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게이샤의 추억> 제작 과정 [1]
2006-02-02
글 : 김도훈

<게이샤의 추억>은 이상한 영화다. 미국인 작가가 쓴 게이샤의 회고담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미국인 감독이 연출했으며, 기모노 차림의 중국인 배우들이 영어와 일본어가 섞인 대사를 읊조리며 LA 근교에 만들어진 ‘상상의 교토’를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닌다. 아마도 <게이샤의 추억>은 이집트인이 영어로 러시아 혁명기의 의사를 연기하는 영국 감독의 영화 이후 가장 다의적이고 모호한 국적성을 가진 영화일 것이다. 이 기이한 범세계적 창작물은 어떤 문화적 정제와 통합의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는가. 제작진은 어떤 고민을 짊어지고 하나의 세계를 완성했는가. 미국과 일본, 동아시아의 반응은 어떤 우려와 기대를 담고 있는가. <게이샤의 추억>의 지난한 프로덕션 과정으로 들어가본다.

11월의 일본 국립 스모 경기장. <게이샤의 추억>의 세계 첫 시사회장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일본 관객과 평단은 굉장한 문화적 이질감을 목도할 것이라 예감하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시사 뒤 <워싱턴 포스트>가 가진 관객 인터뷰에 따르면 일본인들의 반응은 생각만큼 나쁜 편이 아니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 회사원의 이야기다. “게이샤의 삶은 어차피 현대 일본인들에게 굉장히 생소하다. 그래서 중국인이 연기하든 일본인이 연기하든 별로 상관없다.” 이같은 반응은 푸치니의 <나비 부인>을 서양의 오해로 빚어진 각색물로 보는 동시에 문화상품으로 팔아먹기도 하는 일본인의 실용주의 노선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혐의를 가장 크게 걸고넘어지는 것은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와 미국의 평단이다. <타임>의 리처드 콜리스나 <롤링 스톤>의 피터 트래버스 같은 소수의 평론가들을 제외한다면 사실 미국 평단의 반응은 시큰둥한 편이다. “당신이 일본에 대해 더 잘 알수록, 이 영화를 덜 즐기게 될 것”이라는 로저 에버트의 반응이 대표적이다(그래서 미국 평단의 극찬을 예로들며 이 영화의 오리엔탈리즘을 걸고넘어지는 몇몇 언론의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 사실 이 영화의 태생적인 오리엔탈리즘과 문화적 오해에 대한 제작진과 평단의 우려는 이미 원작 <게이샤의 추억>의 판권이 처음 할리우드에 팔렸던 날부터 예상된 것이기도 하다.

판권 팔린지 8년 만에 영화화 결정

연기지도를 하고 있는 롭 마셜 감독

아서 골든의 <게이샤의 추억>이 처음으로 출간된 것은 1997년이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2년이 넘도록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머물렀고, 영어판만 400만부 이상이 팔리는 동시에, 32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문제는 이 책이 영화화하기에 결코 손쉬운 먹잇감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장만옥을 포함한 다국적 캐스팅을 마쳐놓고서도 결국 메가폰을 손에서 놓았다. 스파이크 존즈(<존 말코비치 되기>)와 킴벌리 피어스(<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손을 거친 <게이샤의 추억>은 마침내 <시카고>로 데뷔한 롭 마셜 감독의 손에 들어갔다. 그때가 2003년. 저작권이 팔린 지 8년 만의 일이었다. 마셜의 흥미를 잡아챈 것은 게이샤라는 소재의 이국성이 아니라 범문화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 구조였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쇼비즈니스계에 있는 두 여자 라이벌의 이야기를 또다시 만드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디킨스, 셰익스피어, 조지 버너드 쇼, 그리고 신데렐라 이야기이며, 선택권도 없이 팔려간 소녀가 살아남아 성공하는 이야기다.” 이것은 꽤 적절한 비유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은 냉혹한 세상에 던져진 아이(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가 후원자를 거쳐 신데렐라로 변한다는 이야기(조지 버너드 쇼의 <피그말리온>)이며, 거왕의 자리에 올랐던 게이샤가 셰익스피어 비극의 왕들처럼 몰락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제작진은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개가 아니었다. 거대한 제작비가 투여될 작품에 아시아 배우들을 기용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영어와 자막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지극히 일본적인 원작을 제대로 해석해낼 수 있을 것인가. <게이샤의 추억>은 다국적 프로젝트가 겪어야 하는 고난을 모조리 짊어지고 있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장소, 현대화 된 기모노

