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2006 선댄스 영화제 [2]
2006-02-10
글·사진 : 오정연

이곳과 저곳, 경계 위의 영화들

“이 영화는 새로운 미국 독립영화의 한 경향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 새로운 미국을 만드는 과정. 이것은 올해 선댄스 영화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프로그래머 캐롤라인 리브래스코가 일반 상영관에서 관객에게 <인 비트윈 데이즈>(In Between Days)를 소개한 말이다. 올해의 선댄스는 다양한 섹션에 걸친 열편의 영화를 통해 나고 자란 땅과 익숙한 문화를 등지고 새로운 땅에서 삶을 개척하려는 이들의 여러 얼굴을 조망했다. 미국영화들이 어깨를 겨루는 극영화 경쟁부문에는 미국으로 이민온 한국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인 비트윈 데이즈>를 포함하여 자국 언어로 이루어진 두편의 영화가 포진해 있다. 이중 멕시코계 이민자 가족을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퀸시아네라>는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인 비트윈 데이즈>와 함께, 재일교포 부녀의 대립과 화해를 그린 다큐멘터리 <안녕 평양>은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인 비트윈 데이즈>
<안녕 평양>

<인 비트윈 데이즈>와 <안녕 평양>은 모두 첫사랑과 가족을 이야기하는데 문화의 대립, 혹은 낯선 곳에 뿌리내리는 어려움을 말하는 복화술을 발휘한다. 이는 현실을 질료로 세계를 창조하는 극영화의 특권이자 한계다. 이와 달리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진행 중인 민감한 문제를 다룬 <크로싱 애리조나>(Crossing Arizona) 발밑에 시한폭탄을 억누르는 미국의 오늘을 직설법으로 묻는다. <크로싱 애리조나>의 어두운 어조와 달리,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모두 차지한 <신은 우리를 싫증내기 시작했다>(God Grew Tired of Us)의 시선은 위험할 정도로 긍정적이다. 내전을 피해 케냐의 난민캠프에 모여 살던 2만7천명의 소년들. 미국 정부는 이들 중 일부를 미국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호의를 베풀고, 카메라는 이중 세 소년의 뒤를 따른다.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쩔쩔매고, 전등 하나를 켜고 끄는 것까지 오리엔테이션을 받아야 하는 그들의 모습은 시종일관 웃음을 유발한다. 거의 부시맨과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는 그 모습이 슬슬 불안해질 무렵, 비로소 이들은 의문을 품는다. 나는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살고 있는데, 남겨진 친구들은 왜 이것을 누리지 못할까. 신은 왜 우리를 세상에 내보낸 것일까. 그리고 깨닫는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이 누린 것을 더욱 큰 뜻으로 돌려줘야 함을. 정치적 불온함의 기로에서 감독과 작품을 구한 것은 결국 대상의 건강함이었던 셈이다.

로버트 레드퍼드(왼쪽)와 조창호 감독
상영관 앞에 줄 선 관객들

상처와 균열을 끌어안은 이들의 미소는 남다른 면이 있다. <인 비트윈 데이즈>의 김소영 감독과 <안녕 평양>의 양영희 감독 모두 경계에서 형성된 정체성이 각자의 작품에 더욱 깊은 향을 심어주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선댄스 혹은 미국의 인디영화가 뿌리를 움직인 이들에게 매혹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음악 다큐멘터리라는 벤치에 앉아

익숙지 않은 언어 속에서 늘 귀를 열어야 했던 그 기간. 다양한 섹션 곳곳에서 발견되는, 저마다의 목소리를 지닌 음악 다큐멘터리들은 더없이 훌륭한 휴식처였다. “재수없는 가치가 판을 치던 엿 같은 시대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미국의 하드코어 음악의 화려한 과거와 현재를 찬찬히 돌아보는 <아메리칸 하드코어>(American Hardcore)를 추천한 30대의 미국 기자는 “어린 시절 익숙하게 접했던 음악을 다시 듣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경험”이었다며 눈을 빛낸다. 최근 몇년 간 선댄스는 늘 비슷한 비중의 음악 다큐멘터리를 상영해왔다. 음악을 잘 아는 이들에겐 자신의 과거를 곱씹으며 새롭게 다가오는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요, 풍류를 즐기되 무지한 이들에겐 더할 나위없는 학습의 장인 셈이다.

