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감독 이만희를 다시 보자 [4]
2006-05-12
글 : 씨네21 취재팀
기회가 왔을 때 잡으라! 상영작 22편 소개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년 | 110분| 흑백 | 출연 장동휘, 최무룡, 구봉서
이만희의 첫 번째 전쟁영화이며 현존하는 이만희 영화 중 가장 초창기의 작품이다. 해병대와 국방부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대규모 제작비를 투자하고 순촬영기간만 6개월이 넘는 대장정을 통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한국 전쟁영화의 한획을 긋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국가나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남아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승리해야만” 하는 군인들이 던지는 “생존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은 이후 이만희 전쟁영화가 지속적으로 다루는 핵심이 된다.

<YMS 504의 수병>
1963년 | 112분 | 흑백 | 출연 박노식, 김혜정, 장동휘
‘YMS 504호’의 선장이 공석이 되고, 선원들은 백전노장인 한 중위가 선장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의외로 엘리트 출신인 장 대위가 새로 부임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전우간의 인간적인 결속을 중심에 놓았던 다른 이만희 전쟁영화와는 달리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한 수병들의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을 중심에 놓은 이색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봉(설태호) 감독과 공동감독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검은 머리>
1964년 | 105분 | 흑백 | 출연 문정숙, 장동휘, 정애란
이만희의 초기 스릴러를 가늠케 하는 작품으로 형식과 내용 면에서 한국적 필름누아르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범죄조직의 두목인 ‘검은 머리’와 조직의 규율에 따라 자신을 강간한 남자를 매춘으로 부양해야만 하는 두목의 아내 그리고 그녀를 구해내려는 젊은 남자의 삼각관계가 조밀하게 얽혀 있다. 밤거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미장센이 일품이며, 세 사람을 연기하는 장동휘, 문정숙, 이대엽의 매력이 물씬 풍겨나는 작품이다.

<마의 계단>
1964년 | 108분 | 흑백 | 출연 문정숙, 김진규, 방성자
<마의 계단>은 장르적인 형식실험의 시험대이다. 극적인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서스펜스의 서사구조를 충격효과를 노리는 공포영화의 호흡으로 세워나간다. 성공을 위해 애인을 살해한 남자 앞에 죽은 애인의 유령이 나타나면서 흥미를 더해가는 이 영화는 현악기를 이용한 금속성의 괴기스러운 음악(이만희 영화 중 가장 예외적인 음악 사용을 확인할 수 있다)과 빠른 편집, 그리고 극적인 화면 구성을 통해 ‘스릴’의 세계를 선사하고 있다.

<군번없는 용사>
1966년 | 121분| 흑백 | 출연 신성일, 문정숙, 신영균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게릴라 부대의 대장인 형과 영웅 칭호를 받은 북한군 장교인 동생의 대립을 그리는 <군번없는 용사>는 아버지의 사랑을 놓고 벌이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차용한 가족멜로드라마의 전형이다. 공산당 대의원인 아버지의 사랑과 신임을 얻기 위해 전쟁 영웅이 되어 돌아온 작은아들이 아버지가 당을 배신하고 자신을 외면했음을 깨닫게 되면서 벌어지는 증오심과 질투심 그리고 윤리적인 갈등을 밀도있게 그리고 있다.

<물레방아>
1966년 | 91분 | 흑백 | 출연 신영균, 고은아, 허장강
떠돌이 방원이는 어느 마을에서 열린 굿판에서 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마을에 머문다. 종살이를 하며 여자를 찾아낸 그는 여자의 빚을 갚기 위해 평생 종살이를 자청하고, 주인은 호시탐탐 여자를 차지할 욕심에 차 있다. 일제를 배경으로 한 저항문학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들은 대부분 사실주의와 한국적인 미학을 화두로 삼는다. 그러나 이만희는 한국적인 배경과 소재를 통해 가장 서구적이며 현대적인 서사와 몽환적인 스타일을 시험하고 있다. 영화는 주술적이며 환영과 같은 여인을 향한 방원의 집요하고 강박적인 욕망을 따라간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과 욕망에 지배받는 인물들의 폭력적이며 자기파괴적인 모습들을 눈부시게 아름답고 정교한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나도향 원작.

<귀로>
1967년 | 90분 | 흑백 | 출연 문정숙, 김진규, 김정철
<만추>와 더불어 이만희 감독의 대표작으로 한국 영화사의 걸작이다. 한국전쟁으로 부상을 입고 반신불구가 된 남편과 14년간 살아온 지연은 남편의 소설 원고를 신문사에 전해주기 위한 서울 나들이가 유일한 탈출구이다. 신문사의 강 기자는 첫눈에 그녀에게 끌리고, 그녀 역시 전쟁과 과거로부터 단절된 젊은 남자에게서 구원을 찾는다. 이만희는 전장에서 풀지 못한 전쟁 이야기를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의 틀 속에서 다시 전개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과거와 단절된 현재의 불구성을 도시의 황량함 속에 투사시키고 있다.

