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수많은 해외 팝스타들의 공연이 펼쳐지지만, 전성기를 구가하는 아티스트가 우리나라를 공연 스케줄에 집어넣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렇다 할 전문 공연장도 없는데다, 몇 천명 관객 모으기도 버거운 우리 현실에서, 엄청난 개런티에다 항공료 등의 제반 비용을 다 포함하고 1회 공연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설사 어렵사리 공연을 유치했다 해도, 외국에서 하듯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무대를 꾸미거나 하는 일은 거의 실현 불가능하다(탱크까지 등장시킨 마이클 잭슨의 공연은 정말 예외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나라를 찾는 팝스타들은 속된 말로 ‘한물간’ 뮤지션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땅에서 최고 인기 스타의 완벽한 공연을 본다는 것은 지금도 또 앞으로도 거의 불가능할 듯싶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DVD를 통해 그들의 공연을 감상하는 것 말이다. 올 설 연휴에는 이런 공연 실황 DVD를 구해서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많은 라이브 DVD가 있지만 그중 비교적 마니아 취향이 아닌,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 위주로 선정해 보았다. 특히 대부분의 DVD에는 쉽게 접하기 힘든 인터뷰와 무대 뒤 모습 등의 부가영상이 담겨 있으니 이 또한 놓치기 말기를.
빛나는 별들의 향연 - 산타나 <Supernatural Live>
‘라틴 록의 창시자’로 불리는 산타나가 쟁쟁한 팝 음악계의 동료 및 선후배들을 끌어들여 작업한 앨범 <Supernatural>(1999)은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역대 최다인 9개의 트로피를 수상하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음반은 추억의 스타로 잊혀져갈 뻔한 산타나를 화려하게 부활시킨 명반인 동시에 비슷한 컨셉의 음반들을 탄생시키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산타나의 이 라이브 DVD는 음반에 참여했던 슈퍼스타들이 총출동한 역사적인 공연 실황을 수록한 것이다. 데이브 매튜스가 부르는 <Love Of My Life>, 섹시한 외모로 여성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롭 토머스가 들려주는 <Smooth> 등 음반에 실린 곡들을 직접 화면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음반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사라 맥라클란이 출연해 영화 <시티 오브 엔젤>의 사운드트랙에도 실렸던 노래 <Angel>을 들려주는 순서는 단연 DVD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그녀 옆에 앉아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들려주는 산타나의 모습. 사운드는 소박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라틴 리듬과 록, 힙 합, 재즈 등 다양한 사운드가 어우러지는 크로스오버의 진수를 보여주는 실황 DVD이며 뛰어난 화질과 음향 역시 이 작품을 최고의 음악 타이틀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만든다.
재즈 공연의 파격을 보여준다 - 제이미 컬럼 <Live At Blenheim Palace>
제이미 컬럼은 데뷔 당시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약관의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재즈의 명가인 ‘버브’레이블과 무려 100만파운드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으로 음반 계약을 했다 하여 화제를 모았다. 이후 그의 데뷔 앨범은 재즈 음반으로는 이례적으로 영국 내에서만 무려 7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팝 차트까지 석권해 ‘버브’레이블의 선택이 탁월한 것이었음을 입증해 보였다. 2004년 7월1일 영국 옥스퍼드 북부에 자리한 블렌하임 궁에서 펼쳐진 이 라이브 실황은 왜 그가 ‘재즈계의 베컴’으로 불리며 수많은 팬들을 몰고 다니는지 잘 보여준다.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그는 자그마한 체구에 10대 소년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동안을 지녔지만 자작곡과 스탠더드 리메이크 등을 화려하고도 파격적인 무대 매너를 곁들여 소화해내며 재즈 공연의 선입견을 깨는 열정적인 무대 매너를 선보인다. 피아노 위로 훌쩍 뛰어올라가 노래를 부르거나 마치 타악기처럼 피아노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장면, 어쿠스틱 기타를 둘러메고 노래하는 색다른 모습 등은 공연의 볼거리를 풍성하게 해준다.
