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8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 발표 [2] - 당선작
2006-05-17
글 : 김수경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당선작 <탐정>의 김정훈 작가

“미스터리이자, 코미디이자, 드라마다”

<탐정>의 김정훈 작가는 현재 충무로 연출부다. 대진대 영화과 졸업작품으로 만든 단편 <어깨동무>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청풍명월> 연출부를 거친 그는 현재 개발 중인 미스터리물에 조감독으로 기용된 상태다. “돈이 덜 드는 공간과 장르적 요소를 배합한” 시나리오 <탐정>은 이러한 연출부의 현장 경험이 묻어나고 있다. 건축과와 법학과를 에둘러 뒤늦게 영화과에 전과했던 그는 “졸업해도 딱히 할 일이 없는 영화전공자의 특성상 이것이 내 길이라고 믿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서른살의 김정훈 작가는 시나리오 교습을 별도로 받은 경험이 없다. “좋은 감독이 되기 위해서 연출부 생활을 하는 동안 최대한 시나리오를 많이 써야겠다”는 결심이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 집에서 시나리오를 쓰는 바람에 한때는 영화하는 친구들에게 “현장에 나오지도 않고, 단편 작업도 안 하고 그게 뭐냐”는 타박도 많이 들었다. 다른 젊은 영화인들처럼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면서 한때는 집안일로 닭도 키우면서 버텼다”는 김정훈 작가는 “영화적 구조를 가장 중시하는” 신인이다. 세 번째 쓴 장편 시나리오 제목과 조감독의 역할을 고민 중인 그의 “최종목표는 영화감독”이다.

-당선소감과 주변의 반응은.
=내가 생각해도 이건 기적이다. 주변 사람들 반응도 비슷했다. (웃음) 여자친구가 많이 좋아했다. 5년 동안 사귀었는데 영화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쓸 때마다 매우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모니터링해줬다. “딴 일 해봐야 못하는 애”라고 믿어주셨던 어머니께도 감사드린다.

-<탐정>의 집필동기와 과정은.
=한국영화에는 형사물은 많지만 <혈의 누> 정도를 제외하면 탐정물이 드물다. 원래는 코믹탐정물을 쓰려고 했는데 살인사건을 개입시키다보니 많이 달라졌다. 제목 <탐정>(探庭)에 원래 염탐할 정(偵)자가 아니라 가정 정(庭)자를 썼다. 부부관계를 묘사하는 성장물의 느낌을 많이 가져갔기 때문이다. 별도로 주인공의 캐릭터와 이미지를 위한 시각화 작업을 준비했다. 원래는 나이가 많은 탐정이었는데 캐스팅을 감안해 연령대를 끌어내렸다.

-영화전공자이고 현장에 있다보니 시나리오 자체가 실제 제작과정을 많이 염두에 둔 인상이다.
=최대한 이야기를 작게 가져가려 했다. 만약에라도 큰 이야기를 누가 나에게 맡기겠는가. 충무로 현실은 냉혹하기 때문에 제작환경을 감안해 써야 하고 그게 내 장점이자 단점이다. 상상력의 제한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원동력이 되는 측면도 있다.

-시나리오를 쓰는 시간대가 언제인가.
=주로 아침에 쓴다. 그렇게 된 이유는 너무 인생이 꿀꿀하니까. (웃음) 돈도 못 벌고 어머니에게 죄송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드리자는 취지였다. 밤이나 새벽에 쓰는 것보다는 일정하게 작업에 임하는데도 아침 시간이 도움이 된다.

-<탐정>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고전영화 <태양은 가득히>를 보고 80∼90신 가까이 썼던 시나리오를 그냥 엎을까 했다. <태양은 가득히>의 범죄를 저지르고 무마시키는 주인공의 방식이 더 매력적이고 재밌어 보였다. 사건을 풀어가기보다는 뒷수습하는 캐릭터가 더 흥미로웠다. 무려 일주일이나 고민했다. 머리를 식히려고 봤다가 엉뚱하게 발목을 잡혔던 순간이다.

시놉시스

30대 중반의 대만은 도서대여점 주인이다. 마누라 미옥과 아들 건우와 함께 사는 그는 영화를 보거나 추리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유일한 낙이라면 친구 준수가 근무하는 경찰서에 들러 수사에 참견하는 일. 아내 미옥은 그런 대만이 불만스러워 자주 잔소리를 한다. 어느 날 친구 찬규의 아내 서영이 살해당한다. 살인사건이 벌어지던 시각, 세 사람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참고인으로 불려간 대만은 사건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경찰의 조사 끝에 서영의 불륜관계가 드러나며 용의자로 체포되는 준수. 준수는 사건 당일 대만과 찬규를 남겨두고 먼저 술자리에서 일어섰다. 대만과 준수의 오랜 파트너 노 형사는 준수의 체포에 이의를 제기하지만 묵살된다. 대만은 교도소에서 면회한 준수의 진술을 바탕으로 수사에 나선다. 매일 경찰서에 드나드는 대만이 못마땅했던 노 형사도 어쩔 수 없이 대만을 수사에 동참시킨다. 그리고 찬규가 서영과 준수의 불륜관계를 미리 알아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대만. 대만이 찬규에게 선물했던 지포라이터를 계기로 홍철이 새로운 용의자로 지목된다. 노 형사와 대만은 홍철을 만나 추궁하지만 그는 알리바이를 대며 발뺌한다. 홍철을 만난 이후 대만은 이번 살인사건이 가진 시간의 비밀을 눈치챈다. 그리고 대만은 결정적인 단서인 피 묻은 휴지를 찾아내고 범인을 만나러 가는데….

