들지 않아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걷어찼다. <광란의 시간> <와일드 오키드> <할리와 말보로맨> 같은 어설픈 액션영화와 소프트코어의 출연을 끝으로 1991년 미키 루크는 “질려버린” 할리우드를 떠났다. 프로복서가 되겠다고 했다. 고향 마이애미로 돌아가는 그의 곁에는 그동안 벌어놓은 재산과 <와일드 오키드>에서 만난 두 번째 부인 캐리 오티스가 있었다.

프로복서는 그의 어린 시절 꿈이기도 했다. 마이애미 내에서도 말썽많은 게토 구역 리버티시티에서 자란 미키 루크는, 생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의 엄마는 능력없는 아마추어 보디빌더인 남편을 욕하며 어린 두 아들과 딸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새아버지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결정짓는 인물들이 늘 그렇듯) “잔인하고 폭력적인 인간쓰레기”였다. 자신보다 강한 남자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그의 남동생 조이는 야구 배트로 아무나 때려눕히는 법을 배웠고 필립 안드레(아버지 이름을 딴, 미키 루크의 본명이다)는 주먹 쓰는 법을 배웠다.

2막-11전 전승의 복서 마리엘리토

<엔젤 하트>
<미키 루크의 술고래>

마리엘리토. 미들급 복서로 링 위에서 5년 동안 대럴 밀러(1라운드, 1992년 일본), 토머스 매코이(3라운드, 1993년 독일), 테리 제스머(4라운드, 1993년 스페인) 등을 녹다운시킨 미키 루크의 닉네임이다. 마리엘리토/미키 루크는 11번의 대전 가운데 10번을 KO승으로 이겼고 1번은 판정승으로 이겼다. 그는 단 한번도 지지 않았다. “관중의 절반은 내가 지는 꼴을 보러 온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시합을 앞둔 며칠은 언제나 악몽 같았지만, 링에 올라가면 미친 듯이 싸웠다. “나는 내가 뉴욕 액터스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에 아마추어 복서를 그만둔 것이 정말 남자답지 못한 비겁한 선택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복싱은 연기 외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지만, 그때 증명하지 못한 남자다움을 내 스스로에게 다시 증명하고 싶었다.”

복싱은 돈이 되지 않았다. 가끔씩 LA로 날아가 <미키 루크의 FTW> <미키 루크의 추적자> 같은 영화를 찍고 와도 유흥비를 충당하기에는 빠듯했다. 할리우드에서는 (그가 싫어하는) 톰 크루즈가 외모와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로 한창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절제력과 통제력을 잃어버린 삶이 그렇듯 그의 삶도 만신창이가 됐다. 바닥난 돈, 엉망이 된 결혼생활, 기댈 곳 없는 마음. 그는 알코올중독에, 아내 캐리 오티스는 헤로인 중독에 빠졌다. 오티스는 남편의 여성 편력을 견디지 못해 한 영화 촬영장에서 실탄이 장전된 총을 마구 쏘아댔고, 미키 루크는 1994년 7월 배우자 폭행죄로 LA경찰에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곧 베벌리힐스의 저택이 은행에 차압당했다. 모든 것을 멈출 때가 왔다.

<할리와 말보로맨>

외모, 액션, 연기가 다 되는 할리우드의 젊은 반항아는 그러나 이제 <캘리포니아> <트루 로맨스>의 브래드 피트였다. 마피아 보스 살인사건(존 고티, 1992년)에 얽혀 법정까지 출두했던 망나니가 환대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가 전성기에 서슴지 않았던 무례한 언행들도 사람들은 다 기억했다. “처음 시작하는 건 쉽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절대 그렇지 않다.” 돌아온 탕자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망가진 외모였다. 두번 깨진 광대뼈, 찢어진 혀, 터진 입술은 문제도 안 됐다. 코가 완전히 주저앉았는데 수술비를 많이 들일 수 없어 ‘정육점 주인’(the butcher)이라는 찜찜한 별명을 가진 외과의사를 찾아갔다. 귀 뒤로 살을 찢고 손가락만큼 긴 두꺼운 바늘을 두 입술에 쑤셔넣은 ‘정육점 주인’은 수술자국도 없애주지 못하는 돌팔이였다. 다친 눈을 수술하다 눈 아래 도톰한 지방까지 뺐다. 얼굴은 조잡해지고 몸은, 체급 관리가 필요없어지면서 바로 불어났다. 그런 꼴로 그나마 캐스팅이 되면 미키 루크는 자기 애완견을 영화 속에 넣어달라고 고집부리다 중도 퇴출당하고, 길거리에서 마약밀매상을 두들겨팬 것이 신문에 나서 계약 파기를 당했다. 못생기고 성질 더러운 3류 배우는 아내를 구타하던 와중에 스스로를 비관하고 “죽어버리겠다”며 자살 소동극을 벌여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말았다.

