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우주전쟁>과 스필버그 [2]
2005-07-19
글 : 김혜리

진짜 스필버그씨, 손들어 주세요

이상한 일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미국 상업영화의 영광과 오류를 대변하는 신화로 자리를 굳혀갈수록 평론가와 관객은 그의 실체에 자꾸만 무관심해졌다. 대중은 스필버그를 A코스와 B코스의 만찬- 가벼운 가족용 판타지 어드벤처와 시대적 이슈를 그린 묵직한 드라마- 중 택일할 수 있는 레스토랑처럼 여기게 됐다. 그러나 대중영화 연구자 피터 크레이머가 지적했듯 스필버그에게 두 부류의 영화는 기법상으로 경계가 없다. 그리고 스필버그의 영화 가운데 더욱 온전하고 풍성한 텍스트는 <쉰들러 리스트>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아니라 <E.T.>나 <죠스>쪽이다. 스필버그의 ‘B코스’에 해당하는 영화는 종종 ‘A코스’ 영화들의 일부를 잘라낸 각론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쉰들러 리스트>가 오스카를 석권하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다시 감독상을 거머쥔 이후 스필버그는 대중영화이면서도 상당히 사적인 영화를 만들고 있다(결과적으로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스필버그 영화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 한번도 2억달러를 넘기지 못했다). “나는 오스카를 타기 전까지 어떤 염려(anxiety)를 품고 있었다. 수상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의미심장했다. 지금의 나는 뭐랄까 평온하다.”

화려한 박스오피스 기록 경신의 퍼레이드가 지나가고 오스카 트로피까지 품에 안아 모든 것을 이룬 이후, 감독 스필버그의 본령은 견고한 실체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첫째, 스티븐 스필버그는 고전적인 구식 영화감독이다. 느리고 복잡한 SF판타지 <A.I.>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스필버그는 이미 그가 창시한 블록버스터의 흐름에 역류를 시도했다. 그는 스펙터클 자체의 무대화에 집착하지 않는다. 신(scene)이 아닌 찰나의 섬광을 만들고자하는 영화, 영화 전체가 예고편처럼 편집되어 아무 데서나 잘라내도 TV 광고가 되는 영화, 영화와 CG애니메이션을 한없이 접근시키는 이벤트 영화들과 스필버그 영화 사이의 틈은 크다.

“사람들은 이제 죠스의 등장을 그렇게 오래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관객은 나 같은 감독들에 의해 나와 같은 부류의 감독을 참아내지 못하게 프로그램되고 말았다.” 스필버그는 영화의 미래를 묻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미래에는 디지털 배우가 나올 것이고 35mm 필름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구형 무비올라 편집기로 필름을 자르고 붙이기를 좋아한다.” 둘째, 이제 시간의 풍화를 거친 그의 많은 영화를 초기작부터 지금까지 돌아볼 때 스필버그의 테마는 가족주의나 피터 팬 신드롬이라는 이름으로는 좀처럼 온전히 담을 수 없다. 사람들은 그를 논하며 피터 팬을 즐겨 이야기하지만 그가 그리는 유년은 낙원인 적이 없었다. 거기에는 언제나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프랭크의 부모가 행복하게 춤추던 카펫에 떨어진 포도주 자국처럼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있다. <우주전쟁>의 레이는 천신만고 끝에 아내와 아들을 재회하지만 그들이 다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스필버그의 모든 영화 아래를 면면히 흐르는 감정은, 지금 우리가 디딘 삶의 지반이 매우 허약하다는 공포감이다. 언제든 나치에, 외계인에, 우매한 시스템과 미래사회의 전체주의에 짓밟히고 말 거라는 공포감을 스필버그는 영화를 통해 달래고 또 달랜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홀로코스트와 <터미널>의 빅터 나보르스키가 맛보는 소외가 전생의 흉터라도 되는 것처럼 어루만진다. 스필버그의 정평난 가족주의는 어쩌면 씨앗이 아니라 더 뿌리 깊은 공포의 열매인지도 모른다. <우주전쟁>은 가공할 화력으로 스필버그의 진상을 다시 보라고 우리를 ‘협박’하는 테러와 같은 영화다.

스필버그와 두 명의 톰

흥행 보증수표가 흥행 보증수표를 만나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터미널>

1990년대 말부터 스티븐 스필버그가 구가하고 있는 톰 행크스, 톰 크루즈와의 밀월은 뭇사람의 한탄을 자아낸다. 스필버그 감독이 미국 최고의 박스오피스 보증수표 두명까지 독점하다니, 분배의 정의(?)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죠스> <미지와의 조우> <영혼은 그대 곁에>의 리처드 드레이퓌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해리슨 포드와 반복해서 작업했던 스필버그는 19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시작으로 <캐치 미 이프 유 캔> <터미널>을 행크스와 함께 만들었고, <위험한 청춘> 촬영현장에서 후일 드림웍스의 공동창립자가 된 데이비드 게펜의 소개로 처음 만난 톰 크루즈와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이어 <우주전쟁>에서 감독과 주연의 인연을 맺었다.