타는 목마름으로 U2 내한공연을 기다렸다면 - U2 <Live From Boston-Elevation Tour 2001>
최근의 유투는 음악보다도 부시 등 세계 정치 지도자들과 당당히 ‘맞장’(!)을 뜨는 리드 보컬 보노의 활약상에 더 조명이 비쳐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도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베테랑 밴드이다. 히트 앨범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2000)를 낸 뒤 가진 월드 투어 중 보스턴 공연 실황을 담은 이 DVD는 유투가 왜 위대한 밴드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유투는 개런티 문제와 무대 규모 대비 관객 동원력의 한계 등으로 내한 공연이 성사될 가능성이 가장 희박한 팀 중 하나다. 따라서 이 라이브 DVD는 한국에서 유투의 공연을 접할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 분명하다. 투어의 제목이기도 한 노래 <Elevation>으로 시작되는 공연은 <Beautiful Day> 등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 앨범의 수록곡들과 함께 <Sunday Bloody Sunday>처럼 잘 알려진 이전 히트곡들까지 들려주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DVD의 하이라이트는 말미에 나오는 이들의 명반 <The Joshua Tree>(1987) 수록곡 <With Or Without You>의 순서. 여성 관객 한명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 보노는 장내의 조명이 모두 꺼지고 스포트라이트만 비추는 가운데 그녀와 나란히 누워 속삭이듯 노래하고 마지막엔 가벼운 키스까지 선사한다. 보는 이들까지 짜릿한 흥분을 느끼게 하는 이 장면은 카리스마 만점인 보노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언플러그드 공연의 재발견 - 앨리샤 키스 <Unplugged>
1990년대 초, <MTV 언플러그드>라는 프로그램에서 에릭 클랩튼이 불렀던 <Tears In Heaven>이 얻어낸 폭발적인 반응은 이후 한동안 팝 음악계에 언플러그드 붐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전기장치를 통해 증폭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사운드는 관객과의 교감이 느껴지는 아담한 스튜디오 분위기와 어우러져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전성기 시절의 휘트니 휴스턴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앨리샤 키스의 이 <MTV Unplugged> 공연 실황은 이제는 유행에 뒤처진 듯 보였던 언플러그드 공연의 매력을 재발견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풍성한 관악기와 현악 파트, 그리고 네명의 백 보컬 등이 함께하는 신명나는 무대는 기존의 언플러그드 공연이 지닌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버린다. 그래미상을 석권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앨리샤 키스. 왜 그녀가 흑인 음악의 틀 안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팬들을 확보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공연 실황이다. 롤링 스톤스의 <Wild Horses>를 <This Love> 등의 히트곡으로 큰 인기를 얻은 마룬 파이브(Maroon 5)의 매력남 애덤 레바인과 함께 리메이크하는 장면도 라이브 공연의 묘미를 보여주는 부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 로비 윌리엄스 <What We Did Last Summer: Live At The Knebworth>
1990년대 초, 보이 밴드의 대명사인 뉴 키즈 온 더 블록에 대한 영국의 대항마였던 테이크 댓의 막내 로비 윌리엄스. 밴드 시절 말썽꾸러기 이미지였던 그는 솔로로 데뷔한 이후 자신만의 색깔 찾기에 성공하며 영국 최고의 남자 가수로 대변신을 했다. 지난 2003년 여름, 유럽 투어의 일환으로 열린 영국 넵워스에서의 이 공연 실황은 웬만한 페스티벌을 능가하는, 무려 37만5천여명의 관객이 운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로비 윌리엄스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의 앨범 <Escapology>의 재킷에서처럼 밧줄에 거꾸로 매달린 채 무대에 등장하는 모습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그의 공연을 예고하는 서막이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벌판을 메운 관객이 일제히 껑충껑충 뛰는 장면은 몇 천명 관객 모으기도 버거운 우리 현실에서는 부럽기만 한 모습이다. 퀸의 재결성 투어에 보컬리스트로 지원했었다는 그의 이력을 아는 이들이라면 그들의 히트곡 <We Will Rock You>를 잠깐 선보이는 그의 모습이 이해가 갈 것이다. 무대 위로 불러올린 여성 관객과 진한 러브신을 연출하는 것도 재미있는 볼거리이고, 객석의 한 부부를 향해 그들에게 바치는 노래라며 <She’s The One>을 들려주는 장면도 진한 감동을 안겨주는 한편, 로비 윌리엄스의 엔터테이너적 기질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악 DVD - 이글스 <Hell Freezes Over>
이글스가 재결성해 가진 1994년의 <Hell Freezes Over> 투어 중 4월24일과 25일 이틀간의 MTV 라이브 실황을 담은 이 DVD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매된 음악 DVD 중 가장 많이 팔린 작품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한동안 레퍼런스 DVD(주: 뛰어난 화질과 완벽한 사운드를 담고 있어 A/V 시스템이나 홈시어터 시스템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DVD)의 대표적인 타이틀로 군림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미 10여년이나 지난 DVD지만 영상과 음향은 물론 내용 면에서도 뛰어난 작품으로 추천할 만하다. 컨트리 록의 대부인 이글스의 음악,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히트곡들을 어쿠스틱 라이브로 만나는 느낌은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멤버 각자가 뛰어난 보컬 실력을 지니고 있어 솔로로는 물론 완벽한 보컬 하모니를 구사하는 것이 최고의 강점인데, 특히 드러머인 돈 헨리가 드럼 스틱 대신 기타를 잡고 허스키 보이스로 들려주는 노래들은 진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이글스의 음악과 함께 청춘을 보낸 중장년층이라면 코끝이 찡해지는 감동을 느낄 만한 실황 DVD이다.