LA근교 목장에 만들어진 하나마치 세트
하나마치 컨셉 아트

제작진은 촬영장소를 섭외하기 위해 교토를 방문했지만 “예전 그대로 완벽하게 남아 있거나 영화를 위해 통제가 가능한 장소”는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결국 LA 근교에 거대한 야외세트를 만들기로 했다. 교토의 기온(게이샤 거주지역) 하나마치는 사방이 푸른 언덕으로 둘러싸인 말 목장에 건설되었고, 14주 동안 175명의 기술자들이 만든 40개의 건물과 하천과 옮겨심은 벚나무들이 가득한 이곳은 ‘게이샤의 이상향’으로 만들어졌다. 건축학적인 고증에 완벽하게 기대는 대신, 제작진은 일본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재구성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장소를 완성시킨 것이다. 의외로 원작자인 아서 골든은 세트를 마음에 들어했다. “나는 책을 쓰기 위해 진짜 기온에 대한 모든 세부사항들을 수집했다. 그러나 제작진은 기온을 하나의 이상화된 게이샤 거주지로 만들어냈다. 이런 방식은 이야기에 좀더 포커스를 맞출 수 있도록 감독에게 창조적 자유를 허락할 것이다.”

제작진이 게이샤 샹그릴라를 건설하는 동안, 의상감독 콜린 앳우드(<시카고> <슬리피 할로우>)는 일본으로 건너가 온갖 기모노 더미에 둘러싸여 있었다. 세상의 모든 의상감독들은 특정시대를 고증하는 데 가장 곤란을 겪는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특정 국가의 특정한 문화적 시대를 고증해야 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앳우드는 일본의 의복 사진들을 광적으로 수집했고, 비밀리에 전수되는 직물 기술을 익히고, 의복을 입는 규칙을 배웠다. 하지만 그가 깨달은 것은 실제 기모노의 아름다움은 너무도 일본적이어서 영화 속에서 그대로 쓸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기모노의 경우 모든 것을 고증 그대로 만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미국 남자가 쓴 게이샤에 대한 책을 바탕으로 극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했다.” 그는 전통적인 기모노에 현대적인 수정을 가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넓은 오비(허리띠)로 매여 있어서 몸매를 감추는 전통 기모노는 배우들의 몸매를 잘 드러내도록 변형되었다. “배우들의 어깨가 더 잘 드러나기를 원했다. 허리와 가슴의 곡선이 살아나야만 했다. 전통을 많이 훼손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했다. 그래서 오비를 작고 타이트하게 만들어 몸매가 돋보이도록 만들었다.” 와다 요시코 같은 전통 일본 기모노 제작자들은 “넓고 긴 오비가 사라지자 실제 게이샤들의 취향도 사라졌다”고 지적하며 영화 속의 기모노가 30년대 교토의 예술성을 잃어버렸다고 분개한다. 그러나 <게이샤의 추억>의 게이샤들은 30년대 기온의 게이샤가 아니다. 의상과 헤어스타일, 메이크업에 대한 롭 마셜의 주문은 전통에 절대 구애받지 말라는 것이었다. “파리 패션쇼의 무대를 걷고 있는 게이샤를 만들어달라.”

