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설연휴 즐길거리 [4] - 요리만화
2006-01-27
글 : 김상하 (만화 칼럼니스트)

만화의 장르가 다양해짐에 따라 전문적인 소재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요리를 소재로 한 요리만화다. 요리만화에는 몇 가지 특별한 매력이 있다. 요리의 다양성만큼이나 요리만화도 각양각색이라 기호에 맞게 골라 볼 수 있다는 점, 만화에 나온 지식을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다는 점, 명확하게 구분되는 맛의 개성처럼 작품 속 캐릭터들의 개성도 강해 흥미로운 드라마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강한 매력은 요리만화를 보고 나면 식욕이 돋는다는 것이 아닐까?

한국/ 식객(食客)

요리사: 허영만 원산지: 김영사 재료: 담백하고 구수한 우리 고향의 정서/ 싱싱한 산지 직송 우리 농수산물/ 훈훈한 인심/ 가슴속 깊은 곳을 적시는 감동/ 현대 한국인의 식도락 문화

수많은 전통요리를 자랑하며 세계적인 음식 김치와 불고기를 만들어낸 우리에게 내세울 만한 요리만화가 없다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에 허영만이 직접 발벗고 나서 탄생한 작품이 <식객>이다. <식객>은 제목처럼 식객에 불과한 트럭장수 성찬이의 눈을 통해 최고의 맛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아낸다. 그렇기에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거나 레시피를 소개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식객은 그저 ‘어떻게 해야 좋은 맛이 나오는가?’를 전하려는 작품이다. 바로 그 점이 <식객>의 차별화된 특징이며 매력이다.

<식객>은 음식들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것을 만드는 것도 찾는 것도 먹는 것도 모두 사람의 몫이며, 음식이 먹는 이에게까지 전달되는 과정에 속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다. 그렇기에 <식객>의 주인공은 음식이 아닌 사람들이다. 혀의 자극을 추구하며, 맛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좇으려고만 하는 일본의 요리만화들 혹은 자신이 지닌 요리에 대한 철학을 독자에게 주입하려는 요리만화와는 사뭇 다른 점이다.

중국/ 심부인의 요리사(沈夫人の料理人)

요리사: 후카미 린코 원산지: 대원씨아이 재료: 정통 중화요리의 다양함/ 완벽한 주종관계/ 요리보다 더 눈이 가는 아름다운 심부인/ 요리를 통해 전해지는 아가페적인 사랑/ 중국 귀족 문화에 대한 고찰

이 작품은 요리만화로서 레시피에 충실하지만 또 한 가지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얼굴은 예쁘지만 식탐이 심하고 심보 고약한 심부인과 그녀의 얄궂은 장난에 휘둘리며 매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요리사 이삼의 관계는 이 작품을 긴장감있게 때로는 웃음을 주기도 한다. 심부인과 이삼의 관계는 말하자면 이상적인 주종관계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의 관계는 요리를 매개체로 맺어져 있지만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기도 하다.

이삼에게 있어 심부인의 요리를 만드는 것은 하루하루가 목숨을 거는 긴장된 순간의 연속이다. 이삼이 그런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건 심부인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그의 요리에는 심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이삼이 자신에게 향하는 사랑의 마음을 알고 요리를 먹는 형태로 받아주고 있다. 다소 비정상적이긴 해도 두 사람의 밀고 당기는 이야기 속에 먹음직스러운 중화요리가 등장하니 독자는 식욕도 돋우고 눈도 즐거우며 웃음까지 짓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어 좋은 작품이다.

프랑스/ 대사각하의 요리사(大使閣下の料理人)

요리사: 니시무라 미치루, 가와스미 히로시 원산지: 학산문화사 재료: 다양한 식재료와 퓨전되는 프랑스 요리의 변화무쌍함/ 국제 정치와 일본의 외교 정책/ 한·일문제의 객관적인 해법/ 베트남 현지처/ 불륜의 연속

요리와 가장 안 어울릴 것 같으면서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있다면 바로 정치라고 하겠다. 사람이 입으로 하는 일은 참 많은데, 말하고 숨을 쉬고 음식을 먹으며 때로는 성적 유희의 도구로도 사용한다. 그 가운데 가장 주된 역할은 역시 먹고 말하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식탁에서는 평소 과묵한 사람이라도 술술 말이 잘 풀리게 마련이다. 사업이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자리를 이용해 새로운 역사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 만화는 그 어떤 일본 만화보다도 정치적이다. 모두 가명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국제 외교의 거물들이 대부분 등장한다. 오구라 가즈오 전 주한 일본 대사, 이시영 전 유엔 대사, 고이즈미 총리, 조지 부시 대통령 등 정치적 거물도 등장하며,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나온다.

인도/ 화려한 식탁(華麗な食卓)

요리사: 후나쓰 가즈키 원산지: 대원씨아이 재료: 커리의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함/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친절한 레시피/ 요절복통 코미디/ 섹시하고 귀여운 누님들/ 화끈한 요리 대결

‘커리’(카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카레라이스’일 것이다.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커리에 대한 편견도 강하다. 대부분의 요리만화가 ‘중화요리’, ‘서양요리’ 등 큰 틀에서 요리를 소개하는 것과 달리 ‘커리’라는 한정된 요리만 다룬다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다.

