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설 연휴 비디오 가이드 [5] - <에드워드 펄롱의 포토그래퍼> 外
2000-02-01
글 : 김의찬 (영화평론가)

숨은 비디오 걸작 5 - <에드워드 펄롱의 포토그래퍼>와 워터스 감독

뒤죽박죽 컬트, 웃고 즐겨라

존 워터스는 참 이상한 영화만 만든다. <에드워드 펄롱의 포토그래퍼>(이하 포토그래퍼)도 마찬가지. 줄거리만 보면 차분한 드라마 같은데, 막상 영화를 보면 아니다. 기묘하고 엉뚱한, 그리고 천박한 장난들이 가득하다. <포토그래퍼>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에드워드 펄롱과 크리스티나 리치 등의 스타급 연기자들이 출연한다는 것이다. 특히 크리스티나 리치는 왜 진작 존 워터스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는지 의아할 만큼, 영화에 딱 어울린다. 영화에서 ‘패커’라는 이름의 청년은 취미삼아 사진을 찍는다. 그의 재능은 금세 사람들 눈에 뜨이고, 뉴욕으로 초청되어 개인전을 갖기도 한다. 잡지에도 이름이 실리고 텔레비전에도 출연한다. 그야말로 승승장구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청년은 고민한다. 내가 과연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패커의 모델이 되었던 가족들과 동성애자, 매춘부들의 삶이 침해받으면서 사진작가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기이하지만 소박한 인생을 살던 패커의 가족들은 점점 다른 사람들이 되어가고 패커는 결심을 굳힌다. 나 혼자만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겠노라고. <포토그래퍼>는 감독의 70년대 영화인 <핑크 플라밍고>와 <암컷 소동>에 비하면 온건하다. 속이 메슥거릴 만한 장면은 눈에 띄지 않는다. 시간(屍姦)이나 배설물에 관한 언급도 없다. 그럼에도 <포토그래퍼>는 정치적 은유로 무장하고 있다. 패커와 그의 연인이 투표장에서 섹스를 벌인다든가 종교에 대한 풍자를 유머스럽게 표현한다. 영화는 매춘부와 스트립걸, 동성애자 등 비주류 인생에 대해 따스한 시선을 던진다. 존 워터스 감독이 미국사회의 가치관에 줄곧 반기를 들었던 것을 상기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게다가 ‘엽기성’이라는 단어 하나로 요약되었던 전작들에 비하면, <포토그래퍼>은 감독의 원숙함마저 보인다. 패커가 온갖 유혹에도 불구하고 촌구석에 남길 결심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스스로 찾기로 마음먹는 결말은 그래서 빛난다. ‘니들은 엿이나 먹어라’는 식의 비아냥이니까.

존 워터스의 영화는 비디오 출시작이 거의 없다. 조니 뎁의 앳된 모습을 담은 <사랑의 눈물>(Cry Baby) 한편뿐이다. <사랑의 눈물>은 50년대 미국의 청춘문화를 다룬 코미디로 뮤지컬과 공포 등의 장르가 뒤죽박죽 뒤섞인 컬트작. 여느 존 워터스 영화보다 캐릭터들 개성이 돋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핑크 플라밍고>까지 볼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최소한 캐슬린 터너가 중년주부이자 엽기적 살인마로 분한 코미디물 <시리얼 맘> 정도는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정신없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존 워터스의 또다른 수작이다.

<비밀의 꽃>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만든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이전에 제작되었지만, 여러 면에서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상처입은 여성들의 연대를 애정어린 시선에서 그린다는 점이 그렇다. 레오는 필명으로 연애소설을 쓰는 작가. 남편과는 서먹한 사이가 된지 오래고 가끔 외국에서 전화만 걸어온다. 점차 연애소설을 쓰는 데 이력이 난 레오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직접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불현 듯 찾아온 남편은 그녀에게 결별 선언을 던지고 레오는 적지 않은 상처를 입는다. 고향으로 내려온 레오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찾기로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덧 그녀 주변엔 새로운 친구가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던 것. <비밀의 꽃>은 여성의 ‘모순성’을 전례없이 온화한 눈길로 바라본다. 알모도바르 영화세계의 새로운 출발을 알린 작품.

<어플릭션>

원제는 ‘고통’이라는 의미다. 전미 비평가협회 최우수 남우주연상과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작. 폴 슈레이더는 익히 알려진 바 대로, <택시 드라이버>의 시나리오 작가로 널리 알려진 연출자다. 지역 경찰로 일하는 웨이드는 가족문제로 골치가 아프다. 아버지는 늘 술에 절어 있고 웨이드 자신도 이미 부인과 이혼한 처지다.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지만, 부모 등의 가족들이 그의 발길을 부여잡는다. 마을에서 우연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웨이드는 사건의 배후에 모종의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겨울날 동사하도록 만드는 일이 생긴다. 닉 놀테, 시시 스페이섹, 제임스 코번 등 연기파 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수작. 특히 아버지 역의 제임스 코번은 불굴의 노익장을 과시한다. 종교적 구원의 문제에 천착해온 폴 슈레이더 감독의 최근작.

<빌 머레이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맥스는 명문 사립학교 러시모어의 졸업반 재학생. 다채로운 교내 활동으로 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처지다. 맥스를 잘 모르는 사람은 그를 대단한 모범생으로 착각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학업성적은 형편없고 친구도 나이가 한창 어린 아이뿐이다. 맥스는 학교 교사인 크로스 선생에게 연정을 느끼고 선생을 위해 교내 수족관을 짓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블룸이라는 재벌을 찾아가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원제가 <러쉬모어>인 <빌 머레이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는 성장 영화의 공식을 거꾸로 뒤집는 모험을 감행한다. 왕따당하던 아이는 스스로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제자리를 찾는다. 80년대 존 휴즈 식의 청춘드라마와 일맥상통하는 영화. 해외에선 ‘올해의 수작’으로 평가될 만큼 평가가 좋았던 영화지만 국내에선 아예 개봉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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