DVD에서 더 빛나는 보컬의 힘 - 노라 존스 앤드 핸섬 밴드 <Live In 2004>
재즈의 명가 ‘블루 노트’ 레이블을 통해 등장한 노라 존스는 재즈와 블루스, 팝, 포크, 컨트리 등 다양한 장르를 녹여넣은 부담없는 음악으로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미와 빌보드에서 받아든 성적표를 들고 치른 내한 공연 역시 성황을 이루었다. 공연 현장을 놓친 많은 이들에게 이 DVD는 충분한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2004년 컨트리의 본고장 내시빌에서 열린 이 공연 실황은 음반에서도 그랬듯이 노라 존스의 이미지만큼이나 꾸밈없고 순수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노라 존스의 남자친구이자 음악적으로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리 알렉산더가 몸담고 있는 핸섬 밴드와 함께하는 공연은 피아노와 기타, 드럼, 그리고 어쿠스틱 베이스 등의 단출한 편성으로 진행되지만 결코 지루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는 바로 탁월한 보컬리스트인 노라 존스의 역량 때문이다. 젊은 나이답지 않게 노련한 보컬 솜씨를 과시하고 있는 노라 존스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인다. 노라 존스의 2집에서 듀엣을 들려주었던 추억의 컨트리 스타 돌리 파튼이 등장해 함께하는 순서는 차분하던 공연에 일순 활력을 불어넣는다. 대부분 2집 수록곡 중심으로 레퍼토리가 구성되어 있어 <Don’t Know Why> 외에는 1집의 히트곡들이 빠져 있는 것이 약간 아쉽긴 하다.
챔피언들의 성공적인 귀환 - 퀸+폴 로저스 <Return Of The Champions>
불세출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뒤 퀸이 다시 무대에 설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이들은 드물었다.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 등 다른 멤버들의 역량도 뛰어났지만, 프런트맨이었던 프레디 머큐리의 엄청난 카리스마와 가공할 보컬을 빼놓고는 퀸을 이야기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한 지 15년 만인 2005년, 불가능해 보였던 퀸의 역사적인 유럽 투어가 시작되었다. 베이시스트 존 디콘이 끝내 불참했고, 배드 컴퍼니 출신의 보컬 폴 로저스가 맡은 보컬 역시 프레디 머큐리와 너무나 다른 음색으로 과연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물론, ‘프레디 머큐리 없는 퀸은 의미가 없다’고 여전히 부르짖는 이들의 눈에는 성에 찰 리 없겠지만, 이 DVD가 지닌 최대 강점은 모두 27곡에 달하는 방대한 수록곡 대다수가 우리 귀에 익은 히트곡들로 꾸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폴 로저스의 보컬은 프레디 머큐리가 보여준 화려하면서도 드라마틱한 고음을 구사하는 데는 무리가 따르지만, 그는 ‘프레디 따라하기’보다는 퀸의 음악에 자신만의 색깔을 불어넣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그래서 DVD의 주인공도 ‘퀸’이 아니라 ‘퀸+폴 로저스’이다.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드러머 존 디콘이 각각 노래부르는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것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챔피언들의 귀환’은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