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설연휴 즐길거리 [2] - 동양고전
2006-01-27
글 : 표정훈 (출판평론가)

옛글을 현대어로 번역하여 펴낸 단행본들이 많지만, 좀처럼 눈길과 손길이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왠지 고리타분할 것 같아서? 이른바 ‘코드’가 낯설어 이해하기 힘들까봐? 혹시 근엄한 도덕군자들의 진부한 훈계와 만나게 될까봐? 그런 염려는 접어두어도 좋다. 출판사는 비영리 자선단체가 아니라 엄연히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이다. 그러니 옛글을 단행본으로 펴낸다는 건,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먹혀들 만한 것들을 선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고리타분하고 진부하게 다가오는 옛글도 많지만, 우리 못지않게 옛날 사람들도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걸 싫어했다는 걸 염두에 두자.

선비가 부르는 접시꽃 당신 - <눈물이란 무엇인가>

요즘 말로 하면 수필 혹은 에세이쯤 될까? 옛 선비들의 글 가운데 소품문(小品文)이라는 게 있다. 옛 사상이나 기성 문체에서 벗어나 현실의 다양한 면모, 각양각색의 인물 군상, 개인적 감상 등을 솔직하고 생동감있게 담았으니, 글쓴이의 개성이 물씬 드러나는 잡문인 셈이다. 조선의 선비 심노숭(1762∼1837)의 <눈물이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글들도 그렇다.

심노숭이 동갑내기 아내를 잃고 쏟아낸 일종의 애도 작품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눈물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글이다.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에 있는 것인가? 눈에 있다고 하면 마치 물이 웅덩이에 고여 있는 듯한 것인가? 마음에 있다면 마치 피가 맥을 타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인가? 눈에 있지 않다면, 눈물이 나오는 것은 다른 신체 부위와는 무관하게 오직 눈만이 주관하니 눈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마음에 있지 않다면, 마음의 움직임 없이 눈 그 자체로 눈물이 나오는 일은 없으니 마음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심각한 글만 있는 건 아니어서, 이를테면 문과에 급제한 신참들이 치르는 신고식 관행이 눈길을 끈다. 성명을 뒤집어 부르기, 오물 구덩이에 걸어 들어가기, 땅바닥에 구르기, 먹으로 얼굴 칠하기, 춤추기, 한 다리 들고 뛰기 등등. 종목도 다양하다. 심노숭의 코멘트인즉 고려 말 권세가 집안 자제들이 ‘빽’으로 관료가 되는 일이 많았고, 그렇게 관료가 된 이들의 교만함을 꺾기 위해 신고식 관행이 생겼다. 덧붙이자면, 이 책이 속한 태학사 산문선 시리즈의 책들 대부분이 담백하고 은근한 맛을 풍긴다.

심심해서 써보았소 - <도연초>

담백하고 은근한 맛으로 따지자면 14세기 일본의 요시다 겐코(1283∼1350)가 쓴 243단의 짧은 글을 모은 <도연초>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다 할 일도 없이 무료하고 쓸쓸하여, 하루 종일 벼루를 붙잡고, 마음속에 오가는 부질없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쓴 글.’ 그러니까 도연초(徒然草)는 ‘무료하고 쓸쓸하여 쓴 수필’이라는 뜻이다. 주제는 자연, 인생, 생활, 정치, 풍속, 예술 등 무척 다양하다.

“친하게 지내는 여성을 오랫동안 찾아가지 못하여 그녀가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까 싶어, 스스로 나태함을 반성하며 그녀에게 무어라 말해야 좋을지 생각하고 있던 차에, 그녀쪽에서 ‘손이 노는 하인이 있으면 한 사람만 보내주세요’ 하면서 말을 돌려서 소식을 전해 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요즘 말로 하면 쿨하고 센스있는 상대와 사귀는 즐거움이라고 할까. 요시다 겐코는 서른살에 출가하여 일본 각지를 여행하며 지내다가 말년에 풀로 지은 암자에서 혼자 지냈다. ‘바람의 아들’처럼 혹은 ‘무소의 뿔’처럼 살다 간 사람이라 그런지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대체로 이렇다. “한가하고 심심한 것을 괴로워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남에게 간섭받지 않고 조용히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삶과 세상의 덧없음을 얘기하는 듯하면서도, 삶의 디테일 같은 것을 날카롭게 포착하여 짧은 문장 안에 녹여내는 솜씨가 일급이다. 출가 승려이면서도 “여성의 매력에 끌리지 않는 남성은 세상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까지 했으니 욕망의 부정과 긍정 사이에서 외줄 타는 인간 현상 그 자체를 긍정했다고나 할까.

