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 속 결혼식을 말하다 [1]
2006-03-21
글 : 최하나

아직도 웨딩 크래셔가 뭔지 모른다고? 무식한 당신을 위해 잠시 영어 강의 좀 하겠다. 웨딩 크래셔=Wedding(결혼식)+Crash(난입하다)+er(∼하는 인간). 감이 오나? 그렇다. 나 제레미와 불알친구 존, 우리 둘은 남의 결혼식에 하객인 척 들어가 즐기는 걸 일생의 유일한 낙으로 살아온 일당이다. 아니, 사실 일당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군. 우린 그저 누구누구 친척입네 거짓말 좀 하고, 공짜 음식으로 배 좀 불리고, 외로움에 불타는 여자들에게 화끈한 하룻밤을 선사해주는 그런 분들이다. 타고난 말발과 각종 개인기로 참석하는 결혼식마다 주인공이 됐던 우리니까, 뭐 일종의 웨딩 엔터테이너라고도 할 수 있겠지.

한데 백전 불패의 신화를 자랑하던 우리가 딱 한번 무너진 적이 있었으니… 바로 야심차게 찾아간 재무장관 클리어리 가의 결혼식이었다. 사전 준비는 완벽했지만, 딱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던 거다. 그건 바로 사랑, 그래 그 몹쓸 놈의 사랑이었다. 존 이 자식은 장관의 둘째딸 클레어를 보는 순간 한눈에 홀딱 반해버렸고, 나 제레미도… 결혼을 쥐약처럼 알던 나 제레미마저 그만 막내딸 글로리아의 물불 가리지 않는 구애에 넘어가 결혼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 인정한다. 악동 두 사람 개과천선했고 사랑 타령에 빠졌다는 거. 하지만 우린 새롭게 태어났다. 웨딩 크래셔 존과 제레미가 아니라 웨딩 크래셔 존과 제레미와 클레어와 글로리아로. 이를테면 4인조 혼성그룹으로 그 규모를 확장한 것이다…! 하면 그 뒤 무슨 일이 있었냐고? 궁금해할 여러분을 위해, 여기 웨딩 크래셔 4인방의 결혼 원정기를 완전 무삭제 버전으로 공개한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꺼진 불도 다시보자, 허접한 이성친구도 다시보자!

4인방, 결혼식 전 점심 만찬까지 준비되어 있다는 소식에 희희낙락해서 만찬장에 들어서다. 근데 정원 한구석에서 신랑이 웬 여인네와 키스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불륜(?) 현장을 포착한 신부가 울먹이며 어디론가 달려간다.

제레미/ 젠장! 걱정하던 일이 터졌군. 사실 좀 불안하긴 했어. (서류 뭉치를 뒤적이며) 신랑 녀석에게 대학 때부터 무려 9년 동안이나 반쪽처럼 지내던 여자친구가 한명 있었더군. 28살까지 서로 짝을 못 찾으면 결혼하기로 약속까지 했었다나. 저 여자, 28살 생일이 코앞인데 남자가 갑자기 딴 여자랑 결혼한다니까 질투심이 발동해서 훼방을 놓기 시작한 거지. 평소에 있을 때 잘할 것이지, 하필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신부 앞에서 저런 짓거리를 벌일 게 뭐람. (입맛을 다시며) 장인이 화이트 삭스 구단주에 하객이 백만이라기에 기대 만빵으로 왔건만 시작도 하기 전에 쫑나게 생겼군.

존/ 으음, 사실 이해가 가는 시추에이션인걸. 9년 동안 옆에서 지켜보던 남자인데 갑자기 딴 여자에게 간다고 생각하면 열받는 게 당연지사 아냐? 그리고 상대가 이미 약혼을 했음 어때. 자기가 그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단 확신이 있다면 뺏어올 수 있는 거야. (클레어를 바라보며) 봐, 나도 뺏어왔고 결과적으로 더 잘됐잖아?

클레어/ 맞아. 난 당신이 구해준 게 정말 행운이었어. 아니었으면 겉으론 고상한 척 위선 떨면서 뒷구멍으론 우리 집안 파워만 탐내던 잭 그 자식과 결혼까지 할 뻔했으니까. 원래 남녀 사이라는 건 막판 뒤집기가 언제라도 가능한 거지. 왜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있잖아. 결혼식장에 번쩍 나타난 흑기사 손을 잡고 탈출하는 건 고전적(<졸업>)인 방법이고, 심지어 들러리 서던 신랑 남동생으로 즉석에서 신랑 바꿔타기를 한 경우(<당신이 잠든 사이에>)도 있었다 들었는걸.

글로리아/ 근데 저 남자는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은데??? 봐 봐, 단짝이라는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도망가는 신부 뒤만 열나게 쫓고 있잖아~~~ 저 여자 괜히 머리 굴리다가 우정까지 날려버리게 생겼다 뭐~~(제레미 보며) 자기는 도망쳐봤자 소용없는 거 알지? 어디로 튀건, 내가 꼭 찾아낼꼬얌~~~~~~~~~.

<결혼 피로연>

염불보다 잿밥이 훌륭할 때도 있다

신랑이 대만 사람이라는 소식에 색다른 재미를 맛보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던 4인방. 피로연장에 들어서자마자 화려한 중국 음식들을 보고 입이 쩍 벌어진다.

