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99 한국영화 페미니즘 성적표 [3] - 여성평론가 대담 ②
2000-02-01
사진 : 이혜정
정리 : 이유란 (객원기자)

<거짓말>은 OK, <노랑머리>는 NO!

변재란

변재란 |<개같은 날의 오후>나 <그대 안의 블루>는 스스로 페미니즘을 주창했지만 정공법을 피해갔다. <개같은…>은 개그적 요소를 집어 넣었고, <그대 안의 블루>는 계몽적인 남성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따라서 독해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김소영 |그런 맥락에서 <거짓말>을 얘기하면 재미있겠다. <거짓말>의 처음 한 시간은 지루했다. 그런데 집이 불타는 장면에서 갑자기 여성친화적인 영화로 변하더니 굉장한 즐거움을 주었다. 전혀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사실 사도매조키즘은 남성중심적인 장르인데 갑자기 표변하복적인 순간을 드러냈다. <여고괴담…>이 처음부터 전복성을 예상됐던 영화였다면 <거짓말>은 뜻밖의 전복성이 발견된, 잘 만든 영화였다. 장선우 감독에게 편견 같은 게 있었다. <꽃잎>부터 <나쁜영화>까지 싫어했다. 그래서 <거짓말>도 최대한 늦게 봤는데 아주 뜻밖의 즐거움이 있었다. 사람들이 그 영화 보고 슬펴진다고 하는데, 난 하나도 안 슬펐다. 전복적인 유쾌함을 느꼈다.

심영섭 |하지만 여전히 장선우식의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집착하는 여관방의 정사신과 남성주의적인 동선은 새롭지 않다. <경마장 가는 길>이 오히려 전복적이었다.

김소영 |한국영화의 주요 주제 하나가 남자들의 매조키즘이다. 남자들이 스스로 불쌍해서 징징짜는 것을 보면 제일 꼴보기 싫다. <거짓말>은 그걸 해체해버렸다. 그 매조키즘을 완파해버린 건 한국영화에서 드문 일이다. 영화 중간에 ‘난 철저한 새디스트는 아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두 남녀는 10대처럼 난리치고 놀면서 유아적인 성을 유희한다. 사실 SM을 표방했지만 그들은 SM도 잘 모른다. 그들 사랑의 유치찬란함이 좋았다.

심영섭 |퇴행이다. 액션 영화의 퇴행이나 <거짓말>의 퇴행이나 더이상 출구가 없기 때문에 뒤로가는 거다.

변재란 |<거짓말>은 ‘사실은 나도 괴롭다’는 남성의 투덜거림을 솔직하게 보여줘서 재미있었다.

심영섭 |김기덕 감독에 대해 얘기할 때가 온 것 같다. 몰리 해스켈의 논문 ‘숭배에서 강간까지’가 한국에서 가장 잘 적용되는 감독이 김기덕이 아닐까 싶다. 여성을 성녀 아니면 창녀로 그린다. <악어>에서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 끈질간 여성의 도상학은 굉장히 보수적이다. 가증스러운 건 그런 보수성을 미학적이고 리버럴하게 포장하는 이중성이다. <파란 대문>의 문제는 단지 여주인공이 창녀라서가 아니다. <파란 대문> 안쪽의 계급적 구조는 완전히 남성주의적이다. 한 여자를 이 남자가 가져도 되고 저 남자가 가져도 된다는 식으로 착취하는데 이에 대해 여성은 무기력하다. 심지어 그 집 딸은 성적 착취를 조장하는 걸 우정이라고 믿는다. 그 뒤를 잇는 영화가 <노랑머리>다. 이 영화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반항한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삼각관계에 놓인 주인공은 남자가 아니라 남자친구의 애인을 죽인다. 이로써 한국영화 골수에 박힌 모토인 ‘여성의 적은 여성’임을 강조한다. 이는 굉장한 독이다.

탁월한 성취 <낮은 목소리>, 그리고 단편들

<낮은 목소리>

김소영 |지금쯤에서 독립 영화를 말하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징후적 독해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여성감독의 영화가 이미 출현했다고 생각한다.