일본 고전 수필의 효시 - <마쿠라노소시>

일본의 옛글을 소개한 김에 하나 더. 11세기 일본 궁정에서 천황비를 모시던 궁녀 세이쇼나곤(淸少納言)이 쓴 일본 고전 수필의 효시이자 백미, <마쿠라노소시>다. 마쿠라노소시의 한자 침초자(枕草子)에서 침은 베개이고 초자는 묶은 책을 뜻하니 ‘베갯머리 책’이 되는 셈.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필로우 북>이 <마쿠라노소시>를 차용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글이 솔직하고 담백하며 예민하고 다정하다. ‘다정도 병인 양하다’지만 세이쇼나곤의 글은 다정이 병이 되기 직전에 딱 멈춘다. 법도가 엄한 궁정 생활 때문이었을까? 글이 그러하니 글을 쓴 세이쇼나곤이 바로 그러했을 터. 그래서 매력적이다. “봄은 새벽녘, 여름은 밤, 가을은 해질녘, 겨울은 이른 아침”이라고 했던 그녀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 하지만 미남이 아닌 나를 과연 그녀가 만나줄까?

“불경을 설명하는 법사는 역시 미남이 좋다. 정신없이 법사의 얼굴을 바라보노라면 불법(佛法)의 고마움도 저절로 감득된다. 얼굴이 못생긴 법사가 설경을 하면 아무래도 집중이 안 되어서 금방 들은 얘기도 한쪽 귀에서 다른 쪽 귀로 빠져나가, 꼭 죄받을 것만 같다. 참 이런 얘기는 쓰면 안 되는데 말이다.”

“새벽에 여자네 집에서 돌아가는 남자는, 너무 복장을 단정히 하고 에보시 끈을 꽉 묶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올 때도 일어나기 싫은 듯이 우물쭈물하다가 여자가 ‘날이 다 밝았어요. 다른 사람 눈에 띄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하고 재촉하는 말을 하면 그제야 겨우 후유 한숨을 내쉬면서 정말 헤어지기 싫다는 듯이 하는 것이 좋다.”

16세기 조선, 어느 선비의 일기 -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누군가가 16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쓴다면 디테일 면에서라도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책이 있다. 미암 유희춘(1513∼1577)이 54살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11년 동안 쓴 일기를 재구성한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이다. 16세기 조선에는 술을 싫어하는 사람도 피할 길이 없는 술, 그것도 아침술이 있었다. 궁궐로 출근하는 관리들은 오전 5시부터 7시까지 임금과 학술 세미나를 하고 아침을 먹었다. 이때 나오는 임금이 내린 술을 감히 누가 마다할 수 있으랴. 그래서 술에 약한 관리는 아침부터 취했다.

남자들이 귀를 뚫어 귀고리 하는 게 유행이었고, 잔칫집에서는 여인들끼리 모여 술잔을 나누었으며, 책을 반값에 사서 정가에 파는 책장수도 있었고, 외지로 나가 근무하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기도 했으니, 그들도 우리처럼? “내가 몇달이나 혼자 지내면서도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았으니, 당신은 내게 갚기 어려운 은혜를 입은 줄 아오.” “군자가 행실을 닦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성현의 가르침이요,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은 당신 건강에 도움이 될 겁니다.” 유희춘의 대답은 당연히 ‘자네 말이 옳소’다. 그러나 유희춘은 위와 같은 내용의 편지를 아내와 주고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성병에 걸렸다. 더구나 그는 아내가 보고 싶어 잠시 집에 왔다가 그만 아내에게 병을 옮겼다. 그냥 얼굴만 볼 것이지. 유희춘의 변명인즉 오래 소변을 참았기 때문에 탈이 났다는 것. 그 변명에 의원도 동조했다고 하니, 혹시 유희춘과 의원 사이에 모종의 뒷거래라도?

동아시아 판타지의 세계 - <전기>

원숭이 아내, 여우 아내, 물고기가 둔갑한 미인, 협객(俠客)과 협녀(俠女), 바다 가운데 신선 나라, 동굴 속 낙원, 호랑이로 둔갑한 승려, 용왕의 딸이 사랑한 사나이, 무덤 지키는 인형, 선녀의 청혼을 거절한 서생, 죽은 여인과의 사랑, 신선이 된 노인 등등. 현실과 상상, 금지와 일탈, 인간과 동물, 속세와 선계(仙界),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동아시아적 판타지 세계가 펼쳐지는 책이 ‘기이한 일들을 전한다’는 뜻의 <전기>(傳奇)다.

9세기 중·후반 당나라 사람 배형이 엮은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 가운데는 어디선가 한번쯤 접해본 듯한 것들, 이를테면 <전설의 고향>에서 본 듯한 것들이 적지 않다. 적어도 상상력의 세계에서만은 동아시아의 유대와 결속이 단단하다는 뜻일까? 욕망의 판타지 한 대목. 당나라 관료를 지낸 설소가 귀양 가던 중 미녀 세 사람을 만났다. 기회는 찬스라고 했던가. 마침 미녀들도 내숭과는 거리가 멀다. 주사위를 굴려 가장 큰 수가 나오는 여성이 설소와 잠자리를 함께했다.

