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형사물로 보지 마시오”
형사물 <파트너>로 가작에 당선된 1969년생 인석현 작가는 원래 발레리노였다. 예고와 대학을 거치면서 발레밖에 몰랐던 그는 안무가를 꿈꾸며 미국 유학에 나선다. 이때 영화같은 시련이 닥친다. 고등학교 때 다쳤던 허리 부상이 재발하면서 “다시 한번 무대에 서면 평생 휠체어를 타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며 의사는 “발레를 포기하라”고 말했다. 안무가의 꿈을 잃어버린 그는 1998년 11월 결혼 뒤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간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푹 빠져 살았던 인석현 작가는 2003년 1월 목욕용품 회사에 사표를 내고 시나리오를 쓰기로 결심한다. 독학으로 시나리오 입문서를 읽고 영화를 분석하던 그는 시나리오작가협회의 교육원에 다니면서 본격적인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결혼 8년차의 인석현 작가는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타쓰고, 여섯살 먹은 딸에게 “우리 아빠는 글자 팔아요”라는 말을 들어가며 3년3개월간 집필에만 매달렸다.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아내와 상의했기에 그는 더욱 간절하게 <파트너>를 매만져 공모에 내놓은지도 모른다. “시나리오 작가로는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인석현 작가는 늦깎이 신인답게 이미 두편의 드라마와 장편영화 시나리오 세편을 품고 있다. 발끝을 세우고 무대를 누비던 남자가 펜 끝을 세우고 그려낼 세상이 어떨지 궁금하다.
-당선 소감과 주변 사람들 반응은.
=아내는 울더라. 아마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안 믿으셨다. (웃음) 사실을 확인한 뒤에는 표절 아니냐고 농담을 하시더라. 가족들에게 제일 고맙다. 전업작가가 되고 싶은데 이제 겨우 총 한 자루 쥐고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이다.
-<파트너>의 집필동기와 과정은.
=공원에서 혼자 자주 조깅을 했다. 밤에 조깅하다가 정신이상자한테 둔기를 맞고 살해당하면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난감하겠다 싶었다. 초고를 뽑아내는 데 한달여 걸렸고, 여섯번 정도 수정한 원고다.
-강력계 형사 두명이 주인공인 영화는 장르영화에서 매우 흔한 설정이다. 차별화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을 것 같다.
=장르영화의 안정감에 개성을 부여하기 위해 몽유병 환자와 정신과 의사의 관계를 통한 심리적인 요소를 강조했다. 태촌과 순기의 상이한 캐릭터를 통해서도 변화를 주려 했다.
-나만의 집필방식이나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방법론이 있다면.
=트리트먼트를 20∼30장 분량으로 반복해서 수정해가며 쓴다. 최대한 상세하게 트리트먼트를 구성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초고는 수정을 통해 구성하기 쉬워진다.
-보통 시나리오를 쓰는 시간대가 언제인가.
=밤에 몰아서 쓰는 타입이다. 트리트먼트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본문은 쉬지 않고 써내는 편이다. 집사람에게 미안하니까 낮에는 근처 도서관에서 작업하기도 했다. 오후 6시부터 9시까지는 딸이랑 놀아줘야 해서 쓸 수가 없다. 막히면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혼자 소주 한잔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앞으로 선보일 작품이나 미리 써놓은 시나리오가 있다면.
=<사투>는 자료조사를 굉장히 깊게 했고 세 번째 쓴 장편이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같은 이야기에 어드벤처 성격을 가미한 시나리오다. 좀더 다듬어서 기회가 되면 선보이고 싶다.
시놉시스
강력계 형사 강태촌과 최순기는 오래된 파트너다. 날카로운 이미지의 태촌과 거대한 체구와 달리 순둥이 순기는 매우 대조적인 인물이다. 20대 중반의 서민지가 공원에서 살해당하고, 그녀와 내연의 관계였던 정신과 전문의 한기석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두 사람은 한기석을 만나지만 그는 알리바이를 제시하며, 범행 일체를 부인한다. 두 사람이 사건을 파고들면서 여대생들에게 성추행 혐의를 가진 대학교수 임치수가 새롭게 용의선상에 포착된다. 두 사람은 임치수와 만나 서민지를 사랑했던 장윤범의 존재를 알게 된다. 장윤범은 태촌과 순기를 만나자마자 범행을 자백한다. 하지만 그가 살해한 사람은 서민지가 아니라 그녀를 성폭행했던 그녀의 계부였다. 서민지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한편, 형사 최순기는 사랑하는 아내 소연의 신부전증 때문에 진 빚으로 사채업자들에게 매일 시달린다. 우연히 공원에서 한기석의 이니셜이 새겨진 휴대폰줄을 단서로 확보한 최순기는 한기석을 찾아가 넘겨주는 조건으로 소연의 수술비를 마련하려 한다. 약속을 위해 공원에 갔던 최순기는 의문의 남자에게 둔기로 얻어맞고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진다. 태촌은 사채업자와 한기석을 찾아다니며 최순기의 복수를 감행한다. 이 과정에서 태촌은 한밤중에 최순기를 습격했던 사람이 서민지 살인사건의 목격자였던 윤성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사건의 윤곽이 드러난다.
