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석/ 이 영화를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보면서 나라면 저 부분에서 많은 것을 소진했을 텐데 훌쩍 생략한 부분도 눈에 띄고, 또 슬쩍 건너갈 수 있는 부분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궁금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첫 장면을 동규의 꿈, 그러니까 판타지로 시작한 이유가 뭔가.
안슬기/ 시작 부분에서 동규가 왜 집을 나왔는지를 설명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동규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면서 설명하는 게 싫었다. 한번에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거다. 그리고 그 첫 장면과 영화 중간 두번에 걸쳐 반복되는 복수장면은 영화 전체의 흐름에서 벗어나더라도 다른 장르로 느껴졌으면 했다.
노동석/ 동규가 영화 속에서 고2라는 설정인데, 그 나이는 원래 성에 대해서도 민감한 나이 아닌가. 하지만 시내와 동거를 시작하는 부분에선 그런 묘사가 전혀 없더라.
안슬기/ 고2 남자애들은 자기들끼리 있으면 그런 얘기뿐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가만히 보면 초등학생처럼 작은 애들이 키가 180, 190cm에 이르는 큰 애들이랑 어울리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달라 보이는 애들이 친구라는 게 참 이상한데, 실제로 잘 안 맞는 부분이 있다. 친구들은 성적인 얘기를 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아직 그런 부분을 잘 모르고, 하지만 어른인 척은 해야 할 것 같고. 원래 동규는 체구가 굉장히 작은 애로 설정했다. 동규가 몽정에 대해서 그렇게 당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여자를 이성으로 대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있지만, 처음에 신세를 지고 있는 친구 철민의 여자친구가 자신에게 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는. 그러다보니 자신을 남자로 대하지 않는 시내와의 관계를 더 편하게 여길 수 있게 된 거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어른이야, 라는 생각이 있어서 중간중간 성적인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노동석/ 조선족 처녀 영희와 시내가 밥을 먹는 장면과 동규가 자기 집에서 엄마, 여동생과 밥먹는 장면이 이어지는 게 인상적이었다. 밥먹는 상황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 것 같다.
안슬기/ 가족 얘기를 하다보니까 자는 거랑 밥먹는 게 많이 나온다. (웃음) 특히 밥. 동규가 집에서 먹는 밥은 되게 서먹한 식사다. 엄마는 묵묵히 밥만 먹고, 동생은 눈치를 보고. 바로 앞 신에서 영희가 시내에게 신세 한탄을 하고, 시내가 거기 동조하는 느낌과 대비되길 원했다. 밥 말고 돈 얘기도 계속 나온다. 각각의 인물들이 돈을 대하는 태도 역시, 서브 테마 중 하나였다. 돈 주세요. 돈이 있어야 주지. 돈이 없다. 돈 부쳤다. 돈 좀 주라 등등.
노동석/ 그놈의 돈이 웬수다. (웃음)
안슬기/ 알고보면 노 감독님과 나는 영화적 취향도 많이 다르다.
노동석/ 다른 좋아하는 감독도 많지만, <마이 제너레이션>을 찍을 때는 영화라는 매체를 고민하게 하는 브레송, 다루는 대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를 생각하게 하는 허우샤오시엔에게 영감을 많이 받았다.
안슬기/ 나는 이야기로서의 극과 표현으로서의 스타일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쎄븐>이나 <씬 시티> 같은 영화도 정말 좋아한다. 아무래도 왕가위가 우리 둘 다 비슷한 이유에서 좋아하는 감독이 아닐까 싶다. 배우의 감수성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영화적으로 감정을 만들어가는 방식이 좋다.
노동석/ 만드는 입장에서 공부가 많이 된다. 요즘 주류영화들은 이야기 형식에 매몰된 경우가 많은데, 왕가위 감독 등은 이야기를 놓지 않으면서도 영화 매체를 사유한다.
안슬기/ 영화가 현실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문제는 현실을 바라보고 영화를 만드는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태도가 결국 스타일이고.
노동석/ 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의 스타일은 등장인물과 만드는 사람이 관계맺는 방식”이라는 말을 들었다. 어떤 영화를 찍으면서 왕가위처럼 찍겠다고 해서 그게 스타일이 되는 게 아니라, 극중 인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카메라의 위치가 규정되고 그러다보면 전체적으로 그 영화만의 룰이 생긴다. 안 감독님의 영화를 모두 본 셈인데, 감독님 역시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은 것 같다. 제일 처음 찍었던 단편 <가장자리>는 일상의 결을 차분하게 응시하는 영화 아니었나. 그로부터 지금까지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영화를 찾아낸 게 아닌가 싶다.
안슬기/ <다섯은 너무 많아>를 찍으며 특별히 어떤 감독이나 작품을 염두에 두진 않았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감독은 데이비드 핀처 같은 스타일리시한 감독이다. 영화에 대한 태도 면에서는 이광모 감독님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아름다운 시절>이 개봉하기 전에 특강을 들었는데, 그때 “감독은 자기 작품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영화를 봐줄 만한 관객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10, 20년 동안 30만, 40만명이 꾸준히 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하고 싶은 영화, 그리고 막상 영화를 찍으면서 선택하는 스타일은 조금 다른 문제다. <다섯은 너무 많아>는 처음부터 감독의 미학적 욕심 등이 느껴지지 않는 소박한 형식을 목표로 했다.