알고 보니 그 여성은 양귀비의 시녀 장운용이 죽은 귀신으로, 나머지 여성들도 귀신들이었다는 이야기. 유교 윤리의 촘촘한 그물에서 옴짝달싹 못하기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선비 남성의 실현하기 힘든 일탈의 욕망은 여성 귀신과의 잠자리로, 내보이는 것 자체가 금기였던 여성의 욕망은 죽어 귀신이 되어서나마 그것도 주사위 굴리기를 해서 충족되었으니, 욕망의 상상력은 과연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넘나드는 것인가. 설소와 다시 살아난 장운용은 숨어서 오래오래 잘살았다고 한다.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 <천예록>

한편 심심파적으로 읽기 좋은 옛날이야기 책으로 <천예록>(天倪錄)이 있다. 조선 선비 임방(1640∼1724)이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 62편을 채록하여 엮은 것으로, ‘천예’란 하늘의 가장자리, 그러니까 인간 세계와 선계, 속세와 초월계, 일상과 신비가 만나는 경계를 뜻한다. 6개의 <천예록> 이본이 전해 내려온다고 하니, 조선시대에도 제법 인기를 끌었던 듯하다.

책에 실린 이야기들 가운데는 “옛날에 최영의란 분이 계셨어. 전세계를 돌며 맞장을 뜬 분이셨지” 투의 이야기도 많지만, 영국이면 ‘데일리미러’ 우리라면 ‘야담과 실화’에 적합할 듯한 이야기도 적지 않다. 임방이 감옥에서 들은 이야기 한 대목. 이야기를 해준 최원서가 직접 겪은 일이라는, 믿거나 말거나 단서가 달려 있다.

“새로 빌린 집 행랑채에서 홀로 잠든 어느 날 밤, 평소 몇번 본 적이 있는 어느 양반집 계집종이 홀연히 나타나더란다. 안 그래도 한번 품어보고 싶어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달려들었지만, 어찌나 잽싸게 내빼는지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던데다가, 방 안 가득 숯불이 타오르는 이상한 일까지 일어났다.

다음날 밤에는 군졸 복색을 한 사나운 모습의 장사가 나타나 달려드니, 한바탕 싸움을 벌이다가 정신을 잃었고, 깨어보니 섬돌 위에 엎어져 있었다. 그제야 이 집이 평소 흉가로 알려져 있던 곳임을 알고 다른 동네로 피신했다. 임방의 코멘트인즉, ‘사람만이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 또한 사람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귀신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그 귀신을 도리어 두려움에 떨게 하여 굴복시키는 상황을 목격하지 못함이 애석하다.”

실학의 대가, 실학적 글쓰기 - <열하일기>

아직 안 읽어보셨다면 반드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을 터이다. 연암이 누구인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이기(利器)의 도입을 주장했다. 삶과 멀어진 공허한 학문을 비판했다. 세상을 풍자하며 신랄한 유머를 즐겼다. 광범위한 주제를 철저히 연구하여 글로 훌륭히 표현했다. 수필, 논문, 평론, 일기, 대화록, 소설, 감상문 등을 포괄하는 <열하일기>와 행복하게 만날 수 있는 길은 리상호가 옮긴 <열하일기>(전 3권, 보리출판사)다.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의 일부다.

“강물은 두 산 사이에서 흘러나와 돌에 부딪혀 싸우는 듯 뒤틀린다. 그 성난 물결, 노한 물줄기, 구슬픈 듯 굼실거리는 물갈래와 굽이쳐 돌며 뒤말리며 고함치는, 원망하는 듯한 여울은 장성을 뒤흔들어 쳐부술 기세가 있다. 수만의 전차와 수만의 군사와 수만의 포대와 큰북으로도 그 퉁탕거리며 무너져 쓰러지는 소리를 충분히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모래 위엔 엄청난 큰 돌이 우뚝 솟아 있고, 강 언덕엔 버드나무가 어둡고 컴컴한 가운데 서 있어서, 마치 물귀신들이 서로 다투어 사람을 엄포하는 듯한데, 좌우의 이무기들이 솜씨를 시험하여 사람을 붙들고 할퀴려고 애를 쓰는 듯하다.”

물줄기의 엄청난 기세를 표현하는 연암의 붓끝 기세가 사뭇 분방하면서도 조리가 정연하다. 보고 느낀 것과 그것을 표현한 글 사이의 틈새가 없다. 같은 대상이라도 표현하는 사람에 따라 실감있게 전하기도 하고, 허풍과 과장으로 치닫기도 하며, 본질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연암은 대상의 본질을 꿰뚫으면서 실감있는 표현의 멋을 성취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