배우는 배우일 뿐, 국적은 상관없다

<게이샤의 추억>이 감내해야 했던 제일 큰 고난은 중국 여배우를 캐스팅하면서 시작되었다. 배우들은 “일본인을 위한 욕망의 배출구’를 연기한다는 이유로 자국 언론에 난도질당했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일본 고베에서 열린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심포지움’의 연단에 오른 첸카이거 감독은 <게이샤의 추억> 제작진에게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게이샤는 일본 문화의 영원한 일부분이다. 모든 걸음걸이, 부채를 이용하는 방식,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말할 때 짓는 표정. 이 모든 것은 일본 문화적인 교양을 드러내는 요소들이다. 일본 문화는 중국 문화와 마찬가지로 심원한 것이기에 쉽게 흉내낼 수 없다. 할리우드는 중국 문화와 일본 문화를 구분할 줄도 모른다.” 제작진은 첸카이거가 <게이샤의 추억>을 감독하기를 간절히 바란 적이 있다는 사실을 들어 반격했고, 마셜은 “나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국제적인 캐스팅에 대해 아시아 커뮤니티가 축하해줬으면 한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세계를 하나로 모은 것이다”고 말하며 “전통적이지 않은 캐스팅”에 자랑스러움을 내보였다.

양자경

감독의 자랑스러움은 온당한가. 이에 대해 서구와 일본의 평단은 두 가지 시선을 비등하게 공유한다. 한 가지 시선은 중국인 배우를 캐스팅한 것은 타문화에 대한 할리우드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것이고, 또 다른 시선은 캐스팅에 대한 인종적 제한이야말로 협소하고 낡은 시선이라는 것이다. 사실 일본 여배우를 포함해 수많은 아시아 여배우를 1년여 동안 오디션하며 롭 마셜이 세운 기준은 단 한 가지였다. “누가 역할에 가장 적합한가.” 영화 속에서 마마를 연기한 모모이 가오리(<웰컴 투 미스터 맥도날드>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는 “처음에는 중국인 여배우들이 캐스팅된 사실에 깜짝 놀랐다”고 고백하지만, 지금은 마셜의 캐스팅을 지지하고 있다. “원작은 미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게이샤의 삶이었고, 영화는 다시 한번 미국 감독의 렌즈로 필터링되어 보여지는 것이다. 물론 일본인인 나에게는 영화의 틀린 디테일들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국제적인 배우들을 캐스팅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게이샤들이 일본의 젊은 관객에게는 더 잘 통할 것이라 믿는다.” 사실 일본인들에게 게이샤는 살아 있는 역사적 클리셰에 불과하다. 가오리 역시 게이샤라는 존재가 “일반적인 일본인의 삶과 완벽하게 격리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오히려 일본인들은 일본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다른 동아시아인이나 미국인에 비해 중국 배우들의 캐스팅에 대해 담담한 편이다.

사실 이같은 이종교배적 캐스팅은 할리우드 역사를 뒤돌아볼 때 별달리 특이한 일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영국인 배우들이 미국인을 연기하는 것은 앵글로색슨 문화계의 교류라고 차치하더라도, 멕시코인 앤서니 퀸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희랍인(그리스인) 조르바로 불리고, 이집트인 오마 샤리프가 러시아 의사를 연기한 사례들은 <게이샤의 추억>과 다를 바 없다. 물론 여기에는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다른 서구 국가들간의 관계보다도 더 정치·사회적으로 복잡하다.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지난 정복과 야만의 역사 속에서 아직도 탄식과 분노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환경 속에서 동아시아 배우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두 가지 옵션뿐이다. “스필버그와 마셜이 만드는 영화라 눈 질끈 감고 해버리자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게이샤 역할로 할리우드 경력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는 김윤진처럼 민족적인 시선을 이유로 포기하거나, 양자경처럼 하나의 배역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배우들은 캐릭터에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느냐에 따라 결정된 것이다. 영국 배우가 독일인이나 미국인을 연기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왜 일본인을 연기하냐, 는 질문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왜 일본인을 연기하냐고? 왜냐하면 나는 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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