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5 한국 장편애니메이션 기상도 [3] - <오디션>
2005-08-23
글 : 박혜명
사진 : 오계옥
천계영의 만화 <오디션>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지금의 10대들은 모를 수 있어도 7년 전에 10대였던 지금의 20대들은 안다. 천계영의 만화 <오디션>이 만화 격주간지 <윙크>에 연재되는 동안 단행본 100만부를 팔아치우면서 누렸던 인기를 말이다. 황보래용, 류미끼, 장달봉, 국철 등 이름은 괴짜 같은 반면 얼굴은 멀쩡함을 넘어서서 아름다운 네명의 천재 음악소년들의 이야기인 <오디션>은 (지금은 그 시장이 거의 죽었지만) 당시 번성하던 만화잡지들의 주수요층인 10대들의 감성을 정확히 잡아내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만화다. 믿을 수 없는 재능을 가졌지만 세상과는 편히 어울릴 수 없었던 미소년들이 음악을 통해 행복해지는 이야기. 방송국과 음반사를 거느리던 송송그룹의 회장은 오래전 우연히 마주쳤던 어린 그들과의 기억을 일기장에 기록해두고, 죽으면서 “이들을 꼭 찾아 오디션에 우승시켜라, 그러면 유산을 상속해주마”라고 외동딸 송명자에게 유서를 남겼다. 국철 무리와 비슷한 또래인 송명자는 아버지가 쌓아둔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 그들을 찾아내고 밴드를 결성하고 오디션에 출전하게 하며 우승을 돕는다. 드러나게 할 일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 라이벌로 지냈던 동창 박부옥을 사립탐정으로 고용, 대리인으로 세운다. 송명자가 가진 재력과 권력과 박부옥이 가진 추진력, 국철 무리가 가진 천부적인 재능으로 밴드는 결승까지 진출한다. <키다리 아저씨>를 뒤집어놓은 듯한 설정과 불운한 천재들의 성공스토리, 작가의 풍부한 음악적 지식이 결합된 <오디션>의 애니메이션화는 1999년 5월 본격적인 프리 프로덕션을 시작했다.

1999년 5월 프리 프로덕션 본격 시작

2004년 8월 말 중국 베이징의 금증통문화발전공사가 <오디션>의 제작사인 라스코엔터테인먼트와 공동제작에 관한 MOU를 체결했다. 민경조 대표 겸 감독은 동료 한명만 이끌고 베이징에 갔는데, 민 감독의 말에 따르면 “<오디션> 같은 성공스토리와 엔터테인먼트쪽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중국쪽에서는 20여명이 의향서 교환식장에 나와 있었다. 10만달러의 제작비와 중국 내 판권의 수익권을 교환한다는 내용의 이 양해각서는 얼마 전 쓸모없는 종이쪽지가 됐다. 금증통문화발전공사와 라스코엔터테인먼트를 연결시켜준 국내 에이전트가 부당하게 추가 커미션을 취하려던 것이 중국쪽 신뢰를 앗아갔기 때문이다. 증발한 제작비를 도로 충당하기 위해 민경조 감독은 현재 국내 모 투자사와 협상 중에 있다. 투자사쪽은 5억원의 투자 의사를 알려온 상태다. 나머지 5억원은 라스코엔터테인먼트가 부담할 예정이다. “제작기간의 지연으로 인한 비용 증가는 투자자들에게 부담시킬 수 없다”는 원칙하에 6년 전 못박은 제작비 32억원도 무리하게 늘어나지는 않을 거라고 민 감독은 덧붙인다. 현재까지 들어간 제작비는 약 24억원. 무한기술투자가 5억원을 투자하고 정부가 3억2160만원을 지원했다. 나머지 14억원은 민 감독의 사재와 주주들의 자본이다. “이번 투자만 이뤄지면 남은 제작은 문제없다.” 애니메이션 <오디션>은 현재 원화 50%, 배경 68%, 레이아웃 70%, 디지털 작업 40% 등 전반적으로 65%가량의 제작진행률을 보이고 있다. 오리지널 스코어로 쓰일 음악은 13곡 가운데 11곡의 녹음이 끝난 상태다.

