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젊은 영화광들이 말하는 한국영화의 오늘과 내일 [5] - 영화동아리
2005-11-16
글 : 김수경
“장준환과 <지구를 지켜라!>는 과소평가됐다”
<지구를 지켜라>

한때 대학의 영화동아리는 흔히 충무로라 불리는 기성 영화계에 가장 강력한 비판자였다. 볼 수 있는 영화가 많지 않고 영화 관련 서적도 드물었던 시대엔 영화과보다 앞서 영화를 탐식하던 곳이었다. 영화동아리 구성원들에게 설문을 돌린 것도 그들이 영화과 학생들보다 더 마니아적 성격이 강할 것이라는 예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결과는 영화과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슷한 세대임을 감안해도 그들의 시각과 결론은 아주 많이 닮았다. 특별히 마니아라는 점이 두드러지는 응답이 드물다는 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원하는 정보를 언제든 얻을 수 있는 환경에서 영화동아리의 마니아적 성격도 그만큼 탈색된 것이 아닐까.

한국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질문에서 영화동아리 응답자들과 영화과 응답자는 거의 비슷한 답변을 했고 순위만 한두 계단 차이를 보였다. 가장 높이 평가하는 감독은 박찬욱, 최고의 한국영화는 <올드보이>와 <살인의 추억>, 상업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강우석과 강제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의 감독은 김기덕과 장진, 최고의 남녀배우는 황정민과 전도연 등 3분의 2가 넘는 질문에서 두 집단의 답변은 거의 동일하다. 다만 영화동아리의 응답자들이 가장 높은 대중적 성취를 이룬 작품으로 강제규 감독의 <쉬리>를 택한 대목은 흥미롭다.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그 시절에 500만명이라는 ‘대중’이 극장을 찾으리라고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한 영화가 주요 일간신문 기사들의 톱에 실렸다는 일이 이미 사회적 사건이며, 이 영화 자체가 한국에서는 대중영화라고 볼 수 있다”거나 “한국영화의 다른 국면을 열어낸 작품”이라고 응답자들은 <쉬리>를 평했다.

한국영화 베스트 5에서도 3위를 차지한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에 대한 응답자들의 후한 평가는 초기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대한 대중적인 애착을 드러낸다. 영화동아리 등답자들이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를 택한 반면, 영화과 학생들은 그 자리에 <8월의 크리스마스>와 <복수는 나의 것>을 뽑았다. 이 세대가 사랑한 시네아스트인 왕가위의 작품 중에도 영화과 학생들이 <화양연화>를 최고의 외국영화로 뽑은 반면 영화동아리 응답자들의 목록에는 <중경삼림>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다른 설문 그룹에서는 대중영화 항목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살인의 추억>이 단 한표에 그친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응답자들은 대중영화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기준을 ‘블록버스터급 제작규모’에서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이후 데뷔한 감독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로 두 그룹이 공통적으로 봉준호를 지목했지만, 차점자로 영화과 학생들은 장준환을 지목했고, 영화동아리 학생들은 최동훈이라고 답했다. 반면 한국영화아카데미 학생들은 정지우 감독을 택했다. 과소평가된 한국영화 감독의 경우도 영화동아리 학생들은 장준환 감독을 택했고, 영화과 학생들은 유하 감독이라고 답했다. 과소평가된 한국영화도 영화과 학생들은 <형사>, 영화동아리 학생들은 <지구를 지켜라!>를 선택했다.

현존 한국영화 감독 중 가장 높게 평가하는 인물은?

박찬욱 (12)
이창동 (5)
임권택 (4)

-뚜렷한 자신만의 스토리 라인, 눈부신 미장센을 가진 ‘작가주의영화’ 열풍의 원동력.
-강렬한 스타일을 가졌고, 그 스타일을 관객에게 설득할 줄 아는 감독.

최고의 한국영화는?

<올드보이> (8)
<살인의 추억> (5)
<공동경비구역 JSA> (4)

-블록버스터영화로 흘러가던 (21세기 한국영화에 새로운 흐름을 가져온 영화.
-너무 잔인한 것 이외에는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상업적 감각이 가장 뛰어난 감독은?