3막- 퇴물 배우, 다시 한번 무대 위로

<씬 시티>의 미키 루크

여기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세상에 이런 일이’감이겠지만, 행복한 결말이 준비돼 있으므로 ‘인간극장’ 연말 베스트감이다. 그는 “평생 사랑한 단 한 여자” 오티스와 이혼하고 2년 뒤인 2000년 한 젊은이의 전화를 받았다. “미키 루크죠? ICM의 데이비드 웅거라고 합니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에이전시 소속 에이전트가 그의 재기를 돕겠다고 했다. “내 구원자다.” 전성기 때는 자기 에이전트의 이름도 몰라서 “왜 그 대머리에 하얀 차 모는 애” 따위로 부르며 살던 인간이 새로운 에이전트를 그렇게 표현했다. “데이비드는 좋은 사람이다. 의욕적이고 성실하다. 나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예전처럼 성질 안 내고 에이전트 말을 잘 따르려고 노력한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가난하다. 저택을 차압당하면서 은행에 진 엄청난 빚을 아직도 갚고 있다. 한 친구는 주말마다 그의 손에 100달러씩 쥐어 주고 간다. 그 돈으로 미키 루크는 맥도널드에 가서 저녁을 사먹는다. “나쁘지 않다. 난 원래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다”(That’s what I came from).

스타덤은 그에게 눈발이었다. 예쁘게 쏟아져내렸다가 흔적없이 녹아 사라진 첫눈이었다. 이후에 찾아온 길고 긴 혹한은 교만과 술과 폭력에 찌들어 지낸 망나니의 인장으로 흉한 얼굴과 곰 같은 덩치와 가난과 더러운 가십만 남겼다. 제인 캠피온 감독은 애초 <인 더 컷>의 말로이 형사 역을 미키 루크에게 제안했다가 (당시 여주인공이자 프로듀서로 내정돼 있던) 니콜 키드먼이 결사적으로 반대해 뜻을 포기했다. 15년 전의 미키 루크라면 달랐을 것이다. 지금의 미키 루크는 뉴욕의 인텔리 여성을 유혹하는 매력적인 형사보다 젊고 의욕 넘치는 신참 변호사에 비교되는 부패한 변호사가 되는 편이 낫고(<레인메이커>), 마약밀매조직 보스보다도 그 밑에서 실권을 쥐지 못해 불만이 쌓인 2인자의 캐릭터가 어울리게 됐다(<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 첫눈은 다시 오지 않는다. 미키 루크는 자신이 새로운 태도로 새로운 캐릭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드리게즈는 <씬 시티>의 캐스팅 목록을 공동감독인 프랭크 밀러 앞에 펼쳐놓고 마브 역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으로 전작(<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을 함께한 배우 미키 루크를 거론했다. 밀러의 대꾸는 이랬다. “미키 루크? <나인 하프 위크>의 그 배우?” 밀러는 미키 루크를 직접 만나본 뒤에야 로드리게즈를 이해했다. 밀러가 상상했던 <나인 하프 위크>의 매끈한 여피족은 약속장소로 나간 호텔 방 안에 없었다. 마브처럼 커다란 덩치에, 엉망이 된 얼굴에, 무뚝뚝하게 문을 여닫는 한 남자가 있었다. “상처받은 인간을 연기할” 배우가 거기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 밀러는 이런 쪽지를 로드리게즈에게 남겼다. “그가 바로 마브다”(He Is Marv). 할리우드 반항아 가문에서 오래전에 쫓겨난 탕자 미키 루크는 그렇게 새로운 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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