현재 65% 제작진행, 마지막 투자 협상 중

음악은 <오디션>의 핵심이다. 하나같이 인생의 낙오자들처럼 살다 ‘재활용밴드’로 뭉친 국철 무리는 음악을 할 때 가장 행복해하고, 원작자 천계영은 그들의 오디션을 매순간 콘서트를 방불케하는 뜨거운 기운과 규모로 묘사해놓고 있다. 영화상에서는 총 4번 등장하게 될 이 순간들이 <오디션>의 극적 고조를 이뤄낼 중요한 드라마 장치이자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요소인 셈이다. 이 부분의 연출이 현재 남은 최대 과제라고 민 감독은 말한다. 120대의 카메라가 동원된 일본의 비주얼 록밴드 글레이의 도쿄 라이브 공연 실황을 많이 참조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오디션에 반응하는 군중의 모습, 무대 조명, 열창하는 캐릭터들의 클로즈업을 생동감 있게 창조하는 것이 재활용밴드의 성공스토리에 설득력을 더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재활용밴드와 이들의 대전 상대들이 들고 나오는 음악은 박혜경, 김종서, 닥터코어 911, 에브리 싱글데이 등 기성가수들과 인디록 뮤지션들의 다양한 참여로 완성됐다.

생명력 있는 오디션 현장의 표현은 연출력만큼 기술력이 좌우하는 것이겠지만, <오디션>은 95% 이상을 2D에 의존한다. 민 감독은 2D로 꼼꼼하게 그려낸 배경화면을 스크린 테스트했다는 말과 함께 “투박하면서도 감이 살아난다”며 만족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제작과정의 효율성을 위해 2D 캐릭터와 3D 배경을 혼합하는 작업이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민 감독이 배경마저 2D를 고집하는 이유는 “스크린이 크기” 때문. 따로 채색을 하더라도 3D와 2D는 미세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고, 그 차이마저 없길 바라는 민 감독은 화면의 전체적인 색감에서도 장면과 장면 사이의 이질감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밝은 대낮 야외에서 갑자기 어둠침침한 작업실로 인물이 옮겨가는 일은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 3D는 “음료수 잔 안에서 녹아내리는 얼음을 표현하는 정도로 극히 적은 부분”에 사용된다. <오디션> 제작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진보한 기술을 활용해 애니메이션의 표현영역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를 붙드는 것이다. “액션 같은 건 좀 튀어도 별 문제 안 된다. 그러나 스토리가 튀면 관객한테 실망감을 준다. 스토리가 탄탄하면 돈주고 봐도 아깝지 않은 게 될 수 있다.”

화려한 기술력보다는 ‘드라마’로 승부한다

7년 전 10대들을 자극한 원작의 트렌디한 감각을 (가능한 수준에서) 복구하는 것은 그에 비하면 소소한 과제다. “천 작가가 나름 최신이라고 생각해서 박부옥이 들고 다니는 컴퓨터를 트렌치코트 주머니에 넣어도 될 정도로 아주 작게 만들었다. 근데 벌써 그게 현실이 됐다. (웃음) 휴대폰도 새로 바꿔줘야 한다.” 시간을 이기지 못한, 광고인 출신 원작자의 미래지향적인 감각은 현실감각이 됐고 시부야계 일렉트로니카가 인기를 끄는 국내에서 글레이의 록 콘서트를 연상시키는 오디션 장면은 어느 순간 향수마저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만화 <오디션>의 수박 줄무늬다. ‘재활용밴드’라는 (우스꽝스럽지만 한편으로 가슴 쓰린) 이름으로 뭉친 국철, 황보래용, 류미끼, 장달봉은 (이 만화의 독자였던) 10대들이 그들의 미숙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풍부한 정서와 삶의 그늘을 각기 나눠 짊어진 인물들이었다. 천재라는 운명으로도 상처를 치료받지 못한 아이들 말이다. 천계영은 심오한 대사를 말풍선 안에 집어넣기보다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믿는 소년의 괴짜스러운 행동에서 눈물자국을 찾아내려 했고, 그것은 그 시절에 놓인 아이들뿐 아니라 그 시절을 지나온 어른들에게도 공감을 샀다. <오디션>의 원작이 지닌 진짜 든든함은 그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행복을 찾아나서는 소년들의 반짝이는 성장기. “올해 12월5일이면 애니메이션계에 입문한 지 꼭 만 20년”이라고 말한 민경조 감독이 그중 1/3이란 시간을 <오디션>에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이야기의 진솔한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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