제한된 소재로 엮어가는 요리만화라면 <미스터 초밥왕>을 떠올릴 수 있는데, <미스터 초밥왕>은 레시피를 창조해가는 과정과 그에 얽힌 드라마를 다루고 있다. <화려한 식탁>도 그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미스터 초밥왕>보다는 코믹한 드라마에 무게를 두고 있다.

화려한 식탁의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인 ‘코엔지 마키토’와 주변 인물들에 있다. 캐릭터의 매력이 그 어떤 요리만화보다 강력한 것. <화려한 식탁>의 코엔지 마키토라는 과장된 행동을 보이는 캐릭터가 아니면서도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갖췄다. 요리에 강한 열정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애정이 아닌, 목적을 이루기 위한 집착이다. 집착이 너무 강해서 주변 사람을 돌아볼 수 없는 불행한 캐릭터지만 그의 요리 속에는 항상 따뜻한 진심이 담겨 있다.

일본 초밥/ 키라라의 일(きららの仕事)

요리사: 하야카와 히카리, 하시모토 고조 원산지: 서울문화사 재료: 초밥 요리사의 장인 정신/ 미소녀 초밥 요리사/ 초밥의 기초 지식/ 정통 초밥 용어의 사용/ 맛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 초밥 요리와 무협지의 강렬한 퓨전

초밥은 열과는 상극이기 때문에 손이 뜨거운 여자는 초밥 요리사가 되기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제약 때문에 여성이 초밥을 쥐는 모습은 강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풍긴다. 그 때문인지 여성 초밥 요리사를 주인공으로 한 요리만화도 적지 않다. <키라라의 일>은 어린 소녀를 주인공으로 했다. 천재적인 요리 실력을 지닌 ‘카이도 키라라’가 진정한 초밥 장인이 되기 위해 수행을 쌓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의 뉴웨이브 초밥에 대한 시각은 매우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싸구려 생선을 쓰건, 먹다 남긴 재료로 만들 건 손님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긍정적인 초밥 제법이라는 시선이다.

<미스터 초밥왕>에서는 신선한 발상으로 최고의 재료를 사용해 가장 맛있게 만든 초밥이 항상 승리하게 되어 있다. <키라라의 일>에서는 가장 맛있는 초밥이 반드시 승리하지는 않는다. 가장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완벽하게 흉내내는 것이, 먹는 이와 만드는 이가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을 이루게 되는 경지, 장인의 경지란 그렇기에 더욱 힘든 것임을 전하는 만화다.

일본 라멘/ 라면 요리왕(ラ-メン發見傳)

요리사: 구베 로쿠로, 가와이 단 원산지: 대원씨아이 재료: 일본식 라면의 장인 정신/ 창업을 꿈꾸는 직장인의 지침서/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라면의 무한한 진화/ 일본 서민의 식도락 문화

우리에게 라면은 봉지나 컵에 담긴 인스턴트 라면으로 더 친숙하지만 라면의 본고장인 일본에서는 우리의 자장면 같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서민적인 음식으로 더 친숙하다. <라면 요리왕>은 후지모토라는 샐러리맨이 맛없는 라면 가게가 많아지는 것에 분개해 스스로 맛있는 라면 가게를 만들겠다고 결심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TV 퀴즈 프로그램에서 우승할 정도의 라면 마니아지만 라면 제작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 직장과 라면 포장마차를 양립하며 라면 수업을 쌓아간다.

이 만화도 요리 장인들의 정신을 다루고, 전통적인 면의 제법에서 현대적인 감각의 퓨전 요리법까지 균형 잡힌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다른 요리만화와 구별되는 점은 <라면 요리왕>은 주인공인 후지모토가 창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맛있는 요리를 소개하거나, 작품에 소개된 요리를 비슷하게 따라할 수 있는 레시피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는 어떤 메뉴로 어떤 방식의 가게를 개업해야 할 것인가를 다룬다는 점에서 한 발짝 진보한 요리만화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덮밥/ 천하일미 돈부리(旬)

요리사: 다카쿠라 미도리 원산지: 학산문화사 재료: 천재적인 고교생 덮밥 요리사/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덮밥 레시피/ 세상물정 모르는 아가씨들/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채업자/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

5대째 내려오는 전통적인 국숫집 ‘쿠라소바’의 주인이 친구의 빚 보증 때문에 가게를 빼앗기게 되었다. 하지만 사채업자인 아오누마는 광적인 요리 마니아로 자신에게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는 사람에게는 한량없이 관대하다. 이에 쿠라소바의 외아들인 고교생 슌은 유일하게 만들 줄 아는 카츠돈(돈가스 덮밥)을 아오누마에게 대접하고, 아오누마는 그 맛에 감동해 슌을 무조건적으로 도와주게 된다.