제작자를 겸하는 거물이라는 엄연한 사실 외에 두 배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관찰자들은 두명의 톰이 모두 성장을 유예한 소년으로서 오랫동안 스크린의 삶을 살았음을 지적한다. 행크스는 <빅> <포레스트 검프> 같은 자명한 예 외에도 성인 역에서도 천진하고 사랑스런 인물을 줄곧 연기했다. <터미널>에서도 행크스가 캐서린 제타 존스에게 보내는 구애는 성적인 결실을 맺지 못한다. 아이돌 출신의 크루즈는 데뷔 뒤 물경 20년 가까이를 <탑건> <7월4일생> <매그놀리아> 등에서 반항하는 ‘아들’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스필버그도 두명의 톰도 나이 들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행크스가 유사 아버지의 캐릭터를 연기한 것과 크루즈가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우주전쟁>에서 실패를 만회하려 몸부림치는 아버지로 변신한 점도 재미있다.

두 파트너를 스필버그는 제임스 스튜어트와 험프리 보가트, 스펜서 트레이시에 비한다. “그들은 어떤 배우보다 관객의 감정이입을 끌어낸다. 잘생긴 외모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경험을 공유하게 하는 카리스마이며 일종의 마술이다. 행크스는 실생활에서 스타가 아닌 모든 사람에게 어필하고 크루즈는 배우를 동경하는 모든 사람을 매료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 대한 존경을 공유하고 있는 톰 크루즈에 대해 스필버그는 “학교 최고의 인기 소년이 따돌림당하는 범생이를 사귀어주는 듯하다”는 수줍은 친교의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크루즈의 연기 자체보다 열정적인 태도와 프로다운 자세를 자주 언급하는 편. 조연의 대사를 받아주기 위해 늘 트레일러에서 나와 대기하고 영화 시사회에 1시간 반씩 일찍 도착해 팬 서비스를 하는 열성에 감복한다. <우주전쟁> 마케팅을 위협한 오프라 쇼에서의 과도한 애인 자랑에 대해서도 “원래 혼이 나가게 행복하면 오버하는 사람이다. 언론이 이용하는 방식이 문제였다”는 식의 의견을 밝혔다. 끓는 피의 소유자답게 크루즈는 스필버그를 호메로스에 비하며 “처음 같이 촬영한 날이 내겐 크리스마스 아침, 그에게는 하누카(유대인 명절) 아침이었다”고 예찬한다. 한편 톰 행크스와의 작업에 대해 묻는 각종 인터뷰에서 스필버그는 특별히 넓은 연기폭과 익명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숙함을 높이 산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처럼 조연의 위치일 때도 행크스는 다른 배우를 압도하거나 장면을 ‘훔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필버그의 입장에서 두 배우를 기용하는 효과는 말하나마나다. 실제로 대중적 친화력이 덜하고 녹록지 않은 내용을 품은 영화도 ‘스필버그-행크스’, ‘스필버그-크루즈’라는 상표만으로 오락성에 관한 신뢰를 일단 확보하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차기작

외계인 침공 다음엔 유대인의 복수다

대니얼 크레이그
에릭 바나

<우주전쟁>이 부시 행정부의 중동 정책에 대한 하나의 견해로 읽히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한 스필버그지만, 그의 차기작은 어쩔 수 없이 사상 최고로 정치색이 강한 스필버그 영화가 될 전망이다. 외신에 따르면 6월30일 <우주전쟁> 개봉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작에 돌입한 새 영화는 ‘1972 뮌헨올림픽 프로젝트’라는 가제의 프로젝트. 유니버설은 이미 2005년 12월23일로 개봉일을 예고했다.

영화는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이 살해된 이후 결성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겨냥한 모사드 암살단의 이야기를 그린다. 11명의 운동선수가 살해되는 장면부터 시작해 골다 메이어 총리가 암살을 지시하고 실제로 최초의 도발과 직결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보복 표적에 오르는 과정이 이야기의 골자라고 한다. 모사드 암살단의 지휘자로 에릭 바나가 출연하고 대니얼 크레이그, 제프리 러시, 마티외 카소비츠, 한스 지슬러 등이 캐스팅됐다. 시나리오의 주요 밑그림은 <조지 조나스의 복수>라는 책에서 비롯됐고 처음 <포레스트 검프> <인사이더>의 작가 에릭 로스에게 맡겨졌던 시나리오는 결국 <엔젤스 인 아메리카>를 쓴 토니 커시너에게 다시 넘어갔다. <쉰들러 리스트> 이후 단순한 이유로 스필버그를 추종해온 유대인들의 실망이나,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이 영화가 불러올 연상 작용을 고려할 때 가히 지뢰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영화 시나리오의 자문에는 스필버그의 담임 라비는 물론,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전 백악관 대변인도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말타, 부다페스트, 뉴욕 등지에서 촬영될 ‘뮌헨올림픽 프로젝트’는, 연말로 잡힌 개봉 시점 덕분에 벌써부터 내년 오스카의 반응에 대한 호기심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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