강우석 (14)
강제규 (10)
박찬욱 (5)

-그는 자신이 상업적 감각을 중시한다는 것을 당당하게 말한다. 그것은 그렇게 되기 위한 노력이 있다는 뜻이다.
-다른 감독이 흥행에 성공하면 타이밍 때문인 듯 보이지만, 그의 성공의 이면에는 치밀한 전략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대중영화로서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룬 영화는?

<쉬리> (12)
<실미도> (7)
<태극기 휘날리며> <올드보이> (각 5)

-한국영화에 대한 인식과 판도를 바꾼 작품.
-대중적으로 흥행과 작품 면에서 모두 한국영화의 새로운 국면을 맞게 했다.

가장 효율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김기덕 (14)
장진 (7)

-제작편수나 제작비 같은 명확한 조건들을 점검하면 숫자가 그것을 입증할 것이다.
-가장 빠른 제작기간, 지극히 현실적인 화면.

과대 또는 과소평가된 한국 감독은?

과대평가_ 박찬욱 (8)
김기덕 (7)
임권택 (5)

-‘좋은 영화=영화제 수상’이라는 등가적인 공식이 만들어질까 염려된다.
-영화 자체의 평가보다는 영화 외적인 성과(해외 영화제 수상, 흥행 성적)를 통한 평가에 가깝다.

과소평가_ 장준환 (5)
장진 (4)
임상수, 봉준호 (각 3)

-단 한편의 장편영화에서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구성으로 한국영화의 한획을 그었다.
-<지구를 지켜라!>의 상상력은 그를 정신병 환자로 오인할 정도다.

과대 또는 과소평가받은 한국영화는?

과대평가_ <친절한 금자씨> (12)
<태극기 휘날리며> (5)
<실미도> (3)

-<친절한 금자씨>는 영화 내내 차가울락말락 미지근했고 주변에서 실망했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이 없었다.
-<올드보이>와 <복수는 나의 것>을 섞은 듯한 느낌이며 관객과 소통하지 못하는 장면이 너무 많다.

과소평가_ <지구를 지켜라!> (4)
<질투는 나의 힘> <극장전> <고양이를 부탁해> (각 2)

-멋진 전개와 재밌는 소재, 상당한 스릴이 있는 영화, 너무 쉽게 묻혀졌다.
-엄청난 상상력. 그것을 현실과 교묘하게 결부시킨다. 그리고 결말에서는 엉엉 울게 만든다.

최고의 남자배우는?

황정민 (8)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각 6)

-표정 하나의 변화로 선과 악이 오가는 얼굴을 가진 배우.
-이 사람이 연기할 때는 ‘배우 황정민’의 존재를 우리는 인식하지 못한다. 그저 영화 속에서 황정민과 같은 얼굴의 사람이 저런 일을 겪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최고의 여자배우는?

전도연 (13)
문소리 (10)

-그녀가 아니면 그 역할들을 누가 했을까? 배우의 배역에 어떤 배우를 대입해도 어색함이 느껴진다면, 그 배우야말로 훌륭한 배우이다
-전도연의 연기가 왜 좋은 평가를 받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그녀가 나오는 영화를 모두 보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과대 또는 과소평가받은 한국배우는?

과대평가_ 배용준 (11)
전지현 (10)
권상우 (5)

-너무 자기 이미지 메이킹에만 힘쓰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상업적인 가치는 알겠지만, 배우로서는 잘 모르겠다.

과소평가_ 차승원 (5)
황정민, 정재영 (각 3)

-그렇게 설득력 있게 코믹 캐릭터를 던져버리다니. 이전의 연기도 일품이었지만 똑똑한 변신에 박수를 보낸다.
-나날이 발전하는 연기력, 그저 잘생긴 외모와 큰 키로만 승부하는 거라 짐작했는데 작품을 많이 접할수록 진한 향기가 묻어나오는 배우.

2000년 이후 데뷔한 감독 중 가장 기대되는 감독은?

봉준호 (16)
최동훈 (4)
류승완, 박광현, 장준환 (각 3)

-그는 대중을 사로잡을 만한 영화를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낼 것 같다.
-단편영화 때부터 사회 전체에 대한 입담을 과시하는 전문적인 이야기꾼이었다.

충무로에 데뷔하지 않은 감독 중 가장 기대되는 인물은?