얼터너티브 힙합 그룹 비스티 보이즈의 멤버인 나다니엘 혼블로어(Nathanial Hornblower-글자들 위에 복잡한 문장표기들이 있는데... 이걸 이렇게 읽어도 될라나요)는 자신의 콘서트장을 찾은 관객 50명에게 각각 캠코더를 쥐어주고 공연 장면을 찍게 했다. 50개의 시선으로 이루어진 <멋진걸, 내가 이걸 찍었다니!>(Awesome:I Fuckin’ Shot That!)는 관객으로 하여금 공연장 곳곳에서 비스티 보이즈의 과격한 리듬을 즐기는 체험을 안겨준다. 심지어 중간에 화장실에 가거나 밖에서 군것질을 할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록 페스티벌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는 음악의 힘으로 건설된 유토피아를 제시한다. 2000년부터 이 페스티벌과 관련된 모든 이미지를 수집한 감독은 말로만 듣던 뮤지션의 공연을 감상할 뿐 아니라 관객 모두가 다양한 방식으로 해방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대한 콜라주로 완성했다.

<닐 영: 하트 오브 골드>
<레너드 코헨: 아임 유어 맨>

공연장 곳곳을 훑는 카메라의 시선이 부연 같다면 철저하게 무대 위의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는 순간도 마련되어 있다. <닐 영: 하트 오브 골드>(Niel Young: Heart of Gold)를 만든 조너선 드미의 카메라는 시종일관 닐 영의 넉넉하고도 날선 표정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 내슈빌로 돌아와 공연을 갖는 노장이 지나간 세월을 탓하지 않고, 함께 해온 동료들에게 담백한 미소를 건네는 모습이 주는 감동. 어린 시절 모 영화음악 사운드트랙을 통해 처음 접했던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과의 만남은 어떤가. 보노, 닉 케이브 등 쟁쟁한 뮤지션들이 최고의 스승으로 꼽는 레너드 코헨의 음악을 한곡씩 부른 공연실황을 담은 <레너드 코헨: 아임 유어 맨>(Leonard Cohen I’m Your Man)은 노래하는 철학자의 다양한 면모를 곁들인다. 자신의 책을 소개하며 짐짓 농담을 던지는 모습, 언제나 번듯한 양복을 차려입는 이유를 설명하는 그 목소리는 듣는 이의 가슴 한켠에 묵직하게 자리잡는다. 선망하는 뮤지션의 거짓말 같은 사생활을 엿보는 재미로는 <모두가 우리를 응시한다: 폴리스 인사이드 아웃>(Everyone Stares: The Police Inside Out)을 따를 수 없다. 이제는 젊은 시절 스팅이 몸담았던 밴드로 기억 속에 잊혀지던 폴리스가, 버스를 타고 미국 전역을 돌면서 공연을 갖던 70년대 말의 모습은, 드러머인 스튜어트 캅랜드가 우연히 손에 넣은 비디오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목적없는 유희의 힘으로 수집된 소중한 화면 속에서, 너무 젊은 스팅이 장난스레 눈을 흘긴다.

덕분에 한국에 돌아와서 한동안 잊고 지내던 목소리를 다시 찾아 듣게 됐다. 가물거리던 기억이 또 다른 의미로 한구석에서 똬리를 튼다. 음악이나 영화, 한쪽만으로는 불가능했을, 그 나른한 후유증에 기꺼이 몸을 맡긴다. 이는 ‘윈터 인디랜드’가 선사한 최고의 선물 중 하나다.

<인 비트윈 데이즈> 김소영 감독 인터뷰

“이주와 성장은 내 이야기의 샘”

엄마와 단둘이 미국으로 건너온 이 소녀의 삶은, 보기 괴롭다. 말이 통하지 않는 탓에 학교에선 언제나 혼자고, 유일한 친구인 소년과의 관계는 애매하다. 소녀는 소년을 좋아하지만 소년은 교포 2세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정체성으로, 어른도 아이도 아닌 사춘기를 맞은 소녀, 그리고 친구도 애인도 아닌 소년을 향한 그녀의 서툰 구애. 어쨌든 그녀는 달뜬 첫사랑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야 한다.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첫 장편 <인 비트윈 데이즈>(In Between Days)에 담은 김소영 감독은, 경계에 선 나날의 내밀한 경험을 섬세하고 대담하게 풀어냈다.

-<인 비트윈 데이즈>의 PD인 남편 브래들리 러스트 그레이(<솔트> 2003년 부산영화제 상영작) 역시 감독이라고 들었다.
=<솔트>에선 내가 PD를 했는데 아이슬란드로 이민을 가서 2년 반 동안 살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마치 두 번째로 이민을 간 것 같았고, 그때부터 이 영화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한국계 미국인 청소년의 성장기가 미국인들에겐 낯설지 않을까.
=여기서 내 영화를 보고 자신의 10대 시절 첫사랑을 떠올렸다고 인사를 전하는 미국인 50대 여자를 만났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솔직하게 진심을 담으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비전문배우로 주인공 소녀를 연기한 김지선의 연기가 훌륭하다. 캐스팅 조건은.
=일단 흔한 얼굴이 아니어야 했다. 배우 공고 포스터를 붙이러 갔던 한인타운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지선을 봤다. 일하는 모습은 굉장히 심각하고 무뚝뚝한데, 캐스팅하고 싶다고 말을 거니까 순식간에 얼굴이 밝아졌다. 소녀는 영화 속에서 별로 행복할 때가 없는데, 지선이 일할 때의 표정과 굉장히 닮았고, 표정이 풍부한 것이 좋았다.

