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그가 감독이 됐다 [1] - 박광정
2005-08-03
글 : 이종도
사진 : 이혜정
영화연출 데뷔 앞둔 세 남자 이야기

신인감독이란 단어는 뭔가 미숙하지만 싱싱하고, 빈약하지만 푸릇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런 신인감독만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미 일가를 이뤘지만 영화연출이라는 새로운 도전의 출발점에 선 박광정, 이상현, 안판석이 그들이다. 연극, 미술, TV분야에서 성공이라는 고지를 정복한 이 중년 남자들이 자세를 낮춰 일개 신인 영화감독이 된 사연은 각기 다르다. 하지만 오랫동안 품고 있던 꿈을 늦게나마 끄집어냈다는 점만큼은 매한가지다. 살찐 소파 속에 안주할 수 있는데도 벌떡 일어나 황량한 극지로의 여정에 나선 이들이기에 용기와 패기가 20∼30대 신인감독에 떨어진다 말할 수 없을 것. 게다가 셋 모두 영화와 매우 밀접한 영역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감독으로서의 능력이 절반쯤은 검증된 게 아닐까. 세월의 풍파를 겪었지만 완숙하고, 풍성한 세계를 품고 있는 중고 신인감독 3인방을 소개한다.

<가마다 행진곡>(가제)으로 영화연출 데뷔하는, 배우·연극연출가 박광정

영화가 부른다, 박광정의 다재다능

“벌써 영화 <진술>이 개봉한 줄 알고 망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인터뷰 안 하면 안 될까.” 웃음을 머금고는 있었지만 한편으로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문성근을 앞세운 자신의 연극 연출작 <진술>을 영화로 만들려던 계획이 계속 뒤로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보다 앞서 영화 <가마다 행진곡>(가제)의 연출을 먼저 맡게 될 듯하다. 쓰카 고헤이 원작의 연극으로 1994년 김지운 감독이 연극으로 만들기도 했으며, 후카사쿠 긴지 감독이 같은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 흥행과 비평에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연극 <아트>에서 정원중, 유연수와 함께한 모습을 본 지 몇달이 채 안 됐는데 머리가 조금 더 빠진 듯했다. 작품성 있는 원작에 “돈냄새도 나게” 하려는 고민 때문일까 아니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촬영일정이 빡빡해서일까.

그는 연우무대 출신이다. 연우무대를 거쳐간 이만 해도 김명곤, 문성근, 강신일, 김광림, 이상우, 김민기, 박광수, 여균동 등이 있다. 종가인 연우무대에서 분가한 차이무의 <비언소>는 박광정의 재주를 오롯이 보여주는 사례다. 이대연, 송강호, 박원상, 최덕문, 오지혜 등 지금 충무로의 주역이 객석을 쥐락펴락한 이 연극의 연출가가 바로 박광정이었다. 많은 관객은 “박광정의 연극이어서 왔다”고 설문에 답했다(<서울신문> 1996년 10월2일치).

“좌충우돌하면서도 선명한 주제의식을 잃지 않고 있는 재기발랄한 연출 솜씨”에 관객은 만족해 했다. “연극 연출을 하면서 미다스의 손이라는 얘기도 들었는데 비평적으로는 너무 빠르고 가볍고 재미만 추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무거운 걸 했는데도 가볍게 보였나 보더라고. 무겁게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

TV와 영화판에서 날카로우면서도 어딘가 비어 있는 듯한 자연스런 연기로 알려지긴 했지만 그의 본령은 연출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충무로가 손짓을 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영화 연출까지는, 마치 그의 인생 역정처럼, 느닷없는 장면 전환이 몇번 더 필요하다. 광주 태평극장에서 한번에 내리 5번씩 같은 영화를 본 적은 있지만 그는 평범한 모범생이었다. 눈치를 보다가 원서를 낸 금속공학과에 들어갔고 어느 날 우연히 발길 닿는 대로 14층까지 올라갔다가 거기에 자리한 연극반에 들어갔고, 군대를 마친 뒤 남들 졸업하는 나이에 연극영화과로 들어가서는 스탭 일을 했고, “재미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우연히 무대로 불려올라가 뒤에 연출가까지 됐다. 영화 연출은 뜻하지 않은 곳곳에서 암초를 만났다.

“<씨네21>에서 <진술>을 만든다고 인터뷰 사진 찍을 때는 결의에 차서 열심히 만들려는 표정이었는데.” <이재수의 난>이 실패하면서 같은 제작사에서 준비하던 작품이 엎어진 것은 작은 복선이었다. <진술>은 문성근이 대선에 참여하고 박광정에게도 출연제의가 밀려들면서 미루어졌다. “나도 캐스팅하는 입장에서 매몰차게 못합니다, 할 수도 없었지. 게다가 극단 파크도 운영해야 하니.” 이것은 ‘박광정이 감독된 사연’ 2막의 마지막 갈등장면일까.

원래 <가마다 행진곡>(가제)의 연출은 따로 있었다. 그것도 잘 아는 친구였다. 차승재 대표가 못난 사람이 넘보지 못한 여자를 자기 여자로 만드는 얘기를 만들어 달라고 했고, 박광정은 주저한 끝에 넘겨받았다. <아트>에서 함께 죽마고우로 나왔던 배우 겸 극작가 유연수가 각색 작업 중이다. ‘나같이 성질 급한 놈이 어떻게 영화제작 전 과정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없지는 않다. 장선우 감독이 <꽃잎>을 찍을 때 그는 유영길 촬영감독을 보면서 얼마나 영화가 좋기에 저 나이에 밤을 새면서 신들린 듯 집중할까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찰나가 보여준 신들림의 경지가, 아니면 광주 태평극장에서 한번에 내리 5번 영화를 봤던 그 열정이 그의 엉덩이를 감독의자에 붙들어놓지 않을까.

<가마다 행진곡>(가제)는 어떤 영화?

어느 단역배우의 순정

일본 현대연극의 중요한 작가 중 하나인 쓰카 고헤이의 작품을 영화화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단역배우 야스는 자기가 좋아하는 대스타 긴시로를 따라다니며 ‘가방모찌’를 자처한다. 긴시로는 소문난 바람둥이다. 시대극 <신선조>를 찍던 중에 배우 고나츠를 임신시키고 이 사건이 황색언론 기자들의 후각을 자극한다. 긴시로는 스캔들이 가져올 치명타가 두려운 나머지 모든 책임을 야스에게 떠넘기려 한다. 야스는 감히 고나츠 같은 스타 배우를 넘겨볼 처지도 못 되고, 고나츠 또한 이런 무책임한 일을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야스는 고나츠와 결혼하고 태어날 아이도 자기 자식으로 거두어들이겠다고 약속한다. 야스는 돈을 벌기 위해 스턴트맨을 하면서 온갖 고생을 한다. <신선조>의 계단 추락 장면이 대역을 찾지 못해 촬영이 늦춰지자 야스는 긴시로 대신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장면에 나선다. 고나츠는 야스의 진심을 뒤늦게 발견하고 긴시로를 포기한다. 1982년 일본영화아카데미 8개 부문, <키네마준보>상 7개 부문을 휩쓴 후카사쿠 긴지의 후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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