시나리오

S#1 욕실(밤)
(초략)
건우 아빠, 왜 약속 안 지켜?
대만 무슨 약속?
건우 동생 만들어준다며?
대만 노력하고 있어!
건우 거짓말!
대만 거짓말이라니…… 봐봐! 아빠 얼굴, 핼쑥해진 거 안 보여!
건우 애기 만들 때, 여자가 남자 등에 상처 만들잖아. 그 정돈 나도 알아!
대만 (싸늘한) 너 아빠가 유선 보지 말랬지!

S#3 책방(아침)
날카로운 대만의 눈빛. 그 위로 들리는 컴퓨터 자판 두들기는 소리
그 앞에 모자를 눌러 쓴 20대 청년이 서 있는데, 경찰서에서 취조를 당하는 범인 같다.
‘책 사랑’이라고 새겨진 모자를 쓴 청년이 그 앞에 서 있다.
(초략)

대만 바람피우다 들켰지? 너!
모자 …!
대만 밤새도록 술 퍼마시고, 딴 여자 궁둥이 주무를 때는 좋았겠지!
모자 (놀란 표정으로 대만을 보며) 어떻게 아셨어요?
대만 어떻게 알긴, 목에 난 훈장이나 좀 가리고 다녀라, 짜식아!
모자 만날 추리소설을 끼고 사시더니, 제법이시네요.
대만 돈벌이도 시원치 않은 자식이 나이트는…
모자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니… 그걸 어떻게?
대만 물 좋냐? 리버사이드호텔 나이트?
모자 와∼ 사장님 이제 보니 완전 귀신이시네! 혹시 어제 거기 오셨어요?

대만, 느긋하게 미소를 지으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아까 모자가 준 라이터에 ‘리버사이드호텔 나이트’라고 쓰여 있다.

S#12 형사과(낮)
용의자 석환을 취조하는 준수
노 형사는 의자에 앉아, 취조과정을 느긋이 지켜본다.
대만은 그 주위를 서성이며, 끼어들 틈을 노리고 있다.
(초략)

대만 (석환의 휴대폰을 들며) 통화목록을 보면 부재 중 전화가 3통 와 있는데요. 전부 12시30분에서 1시30분 사이에 온 겁니다. 목욕탕에 있어서 못 받거나, 불 지르는 데 정신이 팔려 못 받았다는 얘긴데…… 아까 벨소리 들으셨죠? 만약, 이 친구가 정말 방화를 저질렀다면, 왜 휴대폰을 꺼놓거나 진동으로 해놓지 않았을까요? 불 지르는 게 무슨 자랑도 아니고, 동네방네 알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노 형사,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눈을 감고 가만히 있다.

대만 그리고 경찰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 텐데… 왜 도망치지 않았을까요? 왜?(빈정거리는 말투로) 신발이 벗겨질까봐?
노 형사 자포자기한 심정이었겠지. 돌이킬 수 있는 선을 넘어버렸으니까… 여자도, 집도…
대만 (석환의 얼굴을 보며) 아∼ 자포자기한 사람의 얼굴이란 게 바로 이런 거군요

노 형사, 헛기침을 한번 날리며 석환의 얼굴을 진지하게 들여다본다.
석환의 얼굴엔 억울하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어찌 보면 당당하기까지…
그 완고하던 노 형사의 얼굴에도 고뇌의 빛이 서린다.

S#53 서 반장 사무실(낮)
노 형사 저 놈… 형사밥 먹은 지 10년째야… 저렇게 어수룩하게 증거를 남겼을라고?
서 반장 피해자의 질 속에 이 형사의 정액이 나왔습니다. 자택에서 살해도구도 나왔구요… 더이상 필요한 게 없을 정도로 결정적인 증거들입니다.
노 형사 틀림없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거라고 생각하네. 그 정도 증거들은 누구나 쉽게…
서 반장 (말을 자르며) 정액을 뭘 어떻게 조작한단 말입니까? 누가 봐도 명백한 사건입니다.
노 형사 자네… 형사 생활 헛했구먼!
서 반장 (발끈) 그래도 선배님보다야 잘했으니까, 이 자리에라도 있는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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