노동석/ 소박한 형식이라는 건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대중영화의 화법을 그대로 택했다는 말도 된다. 그래서 관객에게 친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이고. 영화가 끝나면 편안한 기분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 선악의 구분이 확실하고, 복수의 대상이 있으니 갈등도 쉽게 해소된다.
안슬기/ 어설픈 화해가 싫어서 그런 복수를 영화 속에 집어넣었다. 분식집 사장 만수처럼, 복수 끝에 결국 같이 살지언정 그냥 넘어가는 건 싫었다. 내가 너무 참고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웃음) 응징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대중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치밀하고 심각한 복수는 아니다. 즉각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소박하고 귀여운 복수니까.
노동석/ 그 복수에서 최종적으로 배제되는 건 악역인 철민이다. 기존의 가정을 부정하고 대안가정을 꾸리면서, 가장 친했던 친구를 배제하는 것. 결국 이들이 이루는 가정 역시 또 다른 가족 이데올로기에 기댄 듯 느껴질 수도 있다. 그 친구가 문제아일 수는 있지만 응징의 대상은 아니지 않나.
안슬기/ 영화를 만들다보면 어쩔 수 없이 기능적으로 이용하는 캐릭터들이 생긴다. 그런 캐릭터가 이 영화에는 많다. 동규 엄마나 시내 엄마 등도 그렇다. 하지만 설명이 많아지면 네명의 메인배우 이야기까지 어그러질 것 같아 자신이 없더라. 철민이라는 캐릭터 역시 여러 상황이 있을 거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끝까지 가져갈까를 선택했던 거다. 분식집 사장 만수만 해도, 알고보면 그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다. 관객 중 한명은 <다섯은 너무 많아2>도 가능하지 않겠냐고 묻더라. 거기서는 철민이 다섯 번째 구성원이 될 수도 있다.
노동석/ 꽉 짜여진 플롯을 가지고 가게 되면 그렇게 캐릭터를 이용하게 되는데, 나도 요즘 그게 고민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아예 다른 플롯이나 영화적 룰을 만들어야 하니까. <다섯은 너무 많아>의 화법 자체는 대중영화의 그것 같다. 독립영화도 이만큼 재밌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사실 그 재미란 게 물량을 투여한 대중영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상업영화 감독은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것이지 않나. 누군가 자기와 똑같은 걸 찍을 수 있게 되면 그 순간 도태되는. 그래서 확실한 자기 것, 대중에게 재미를 주면서도 확실한 자기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안슬기/ 이게 독립영화 배급위원회에서 배급하는 첫 장편인데, 그런 얘기도 들었다. 자본에서의 독립뿐 아니라 내용에서의 독립도 중요하지 않냐고. 내 생각에 이 영화는 또 다른 독립영화의 스펙트럼을 보여줬다는 점 정도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노동석/ 요즘 심정이 어떤가.
안슬기/ 정신없다. 정말.
노동석/ 나는 <마이 제너레이션> 예상관객 수를 3천명으로 잡고 있었다. 나름대로 데이터가 있었으니까. 동숭에서는 무슨 소리냐며 난리였지만, 실제로 그 정도에서 마무리됐다. (웃음) 영화제에서 관람한 비공식 관객까지 7천명 정도 본 것 같다.
안슬기/ 나는 예상관객 수 이런 것도 없다. 잘되면 좋겠다는 것밖에는.
노동석/ 나는 개봉 즈음해서 거의 모든 매체랑 인터뷰를 했던 것 같다. 나중에는 스스로 피폐해지는 생각이 들면서 후회가 되더라. 모든 인터뷰가 영화에 도움되는 것 같지도 않고.
안슬기/ 개봉은 정말 기쁜 일인데, 막상 기자시사에 일반시사, 인터뷰 등 일정이 겹치니까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더라. 안 그러려고 하는데.
노동석/ 시사 반응은 대부분 좋지 않나?
안슬기/ 관객 반응은 생각보다 좋아서, 매번 힘을 받는다. 노 감독님은 인권영화 촬영을 막 끝낸 건가?
노동석/ 믹싱까지. 12월 말부터는 HD 장편 촬영에 들어가려고 준비 중이다.
안슬기/ 나는 다음 작품은 시간을 두면서 생각하려고 한다. 나도 노 감독님 같은 시스템으로 작업을 해보고 싶다. 오랜 기간 여유를 두고 한신을 만드는 데 충분히 시간을 두는. 근데 나는 그게 현실적으로 힘들다. 방학기간 중에 촬영을 마쳐야 하다보니 효율성만 신경을 쓰게 됐다. 덕분에 스탭들은, 왜 만날 덥거나 추울 때만 찍냐고 난리다. 그나마 내년에 인문계로 학교를 옮기면 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요즘엔 주위에서 계속 물어본다. 관객이 100만명이 들어도 계속 교사로 남을 거냐고 어떤 기자가 묻더라. (웃음) 이젠 가르치는 애들까지 물어본다. “영화 대박나면 선생님 그만둘 거죠?”라고. 그래서 생각해놓은 답이 있다. 영화 고등학교 차려서 교장이라도 해볼까 한다. (웃음) 그리고 영화와 별개도 학교 역시 나에겐 굉장히 의미있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