시나리오
S#1 복잡한 도심
밝은 대낮 언덕 위쪽에서 한 남자가 기를 쓰며 도주한다
그를 추격하는 거구의 형사 최순기
내리막길, 순기의 체중을 실은 엄청난 속도에 막 잡히려는 찰나.
도주하던 남자가 순간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순기는 자신의 가속력에 못 이겨 범인을 쳐다보며 계속 직진한다.
도주하던 남자는 뒤쫓아온 형사 태촌에게 붙잡혀 수갑이 채워진다.태촌 어이∼ 최 형사!
순기 네!
태촌 너 뛰던 쪽으로 계속 뛰면 우리 경찰서 방향이거든.
순기 예?
태촌 넌 계속 뛰어서 경찰서로 와!S#3 개마공원 숲(밤)
(초략)
‘퍽’ 누군가의 손에 들린 얼굴 크기만한 돌덩이가 민지의 얼굴에 작열한다
쓰러진 민지의 상체에 올라타 돌덩이로 무차별하게 내리찍는 한 남자의 실루엣.
처음 들렸던 둔탁한 소리가 공원에 몇번 더 울려퍼진다.
인적없는 공원 숲길, 민지의 두발이 심한 경련을 일으키더니 잠잠해진다.S#6 강력1반 사무실
책상에 걸터앉아 검시조서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태촌.
(인서트) 검시조서에 얼굴이 처참하게 짓이겨진 피살자 서민지의 사진이 보인다.검시관(소리) 오른쪽 눈썹 아래에서 아래턱까지 함몰된 상태입니다. 오른쪽 치아 어금니 둘만 빼고는 치아와 잇몸이 전부 식도까지 밀렸습니다. 흉기로 쓰였던 돌의 무게가 13.8kg인 걸 감안하면 가능한 일이죠. 범인은 왼손잡이일 가능성도 있지만 돌의 형태나 무게로 보아 두손으로 내리친 것으로 판단됩니다.
S#8 승용차 안
태촌 피살자 당일 통화내역 있지?
순기 네. 같은 번호가 오후에 2번, 저녁 8시에 한번, 누굽니까?
태촌 정신과 의사야.
순기 둘이 어떤 관계인 것 같습니까?
태촌 유부남 의사와 미모의 여자. 설명 더 필요해?S#10 취조실
태촌 어제 서민지씨하고 몇시까지 어디에 계셨죠?
기석 밤 10시까지 프린스호텔 바에 있었습니다.
태촌 그럼 살인현장인 공원엔 가지 않았단 말씀이군요.
기석 네, 그 뒤 전 바로 집으로 갔습니다.
(중략)
태촌 그럼 알리바이 확인 뒤 연락드리겠습니다.
기석 (명함을 건네며) 연락주십쇼. 범인이 잡힐 때까지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S#18 미대 건물 안
태촌 서민지양이 8월20일 변사체로 발견됐습니다.
수미 네! 어, 어떻게 그런 일이. 아마도 용의자를 찾으시나본데 어쩌죠.
태촌 무슨 말씀인지?
수미 그 걸레 같은 년 거친 남자들을 다 조사하려면 형사 두분만으로 꽤 벅차실 텐데.
순기 그래도 한때 친구였다던데 비명횡사한 사람에게 그런 말하면 못 써요!
수미 친구만 아니었어도 이러진 않아!S#48 개마공원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순기.
기석이 돈가방을 들고 걸어온다.
순기에게 돈가방을 건네는 기석.
기석이 손을 내밀자 소형녹음기와 휴대폰줄을 건네는 순기.기석 앞으론 다신 볼 일 없겠군.
순기 꺼져.
기석 하나만 물어보자. 근데 왜 하필 7500만원이냐?
순기 너 같은 부류의 새끼들은 말해봤자 이해 못해.
기석 비리경찰 새끼가 건방지게 존심은 살아가지고
순기 나도 하나만 물어보자. 왜 죽였냐?
기석 (순기를 비웃듯 바라보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