<싸리골의 신화>
1967년 | 96분 | 흑백 | 출연 최남현, 김석훈, 문정숙, 박노식
아직 전쟁의 마수가 미치지 않은 평화로운 ‘가상의 마을’ 싸리골에 낙오된 국군 8명이 들어온다. 마을의 지도자인 강 노인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이들을 보호하기로 하지만 곧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하면서 마을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게다가 과거 마을의 머슴으로 천대받던 자가 새로운 권력자인 인민군 군관으로 돌아오면서 마을의 위기는 깊어져간다. 표면적으로는 ‘휴머니즘’의 전형을 이어가지만 ‘싸리골’이라는 사회의 축소판을 통해 전통적인 질서와 새로운 질서 사이의 충돌과 갈등을 그리고 있다.

<원점>
1967년 | 97분 | 흑백 | 출연 신성일, 문희
<원점>은 분위기와 스릴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범죄조직의 말단 조직원과 거리의 여자의 사랑이 한축을 이루고 조직의 안전을 지키려는 악당들과 그들에게 처형당할 위기에 놓인 주인공의 대결이 다른 한축을 이루고 있다. 한마디의 대사나 음악도 없이 전개되는 오프닝 10분은 이미지로 이야기하는 이만희의 연출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순간이다.

<휴일>
1968년 | 73분 | 흑백 | 출연 신성일, 전지연
휴일마다 만나는 가난한 연인인 허욱과 지연은 커피값이 없어 흙먼지 이는 공원에서 하루를 보낸다. 지연은 임신사실을 알리고, 허욱은 중절비용을 얻기 위해 서울을 헤맨다. 그리고 의사는 그들이 아이를 낳고 싶다고 해도, 아이가 너무 허약한 상태라고 말한다. ‘암울하고 퇴폐적인 정서’를 이유로 상영이 금지되었던 이 영화는 지난해에 비로소 처음으로 관객과 만났고, 소개되자마자 이만희의 대표작 반열에 올랐다.

<창공에 산다>
1968년 | 108분 | 컬러 | 출연 신성일, 장동휘, 남정임
일찍부터 공군영화를 기획하였지만 신상옥의 <빨간 마후라>(1964)가 발표되면서 뒤로 미루어진 것이 결실을 맺은 게 <창공에 산다>이다. 그러나 ‘전시’라는 긴박감이 증발된 상태에서 갈등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하지 못하면서 영화는 방향을 잃는다. 하지만 공군의 지원 속에 이석기 촬영감독이 전투기에 탑승하여 목숨을 건 촬영을 감행해 재현된 공중전 장면은 새로운 영화기법을 실험하고자 했던 이만희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생명>
1969년 | 73분 | 컬러 | 출연 장민호, 남궁원, 허장강
<생명>은 무너진 갱도에 갇힌 광부와 구출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다. 영화의 첫 부분, “이 영화는 기록영화이다”라고 대담하게 자막을 내보내지만 실상 발생한 ‘사건’과 ‘과정’들을 ‘기록’하는 데에는 무심한 영화이다. 대신 영화는 무너진 갱도라는 폐쇄된 공간에 갇힌 광부의 의식의 흐름을 집요하게 좇고 있으며, 그의 생존을 둘러싸고 지상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다양한 반응들을 추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휴먼스토리’에서 벌어지는 사건해결의 긴박함이나 인간승리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본질론적인 성찰을 내세우는 이 영화는 인간의 위선과 존재에 대해 좀더 ‘사실적’이며, ‘기록’적이다. 실제 사고가 난 갱도에서 촬영된 깊이있는 영상미와 광부 양창선을 연기한 장민호의 연기가 돋보인다.

<암살자>
1969년 | 78분 | 컬러 | 출연 장동휘, 남궁원, 박암
최근 들어 가장 적극적으로 재평가를 받고 있는 <암살자>는 사건의 인과율을 좇는 일반적인 장르영화와는 달리 인물의 심리변화 과정을 중심에 놓은 독특한 방식의 영화이다.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암살자인 장동휘를 중심으로 그의 내면세계의 변화과정을 추적한다. 자기 손에 죽은 남자의 딸을 키우고,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희생자를 만나고, 암살자에서 암살의 대상이 변모하는 암살자의 모순에 찬 상황이 실험적인 편집방식을 통해 구성된다.

<여섯 개의 그림자>
1969년 | 98분 | 컬러 | 출연 윤정희, 남궁원, 신성일, 허장강
<여섯 개의 그림자>는 이만희의 출세작인 <다이알 112를 돌려라>의 첫 번째 리메이크이다(<삼각의 함정>(1974)이 두 번째 리메이크).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은 여자와 그녀의 재산을 노리는 악당들이 벌이는 음모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얽히고설킨 복잡한 플롯을 풀어나가다보니 인물들의 깊이가 떨어지지만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전개되는 사건의 과정을 따라가는 재미가 만만찮은 작품이다.

