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박수칠 때 떠나라> 제작일지 [2]
2005-08-11
글 : 장진 (영화감독)

공간 조합…머리를 써야한다

파주 수사본부 세트
살해현장인 호텔방 세트

거대한 수사본부 세트 안에 넘실대는 캐릭터들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얘기한다.

“움직여요… 소릴내어 보시고… 이 실내 안에 감정을 공기처럼 뿌려주셔요.”

막막한 연출의 소리는 귀에서 겉도는 형이상학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콘크리트 포장과 철재의 막힘에 꼼짝할 수 없고 그들의 소리는 벽을 타고 유리를 타고 흐를 수 없다. 그들의 감정은 카메라가 찾아들어갈 때까지 그 안에 머물러만 있을 것이고 우린 그들의 미세한 신경의 움직임까지 텍스트화해야 한다.

촬영감독과 조명감독 그 밖의 화면 안의 모든 성질을 책임지는 테크니션들이 며칠을 모여 하늘이 안 보이며 우리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사본부 세트 안의 연출에 골머리를 썩인다.

‘지루하거나 답답하지 않을까, 동선의 한계는 없을까, 미술의 넘침에 캐릭터가 갇혀 죽는다, 가짜라는게 티나진 않을까….’

김효신 미술감독은 분명 내가 원하는 모던하고 차가운 골격과 디테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안의 대도구와 색감까지 미술이 가질 수 있는 절대 영역 안에 존재하게끔 했다. 그녀는 억척스러웠고 세트의 완성은 피곤함이 숨어버린 베스트 컨디션이었다. 김효신 감독은 상상을 그렸고 시공을 맡은 아트서비스팀은 상상을 실현으로 그 위에 안전까지 덧붙여 만들어냈다. 세트장에 들른 이들은 거의 대부분 세트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수분을 보냈고… 몇개의 출입구 뒤에 텅 빈 공간을 발견하고서야 이것이 이 영화를 위해 지어진 세트인 줄 알았다.

정영민 조명감독은 지옥이었다. 분리되어야 할 벽은 막혀 있었고 카메라가 조금만 각도를 바꿔도 조명은 대공사를 치러야 했다. 벽면의 색감은 반사와 흡수를 반복하며 섞여 있었고 천장이 막혀 있는 지붕은 실내 공조를 여간해선 내주지 않았다. 정영민 감독은 그 안에서 장면의 분위기와 에너지에 맞는 빛을 만들어내느라 주름이 늘고 이마가 넓어지고 있었다.

고생은 카메라쪽도 마찬가지였다.

김준영 촬영감독

장편영화 데뷔를 치르고 있는 김준영 촬영감독은 폐쇄적인 공간에서 최대한의 여유로움과 넉넉한 영상으로 지루함과 답답함을 없애야 했고 나름대로의 앵글 디자인과 해석은 감독의 고집과 현장 컨디션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 일쑤였다. 그 와중에도 그의 차분함은 감독의 실수를 줄였고 화면의 탄력을 만들었다. 영화 내내 하늘이 보이는 게 5%도 안 되는 공간 조합형 영상이 그에게도 큰 경험이 됐으리라….

세트장 안에서 이루어진 영화의 대부분은 보는 즐거움에 반비례하며 작업자들의 짜증과 피곤함을 가속시킨다. 환기가 안 되는 실내 공기와 연일 계속되는 숙소 생활은 작품의 전체를 여유있게 읽으며 나아가고 싶은 우리의 바람을 자제하게 만든다.

아∼ 왜 살인사건 수사는 늘 실내에서 하는 것일까….

아, 용의자는 왜 현장에서 잡히는 바람에 수사과들이 밖으로 돌아다니는 장면조차 없게 만드는 것일까….

심지어는 피해자 역시 호텔방에서 죽는 바람에 그 장면 역시 세트 안에서 찍게 하는 것일까….

아∼ 오랜만에 햇볕을 쐬러 밖에 나가면… 비는 왜 또 오는 걸까….

재밌냐고? 재밌냐고?

영화를 찍으며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재밌어?”

그럴 때마다 내가 가장 많이 얘기하는 대답, “그냥 뭐…”.

캬, 이 얼마나 소박하고 겸손한 것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오만방자한 말인가… 그냥, 뭐… 어쩌라고?

그 안에 든 많은 행간. 기본은 하지, 나중에 보렴, 내가 누구냐? 혹은 나도 못 봤거든….

지금 이 순간, 누군가 이 영화가 재밌냐고 묻는다면….

물론- “당신이 예전에 이 연극을 영화 같다고 번뜩한 아이디어를 준 그 누군가입니까?”라고 되묻진 않겠지만 여하튼 지금 어떤 이가 내게 묻는다면 난 주저없이 이렇게 얘기할 수는 있다.

“배우들 보는 맛이 좋아요.”

차승원, 신하균의 투톱을 중심으로 신구 선생님과 정동환, 김진태, 이용이 선배님들의 묵직한 연기, 그리고 깜짝 놀랄 만한 이한위 선배나 신선한 얼굴의 류승룡, 장영남 같은 신인배우들, 그리고 색다른 느낌을 주는 박정아씨와 김지수, 정재영, 황정민(여)의 다양한 출연까지…. 이 배우들의 호연과 멋스러움이 이 영화의 큰 미덕으로 소개되어졌음 한다.

역할의 크기를 떠나 순간만큼은 정직한 몰입과 캐릭터를 소화해주시며 나와 프로덕션에 큰 기쁨을 주셨다. 배우는 필름이 빛을 받아 돌아가는 몇초 동안의 환상에 자신의 숨이 찍히는 것이다. 그들이 연습하고 예정했던 멋진 숨을 쉬어주었고 눈물을 흘렸고 눈빛을 만들었다. 물론 맹인으로 출연하는 황정민씨는 눈빛까진 좀 벅찰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연기자들의 쟁쟁함을 느낄 수 있는 반가운 영화라고 자신한다.

정말 다 끝난 걸까

장진 감독과 차승원

서른 남짓의 기쁨을 느끼고 피곤을 달래고 수고했다는 악수를 나누다가 영화는 끝났다.

어찌보면 너무 일찍 고생없이 끝난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늘 그렇듯이 아쉬움투성이다.

영화가 관객과 만나기 전에 대부분의 느낌은 관객의 반응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이번 영화는 정말 궁금하다.

그 어느 영화보다도 정말로 궁금하다.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누가 범인일까를 가지고 영화는 두 시간 가까이를 달려온다.

미치도록 범인을 잡고 싶은 사람들과 그보다도 더욱 범인 잡는 것을 보고 싶은 사람들을 보여주며 이 영화는 달려간다.

그러다보면 우리가 그토록 알고 싶어하던 것들이 진실이 아닐지 모른다고 영화는 속삭여준다.

누군가는 그토록 박수를 받으며 떠나고 싶어했고 누군가는 앙코르가 나올지 모른다며 버티고버티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가 탐구하고 닮으려 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나도 언젠가 어느 시간에서는 박수 받으며 그렇게 사라질 수 있을까?

이 쉬운 철학 엇비슷한 단념들을 영화를 통해 말할 수 있다는 건 참 복이고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이 영화를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요근래 들어 느낀다.

마지막 관객이 마지막 상영관의 출입문을 나가는 순간, 내 영화는 마침내 다 끝난 것이구나….

한마디만 더 하라면…

정말로 솔직히 얘기하자면…

난 이 영화가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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