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99 한국영화 페미니즘 성적표 [1]
2000-02-01
글 : 유지나 (평론가)
여성관객 설문 경과보고, 그리고 1999년 한국영화 총평

여성문화예술기획의 여성관객 1천명이 뽑은 최고의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우리가 그 여자, 춘희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그녀는 청결 불감증에 걸려 있고 좀처럼 치마를 입지 않으며, 물을 병째로 들이켜고 좋을 땐 희한한 웃음소리를 낸다. 우리는 이것말고도 그녀에 대해 열 가지는 더 얘기할 수 있다. 춘희가 곧 우리니까. 춘희, 아니 한국의 ‘보통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이 여성관객이 매긴 페미니즘 성적표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 여성문화예술기획이 ‘여성관객 1천명이 뽑은 최고의 영화·최악의 영화’ 네 번째 설문조사 결과다. 춘희만큼 우리와 꼭 닮은 여주인공을 지켜보며 함께 폴짝거린 건 참으로 오랜만이다. 가느다란 한국 여성감독의 계보를 이어줄 이정향의 출현도 가뭄에 단비 내린 듯 반갑다. 한편, 최악의 영화로는 여성의 육체와 섹슈얼리티를 천박하게 포장해 내돌렸던 <노랑머리>가 선정됐다. 여성은 언제나 ‘주요 관객’이었지만 ‘주요 창작자’였던 적이 없고, 남성이 평정한 스크린 위에서 여성의 외침과 속삭임은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여문의 설문조사는 여성의 눈으로 영화를 다시 보고, 여성의 목소리를 한국영화 제작에 새겨넣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같은 결과와 함께 <씨네21>은 여성평론가 3인을 원탁에 불러 여성의 시선으로 90년대 한국영화를 둘러봤다. 여성의 시선으로 매긴 별점은 사뭇 달랐다.

여성의 욕망과 교감하라

1999년 한국영화가 보여준 성취는 환상적이었다. 장르 스펙트럼의 확대와 함께 이뤄낸 소재의 다양화, 새로운 형식과 영역에의 도전, 컨셉영화의 등장…. 세뇌된 애국심에다 의식적인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을 젖혀두더라도 한국영화세상 자체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시장점유율이 늘어난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보인다. 새 천년을 여는 한국영화들도 여러모로 화제와 감탄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뒤로 거슬러 가지만 삶의 진정성문제를 누구보다 앞서 제기하는 <박하사탕>, 성표현의 수위문제로 온 나라를 시끌벅적하게 만든 <거짓말>, 판소리를 영화에 접목해 형식과 재해석의 혁신성을 보여준 <춘향뎐>. 동시다발적으로 전재하는 이런 영화사건들은 한국영화가 사회에 대한 발언권과 문제제기, 의제설정에서 어느 때보다 핵심적인 몫을 하고 있음을 증명해보인다.

여성표현지수, 34% 만족, 43% 그저 그렇다

이번 설문에 응답한 1142명의 여성관객은 서울 및 수도권에 사는 20대 학생 및 직장인이 대다수다. 그간 여러 차례 설문조사와 서울지역 관객 1206명을 대상으로한 최근 영화정책연구원 조사에서도 나타났듯, 20대 초반 여성이 주관객층을 형성하고 있다. 44%가 한달 평균 1∼2편의 영화를 보는 1천여명의 여성관객은 1999년 한국영화가 예년보다 여성표현지수에서 상대적으로 나아졌지만, 여전히 34% 정도는 매우 혹은 약간 불만족하다고 여기며, 43%는 그저 그렇다는 다소 애매한 입장에서 보통이라고 평가했다. 여성관객이 지지한 <미술관옆 동물원> <마요네즈>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내 마음 속의 풍금> 같은 영화들은 여주인공이 등장하고 그녀들이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이 드라마화된 영화들이다. <미술관옆…>만 빼고 모두 남성감독이 만든 영화들이다. 그런데도 <여고괴담…>을 보노라면, 어쩌면 저렇게 여고생 심리를 잘 꿰뚫었을까,라고 감탄이 나온다. 굳이 지금 여고생이 아니더라도 여고 시절을 겪은 이들은 이 영화를 통해 그 시절 꿈꾸었던 반역의 욕망, 묘하게 짜여진 친구관계에대한 기억을 한번씩 꺼내보게 된다. 게다가 이 영화는 한 가지 목표로 돌진해서 목표를 성취하는 중앙집중형 서사전략과 달리 교환일기를 하이퍼 텍스트처럼 펼쳐나가면서 다중의 미로를 통해 이야기를 분산시키고 모아내는 혁신적인 서사전략을 구사한다. 캐릭터 자체가 된 신선한 신인배우들, 사회와 영화에서 원조교제의 대상으로 전락한 10대 소녀들을 그들만의 문화 속에서 매력적인 존재들로 복원해낸 솜씨는 주목할 만하다. 게다가 이 영화가 과감하게 거두절미하고 드러내보이는 레즈비어니즘은 동성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이 끼어들 구석조차 없이 단호하다.