<여자가 고백할 때>
1969년 | 89분 | DVCAM | 출연 문정숙, 신성일, 남궁원, 윤일봉
이 영화는 문정숙이 이만희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있지만 그동안 일부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이번 전작전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남편의 외국 유학으로 오랫동안 혼자 지내온 지연은 외로움 끝에 자신을 사모해온 남자와 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지연은 남편의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남자들이 세워놓은 윤리틀에 맞추어 구원되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이 이해되기를 바라는 강한 여성상을 확인할 수 있다.

<쇠사슬을 끊어라>
1971년 | 98분 | 컬러 | 출연 장동휘, 남궁원, 허장강
<쇠사슬을 끊어라>는 ‘사실적’인 어떤 것도 부인하며 영화적인 유희를 즐기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정통 액션영화이며 동시에 60년대 말 유행했던 ‘만주웨스턴’에 대한 이만희식 답가였다. 민족의 독립이라는 대의명분을 전면에 내세우고 일본군과 대립하는 기본 구조를 가져왔지만 그는 그 구조에 연연해하지 않는 듯하다. 시대적 배경을 뛰어넘는 소품(세단형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소형 기관총 등의 사용)의 활용과 대의명분보다는 자기 이익에 충실한 인물들, 그리고 그들을 지배하는 유머감각 넘치는 ‘게임의 규칙’은 기존의 장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한껏 유희를 펼친다.

<0(영)시>
1972년 | 99분 | 컬러 | 출연 허장강, 신성일, 윤정희, 문오장
늘 범죄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이만희의 작품에서 경찰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예외적인 영화가 <0시>이다. 답답하리만치 자기 임무에 충실한 주인공 장 형사는 자기 아들이 유괴된 순간에도 사사로이 행동할 수가 없다. 형사와 가장으로서의 의무가 충돌하는 와중에 유괴범과 아들 사이에 전개되는 기묘한 우정이 영화를 단순한 형사물의 전형에서 벗어나게 한다. 장 형사의 집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남대문시장과 아들이 놀이터로 삼는 서울역 광장의 풍광이 새롭다.

<04:00-1950>
1972년 | 88분 | 컬러 | 출연 장동휘, 김성욱, 정욱
<04:00-1950>은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논하는 작품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하루 전인 6월24일에 젊은 지식인 병사가 전방 초소에 새로 전속되면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전쟁을 둘러싼 무의미한 정치적 논쟁으로 시작하지만 막상 전쟁이 발발하면서 그 절대적인 상황 속에 갇힌 군인들의 인간적인 고뇌와 선택을 중심으로 전환하게 된다. 무너진 초소에 갇혀 한명씩 죽음의 운명 앞에 쓰러져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가슴 무거운 엄숙함과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들국화는 피었는데>
1974년 | 102분 | 컬러 | 출연 신성일, 이영옥, 김정훈
1974년 영화진흥공사의 지원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04:00-1950>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군인들의 가족과 북한군의 등장은 이야기를 좀더 풍부하게 끌어나간다. 그러나 정부지원으로 제작된 ‘반공영화’가 ‘본분’을 다하지 못하면서, 이에 당황한 영진공이 신상옥 감독을 불러 재편집을 의뢰했으나 “한 군데도 손댈 곳이 없다”며 거절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검열로 인해 손상되어버렸고 현재 남아 있는 판본은 안타깝게도 검열본이다.

<청녀>
1974년 | 83분 | 컬러 | 출연 신성일, 장동휘, 남정임
<태양 닮은 소녀>
1974년 | 78분 | 컬러 | 출연 신성일, 문숙, 고영수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곡>을 각색한 <청녀>와 <태양 닮은 소녀>는 모두 젊고 순수한 소녀로 인해 깊은 죄의식로부터 구원받는 중년의 남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접근방법은 매우 다르다. <청녀>가 암울한 분위기와 소녀의 절대적인 자기희생을 기본으로 한다면 <태양 닮은 소녀>는 제목처럼 햇살 가득한 발랄한 소녀와 그녀로 인해 다시 삶의 빛을 확인한 남자의 죽음을 통해 구원이 이루어진다. 신중현의 <미인>이 주제곡으로 사용된다.

<삼포가는 길>
1975년 | 99분 | 컬러 | 출연 김진규, 백일섭, 문숙
이만희 감독의 유작이며 가장 자주 논의된 작품이다. 모든 사람의 고향인 가상의 공간 ‘삼포’를 향해가는 세 사람의 관계맺기와 여정을 담고 있다. 황석영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으로 아름다운 설경과 실험적인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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