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태현, 그가 더 넉넉해졌습니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그녀가 때리면 맞아주고, 하이힐에 발이 아프다며 협박하면 못 이기는 척 신발을 바꿔 신고, 옛 연인을 못 잊어 술에 취하면 갖은 주정을 받아주는 순정으로 그녀의 곁을 지키는 견우. 그녀를 위해 바보처럼 망가지길 주저하지 않는 <엽기적인 그녀>의 연기로 웃음과 함께 여리고 순진한 사랑의 속내를 전하는 배우 차태현,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였습니다.
전반전 “연기야 7년째고.... 내 업이라 생각하죠.”서울예대 방송연예과에 들어가고 KBS 슈퍼탤런트 선발대회에 입상하며 첫걸음을 내디딘 게 95년. <젊은이의 양지> 등 인기 드라마의 단역을 거쳐 98년 <해바라기>의 어리숙한 레지던트로 안방극장에 안착하기까지는 좀 걸렸지만, 일단 가속도가 붙은 뒤로는 멈출 줄 몰랐다. 여자를 따라다니는 <해피 투게더>의 대학생, 연인을 위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햇빛 속으로> <줄리엣의 남자>의 부잣집 아들로 인기세를 몰아왔고, 올 초에 낸 음반까지 성공을 거뒀다. 잘생겼다기보다는 친근하고 편한 인상, 솔직하면서 웃음기어린 이미지로 그는 사람들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엽기적인 그녀>와 마주쳤다.
후반전 “시나리오가 튼튼해서” 잡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는 그는, 쉽게 `견우`에 빠져들 수 있었다. 조금은 엉뚱하고 순진한 복학생 견우느 그에게 낯선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상황 자체가 재밌으니까, 누가 해도 재미있었을 거예요.” 그가 보는 견우는 “내가 뭘 해서 재밌다기보다는 지현이가 원하는 걸 해주면서 웃기는 캐릭터”. 엽기적인 그녀의 `액션`에 `리액션`을 보여야 하는 역할을, 그는 내심 잘 팡가하고 있었던 듯하다. 원래 “미리 톤을 잡고 계산해서 연기하지 않고 현장에 가서 부딪쳐서 그때그때 나오는 대로”하는 편이라 견우가 좀 더 자연스러웠는지도. 물론 며칠씩 전지현을 업고 다니고, 하이힐을 신은 채 몇 시간 뛰어다니느라 고생도 많았다. 하지만 조금씩 오버를 요구했던 드라마 연기와 또 다르게 애드리브를 줄여가면서, 그 많은 내레이션을 소화해내면서, 그는 영화를 즐겼다. <할렐루야> 조연 이후 오랜만에 재회한 영화를.
연장전 “아직은 변신해서 어쩌겠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해요. 내 나이에 맞는 옷을 입혀줘야 하니까.” 지금은 진지하기만 한 것보다 사랑도, 웃음도 있는 <엽기적인 그녀>같은 역할이 편하지만,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은 박중훈이나 <춤추는 대수사선>의 오다 유지 같은 연기다. “서른쯤 되면 다르잖아요. 그 나이에 맞게 흘러가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때도 멋진 멜로만 하고, 아이돌 스타로 남으려고 애쓰고 싶진 않아요. 그걸 언제 놓느냐가 관건이죠.” 99년 편입한 경기대 다중매체학과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당분간 그는 졸업과 대학원 진학에 매진할 계획. 정해진 신작은 없지만, 굳이 TV와 영화를 구분할 생각은 없다. 그저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웃기면서 울리는 거, 그런 걸 잘하면 진짜 아닐까?”하는 자문의 답에 이르기까지, 서두름 없이 한 걸음씩 쌓아갈 배짱이 그에겐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