돈부리(덮밥)라는 독특한 요리를 소재로 하고 있는 점도 이채롭지만 이 작품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여성 작가가 그린 소년만화라는 점이다. 외식문화의 주소비층이 여성인 것에 비하면 요리만화는 다분히 남성적인 취향에서 그려진 것이 사실이다. 이는 요리만화가 연재되는 잡지가 대부분 성인 남성이 보는 청년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하일미 돈부리>는 여성 작가의 작품이고 소년지에 연재하기 때문에 남성적인 색채가 옅다. 작품을 보는 내내 귀엽지만 강한 슌의 미소년 이미지, 예쁘고 공주님 같은 이미지의 여학교 교복들, 여성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요리 메뉴 등 여성 작가만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강한 작품이다. 제목과는 달리 상큼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가정 요리/ 격식 파괴 요리책 한 그릇 더!(おかわり飯庫)

요리사: 우오쓰카 진노스케, 오타니 지로 원산지: 대원씨아이 재료: 버르장머리 없는 골동품점 주인/ 싸구려 식재료/ 싸구려 저장식품과 통조림/ 편의점의 냉동식품/ 형편없는 조리기구/ 고정관념 없는 조리법/ 친절한 레시피

스토리를 쓴 우오쓰카 진노스케는 일본에서 값싸고 흔한 재료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자취생 요리 전문가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그가 쓴 요리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TV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했던 만큼, 이 만화는 그의 경험과 지식에 바탕을 둔 가정 요리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의 패턴은 단순한데, 누군가가 형편없는 식생활로 건강을 망치고 있거나 가정 내의 트러블이 생기면 한조의 어드바이스를 통해 그 사람의 현재 상황에 가장 적절한 쉽고 간단한 요리를 가르쳐준다는 식이다. 이 ‘쉽고 간단한’이라는 건 단순히 섬세한 기술이 없어도 만들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재료를 구하는 과정부터 조리 방법 그리고 조리에 필요한 도구들까지도 쉽고 간단하다는 의미다. 이 만화에서 소개하는 요리 비법은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것들뿐이다. 예를 들어 전기 커피포트를 이용해 샤브샤브를 만드는 방법, 라면 한 그릇 값도 안 되는 값으로 도미회를 먹는 방법, 텐푸라 집에서 튀김 부스러기를 공짜로 얻어 한끼에 10엔짜리 반찬을 만드는 방법 등이다.

와인/ 신의 물방울(神の滴)

요리사: 아기 다다시, 오키모토 슈 원산지: 학산문화사 재료: 단 한병의 와인/ 도멘 드 로마네 꽁띠/ 최고의 빈티지/ 최강의 디켄팅/ 와인 초보자를 위한 친절한 해설/ 미모의 소물리에

이 작품이 이채로운 점은 주인공인 시즈쿠가 아버지에게 와인에 대한 신기에 가까운 감각을 훈련받았지만 막상 와인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는 설정이다. 그에 비해 파트너인 미야비는 와인에 대한 지식은 뛰어나지만 소질은 다분히 떨어지는 평범한 소물리에다. 이 두 사람의 콤비가 와인을 만나면서 시즈쿠가 맛을 찾아내고 미야비가 설명을 하는 이야기 구성이 반복된다. 이것은 최근 와인 마니아가 되어버린 원작자 아기 다다시의 ‘스스로 와인을 배워가는 과정’을 회고한 것이다. 다시 말해 와인 초보자들을 대상으로 한 와인 강좌와도 같은 작품이랄까?

이야기의 응집력이 떨어진다는 것만 빼면 잘 만들어진 지식형 만화다. 산만한 연출에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면 충분히 집중해 대사를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와인에 관한 한 <신의 물방울>은 ‘더 베스트 오브 만화’다. 다른 요리만화들에서는 잘 다루지 않던 와인의 빈티지와 도멘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이 곁들여져 있어 초보자를 위한 와인 입문서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작품.

추천음식점/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답니다(愛がなくても食ってゆけます)

요리사: 요시나가 후미 원산지: 서울문화사 재료: 만화가 Y나가 F미의 끝없는 식탐/ 노처녀 Y나가 F미의 구질구질한 넋두리/ 부적절한 동거 생활/ 프렌치 풀 코스/ 한국식 곱창 전골/ 베트남 대중 요리/ 기타 등등

<서양골동과자점>의 작가 요시나가 후미가 자신이 평소 맛있게 여겼던 음식점들을 짧은 그림 일기 형식으로 소개한 만화로, 일종의 추천 맛집 기행 같은 느낌의 작품이다. 요시나가 후미는 앤티크 과자점을 소재로 만화를 그렸을 만큼 상당한 미식가로 알려져 있는데, 그녀의 혀가 추천하는 음식점들과 메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잃었던 식욕이 돌아온다.

한끼에 3천엔(2만8천원)이 넘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부터 한 사람 앞에 1천엔(8천원) 정도면 배터지게 먹는 저렴한 식당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놀라운 점은 이 식당들이 도쿄에 실제로 있는 곳들이며, 가게 이름도 모두 실명, 소개된 메뉴들도 실제로 존재하며 가격까지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을 도쿄 여행 시 일본 맛집 가이드북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작가 개인 취향에 따라 그렸기 때문에 테마는 뒤죽박죽이지만 가끔은 이렇게 정돈되지 않은 뒤죽박죽 맛기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