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트다운! 판타스틱 영화들의 서울 공략
리얼판타스틱영화제2005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7월4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자리한 영화제 사무실을 찾았다. 담배를 피우는 영화제 스탭에게 죄송합니다, 라고 말을 건네야 지날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계단. 이어진 입구 또한 상영작 프린트를 담은 깡통들의 말없는 시위로 혼잡하다. “처음엔 4명이었거든요. 조금 지나면 스탭이 늘어나서 주인이 곁방살이 하는 분위기가 될 거라고 미리 경고했는데도 그때는 설마, 하시더라고요.” 한달 넘는 영화제 준비 기간 동안 무상이나 다름없는 헐값에 공간을 빌려준 영화인회의 사람들은 손소영 프로그래머의 예상대로 구석으로 밀려나 있다. 그래도 얼굴엔 짜증 기색 하나 없다. “우리가 눈치를 보는 스타일도 아니라서 1회용 커피까지 뺏어먹어요. 지금은 이쪽 저쪽 구별도 없어요. (영화인회의) 이춘연 이사장님은 여기저기 전화를 넣어서 강제로 후원금을 타주시기도 할 정도니까.”
소수 정예 스탭들이라지만, 더운 여름에 다닥다닥 붙어서 일하는 것만큼 고역은 없을 터. 그럼에도 “실업수당 받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들이 차비만 받고서 리얼판타 준비에 열올리고 있는 건 왜일까. 그건 아마도 지난해 연말 부천영화제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이 부천시로부터 해촉되면서 이미 예정된 고생길이었는지도 모른다. “부천영화제를 시민으로부터 외면받는 마니아를 위한 영화제로 만들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부천시로부터 해고당한 이들은 알다시피 한달 전부터 새살림을 차렸다. “우리끼린 리얼판타를 가내수공업 앵벌이 영화제라고 불러요. 회의하면서 티켓 만들고, 라벨 붙이고 그러니까. 힘들기야 하지만 주위에서 응원해주시니까 괜찮아요. 한 단편영화 감독님은 슈퍼에 가면 환타 말고 리얼판타 달라고 한다는 우스개 소리를 보내주셨더라고요. 어, 근데 빈손으로 오셨네요. 피자 시킬까요?”
선물 보자기가 가볍다고 무시하진 말지어다. 7월14일부터 23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 필름포럼 1관에서 열리는 리얼판타는 예산 2억원에 상영작은 60여편. 같은 기간 열리는 9회 부천국제영화제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이지만 상영작 퀄리티는 그 이상이다. 최초의 소비에트 SF영화 <아엘리타>를 시작으로 판타스틱 영화세상, 동구권 SF영화 특별전, 코리안 판타지, 짧지만 판타스틱 등 4개 섹션에 걸쳐 기발한 상상력의 장이 펼쳐진다. 1946년 민중영화주식회사가 만든 <해방 뉴-쓰> 등 지금까지 존재 여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가 김홍준 운영위원회 대표와 김영덕, 김도혜 프로그래머가 발굴에 힘을 보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1930∼40년대 기록영화들도 영화제 기간 중 특별상영될 예정이다. 이어 소개하는 영화들은 상영작을 일람한 <씨네21> 기자들이 넉넉지 않은 지면에 어떻게든 먼저 알리고 싶은 20여편의 강추 리스트. 물론 꼭 따를 필요는 없다. 리얼판타야말로 관객의 제각각 입맛을 존중하는 영화제니까. 다만, 코리안 판타지의 경우, 한국영화 개봉작들이라 소개에서 제외했다.
이게 전부냐고 따져묻는 욕심 많은 관객이 있을 수 있다. 잠깐, 숨을 고르시라. 리얼판타가 준비한 선물이 또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프린트로 상영된 적이 없는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장치 오렌지>가 7월23일 영화제 도중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무료 시사를 한다.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이에 앞서 20일엔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인 니콜 키드먼 주연의 미스터리물 <환생>도 깜짝상영될 예정이다. “유령은 실체를 얻어 새살이 돋고, 따뜻한 피가 돌기 시작했습니다”라는 김홍준 대표의 말처럼, 또 하나의 근사한 판타스틱 축제가 눈앞에서 펼쳐질 것이다(자세한 문의는 www.realfant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