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안슬기 감독 vs 노동석 감독 [1]
2005-11-29
글 : 오정연

오는 11월25일. 현재 고등학교 수학 교사로 근무 중인 안슬기 감독은 자신의 첫 번째 장편영화 <다섯은 너무 많아>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로부터 1년 전. 그가 출연한 첫 장편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했다. 지난해 12월3일 개봉한 노동석 감독의 <마이 제너레이션>이 바로 그 작품. 노동석 감독과 안슬기 감독은 사실 6년 동안 관계를 지속해온 사이로, 안슬기 감독은 그 영화에서 사채업자로 출연하여 능청스런 연기를 선보였다. 처음엔 조교와 학생이었고, 그뒤로 오랫동안 언제나 믿을 만한 선배요 후배였으며, 지금은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료가 된 이들을 한자리에 불렀다.

둘은 같은 한겨레 문화센터 영화제작학교 수강생 출신에, 수료 이후에도 끝없이 단편 작업을 이어나갔으며, 결국은 각종 사전제작지원금에 사비를 보태 디지털 장편을 완성하고 끝내 개봉까지 성사시켰다. 주류영화와 구별되는 감식안으로 쉽게 영화화되지 않았던 인물과 상황을 자신의 영화 속에 담아냈다는 것 역시 눈에 띈다. 그러나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두 사람은 좋아하는 영화도, 영화를 만드는 방식도, 만들고 싶은 영화도 다르다. 사실 그러한 차이는 둘의 영화를 한번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한없는 우울에 가깝고 <다섯은 너무 많아>는 밝고 따뜻한 인물들의 관계로 끝을 맺는다.

쉽지 않은 길을 고집스럽게 걸어온 두 사람의 대화. 현장을 운영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그 어려움은 다르지 않음을 토로했고, 이후 노동석 감독은 그처럼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다섯은 너무 많아>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었다. 영화적 취향의 차이를 확인한 끝에, 노동석 감독은 안슬기 감독과 <다섯은 너무 많아>를 향해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예절바른 대화가 지면으로 옮겨지면서 날카로움이 더해졌지만, 오랜 시간을 서로를 지켜본 이들의 탄탄한 신뢰는 여전히 남았다. 누군가, 신뢰할 만한 진심으로 조언하는 동료가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모른다.


노동석/ 안 감독님을 처음 만난 게, 1999년 내가 한겨레 문화센터 영화제작학교에서 조교로 일할 때였다. 그 기수에 독특한 이력을 가진 분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안슬기/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연극하시던 분, 치과선생님도 있었고.

노동석/ 처음에는 영화를 계속 만들겠다고는 하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싶었다. 어쨌거나 이후 정말 계속 영화를 찍어왔다. 그것 때문에 가세가 많이 기울었다던데. (웃음) 그 당시 나도 계속 단편영화를 찍고 있던 상황이었고, 말이 조교였지 수강생들과 함께 워크숍하면서 공부가 많이 됐다.

안슬기/ 당시 노 감독님은 우리가 먼저 묻기 전까지는 그저 웃으면서 지켜보는 조교였다. 보기에 영 답답하면 방향을 잡아주고.

노동석/ 이후 안 감독님은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고, 나도 계속 영화를 찍으니까 서로 정보 교환하고, 현장에 놀러가고, 시나리오 모니터링하면서 자연스럽게 교류가 이어졌다.

<다섯은 너무 많아>
<다섯은 너무 많아>

안슬기/ 노 감독님이 <초롱과 나> 찍을 때는 어줍게 제작진행도 하고. 말이 프로듀서지, 제대로 한 일이 없어서 미안하다. 지금도 항상 나보다 앞서서 경험을 한 분이라,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문의를 하게 된다. <다섯은 너무 많아>를 준비할 때는, 영화진흥위원회 사전제작지원 서류를 신청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노동석/ 샘플서류 제공하고. (웃음)

안슬기/ 많이 귀찮게 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지원을 받은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 물어보고. (웃음) 개봉 앞두고는 배급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노동석/ 근데, 그러고보니 <다섯은 너무 많아>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 (웃음)

안슬기/ 그런 실제적인 도움 말고도 <초롱과 나>에서는 스탭으로, <마이 제너레이션>에서는 배우로 참여하면서 많이 배웠다.

