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뮌헨> LA 시사기 [3] - 에릭 바나 인터뷰
2006-01-24
글 : 문석
“좋은 드라마는 좋아하는 음식이 가득한 만찬과도 같다”

실물로 접한 에릭 바나는 스크린에서보다 훨씬 상냥하고 밝아 보였다. <헐크> <트로이>에 이어 <뮌헨>에서도 고뇌에 가득 찬 인물을 연기했던 그는 뜻밖에도 환한 웃음을 머금은 채 멀리서 온 기자들에게 먼저 친절한 인사를 건넸다. <뮌헨>에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암살단의 우두머리 아브너로 출연한 에릭 바나와의 인터뷰를 정리한다.

-유대인이 아니면서 유대인 캐릭터에 공감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특별히 어렵지는 않았다. 신경쓰였던 것은 내가 평소에 알지 못하던 세계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중동의 역사와 문화, 정치, 팔레스타인 현실 등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는데, 내가 맡은 역할을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할 중요한 일이었다.

-아브너라는 캐릭터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브너는 무엇보다 변화하는 캐릭터다. 처음에는 순진한 민족주의자에서 의심과 불안, 편집증이 깊어지고 자신이 하는 일의 진정성에 대해 희의를 품게 된다. 변화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힘들기도 했지만 흥미롭기도 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팔레스타인 청년 알리와 대화하는 장면이 가장 어려웠다. 아브너는 독일 적군파로 위장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의심을 사지 않도록 대화를 해야 했지만, 동시에 관객에게 그가 이스라엘 요원으로서 갈등을 겪고 있음을 알아차리도록 해야 했다. 결국 얼마나 진짜 정체성을 억눌러야 할지 혹은 드러내야 할지 균형 잡기가 어려웠다. 몸은 어떻게 가눠야 할까, 시선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등 세세한 부분들도 힘들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파워풀한 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스필버그가 왜 당신을 선택했는지 혹시 물어봤는가.
=아니. 그가 마음을 바꿀까봐 아예 묻지 않았다. (웃음) 스필버그가 자신의 선택에 대해 깊게 생각할 시간을 안 가지길 바랐다. 나는 계속 ‘잘 선택했어요’라고 말했다. (웃음)

-영화를 보고 마음에 들었나.
=물론이다. 장면들도 믿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고 스펙터클하며, 용감하고 멋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촬영감독 야누스 카민스키는 최고다. 천재일 것이다. 5년쯤 지나도 내가 이 영화를 작업했다는 게 자랑스러울 그런 영화다. 그리고 <뮌헨>은 무엇보다 내가 항상 원하던, 시대를 초월하는 작품이다. 오늘 중요한 영화는 내일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그동안 당신은 진지하고 내적 갈등을 지닌 무거운 캐릭터를 맡아왔다. 특별히 이런 캐릭터를 선호하는 이유라도 있나.
=내가 해온 캐릭터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다소 진지하고 드라마틱한 영화나 스토리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나는 특히 그런 스토리에 흥미가 많다. 영화의 배경과는 다른 시대에도 공감을 주는 스토리 말이다.

-특별히 역사물에 관심이 있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10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지만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그린 스토리가 매력적이다. 지금까지 내가 선택한 캐릭터들은 모두 그런 세상에 존재하는 인물들이었다. 이런 캐릭터들은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렵기도 하다. 다른 시대를 이해하고 악센트나 외모 등도 바꿔야 하니까. 하지만 배우로서는 훨씬 보람이 있고, 그냥 개인적으로도 이런 역이 좋다. 코미디도 좋지만, 내게 코미디는 초콜릿과 같다. 초콜릿을 손에 들고 있을 때는 신나지만 먹고 난 뒤 10분만 지나면 먹지 말았어야 하는데, 라고 후회하지 않나. (웃음) 반대로 좋은 드라마는 좋아하는 음식이 가득 차려진 만찬과 같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부담스러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개봉 전, 아무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 때는 알다시피 논쟁이 많았는데, 충분히 예측가능한 일이었다. 개봉 뒤 지난 몇주 동안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이제는 영화 자체로 이해받는 흐름이 형성됐다고 본다. 실제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니 개봉 전에는 영화와 직접적으로 관련없는 많은 이슈들과 관련될 수밖에 없었다. 특정한 정치적 입장이나 국가의 이익과 관련해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영화가 다루고 있는 사건, 즉 ‘1972년 뮌헨올림픽 테러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게 정치적 입장의 타당성을 찾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내가 다루고 있는 것은 영화의 내적 컨텍스트였기 때문에 그 부분에만 집중하는 것이 중요했다. 결론적으로 정치적인 부분은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당신을 포함해 나오미 왓츠나 니콜 키드먼 등 1968년생 호주 출신 배우들은 지금 할리우드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특별히 호주 출신 배우들이 가진 매력이나 장점이 뭐라고 보나.
=우리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할리우드에 오기 전 모두 고향에서 이미 상당한 경력을 쌓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할리우드에서는 새로운 얼굴로 등장하지만 실제로 연기력에서는 신인이 아니다. 그게 장점인 것 같다. 또 우리가 고향에서 저지른 추한 실수들도 모르니까. (웃음)

통역 옥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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