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6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중간 결산 [3]
2005-09-20
글·사진 : 오정연

베니스영화제 이모저모

피곤한 히스씨, 친절한 조지씨

히스 레저

베니스가 사랑한 히스 레저/ 게이 카우보이(<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당대의 바람둥이(<카사노바>), 판타지에 매혹된 순진한 청년(<그림 형제>)까지. 이상은 경쟁부문과 비경쟁 부문에서 상영된 세편의 영화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캐릭터들이다. 덕분에 레저는 3일 내내 공식기자회견과 레드카펫 행사, 관련된 파티, 영화제와 무관한 영화홍보로 눈코 뜰 새 없는 일정을 소화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그림 형제>의 레드카펫 행사장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난 그가 두개의 질문만을 받고, 그나마 그중 하나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채 “미안하다. 너무 피곤하다”는 대답을 남겼다고 전했다. 히스 레저의 뒤를 잇는 것은 <브로크백 마운틴>과 <프루프>에 출연한 제이크 질렌홀, 그리고 <엘리자베스타운>과 <로맨스 앤드 시가렛>의 수잔 서랜던.

네명의 카사노바/ 카사노바의 고향이자 주활동 무대였던 베니스에선 카사노바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세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카사노바>(라세 할스트롬·비경쟁 부문)와 1954년작 <카사노바의 죄>, 1969년작 <쟈코모 카사노바: 유년기와 사춘기>와 1976년작 <펠리니의 카사노바>(이상 이탈리아영화 회고전)가 그것. <펠리니의 카사노바>는 주연배우 도널드 서덜런드와 촬영감독 주세페 로투노가 참석한 가운데 공식기자회견도 진행됐다.

중국 기자들의 자부심/ 비경쟁 부문 세편, 경쟁부문 한편을 비롯해 중국영화 회고전까지, 중국계 영화가 강세를 보였던 것을 인식한 중국 기자들은 곳곳에서 맹렬한 활약상을 보였는데, 이는 기자회견장에서 두드러졌다. 문제는 자부심이 지나친 나머지 간간이 선보였던 돌출행동들. 동시통역이 제공되지 않고 중국어 통역자가 배석하지 않은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기자회견장에서, 한 중국 기자는 거침없는 중국어로 질문을 던졌고, 장내의 웅성거림은 오우삼 감독이 직접 질문을 통역하고 영어로 대답함으로써 마무리됐다. <프루프>의 앤서니 홉킨스에게 중국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던 홍콩 기자는 “중국영화는 본 것이 없다”는 썰렁한 대답을 들었다.

조지 클루니

친절한 조지 클루니/ <굿 나이트 앤드 굿 럭>의 조지 클루니 감독은 영화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인물. 9월1일의 공식상영 역시 수많은 관객이 몰려들어 혼란을 빚었다. 영화제쪽은 관객이 모두 입장하지 않은 상황에서 예정된 시간에 영화를 시작하려 했고, 이에 극장 밖의 관객이 거세게 항의했다. 소란함에 의문을 품은 클루니가 상황을 파악한 즉시 관계자에게 상영을 중지해줄 것을 요청한 배려 덕분에 또 한번 화제가 됐다.

기네스는 베니스에 없다/ <프루프>의 기자회견은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 이루어졌다. <프루프>의 여주인공으로 올해 베니스 최고의 스타로 손꼽혔던 기네스 팰트로가 비행기의 기술적 문제로 인해 베니스에 도착하지 못한 것. 존 매든 감독은 자신의 휴대폰으로 팰트로를 연결했다. 색다른 방식으로 인터뷰가 진행된 탓일까. 기자들은 내내 팰트로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느라 바빴고, 질문을 직접 전해 듣지 못하는 팰트로를 위해 매든 감독은 이 질문을 전달하느라 바빴다. 정작 감독은 두개의 질문만을 받은 뒤 회견장을 떠났다.

기자회견장을 달군 말말말

“미국에선 그저 누구랑 잤는지만 궁금해할 뿐이다”

모든 영화의 기자시사가 진행된 다음날에는, 감독과 주요 스탭, 배우가 참여하는 기자회견이 열린다. 아무리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영화제라지만 30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전세계 다양한 매체의 기자들이 던지는 질문은 그 수준과 관심사가 천차만별. 이에 대처하는 영화인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대답하는 이의 성격이 은근히, 혹은 확연히 묻어나는 몇 가지 문답을 모았다.

<브로크백 마운틴> 기자회견/ 테러의 위협 때문에 영화제가 실시하고 있는 철저한 보안검색이 불편하거나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를 묻자,
히스 레저 | 개인적으로 나의 모든 일거수일투족,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이 사회에 알려지고 연관을 맺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고 멋진 것은 사실이지만, 나의 정치적인 의견을 말하고 싶지 않다. 여기 있는 분들도 별로 듣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브로크백 마운틴> 기자회견/ 부모가 어떤 비법을 썼기에 남매(제이크 질렌홀과 매기 질렌홀)가 그렇게 재능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제이크 질렌홀 | 사실은 우리 엄마가 우리에게 주는 특별한 알약이 있다. (웃음) 그게 빨간색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매일 한알씩 먹었다.

<다케시들의 것> 기자회견/ 영화 속에 스토커가 등장하는데, 실제로 당신을 따라다니는 스토커가 있었냐고 질문하자,
기타노 다케시 | 나는 오랫동안 TV에서 일해왔고, 그러다보면 스토킹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얼마 전에는 “당신에겐 아내가 있다. 그런데 왜 집에 그렇게 잘 안 들어가나”라는 말이 적힌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알고보니 아내가 보낸 것이더라.

<그림 형제> 기자회견/ 영화의 비주얼이 훌륭한데, 이를 위해 참고한 화가가 있을 것 같다는 말에,
테리 길리엄 | 물론이다. 나는 언제나 훌륭하고 화려하며, 거기다가 죽은 화가의 이미지를 훔친다. (웃음)

수잔 서랜던 (왼쪽에서 두번째)

<엘리자베스타운> 기자회견/ 유럽 기자들의 길고 유려한 질문을 듣고난 뒤,
수잔 서랜던 | 당신들은 정말 질문이 길다. 미국에선 그저 누구랑 잤는지만 궁금해할 뿐이다.

<로맨스와 담배> 기자회견/ 할리우드의 수많은 40대 여배우들이 맡을 만한 좋은 배역이 없다고 불평하는데,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물어보자,
수잔 서랜던 | 나는 할리우드가 나를 어떻게 대했으면 좋겠다고 기대한 적이 없다. 할리우드영화 속에서 남자들이 맡은 배역 중에서 딱히 탐이 나는 배역도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좋지도 않은 역할을 하면서 그렇게 많은 돈을 받는 걸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로맨스와 담배> 기자회견/ 영화 속에서처럼 암에 걸린다면 여생을 어떻게 보내고 싶냐는 질문에,
제임스 갠돌피니 | (잠시 생각하다) 암스테르담에 가고 싶다. (왜 그렇냐는 질문에 피식 웃으며) 그럼 안 되나. (이어지는 기자들의 폭소와 박수) 사실 거기 내 아들이 살고 있다.

현지지원 김은정/ 로마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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