노동석/ ‘배웠다’는 건 좀 잘못된 표현인 것 같다. 그보다는 동시대에 영화를 만들면서 영감을 주고받고 서로 자극이 되는 동료가 맞지 않을까.

안슬기/ 노 감독님은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안 보여주고, 특정 상황을 뽑아내는 스타일이다. 내가 <마이 제너레이션>에 출연할 때도, 상대역인 재경씨와 항상 떨어뜨려놓고 연기지도를 했다. 테이크 중에, 뭔가를 물어보라든지 어떤 행동을 해보라고 하고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라고, 계속 유도를 했다. 처음엔 좀 당황했지만 나중에는 그런 방식이 익숙해지고, 상황에 몰입하기도 쉬워지고, 연기도 좋아지더라. 굉장히 훌륭한 방식이긴 한데, 내가 직접 그렇게 연출하려고 시도한 적은 한번도 없다. 배우한테 많은 걸 열어놓는 건 맞지만.

노동석/ <다섯은 너무 많아>는 시나리오대로 찍은 건가?

안슬기/ 거의 그렇다. 노 감독님이 현장에서 상황에 맞게 대사를 바꾼다면, 나는 시나리오에 맨 처음 썼던 대사의 느낌을 살리려고 하면서 배우의 입에 맞게 바꾼다. 디테일은 바뀌지만 전체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노동석/ <다섯은 너무 많아>는 <마이 제너레이션>과 달리 정해진 플롯이 있고, 한 장면을 안 찍으면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는 영화니까 연출 스타일도 다를 수밖에 없다. 나도 요즘 준비하는 영화가 장르적인 요소와 이야기가 제법 가미된 것이라 내 마음대로 구조를 흔들 수가 없더라. 그래서 여태껏 내가 유지했던 스타일을 이 작품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사실 내가 그런 방식을 썼던 건, 배우에 비해 스스로 연기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선지 나의 캐스팅 제1조건은 연기력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다. 나의 관심을 끌고, 내가 뭔가 받을 게 있을 것 같은 사람. 안 감독님을 <마이 제너레이션>에 캐스팅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이런 건 굉장히 직감적인 것이라 설명하기는 힘들다. 물론 그러다가 현장에서 폭탄이었음이 밝혀지는 분도 있었지만. (웃음) 어쨌거나 그 장면을 찍어서 영화에 담는 게 중요하다보니까, 선의를 가지고 오신 분을 혹사시키는 꼴이 된다.

안슬기 감독

안슬기/ 나도 주위 사람들을 연기자로 적극 캐스팅하지만, 메인 캐릭터는 어느 정도 확신이 가는 배우로 선택한다. 물론 아무리 단역이라도 역할에 맞는 캐스팅이어야 하지만. 하지만 아직까지는 ‘폭탄’은 만나지 못했다. 사실 폭탄이야 전문배우도 마찬가지인데, 방법은 하나, 최대한 뽑는 것뿐이다. 확실히 어느 순간, 더이상은 안 된다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다른 대안을 찾는다.

노동석/ <초롱과 나>나 <나무들이 봤어>를 찍을 때는 어린 배우들에게 때리고 맞는 연기를 시키는 게 괴롭다.

안슬기/ 하지만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할 수밖에 없다. <다섯은 너무 많아>에서도 화장실이나 뒷골목에서 배우들이 실제로 때리고 맞으면서 열일곱 테이크까지 갔다. 너무 내가 나쁜 놈인가?

노동석/ 그 부분은 하늘만이 알 거다. (웃음) 문제는 비전문배우나 애들과 함께 영화를 찍을 때다. 얼마 전에 인권영화를 찍으면서는 열두살짜리 흑인 여자애를, 이번에는 손도 안 대고 울렸다. (웃음) 스스로 울지 못하기에 도와주다가. 나중에 꿈에도 나오더라. 그런 면에서는 프로배우는 좀 편하다. 당신은 배우인데 왜 못하냐고 요구할 수가 있으니까. 이번에 다음 장편을 준비하면서 전문배우를 만나다보니 그런 게 쉽게 받아들여지더라.

사진 최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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