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은 사랑의 한 종류다
만약 이 영화의 감독이 스필버그가 아니었다면,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보여줬던 그가 아니었다면, <뮌헨>은 화제의 중심에 놓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주제를 건드릴 때부터 친구를 잃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도대체 왜 이 영화를 만든 걸까. 스필버그가 <E.T.> 때부터 함께 작업해온 프로듀서 캐슬린 케네디로부터 이 영화의 연출을 제안받은 것은 1998년이었다. 케네디는 유니버설의 프로듀서 배리 멘델로부터 “스필버그에게 캐나다 저널리스트 조지 요나스가 쓴 <복수>의 영화화를 제안해주지 않겠냐”는 부탁을 받았던 것. 스필버그의 첫 반응은 회피였다. 이 이야기는 그에겐 너무 민감한 정치적 사안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케네디의 거듭된 설득에 프로젝트의 제작을 검토하기 시작했지만 2001년 9·11사태가 일어나자 “국가적 재앙을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을 것”을 우려한 스필버그는 이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그리고 2002년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책임감을 느낀 그는 다시 <뮌헨>을 집어들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좀더 큰 의미를 가진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적은 부담과 더 많은 즐거움을 선사하고자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영화라는 강력한 매체에 수반하는 책임감이라는 짐을 느끼게 된다.”
그와 케네디는 저명한 희곡작가 토니 커시너에게 시나리오를 맡겼다. 좌파적 색채가 짙었던 커시너와 스필버그는 1년 조금 넘게 이메일과 전화로 논쟁을 거듭한 끝에 최종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쳤음에도 <뮌헨>의 상당 부분은 스필버그의 다른 영화와 달리 스토리보드 없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창조됐다. “나는 이 영화가 내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어주기를, 내 옷깃을 잡아당겨주기를 바랐다.” 이 때문에 커시너는 시나리오 작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촬영 분량의 90% 가까이 참여해야 했다. 케네디는 “액션이 위주일 때는 스필버그가 현장을 주도했고, 대사가 위주일 때는 커시너가 리드했다”라고 현장 분위기를 설명한다. 그에게 이 영화는 반이스라엘 또는 반유대인 영화가 아니다. “미국에 대한 비판을 담은 영화가 반미영화가 아니듯이, 이 영화는 반이스라엘 영화가 아니다. 비판은 사랑의 한 종류다. 나는 이스라엘을 사랑하기 때문에 질문을 던진다. 아무런 질문도 던지지 않는 사람은 그 나라의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닐지도 모른다.”
야누스 카민스키의 줌렌즈
<뮌헨>의 장점은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뛰어드는 용감함과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시각만이 아니다. 스필버그의 치밀한 계획과 촬영감독 야누스 카민스키에 의해 실행에 옮겨진 절묘한 영상은 <뮌헨>의 진정한 백미다. <쉰들러 리스트>부터 <우주전쟁>까지 스필버그와 9차례 함께 작업한 바 있는 카민스키는 “70년대 고전 스릴러영화의 느낌을 담고 싶다”는 감독의 뜻을 화면 안에 구현하려 노력했다. 이를 위해 가장 신경 쓴 기술적 수단은 줌렌즈였다.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줌인과 줌아웃은 “자연스럽게 관객으로 하여금 70년대 당시에 만들어진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려는 스필버그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적중한 대목이다. 아울러 카민스키는 영화에 등장하는 8개 나라에 각기 다른 색깔 톤과 밝기를 부여했다. 예컨대 중동이 배경일 때 화면은 화려하고 따뜻하면서 밝지만, 유럽으로 건너가면 색채는 차갑고 어두워진다. 또 팀원들의 내면이 황폐해져감에 따라 화면의 톤도 거칠고 무채색에 가까워진다.
스필버그는 72년의 뮌헨 사태를 초반부에 아주 간략하게 보여준 뒤,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아브너의 플래시백으로 계속 보여주는데, 이는 관객이 초반부터 이 사건에 감정적으로 크게 영향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블리치 바이패스 기법을 통해 거칠고 냉정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플래시백 장면은 이 비극을 그 원인과 함께 사고할 수 있게 한다. 총을 맞아 피를 뿜는 등 <라이언 일병 구하기> 못지않게 생생한 폭력 장면은 역사적 사건의 공포감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떤 여과도 없이 폭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스필버그의 의도에 따른 것이다.
스필버그의 문제적 정치학
<뮌헨>은 문제작이며, 스필버그가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극점에 자리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물론 한계는 있다. 중동 문제는 애초부터 “어떤 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질문을 던지려 했다”고 스필버그는 말하고 있지만, 세계 정치학의 가장 민감한 꼭지점에서 ‘폭력의 악순환은 왜 시작됐나?’라고 던졌던 질문은 ‘폭력의 악순환은 어떻게 종식될 수 있나?’라는 질문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영화가 중반부를 지나 아브너의 내면으로 들어가면서 정치학의 문제는 인간학의 문제로, 국가와 국토의 문제는 한 개인의 가정에 대한 문제로 대체된다. 하지만 현재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고 예민한 정치적 사건을 이토록 정면돌파한 할리우드영화가 흔치 않았다는 사실은 다양한 흠결을 감싸안을 수 있게 한다.
분명 <뮌헨>에서 드러난 스필버그의 정치학은 서툴기 짝이 없다. 그가 팔레스타인 편을 든다고, 이스라엘만을 옹호한다고,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입장을 취한다며 각계에서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그만큼 중동 문제를 둘러싼 각각의 입장 차이가 너무나 크고, 그 대립이 지극히 첨예하다는 사실을 방증해준다. 그런 점에서, 거짓스런 화해를 설파하거나 섣불리 대중을 선동하려 하지 않는 <뮌헨>의 정치학은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스필버그의 정치학은 일단, 영화 안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성공을 거둔 듯 보인다. 그는 테러 장면을 찍을 때 실감나는 상황을 위해 이스라엘 선수단 역할에 이스라엘 배우를 쓰고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캐릭터에 아랍 출신 배우를 기용했다. 그중에는 뮌헨 사태 당시 사망했던 이스라엘 레슬링 코치 모셰 와인버그의 아들 구리 와인버그도 있었다. “공항에서 이스라엘인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찍고서, 내가 컷 사인을 내자, 한 팔레스타인 연기자가 들고 있던 소총을 던져버리고 바닥에 누워 있는 이스라엘 연기자에게 달려가 그의 팔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스라엘과 아랍 연기자 모두는 서로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