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뮌헨> LA 시사기 [1]
2006-01-24
글 : 문석

1972년 9월5일은 테러리즘의 검은 깃발이 현대사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 날이었다. 그날 새벽, 스스로를 ‘검은 9월단’이라 부른 8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뮌헨올림픽 선수촌의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로 침입했다. 이들은 코치 2명을 사살했고 9명의 선수를 인질로 붙든 채 이스라엘과 독일의 감옥에 갇힌 200여명의 정치범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그 뒤로 21시간 동안 세계는 TV를 통해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고, 결국 9명의 인질 모두와 5명의 테러리스트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몸서리를 쳐야 했다. 그것은 진정 현대적 의미의 테러가 세상에 첫선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또한 그것은 테러리즘을 응징한다는 논리를 가진 또 다른 폭력인 ‘맞테러’의 시작을 의미했다. 그 뒤 수년 동안, 이 사건에 개입된 것으로 추정된 세계 곳곳의 팔레스타인 인사들은 이스라엘 모사드의 개입 속에서 차례로 목숨을 잃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뮌헨>은 이 민감한 세계 정치역학의 한가운데로 용기있게 뛰어드는 영화다. 미국에서 개봉되기 전부터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영화가 지난 1월5일 LA에서 한국 기자들에게 전모를 드러냈다. 스필버그 감독은 자신의 입장을 말로 설명하기보다 영화 자체로 보여주겠다는 듯 인터뷰 자리를 만들지 않았고, 대신 주연인 에릭 바나를 내세워 이역만리에서 찾은 기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다. <뮌헨>의 LA 시사기와 에릭 바나의 인터뷰를 싣는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장중한 음악과 함께 올라가던 엔딩 크레딧이 멈출 때까지 아무도 섣불리 입을 떼지 않았다. 1월5일 밤 늦은 시간, 스티븐 스필버그의 제작사인 앰블린 엔터테인먼트 시사실을 빠져나오는 미국과 한국의 기자들은 무언가에 한방을 세게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미국 전역에서의 동시개봉을 이틀 앞두고 치러진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 <뮌헨>의 시사회 풍경은 이 영화가 일반 관객보다는 평론가들에게 관심을 더 모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하는 듯했다.

이미 <브로크백 마운틴>과 함께 올해 아카데미상에서 가장 많은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쥘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뮌헨>은 여태껏 스필버그가 만들어온 영화 중에서 가장 진지한 작품이다. <쉰들러 리스트> <아미스타드> <칼라 퍼플> 같은 스필버그의 ‘비오락영화’보다도 훨씬 더 오락적인 요소를 배제했고, 그 자리에 각별히 무게있는 주제를 실어놓았다. 그것은 바로 테러리즘이다. 사실, ‘5명의 비밀요원들이 뮌헨 테러를 자행한 검은 9월단의 배후를 추적해 하나씩 보복한다’는 소재만으로 볼 때 이 영화는 통렬한 액션활극이나 스릴러가 됐을 수도 있다. 물론 그건 영화가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입장에 설 때만 가능하다(악의 무리를 퇴치하는 정의로운 주인공들의 활약상!). 하지만 이 영화를 앞서 본 유대인들이 심한 불쾌감을 토로했다는 외신 보도가 떠들썩했을 정도로 스필버그는 이스라엘에 치우치지 않는다. 영화에서 요원들의 행동은 미화되지 않고, 복수가 거듭될수록 명분은 약해지며, 그들의 내적 갈등은 심화된다. 스필버그가 묘사하는 뮌헨 사태 이후의 세계는 증오가 좀더 커다란 증오를 낳는, 폭력이 훨씬 엄청난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테러가 더 극악한 ‘반테러’를 가져오는, 악순환의 사슬에 다름 아니다.

이에는 이, 테러엔 테러…폭력의 악순환

<뮌헨>의 주인공은 이스라엘 정보부 모사드의 전직 요원이자 검은 9월단의 배후를 제거하는 5인조의 리더 아브너(에릭 바나)다. “당분간 평화는 잊고 우리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줘요… 문명의 역사를 돌아보면 보복으로 문제를 해결한 경우가 있어요”라며 은밀한 보복 살인을 선언한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의 전략에 따라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운전의 달인 스티브(대니얼 크레이그), 벨기에 출신의 폭발물 전문가 로베르(마티외 카소비츠), 독일인 문서위조 전문가 한스(한스 쥐실러), 사건의 뒤처리를 도맡는 칼(시아란 힌즈)를 한팀으로 묶어 이끈다. 아브너에게 명령을 내리는 인물은 모사드 장교 에프라임(제프리 러시)이다. 직간접적으로 유대인의 배경을 가진 이들은 이스라엘 정보부가 검은 9월단의 배후로 지목한 11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쫓아 유럽을 돌아다닌다.

아브너와 그 일행은 “<르몽드>가 대서특필하도록 총 대신 폭탄을 이용해 대상을 제거하라”는 이스라엘쪽의 지시를 따라 팔레스타인인들을 하나씩, 그리고 잔인하게 제거한다. 그러나 아브너 조직이 관련자를 한명씩 죽일 때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겁을 먹는 대신, 테러 수위를 더욱 높인다. 이 과정에서 다섯명의 내면 또한 황폐해지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인지에 회의를 품게 되고, 자신들이 살해하는 표적이 정말 뮌헨 테러의 배후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된다. 세 번째 처단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의 호텔 침대에 폭발물을 설치해놓은 아브너는 그가 잠드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옆방에 투숙한다. 하지만 아브너는 의도하지 않게 그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그가 친절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과연 그를 처단해야 할지 잠시 갈등한다. 그리고 쾅. 그 뒤 팔레스타인 청년 알리와의 만남은 아브너의 의문을 더욱 증폭시킨다. 잘못된 정보 때문에 팔레스타인 조직원들과 같은 방 안에서 맞닥뜨린 아브너는 알리에게서 왜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선택했는지에 관해 듣는다. “우리는 나라 있는 국민을 원한다. 집이 곧 모든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갓난아기와의 행복한 삶을 갈망하는 그는 알리의 심경을 이해하지만 운명은 결국 아브너로 하여금 알리의 가슴에 총탄을 박아넣게 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아브너와 대원들의 확신은 무너져가고 폭력의 악순환은 더욱 거센 물살을 타게 된다. “내게 이 영화는 평화를 위한 기도”라고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는 스필버그는 이스라엘의 강경한 맞대응이 폭력의 고리를 더욱더 강고하게 만들었음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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