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박수칠 때 떠나라> 제작일지 [1]
2005-08-11
글 : 장진 (영화감독)
장진의 <박수칠 때 떠나라>가 무대에서 스크린으로 옮겨지기까지, 감독이 되돌아본 촬영장의 기억

장진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는 코미디가 아니라 미스터리 수사극이다. 그가 스스로 써보낸 바에 따르면 호러의 느낌이 나는 반전도 숨어 있다고 한다. 호텔에서 살해된 광고회사 여사장, 그녀를 죽이고 싶었지만 죽이지 못했다는 용의자, 심문과정을 생중계하는 TV 카메라, 이 사건의 끝을 보고 싶은 검사. 장진 감독은 이틀 남짓한 시간 동안 벌어지는 <박수칠 때 떠나라> 안에 이토록 많은 인물과 섬세하게 가지치는 사건을 배열해야 했고, 낯선 장르에 적응하기도 해야 했다. 무대에서 영화로 옮겨오기까지, 처음 일해보는 배우 차승원을 초대하고 세트 안에 갇혀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장진 감독의 안과 밖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가 사진 몇장을 직접 찍어 덧붙이기도 한 제작기는 언제나처럼 반짝거리는 재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체념과 성찰이 뒤섞인 제목처럼, 조금은 쓸쓸하기도 하다. 그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마음 한 조각이 이 글 어디엔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박수칠 때 떠나라, 어법상 정확한 제목은 손뼉 쳐줄 때 떠나라… 근데 좀 웃기네…

그냥 박수칠 때 떠나라

시작

2000년이 되고 조금 지난… 봄….

여름에 올려야 할 LG아트센터 개관 공연으로 희곡 <박수칠 때 떠나라>를 씀.

친구의 비어 있는 아파트에서 한달가량 걸려 완성된 희곡은 소소한 수정을 거쳐 성대하게 무대에 올라감.

주인공은 최민식- 지금도 고마운 것은 희곡도 나오기 전에 스케줄 다 빼고 기다려주셨음.

그 밖에 윤주상, 정재영, 신하균, 임원희 등등 믿을 만한 배우들이 합세….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침.

공연을 보던 누군가, 지나가듯 툭 던지는 말… “와!∼ 암전이 한번도 없이 흘러가는 게 꼭 영화 같네”. 그 순간, 번뜩… 이걸 영화로….

그런 생각을 한 지 꼬박 4년이 지난 뒤… 2004년 여름 끝…. ‘아, 내가 4년 전에 번뜩하며 들었던 무슨 생각이 있었는데…’라며 또 며칠 생각하다… 결국 그 연극을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란 기억을 떠올려… 시나리오로 재작업… 하나 아직도 그 아이디어를 얘기한 누군가는 기억하지 못함.

배우…예의바른 승원씨, 마음여린 하균씨

차승원

시나리오가 나왔고 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배우를 고민함….

고민 끝에 설경구 형에게 시나리오를 줌.

그 얘기를 들은 강우석 감독님,

“경구가 바보가 아닌 이상 <공공의 적2>에서 검사를 했는데 또 검사를 하겠냐” 며 다른 배우를 찾아보라 권고함.

나, “혹시 설경구 형 바보일지도 모릅니다”라며 기다려봄….

… 얼마 뒤, 설경구,

난 바보가 아니라고 연락 옴.

며칠 뒤, 우연히 차승원을 만남….

배우를 만나면 으레 버릇 삼아 나오는 말로 인사를 함.

“안 그래도 시나리오 새로 나와서 연락하려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차승원, 역시 예의상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는데 시나리오 얼른 주세요… 저희 사무실 전화번호 아시죠?”

둘의 이 버릇이 된 안부 인사 때문에 차승원 이번 영화의 주인공이 됨.

그 다음, 신하균.

신하균을 만나다.

하균에게 시나리오를 주며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믿음어린 말로 설득한다.

“몇번만 찍으면 돼. 그냥 하자….”

신하균,

“놀랍네요… 하지요… 뭐.”

이로써 2005년 가장 쉽게 주연배우를 캐스팅한 감독이 됨.

영화를 준비한다는 것…혀 풀기와 팔굽혀펴기

신하균

<박수칠 때 떠나라>를 준비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걱정했던 것은 나도 잘 알지 못하며 익숙해본 적 없는 영화로의 도전, 그리고 새로운 배우들과의 만남이었다.

미스터리… 수사물… 호러의 느낌이 나는 반전을 가진 영화…..

이 얼마나 나의 전작들과 안 어울릴 소리인가.

하긴 <아는 여자> 만들 때도 ‘당신이 멜로를? 왜 그런 짓을…?’ 이런 소릴 들으며 시작했으니깐….

리허설을 시작한다.

배우들과 시나리오를 읽어보며 동선을 만들어보며 연출의 해석을 들려주고 배우의 느낌을 듣는다.

차승원은 리허설 시작부터 뭔 대사가 이렇게 많냐며 대사량을 줄이기를 간곡히 부탁했고 신하균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윗옷 벗는 장면만을 대비하며 선탠과 팔굽혀펴기에만 열중한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차승원의 입에 나의 기라성 같은 대사가 붙어가기 시작했고 신하균의 갑빠는 날이 갈수록 튀어나온다.

드디어 크랭크인….

기다리고 기다리던 크랭크인….

갈고닦은 우리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크랭크인….

아! 비가 오는 바람에 일주일 연기했다.

영화를 찍는다는 것…명창이 되는 지름길?

정재영

흔쾌히 우정 출연을 하는 정재영과 차승원의 불꽃 튀는 카리스마의 대결로 영화를 시작한다.

바다가 보이는 평택항에서 차승원과 정재영이 붙었다.

굳이 붙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우리 영화의 대부분이 마치 연기 대결의 토너먼트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캐릭터들의 충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남성영화에서 주로 쓰이는 대치, 수평진행, 반응-작용, 억눌림-폭발 등의 드라마 수법들이 영화 안에 가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차승원은 놀라웠다.

그의 유연함은 많기도 많은 내 대사들을 소화하기에 모자람이 없었고 강약 조절과 스타일리시한 외모는 내가 원했던, 보기만 해도 멋있는 검사를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완벽주의자였다. 자기 NG가 가장 확실하고 그것에서는 타협하지 않는 배우였다.

나를 비롯한 촬영감독, 조명감독, 동시녹음기사, 프로듀서, 제작자, 식당 아줌마까지 모두가 오케이를 외치며 만족해 해도 자기가 생각한 NO GOOD의 지점이 포착되면 여지없이 ‘한번 다시 가시죠’를 외쳤다. 그는 자신의 완벽에 자신이 가까워지길 원했고 감독인 나를 비롯한 촬영감독, 조명감독, 동시녹음기사, 프로듀서, 제작자, 식당 아줌마까지 그의 태도를 반갑게 받아들였다.

정재영과 차승원이 시작한 두 남자의 대결은 차승원과 신하균이 만난 취조실 장면, 거짓말 탐지기 장면을 거치며 그 극단의 경지를 향했다. 둘은 검사와 용의자가 되어 말 그대로 싸웠다. 리허설이고 사전 분석이고 없었다. 상대방이 노려보면 다른 한쪽은 지지 않고 눈에 핏발을 세웠고 다른 쪽의 대사톤이 올라가면 맞은편 상대는 목에서 피를 토했다.

나는 보다못해 컷을 외쳤다. 이대로 두었다간 저 둘, 오늘 안에 득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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