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의 세계가 아마추어 집단을 거울처럼 비춰보고 성찰하는 게 유용할까? 대학 영화과와 영화동아리, 영화아카데미는 말하자면 아마추어다. 하지만 그들은 영화광(혹은 시네필)이기도 하다. 영화광은 프로페셔널이 아니지만 그들과 그들 너머까지의 세상을 동경하고 수집하며 미래로 삼는다. 그들을 사로잡은 지금의 감독과 영화로 미래의 감독과 영화를 가늠하는 건 그래서 가능하지 않을까. ‘젊은 영화광들에게 한국영화의 오늘과 미래를 묻는다’는 취지의 설문을 시작하고 그 결과를 들여다보면서 왜 더 일찍 이런 걸 해보지 않았을까, 새삼 자문하게 됐다. 설문은 불친절하고 투박했지만, 젊은 영화광들의 답변에선 우리가 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우려와 탄성이 동시에 흘러나오기도 한다. 독자로 부를 수밖에 없는 개별적인 영화광들과 프로페셔널들과 더불어 그들의 생각과 취향을 음미해보려고 한다. 설문에 성심성의껏 응해준 6개 대학 영화과 151명, 6개 대학 영화동아리 회원 41명, 영화아카데미 22기 19명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설문에 관한 영화평론가 3인의 의견
(김소영, 정성일, 허문영 세 평론가에게 설문 결과를 보여주고 기사용 코멘트를 받았다. 그러나 이를 분해조립하기보다는 비록 완성된 글의 형태로 받지 않았으나, 그대로 싣는 게 훨씬 의미있어 보였다. 김소영의 코멘트는 외국 출장 등의 사정으로 영화과 설문 결과만을 보고 받은 것이다. 세분의 양해를 구한다.)
김소영_ “홍상수의 부재, 놀랍다”
새로움과 중도적 의견이 어우러진 인상적인 설문 결과다. 동세대에 극과 극의 의견이 공존하는 것을 조화·상생이라고 보아야 하나, 희석·상쇄라고 보아야 하나?
1.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90년대 이후 베스트 외국영화에 <화양연화>와 <타이타닉>이 나란히 올라와 있고, <중경삼림> <러브 액츄얼리> <스타워즈>가 각각 7표를 얻어 나란히 진입해 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른바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구별짓기가 무화된 것이 특징으로 보인다.
2. 그리고 놀라운 부재가 있는데 그것은 홍상수 감독과 그의 대표작들이 거명되지 않는 것이다. 과대평가된 감독으로 이름이 올라와 있을 뿐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나 <생활의 발견>이 거론되지 않고 있다. 안타깝다.
3. 신인감독에 대한 비상한 주목: 역시 영화과 학생들이라 그런지 최근 경향을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다(최고의 남자배우 황정민, 신인감독 김종관과 윤종빈 등에 대한 기대).
4. 아쉽다고 한다면 대중적인 것을 규정하고 상상하는 것에 대한 창의성이 부족해 보인다. 즉 대중영화로서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룬 영화로 <태극기 휘날리며>가 심지어 <살인의 추억>을 앞선 것은, 대중영화로서의 성취의 측면을 꼼꼼히 따지기보다는 흥행 성취를 대중영화로서의 성취와 동일선상에 둔 것으로 보여 아쉽다.
5. 이 설문에서 흥미롭게 역산해볼 수 있는 것은 허진호 감독의 <외출>에 대한 최근의 어리둥절한 반응이다. 그의 전작은 두편이나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 베스트 5에 올라와 있는데 <외출>이 과소평가되었다는 설문 결과를 얻었고 배용준이 과대평가된 배우 1위로 꼽힌 것이 그것이다.
6. <러브 액츄얼리>에 대한 호감도가 만만치 않은 것도 흥미롭다. 최근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보이듯 다양한 삶들의 만화경, 행복추구권에 대한 유사 옴니버스 형식에 대한 기호도가 전에 비해 높아진 것 같다. 삶의 파편성이 어떤 알지 못할 전체성과 연결되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인 것 같다.