변재란 |우선 <낮은 목소리>에서 시작하자. 아직 <숨결>을 보진 못했지만, 2편이 좋았다. 할머니들의 일상을 꾸미지 않은 채 카메라의 시선이 거기에 함께 어우러진다. 남성 지식인은 군위안부 이야기가 나오면 자기 누이가 강간당한 듯이 수치스러워한다. 민족주의에 초점을 맞추면서 젠더를 배제해버리는 것이다. 변영주 감독은 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웅얼거릴망정 편안하고 힘있게 제기했다. 변 감독은 할머니들 스스로 몸과 정신이 유리되온 역사를 직시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똑바로 바라봤다.

심영섭 |전략적으로 다뤄질 수 있는 주제를 정치적으로 다루지 않고 여성의 얘기를 만들어낸 게 성과라고 생각한다. 특히 2편에서 할머니들이 비료를 뿌리는 장면이 좋았다.

김소영 |<숨결>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매독에 걸린 위안부 어머니와 언어장애자인 딸이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딸이 자신의 과거를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카메라가 돌아가면서 딸이 그 사실을 알고있다는 게 드러난다. 어머니는 굉장히 놀라면서 딸과 수화로 그런 얘기를 교환한다. 다큐멘터리의 승리였다. 6년간의 노력 끝에 그들의 삶 전체를 담은 순간을 카메라로 담아낸 거다. 민족주의 담론에 흡수될 여지를 열어놓은 게 <낮은 목소리>의 문제라는 생각도 했지만 3편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이제 정말로 3부작으로 마감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변재란 |여성 영화제에 나왔던 단편영화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소영 |<집으로 가는 길>은 대항 영화로서의 여성 영화의 형식을 고민했다는 점에서 좋았다. 영화가 시공과 관계된 매체라면 이 영화에는 여성이 어떻게 그것을 재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파리에서 서울로 돌아온 주인공 여성은 어떻게 집으로 가야할지 모른다. 그런데 골때리는 건 아주머니들이 계하느라 떠들썩하는 판타지 장면이다. 나중에 감독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한국 아줌마들 무섭잖아요’, 그러더라. 여성이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을 탐구하다 일상적인 아줌마의 파워를 넣었다는 점에서 실험적인 가능성이 있는 영화다.

변재란 |장희선 감독의 <고추 말리기>는 할머니에서 어머니, 자기로 이어지는 여성 3대의 이야기로 여성간의 관계, 여성 각자의 역사를 친근감있게 그려낸다. 대역을 써서 재현도 했는데, 장희선 감독이 뚱뚱하다는 이유로 집안에서 받은 괄시를 재치있게 그려낸 대목은 여성의 정체성과 여성 영화인의 위치를 보여줘서 흥미로웠다

심영섭 |단편 영역에 들어오면 남성감독들도 유연해진다. 남성감독이 만든 단편 <마를린 몬로의 초상>를 봤는데 화장하고 예쁜 옷을 입고 싶어하는 할머니가 통풍기 위에서 치마를 걷고 마를린 몬로를 흉내낸다. 몬로야말로 첨단의 아이콘인데, 그런 것을 완전히 뒤집은 게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독립영화계에서 자유롭고 전복적인 감독도 충무로에 들어가면 달라지는 것 같다.

주류 속의 아방가르드 캠피온, 상업영화 내부의 전사 비글로

심영섭

변재란 |이제 외국의 페미니즘 영화들을 검토해보자. 국외 작품들은 여성감독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 겹쳐지는 추천작이 있다.

김소영 |주류와 아방가르드의 중간쯤에 있으면서 자기 생각대로 용감하게 영화를 찍는 감독이 제인 캠피온이다. 여동생과 함께 만든 최근작 <홀리 스모크>는 굉장하다. 하나의 구체적인 장면을 얘기해보자.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미녀도 아닌 케이트 윈슬럿이 주인공인데, 그녀는 완전 나체로 하비 케이틀 앞에서 오줌을 질질 싼다. 게다가 하비 케이틀 같은 마초가 립스틱을 칠하고 빨간 원피스를 입고 나온다. 정말 제인 캠피온은 주류에 들어가서도 자기 멋대로 영화를 찍는다.