제레미/ 와우, 정말이지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놨군. 내가 이래서 중국 사람들 사랑한다니까~! 결혼을 초라하게 치르면 자기들 체면이 깎인다고생각하거든. 미국에서 혼자 살고 있는 아들을 장가보내야 하는 부모 심정이니 오죽하겠어. 아들 결혼식 보려고 비행기까지 타고 여기 왔는데 이 불효자식이 결혼식을 동사무소가서 1분 만에 뚝딱 끝내버렸던지라 피로연이라도 성대하게 열어주겠다 맘먹는 게 이해가 가지, 암. (주위를 살피더니 속삭이는 목소리로) 근데 사실 이 결혼, 위장 결혼이걸랑. 신랑 녀석은 사실 게이고, 저 여자는 영주권이 필요했던 거시라.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거래를 한 거라지.

클레어/ 근데, 그냥 거래라구 생각하기엔 신부 표정이 너무 불행해 보여. 여자의 직감으로 볼 때, 저 여자 영주권만 노려서 결혼을 한 게 아닌 것 같아. 그래, 남자를 정말로 사랑하는 거야. 그러니까 거짓 결혼을 해서라도 함께 있고 싶었던 거라고. 여자도 불쌍하지만 저 남자도 참 안됐다. 솔직히 모든 걸 밝히고 이해를 구할 순 없었을까? 내가 보기엔 부모도 자기 아들이 누구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 정도는 눈치챘을 것 같은데.

글로리아/ 언니 말이 맞아. 우리 막내둥이 토드 걔도 남자 취향이잖아~! 만날 아빠가 구박하고, 할머니가 호모 호모오~~~노래를 불러도 걘 꿋꿋하잖아~~? (제레미에게 매달리며) 물론 우리 자기한테까지 작업을 걸었을 땐 좀 열받았지만. 사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야~~~~~. 카우보이들도 사랑을 한다는데~~~~~!!!

존/ 뭐, 다른 건 다 제쳐놓고서라도 화끈하게 즐기는 건 딱 우리 취향인데? 동양 애들, 일만 죽어라 하는 줄 알았더니 한번 필이 꽂히면 돌변하는구먼. 피로연이 끝나면 호텔방까지 습격한다는데 우리도 가서 실력 좀 발휘해볼까나~?!

<나의 그리스식 웨딩>

세상엔 두 종류의 결혼식이 있다, 그리스식과 그렇지 않은 것

이번엔 신부가 그리스 사람이다. 예식 전체가 그리스어로 진행된다는 말에 까막눈 4인방은 잽싸게 피로연장으로 직행했는데, 문을 여는 순간 수십명의 사람들이 달려들어 이들을 껴안고 얼굴을 부벼대기 시작한다.

존/ (과도한 스킨십에 당황) 으, 뭐야 여긴? 이 사람들 대체 왜 이렇게 끈적하게 굴어? 아는 척하고 살가운 척하는 건 원래 우리 몫이었잖아? 명색이 웨딩 크래셔에 위장 전문가인데. 뭘 누구누구 친척이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수십년 지기처럼 온통 호들갑을 떨어대니. 이거 완전히 의욕 상실이다 의욕 상실.

제레미/ 어허, 이런. 천하의 웨딩 크래셔 존께서 그리스식 웨딩은 적응이 힘드신가 보구먼. 그리스에서 오신 분들 문화를 쬐∼끔은 미리 파악하셨어야지. 우선, 뭘 해도 가족 단위로 움직인다는 거. 물론 그 가족들 사이는 접착제로 딱 붙여논 것인 양 끈~끈하지. 사돈의 팔촌의 육촌의 일도 바로 자기 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결혼 같은 중대사는 사실상 온 집안 최고의 축제라고. 게다가 신부가 평생 시집 못 갈 것처럼 분위기 잡던 만년 솔로 노처녀였다니, 그 환희의 정도가 평소보다 몇배는 크지. 사실 워낙에 정 많고 다혈질인 그리스 사람들에게 얼굴 부벼대기 정도는 애교라고 애교.

클레어/ 피로연장 이름이 ‘아프로디테 궁전’일 때부터 눈치는 챘는데, 이 사람들 나라 사랑이 정말이지 끔찍할 만치 지극하더라. 아까 신부 아버지가 나한테 오더니 냉큼 하는 말이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거야. “그리스 사람과 그리스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 이국에서 오랫동안 살다보면 그렇게 되나봐. 민족애라는 게 과도할 만큼 넘쳐나는 거 있잖아. 저번에 우리 영국 여행 갔을 때 놀러갔었던 인도 결혼식 기억나? 신부 동생이 인도 사람 말고 영국 사람 데려오니까 부모가 막 경기하던 거. 여자 애가 축구선수로 뛸 만큼 터프하고 당돌한 애였기에 망정이지(<슈팅 라이크 베컴>), 나였음 아마 정말 좌절했을 거야.

글로리아/ 여기 신랑도 그리스 사람 아닌데 뭘~~. 그래도 좋아라 방방 뛰면서 어울리는 거 보니까 그리스 사람 다 됐네 뭘~~~~. 원래 사랑하면 문화 차이 정도는 극복하는 거얌~~~~~. 춤이나 추자~~~. 호빠(‘얼씨구’의 그리스말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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