생생한 여성이미지가 여성에게 통한다

<내 마음의 풍금>
<마요네즈>

여학생의 남선생 훔쳐보기 짝사랑을 키워나가고 해명하는 <내 마음의 풍금>은 풋풋한 정서가 보기 드물게 살아 있는 정공법 드라마이다. 이런 유형의 애정담론이 가지는 어설픔과 유치함을 갖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에선 그 순수함과 가슴저림의 정서적 파장을 생생하고 투명하게 펼쳐내는 이 영화는 특히 전도연을 여성관객이 지지하는 매력적인 스타로 만들어낸다. 1회와 2회 두 차례에 걸쳐 여배우상을 받은 심혜진은 자기주장을 하는 현대적인 여성이미지로 호감을 주었다. 그러나 나이 때문에 역할이 없어져버린(이 놀라운 짧은 여배우의 정년!) 심혜진의 빈틈을 차세대 여배우들이 메우고 있다. 지난해 추상미의 도발적이고 개성적인 매력이 여성에게도 통했다면 올해 결과는 화장기가 엷어지고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 역을 소화해내는 심은하와 전도연으로 좁혀진다. 그 중에서도 여성관객이 뽑은 여배우상으로 선정된 전도연은 <접속> 이후 <내 마음의 풍금> <해피엔드>에 이르기까지 섹시하거나 깜찍한 여성이라는 기존의 캐릭터 한계를 넘어 좀더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면서 인형 같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생생한 여성이미지를 재현해낸다.

여배우상에서 드러나듯이 30대가 넘어선 여배우를 페기처분할 정도로 여성캐릭터가 일천한 한국영화세상, 젊은 여자만을 인정하는 영계 여배우 취향을 정면 돌파해서 김혜자를 주연으로 내세운 <마요네즈>는 흥행 금기에 가까운 과감한 시도, 통념과 다른 모녀관계의 집중탐구라는 이색적인 영화이다. 개념과 형식에서 가장 여성성을 살려냈지만 사랑받는 깜찍한 여성으로서의 최진실 스타 캐릭터가 꿋꿋한 성품의 마더 콤플렉스를 지닌 아정이라는 캐릭터로 빠져들지 못하는 한계에 걸려 있다. 그래도 이런 시도조차 없다면 1999년 여성영화세상은 일상에서 발로 채이는 그 흔한 여성문제로부터 아무 영감도 받지 못한 허망한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낼 뻔했다.

카메라를 든 여성이 등장하는 최고의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미술관 옆 동물원>

1998년 크리스마스 개봉에서 1999년 초로 이어진 <미술관 옆…>은 본전이 바닥난 로맨틱코미디를 혁신적인 섹슈얼리티 전략으로 풀어내 성공을 거두었다. 여성관객이 가장 지지하는 최고의 여성관객영화상이 된 이 작품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춘희가 보는 세상, 춘희가 만들어가는 세상을 흥미롭게 연출해낸다. 그녀 역시 여느 한국영화처럼 사랑에 빠진 여성과 사랑을 이루는 여성을 내걸지만 그녀는 그것이 꿈이란 것을 알고 있으며, 그 꿈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동성에서 남다르다. 그녀는 남성의 거울인 돼버린 카메라를 스스로 들고 자기가 짝사랑하는 남자의 모습을 훔쳐보기하면서 이미지로 담아내고 시나리오로 풀어내는 점에서 시선을 가진 자이며 담론의 주체로 자신을 발전시켜 나간다. 춘희는 남성의 거울을 비춰보며 자신을 가꾸지 않는 덜렁대고 털털한 여성이란 점에서 전형화된 여성캐릭터를 깨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춘희의 시나리오에 몰래 끼어든 철수가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고 결국 춘희가 포기해버린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것은 <그대 안의 블루>처럼 남성의 도움으로 성공하는 여성이란 혐의를 제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철수를 변화시키는 춘희의 능동적 면모가 같이 고려돼야 한다고 본다. 귀찮아서 양말도 안 신고 물병도 병째 마시는 통념상 전혀 여자답지 않은 춘희가 자기 타입이 아니라고 거부하던 철수로 하여금 여성을 인격적 파트너라는 전인적 상태로 받아들이게끔 개안시킨 것은 춘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춘희의 일과 일상을 중심으로 내러티브가 짜여진 여성의 생활드라마란 미덕을 갖는다.

