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서울여성영화제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4월6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신촌 아트레온 극장 3개관을 중심으로 열리는 이번 영화제는 33개국 97편이라는, 여느 때보다 풍성한 차림으로 관객과 만날 채비를 마쳤다. 샹탈 애커만, 도리스 되리 등 거장의 신작을 비롯해 각국의 화제의 신작들이 포함된 ‘새로운 물결’, 여성문제를 정치·사회적 입장에서 강력히 어필하는 ‘여성영상공동체’, 유일한 경쟁부문인 ‘아시아 단편경선’ 등 인기있는 고정 섹션들이 예년과 다름없이 선보이는 가운데 <안토니아스 라인>의 마린 고리스 감독 특별전, 심혜진이라는 특정 여배우를 키워드 삼아 90년대 한국영화 뉴웨이브를 재해석하는 한국영화 특별전, 60년대 미국의 여성 뉴스릴 집단과 프랑스의 비디오 액티비스트들 작품을 집중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특별전, 아프리카영화 특별전 등 그 어느 때보다 참신한 특별 섹션들이 눈길을 끈다.
60년대 다큐멘터리와 아프리카 특별전, 놓치지 말자
‘페미니스트 다큐멘터리의 선구자들: 천개의 목소리’라고 이름 붙여진 60년대 다큐멘터리 특별 섹션과 아프리카 영화계의 짧은 약사랄 수 있는 아프리카영화 특별전은 서울여성영화제가 특히 야심차게 준비한 섹션들이다. 남인영 프로그래머는 미국 뉴스릴 집단의 작품들과 관련해 “정서적인 면이나 감독의 의도 등은 80년대 한국의 페미니즘 다큐멘터리와 유사하나 이를 구사하는 어법이 뛰어나고 그 형식들이 당시 사회를 염두에 둔 정치적 전략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설명한다. 같은 섹션에서 상영되는 프랑스 비디오 액티비즘 작품 3편은 시몬 드 보부아르 아카이브에서 날아온 귀중한 자료 중 일부다. 프랑스 파리에 자리한 시몬 드 보부아르 아카이브는 세계 여성영화 및 여성영화 운동과 관련해 독보적이라 할 만큼 질적, 양적으로 풍성한 자료를 보유한 곳. 올해 서울여성영화제는 이곳 영상센터의 사무국장 니콜 페르난데 페레를 초청, 특별 강연(‘필름 인사이드’)과 함께 영화제 공식 상영작 이외의 클립을 특별 상영할 예정이다. 남인영 프로그래머는 “작품들 속에 비타협적인 태도가 있지만 대부분 딱딱하지 않고 기발하며 유머러스하다. 한의 정서가 아닌 풍자와 리듬을 가졌다”고 덧붙인다.
‘아프리카 특별전: 나의 아프리카’ 섹션은 국내 영화제로서는 처음으로 서울여성영화제가 정식 선보이는 아프리카영화 소개서다. 사하라 이남 지역 최초의 여성감독이었으며 현재까지 활동 중인 세네갈 출신 사피 파이의 1983년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현재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부르키나파소 출신 판나 나크로 감독과 나이지리아 출신 은고지 온우라 감독 등의 작품이 이 섹션을 통해 상영된다. 올해의 개막작 <법조계의 자매들> 감독인 킴 론지노토는 전작들로 이미 영미권 최우수 다큐멘터리상과 국제인권상을 다수 수상한 다큐멘터리스트. 이번 작품은 카메룬의 여성 법조인들을 주인공으로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과 함께 거짓없는 휴머니즘을 이야기한다. 최선희 프로그래머는 “일반 대중이 흔히 아프리카와 연관짓는 기아, 난민, 에이즈 등을 다룬 작품은 의도적으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고정관념을 고착시키는 것보다 아프리카가 가진 또 다른 면들을 이번 섹션을 통해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할리우드 어법을 따르지 않는 아프리카영화만의 화법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새로운 물결’과 ‘여성영상공동체’ 등 고정 섹션에서도 흥미로운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띈다. 10대 미혼모의 성장물을 통해 모성애의 이면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도 있고, 세계 최초의 여성 비행기 납치범이나 여성성을 상품화하는 스포츠업계 논리에 희생된 여성 복서를 다룬 작품도 있다. 한 마을의 여성들이 남편들을 집단 독살했다는 실화에 기반한 다큐멘터리도 있다.
도리스 되리 신작 <내 남자의 유통기한> 선보여
서울여성영화제가 보여주는 올해의 특색은 무엇보다 다큐멘터리와 제3세계의 작품 비중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있는 까닭은 ‘다큐멘터리’와 ‘제3세계’가 특정 장르나 지역의 지칭에 그치지 않고 현실 참여와 새로운 이슈의 발견이라는 적극적 태도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8회 서울여성영화제가 갖고 있는 이러한 역동성은 ‘새로운 이슈’, ‘새로운 형식’, ‘거장’ 등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뉘어 구체적으로 소개될 것이다.
영화제 기간 중에 마련되는 화제의 행사들도 놓치지 말자. 여배우 심혜진, 배우 겸 감독 방은진 등이 아트레온 열린 광장에서 관객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카페 수다’), 앞서 언급한 니콜 페르난데 페레의 특별 강연은 70년대 프랑스 페미니스트 다큐멘터리를 주제로 여러 비디오 클립 상영과 함께 흥미롭게 진행될 예정이다. 따끈한 신작 <내 남자의 유통기한>을 들고 찾아온 <파니 핑크>의 도리스 되리 감독도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개막작 감독인 킴 론지노토는 개인사정으로 불참하게 된 아쉬움을 대신하기 위해 영상 편지를 보내왔다고 하니 이 편지도 꼭 뜯어보길 바란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라는 한결같은 주제로 여덟돌을 맞은 서울여성영화제의 고민은 올해도 한결같다. 좀더 많은 관객과 현실을 공유하고 고민을 나누는 것. 여성의 문제는 그 모순된 현실에 눌린 자들만의 것도 아니며, 여자라는 성을 가진 인간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비주류가 힘을 얻어 주류가 되었을 때 문제의식은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서울여성영화제는 그 순간을 관객과 함께하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