윤종빈 (2)

-<용서받지 못한 자>는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과 과정에서 너무도 놀라웠다.
-자본적 제약이 줄어들면 얼마나 큰 감독으로 성장할지 기대된다.



김종관 (2)

-한국의 이와이 순지의 탄생을 기대한다.
-그가 남성 감성 중심의 영화판에서 여성의 감수성을 꽃피우면 좋겠다.

1990년 이후 한국영화 베스트 5?

<올드보이> (16)

-아름다운 미장센와 극화된 감정. 한국영화 스릴러 중 제일 괜찮은 영화.
-하드보일드라는 장르를 한국에 통용되게 한 첫 작품.

<살인의 추억> (13)

-향숙이와 스릴러, 사건 미해결과 해소가 적절히 조화된 영화.
-지루하고 식상할 수 있는 과거의 사건을 진지하면서도 재밌게 소화했다.

<쉬리> (11)

-영화의 상업적 측면에서는 나운규의 <아리랑> 이후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이런 멋진 블록버스터영화에서 우리말을 듣고 느낀 어색함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공동경비구역 JSA> (10)

-여러 번 봐도 질리지 않는 스토리와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긴장감.
-초등학교 때 본 반공영화에서 이승복 어린이가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던 장면과 영화에서 송강호가 자신의 꿈이 ‘공화국이 맛있는 초코파이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던 장면은 너무나도 다르다.

<봄날은 간다> (9)

-분위기만으로 이끌어가기 쉽지 않은데 그것을 성공한 영화.
-톱배우들이 출연하는데도 전혀 그런 느낌이 나지 않고 은은하다.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외국감독은?

왕가위 (7)
팀 버튼 (5)
스티븐 스필버그, 쿠엔틴 타란티노 (각 4)

-왕가위 영화를 보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고 더불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눈을 통해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감독이다.

과대 또는 과소평가받은 외국 감독은?

과대평가_ 스티븐 스필버그 (7)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3)
뤽 베송 (3)
왕가위 (2)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감독에 대해 무조건적인 경의를 표하는 듯하다.
-지구 평화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지키지 못한다. 그는 단지 예전에 영화를 잘 만들었던 인물이다.

과소평가_ 팀 버튼 (3)
브라이언 드 팔마, 대니 보일 (각 2)

-판타지라는 장르 탓에 국내에서 너무 빛을 보지 못해서 아쉽다.
-어둡고도 기괴한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감수성. 누가 눈이 내리는 까닭을 가위손 때문이라고 하겠는가.

거장들 가운데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앨프리드 히치콕 (7)
스탠리 큐브릭 (4)
스티븐 스필버그, 쿠엔틴 타란티노, 프랑수아 트뤼포 (각 2)

-영화동아리에서 영화 공부를 시작한 이후 나는 그의 이름을 가장 많이 들었다.
-영화적인 효과나 편집을 통해 어떻게 관객의 심리를 영화의 흐름과 동기화해나갈 수 있는지 가르쳐준다.

가장 많이 소장한 영화 타이틀(DVD 또는 비디오)의 감독은?

왕가위 (4)
스티븐 스필버그 (2)
팀 버튼 (2)
오우삼 (2)

-그의 영화를 보면 습한 아열대의 홍콩이 느껴지고, 곰팡내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좁은 침대방이 느껴진다.
-만일 이 사람 영화에 자막이 없다 해도 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영상만 봐도 슬프고 쓸쓸하고 외롭고 그럴 것 같다.

1990년 이후 외국영화 베스트 5?

<매트릭스> (9)

-2000년대가 받아들여야 할 문화가 어떤 것이냐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반지의 제왕> (7)

-정말로 호빗족과 엘프는 있을지 모른다고 믿게 만든 영화.

<중경삼림> (6)

-야경, 길거리…. 모든 현대의 도시 풍경에 바치는 오마주 같은 영화.

<러브레터> (5)

-통속적이지만 그래서 아름답다. 식상한 소재로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펄프 픽션> (5)

-90년대의 상징, 지적 유희와 키치적 유희의 만족.

설문 대상: 홍익대 ‘빛의 소리’ 8명, 부산대 ‘프레임’ 7명, 한국외국어대 ‘울림’ 8명, 성균관대 ‘영상촌’ 8명, 연세대 ‘프로메테우스’ 7명, 서울대 ‘얄라셩’ 3명(총 4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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