심영섭 |최근에 본 제일 좋은 페미니즘 영화가 조슬린 무어하우스의 <1000에이커>였다. 미국 한적한 마을을 배경으로 아버지와 딸의 애증관계를 그린 영화인데, <리어왕>을 역전시킨 점이 흥미로웠다.그 영화를 보면서 <박하사탕>을 생각했다. <박하사탕>은 남성의 시선으로 80년대를 관통하는 영화인데, 만약 군산의 창부나 순임의 시선으로 거쳐갔다면 어땠을까 싶다. 여성 환자들을 보면 그들이 당한 폭력은 엄청나다. 예를 들어 강간한 남자랑 결혼을 해서 스물한살에 아이 셋을 낳은 여자도 있고 어머니를 칼로 찌른 딸도 있다. 이는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다. 숨겨진 폭력의 희생자인 여성들의 얘기는 영화보다 더 영화적이다. 그런 시선을 담아낼 영화가 언제나 나올까. 그런 현실을 아니까 영화보고 화날 때가 있다. 여자에 대해 뭘 안다고, 얼마나 안다고 저렇게 당당할 게 찍은 걸까 싶어서.

김소영 |캐서린 비글로우는 <블루 스틸> <스트레인지 데이즈>에서 페티시즘같은 시선의 권력을 주제로 삼고 있다. 남성적 쾌락이 무엇인지 끝까지 질의한다. 페미니즘 영화의 이론적인 문제를 주류 안에서 폭파시킨 것같다. 상업 영화계의 샹탈 애커만이다. 애커만이 여성적인 시공의 재현 가능성을 고민한다면 캐서린 비글로우는 상업 영화에서 시선의 권력을 끝까지 파고든다. 굉장하다.

심영섭 |비글로우의 <리얼 다크>는 호러 영화를 빌어서 교묘한 피학·가학의 매커니즘을 잘 그려냈다. <블루 스틸>은 프레임 하나로 과거와 현재에 모두 갖힌 여주인공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교묘하게도 남성관객에게 어필하면서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영화다.

변재란 |비글로는 여성의 시선으로 남성적인 장르에 접근한다. 그래서 남성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아는 여성감독을 유난히 많이 배출했다. 그 얘기를 해보자.

김소영 |오스트레일리아는 여성정책 자체가 발전되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유럽의 변방이면서 아시아의 변방이고 식민지를 경험했으며, 그런 주변적인 것이 잘 정치화되어 있다. 여성의 공적인 영역으로의 진출도 활발하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여성감독이 많은 건 그런 제도가 낳은 성과이다.

변재란 |감독만 아니라, 각 영역의 3분의 1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피아노>만 해도 제작자인 제인 채프만, 감독인 제인 캠피온과 일련의 여성스탭들이 붙어서 만들어졌다. 우리는 흔히 가족 하면 친밀감이나 유대를 연상하지만 제인 캠피온은 가족의 불편함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내 책상 위의 천사>는 오이디푸스 궤적을 따라가는 영화들과 달리 한 여성이 어린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신랄하고 솔직하게 그려냈다.

여성관객의 해석에 주목하자

심영섭 |페미니즘 영화 대부분은 반오이디푸스의 궤적을 따라간다. 프로이드가 말했던 ‘여성은 검은 대륙’이란 명제에 대한 안티 테제를 증거하는 거다. 프로이드는 여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아예 타자화시켜버렸다. 더이상 오이티푸스 이론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영화를 바라보는 데 제3의 개념, 오이디푸스의 궤적을 분해한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김소영 |제3의 개념은 유토피아적이다. 우선은 영화사에서 발견되는 대안의 전통을 담론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징후적 독해는 이젠 지겹다. 여성관객도 배신을 많이 한다. <해피엔드>를 보면서 ‘죽일 년’하는 거나, <하녀>를 보며서 ‘저년 죽여라’하는 거나. 여성관객은 그럴 수 있는 존재다. 중요한 건, 제3의 개념보다는 현재의 저수지에 어떻게 파장을 일으킬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심영섭 |여성 영화를 볼 때 경계해야 할 점은 ‘우리’와 ‘그들’을 분리해선 안 된다는 거다. 여성관객의 시선을 집어 넣어 평론을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우리와 그들을 나누지 않는 길이다.

변재란 |페미니즘 영화에 대한 텍스트 자체 분석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여성관객이 자기 역사에 비추어 영화를 어떻게 해석할지를 짚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바로 그것이 비평가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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