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9회 코닥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2]
2006-03-14
글 : 이다혜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그 소년의 무표정 대화법

민용근 감독의 <도둑소년>

어머니의 시신과 6개월간 동거를 해온 소년에 관한 뉴스가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민용근(30) 감독은 누구나 아는 그 이야기를 소재로 <도둑소년>의 시나리오를 썼다. 기묘하게도, 이야기는 수수께끼처럼 흘러간다. 소년의 집 안방에 무엇이 있는지, 영화는 표현을 아낀다. 민용근 감독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와니와 준하> 메이킹 필름을 찍고, KBS 휴먼다큐 프로인 <현장르포 제3지대> PD로 일했다. 현재 케이블TV의 영화정보 프로그램 PD로 일하는 그는, 영화로 돌아올 작품으로 <도둑소년>을 선택했다. 영화연출은 대학 4학년 때 찍은 단편영화 <봄>을 마지막으로 7년을 쉰 셈이지만 <도둑소년>의 시나리오도, <봄>도 공백을 잊게 만드는 힘이 있다. 민용근 감독은 <도둑소년>을 무표정으로 표정을 드러내는, 짧고 건조한 문체의 단편소설과 같은 느낌으로 연출할 생각이다.

-연극영화과를 나온 뒤 영화가 아닌 TV 다큐쪽에서 일했다.
=군 제대를 하고 졸업한 뒤 본 TV 다큐들이 인상적이었다. 영화보다 더 진실된 표정과 극적인 이야기들을 들려주더라. 특히 <병원 24시>에 관심이 있었다. 고통의 와중에도 웃는 얼굴을 담고 있었다. 형식적으로 <병원 24시>나 내가 만든 <현장르포 제3지대>는 매우 건조하고 간결했다. 내레이션은 사실만 전달하고 이야기는 인물들이 끌어가는 방식이었는데 참 좋았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었다.

-어머니의 시신과 동거한 소년의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관련 기사 중에 이웃 주민과의 인터뷰가 있었다. “가끔 동네 뒷산에 올라 홀로 멍하니 앉아 있던 모습을 보곤 했다”는 목격담이었는데, 그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아이의 무표정한 얼굴이. 설정 외에 <도둑소년>의 이야기는 모두 만든 것이다. 사람은 오래 혼자 있으면 자기만의 행동 양식을 만들어낸다. 마음이 닫혀 있는 이 소년의 경우는 그게 도둑질이다. 생계 해결과 함께 소년의 마음속 결핍을 풀 수 있는 방법이다.

-시나리오를 보면 실화를 떠올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 소년의 일상적인 생활과 도벽을 먼저 보여주기 때문에.
=첫 시나리오에는 방 안에 무언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훨씬 강했지만 수정 과정에서 수위를 낮추었다. 애가 “엄마” 하고 방에 들어가지만 엄마 소리는 안 들리고 TV 소리는 들린다는 정도로. 방 안에 엄마가 있긴 한데 어떤 상태로 있는지 알려주지 않고 느낌만 전달하고자 했다.

-소년 얼굴의 점이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눈을 뜨면 반달 모양이고 감으면 원이 되는 점이 눈꺼풀에 있는 설정은 어떻게 생각해냈나. 소년은 나중에, 남의 가족 사진에 자신의 것과 똑같은 점을 그리기도 한다.
=중학교 때 짝이 그런 점을 가지고 있었다. 눈동자보다 약간 커서 눈을 감으면 긴 눈동자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보면 피에로같이 보였다. 가난한 친구라서인지 그 눈이 늘 슬퍼 보였다. 소년 역으로 고려 중인 배우들의 사진에 포토숍으로 점을 그려보기도 했다. 소년이 혼자 사는 것이 의지의 결과는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남의 가족 사진에 눈의 점을 그렸다는 설정이다.

-주인공인 소년을 캐스팅할 때 어떤 이미지를 원하는가.
=사춘기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닌, 발육이 늦은 15살 소년을 생각했다. 슬픈 느낌보다는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 변화가 없는 소년이었으면 한다. 무표정에도 많은 표정이 있다. 다큐를 찍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사람 얼굴을 많이 보게 된다. 무표정한 사람과 촬영을 위해 2∼3주 같이 지내다 보면 무표정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보는 사람이 소년의 무표정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다.

시놉시스

15살의 도둑소년은 왼쪽 눈에 있는 커다란 점만 빼면 그저 평범한 중학생이다. 학교에서나 편의점에서나 늘 무언가를 훔치는 소년이지만, 주변에서는 그가 도둑이라는 걸 모른다. 소년은 주인집 아주머니가 찾아오면 방 안의 엄마에게 말을 걸기도 하지만 소년의 엄마는 대답을 하지도, 눈에 띄지도 않는다. 소년은 어느 날 도둑질을 위해 들어간 아파트에서 가족 앨범을 훔치고, 앨범을 돌려주기 위해 다시 그 아파트에 들어갔다가 그 집 엄마에게 들켜 도망나온다. 집으로 간 소년은 집 앞에 선 앰뷸런스와 웅성이며 모여든 사람들을 발견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이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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