-소년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소녀가 다른 소년과 함께 침대에 누워 있다가 열린 문틈으로 소년과 눈이 마주치고 난 뒤 영화가 끝난다. 다소 갑작스럽기도 하다.
=첨부터 엔딩이 그랬는지 많이들 물어보는데 처음부터 그랬다. 그 순간 그녀는 결정을 한 거다. 모든 관계는 끝났다고. 이제 에이미는 스스로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 그건 슬픔과 홀가분함이 섞인 감정이다.

-영화의 중간 중간 한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 소녀의 목소리톤이 매우 독특하다.
=그건 소녀가 보내지 못한 편지고, 내면의 목소리다. 처음에는 미국에서 친구도 많이 사귀고 잘 지내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마지막엔 아빠가 보고 싶다고 말한다. 솔직해지기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 거다.

-지난해 PPP 출품작이었던 <나무없는 산>(Treeless Mountain)은 부산에서 찍을 거라고 들었다. 선댄스 라이터스 랩(Writer’s Lab) 선정 작품이기도 한데.
=실종된 아빠를 찾으러 떠나는 엄마가 5살과 13살 난 자매를 시골 이모에게 맡기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이것도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 아무래도 나는 계속 이주와 성장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안녕 평양> 양영희 감독 인터뷰

“몰랐던 아버지를 알게됐다”

30년 전, 아버지는 통일조국에 대한 신념으로 14살 난 셋째를 포함한 세 아들을 북한으로 보냈다. 철이 들면서 모범적인 ‘혁명 가족’의 신화를 회의하며 아버지와 다른 삶을 택한 딸은, 카메라를 통해 아버지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남의 사생활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감독이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가 솔직함”이라고 믿는 양영희 감독은 카메라와 자신을 그대로 포갰다. <안녕 평양>이 특별한 부녀를 그리고 있음에도, 그 이야기에 파란 눈의 관객까지 눈물을 흘렸던 것은 그 때문이다. 딸은 한때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아버지의 당당함을 닮아 자신이 조총련계 재일교포임을 평생 숨기지 않았던 것에는 한치의 후회도 없다고 말한다. 그 영화와 그 감독을 만나면, 이 부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카메라를 처음 든 것이 30살인 95년이었다. 그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조선고등학교에서 선생을 하다가 그만두고 연극을 했다. 물론 내가 조총련 사람과 결혼해서 자신처럼 살았으면 했던 아버지와는 밥도 안 먹고 말도 안 했다. 근데 언제부턴가 픽션보다는 논픽션이 흥미롭게 느껴졌고, 친구의 조언으로 카메라를 샀다. 마침 조카를 보러 북한에 갈 일이 있어서 손자들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기도 하려고 카메라를 들고 갔다. 영화 속에는 그때 찍은 화면도 들어 있다. 한동안 라디오, TV 방송국에서 일하다가 뉴욕으로 떠나서 다큐멘터리를 공부했다.

-아들을 북송한 것을 후회한다는 것, 딸은 국적을 남한으로 바꿔도 괜찮다는 것 등 중요한 대화가 이루어진 직후에, 마침 아버지가 쓰러지신 것이 거짓말 같다.
=그건 편집의 묘미가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왠지 그날은 대답을 들을 순 없어도 심각한 질문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주셔서 놀라면서도 고맙고, 아버지가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도쿄에 돌아왔는데 3주일 후에 아버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아버님과 화해를 한 건가.
=카메라가 있어서 관계가 좋아진 건 사실이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카메라에 대고 욕을 하셨는데 언제부턴가 카메라 앞에서 웃기도 하고 말도 했다. 자기랑 말도 하지 않던 딸이 계속 카메라를 들고 자신을 따라다니는 게 좋으셨나보다. 그러면서 나 역시 조총련 간부로만 여겨졌던 아버지가 저렇게 예쁘고 재밌는 분이라는 거, 정말 자기 부인을 사랑한다는 것 등을 알게 됐다.

-어떻게 끝맺을지도 처음엔 몰랐겠다.
=잔인하지만 아버지 장례식까지 찍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쓰러지시지 않았으면 지금도 계속 찍고 있었을 거다. 중간 중간 정말 내가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도 하고,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닌가 화도 많이 났다. 술도 많이 마시고, 울기도 하고. 완성하기 직전, 병원에서 아버지께 좀 있으면 아버지 영화 다 만들어진다고 했더니, “지랄하지 말라”고 하셨던 분이 좀 지나니까 언제 완성된다고 다시 물으셨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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