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5 겨울 해외영화 BIG 3 [3] - <나니아 연대기>
2005-10-26
글 : 박은영
옷장 속에서 (환상적으로) 길을 잃다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The Chronicles of Narnia: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


<장화, 홍련>을 본 뒤로 옷장 열기가 무서워졌다면,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을 탐독할 필요가 있다. 2차대전 피난 와중에 런던 외곽의 노교수 집에 머물게 된 네 남매가 옷장 속에서 다른 나라로 이어지는 길을 발견해 신나는 모험을 한다는 이야기. 온갖 동물과 정령, 난쟁이와 거인들이 모여 살던 숲속 나라 나니아를 ‘크리스마스도 없는 영원한 겨울’로 만들어버린 하얀 마녀를 사자왕 아슬란과 함께 물리치고, “아담의 두 아들과 이브의 두 딸이 왕좌를 차지하리라”는 예언대로 나니아를 통치하는 아이들의 활약을 담은 이 이야기는, 속세의 때가 묻은 어른들로서도 옷장 문을 열고 두리번거리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J. R. R. 톨킨과 더불어 판타지 소설의 양대 산맥을 이룬 C. S. 루이스의 연작 <나니아 연대기>는 지난 50년간 29개 언어로 번역돼 8500만부 이상이 팔려나간 스테디셀러. 일곱개 에피소드 중 이야기 순서상으로는 두 번째를 차지하는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은 그간 TV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적은 있지만, 극장용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슈렉> 1편과 2편의 앤드루 애덤슨은 자신의 첫 실사영화로 어린 시절 즐겨 읽던 동화를 영상화하게 된 것을 큰 행운으로 여긴다. 영국과 스칸디나비아의 민담과 신화를 토대로 하면서도, 사자왕 아슬란이 죄없이 희생당했다가 부활하는 등 성서의 알레고리가 강했던 원작은 그의 손에서 “영적인 충만함을 구하는 이들도, 모험담을 원하는 이들도” 기꺼이 즐길 만한 ‘가족영화’로 만들어졌다. 특히 “아이들의 캐릭터를 세밀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변화를 시도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선과 악의 투쟁을 그린 이 우화의 진정한 힘은 아이들에게서 나온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식인귀, 야수, 마귀, 괴물, 정령 그리고 어른들이 여러분에게 이 책을 읽지 못하게 할까봐 미처 묘사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대결전에서 아이들이 대적하는 악의 무리들, 그 진용을 C. S. 루이스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 소설이 여태 실사영화로 만들어지지 못한 것은 이런 활자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줄 기술력이 없었기 때문. “5년 전만 해도 불가능했을 프로젝트”라는 제작진의 고백은, 엄살이 아니다. 영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나니아 생명체는 23종이고, 나쁜 마법으로 얼음 조각이 돼버린 생명체는 72종에 이른다. 미노타우로스와 파우루스처럼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인 환상의 생명체들까지 아우르는 방대하고 복잡한 작업이었고, 그만큼 엄청난 분량의 시각효과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를 세 군데 전문회사에서 나눠 맡았다. 준비부터 완성까지 4년이 넘었던 이 지난한 과정에서, 뉴질랜드 남섬의 평원과 빙하, 체코와 폴란드의 설원, 파인우드의 <007> 세트를 오간 촬영에 소요된 기간만도 18개월이다.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하얀 마녀가 북극 곰이 끄는 썰매를 타고 등장하는 장면이나 마녀와 아슬란(목소리 출연 리암 니슨)을 중심으로 아이들과 괴물들이 맞붙어 싸우는 대결전 장면, 말하는 비버 부부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식사장면 등이 중요한 볼거리로 꼽히는 가운데, 대부분 연기 경험이 없는 아역배우들의 연기도 동화 속에서 걸어나온 듯 자연스럽다는 호평이 흘러나오고 있다.


“내가 연기한 ‘하얀 마녀’는 <죠스>의 상어와도 같은 존재다.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아이들이 내 근처엔 얼씬도 안 할 거다. 데릭 저먼 감독이 해줬던 얘기가 생각난다. 한번은 뉴욕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할머니를 보고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고 하더라. 아무 이유도 없이. 나중에 그 할머니가 내리고 창문 밖으로 내다봤는데, 그제야 <오즈의 마법사>에서 사악한 서쪽 마녀로 나왔던 분이란 걸 알았다고 했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나? 앞으로 날 만나는 모든 이들이 날 무서워할 거다.”(틸다 스윈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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