잘 만든 영화의 순정형 여성

<노랑머리>

최고의 영화로 뽑힌 몇편만 보면 영화의 스펙트럼과 함께 여성을 담아내는 데도 다소 폭을 넓혀간 흔적이 여느 때보다 드러나지만 전반적인 영화현실에서 여성이란 화두는 혁신성과 활력을 잃어버린 채 진부한 영화세상의 일면을 가장 잘 부각시키는 대목이다. 일상의 민주화에서 군사독재 못지 않게 무서운 것이 유전자화된 가부장적 편견과 반인간적 성차별주의란 점을 아직도 일상적 깨달음으로 작동시키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은 고스란히 영화에서 재생산된다. 어쩌면 일상보다 더 심각하게 이런 편견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이 한국영화세상이다. 그곳은 여성이란 존재를 특별한 성적인 특징(특히 신체적인 면)과 태도, 유형화된 인생관, 가치관 속에 가두어 놓고 스펙타클화하는 기법에만 열중한다. 이런 반쪽 영화세상은 두 가지 방식으로 여성을 소외시킨다. 한쪽에선 여성 존재의 그림자조차 날려보내는 솔직한 방식이 있고, 또다른 편에선 남성영웅을 돋보이게끔 설정되어 그 의존성, 남성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여성다움의 완성이라고 증명해내는 교묘한 방식이 있다.

모두 잘 만든 영화라고 칭찬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도 전형적인 순정파 여성 김주연(최지우)은 주인공의 남성적 매력을 추어올리는 양념구실을 한다. 남자들만 나오는 드라마는 너무 살벌하니까 애잔한 청순가련형 여자, 더 자극적이도록 술집에 나가는 여자가 나오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런 설정이 누구에게 자극적인가는 물어볼 필요조차 없다. 이건 어차피 사나이 드라마니까. 여론조사에서 많은 여성관객이 새로운 여성캐릭터로 지지한 <쉬리>의 이방희조차도 임무보다는 사랑에 목숨을 거는 팜므 파탈에 그친다. 이런 모순은 <노랑머리>에서도 발견된다. 한국영화사상 여성캐릭터에서 가장 과격하고 파괴적인 아나키스트를 설정하고,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모방하는(<이브의 모든 것>이나 <애타게 수잔을 찾아서> 같은) 여성모방 성장담을 이례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남성에 대한 집착을 여성간의 질투와 살인으로 해결하는 결말은 이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의 방향성을 반여성적으로 몰고감으로써 과격한 여성만 자극적으로 전시하는 데 그치는 안타까움을 보여준다.

제작자들은 왜 식상하다는 것을 모를까

한 남자를 얻기 위해 여자들끼리 벌이는 질투와 싸움은 가장 식상한 메뉴가 아니던가? 여성관객은 그걸 아는데 왜 만드는 이들은 그걸 모를까? 자기의 삶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삶을 능동적으로 풀어가는 여성이 등장하는 영화, 갈수록 그 음모가 드러나는 가부장제의 문제를 고뇌하고 대안적인 인간관계를 모색하는 영화,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을 접어놓고 자신의 임무와 공동체를 위해 몸을 던지는 여자가 사는 세상, 할리우드영화, 심지어 북한영화에는 있지만 한국영화에는 없는 세상, 그런 영화세상을 보여달라고 많은 여성관객이 제안한다. 관객의 다수인 여성을 위로하고 감동시키며 끌어들이고 싶다면, 한국이란 나라가 남성공화국이기를 그치고 모두의 나라가 돼 문화주권으로서 한국영화가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다면 이제 여성관객의 시선, 그들의 욕망과 교감하는 영화들을 혁신적인 섹슈얼리티 전략으로 녹여내는 기획과 영화실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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