정성일_ “독립영화 진영은 어디로 갔나”
나는 다른 사람의 영화에 관한 취향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자리에 있지 않다. 그건 각자의 즐거움이고, 또한 그들 자신의 공감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기 누구 이름이 있건, 어떤 영화 제목이 있건, 그건 그 자체로 이미 종결된 대답이며, 그 안에 담겨 있는 함의는 그들 세대 자신의 암호일 것이다. 나는 같은 이름, 이를테면 박찬욱이나 봉준호, 기타노 다케시나 팀 버튼이 있다 할지라도 이 청춘남녀들께서는 그들보다 십년이나 나이 많은 <씨네21>의 삼십대의 이제 ‘저씨, 줌마네’로 돌입하고 있는 독자들께서 좋아하는 것과 전혀 다른 의미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게 당연한 일이다. 나는 같은 나라 다른 나이의 시네필들이 같은 나이 다른 나라의 시네필들보다 더 멀리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는 쪽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에 관한 한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다만 이 명단을 본 다음 두 가지 생각은 든다. 한 가지,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왜 이렇게 명단이 고색창연하냐는 것이다. 이게 그냥 보통 관객, 혹은 그냥 영화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제 평생 영화를 만들겠노라고 작정한 사람들의 명단치고는 무언가 무사안일하거나, 혹은 그저 그렇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므로 왜 이 명단에서 그들만의 이름을 볼 수 없는지는 참으로 궁금하다. 그만큼 지난 십년간은 지루했던 것일까?
두 번째 생각은 동전의 양면이다. 새로운 감독들, 특히 독립영화라고 불리는 진영의 연출자들은 왜 그 누구도 자신이 이 새로운 세대로부터 지지받지 못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십년 전, (내가 몸담았던 <키노>에서) 이와 유사한 앙케트가 있었다. 그 자리에 (그 당시에는 아직 <상계동 올림픽>만을 만들었던) 김동원, (막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두 번째 이야기를 끝낸) 변영주가 기꺼이 그 이름을 함께하고 있었다. 해방구는 게토가 되어가고 있다. 새로운 세대들은 왼쪽에 더이상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있다. 단지 대답한 이들만을 탓해야 할까? 물론 나는 이 앙케트를 대답하면서 이들이 목숨을 걸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혹은 필사적으로 대답했다고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몇 가지 징표들만은 자꾸만 생각하게 만든다.
허문영_ “한국 영화계의 화두가 ‘박찬욱’임을 입증했다”
1. 한국 영화계의 현재 화두는 박찬욱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설문이다. 최고의 감독으로 꼽히고, <올드보이>가 최고작으로 꼽히면서도 과대평가 항목에서도 박찬욱과 <친절한 금자씨> <올드보이>가 함께 꼽히는 건 그가 찬반의 격렬한 와중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어떤 아시아 거장도 얻지 못한 미국 영화광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건 한국 영화계뿐만 아니라 아시아 영화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매우 문제적 감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2. <봄날은 간다>와 <8월의 크리스마스>가 상대적으로 영화학도들의 지지가 매우 높다. 이것은 많은 해외 거장 중에서 유독 오즈 야스지로가 중요한 감독으로 꼽히는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이며, 고다르보다 트뤼포가 더 많이 언급된다는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사견으로는 한국 영화학도들이 영화의 정서적 감화력, 혹은 영화의 서정성을 중시한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요컨대 스타일리시하거나 정서적 감화력이 강한 영화를 좋아하는 경향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서정적인 왕가위가 가장 중요한 해외 감독으로 꼽히는 것은 당연하다.
3. 이와 연관, 아직 영화형식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저조해 보인다. 영화형식의 한계를 사유한 브레송이나 브뉘엘, 드레이어의 이름이 보이지 않고 고다르가 예상보다 적게 언급되고 있다.
4. 고전기 미국영화에 대한 저조한 관심도 눈에 띈다. 존 포드, 하워드 혹스의 이름이나 그의 영화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채플린이나 키튼도 역시 등장하지 않는다. 한국 영화학도들의 특징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미국영화를 미학적으로 중시하지 않는 한국영화 비평계의 성향, 혹은 한국영화 문화의 성향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