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브라이언 싱어와 <수퍼맨 리턴즈> [2]
2006-07-04
글 : 김혜리
키워드로 본 <수퍼맨 리턴즈>의 정체

비행 Flying

과학적으로, 미학적으로 표현한 고유한 슈퍼맨의 능력

도구나 날개 없이 하늘을 나는 능력은 슈퍼히어로 중에서도 슈퍼맨의 고유한 자질이다. 와이어나 기계장치를 CG로 지울 수 없었던 과거 <슈퍼맨> 영화들은 조명이나 카메라 위치를 꼼꼼히 조작해 속임수를 가리는 묘기를 부린 다음, 관객의 우호적 상상력에 세부를 맡겨야 했다. 그러나 현재 할리우드가 가동할 수 있는 첨단 테크놀로지와 감독의 판타지를 마음껏 결합한 <수퍼맨 리턴즈>의 비행 시퀀스들은 액션과 로맨스의 정점을 차지한다.

슈퍼맨이 ‘거의’ 날아다니는 스파이더맨과 다른 점은 얼굴과 머리카락이 가면에 가려 있지 않기 때문에 비행시 기류에 반응해야 하고, 지속시간과 방향성이 완벽하게 자유롭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고속으로 날아가는 슈퍼맨의 피부 떨림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를 투명한 공에 넣고 ‘루미스피어릭 스캔’ 기법으로 얼굴과 몸에 광선을 반사시켜 모공까지 컴퓨터에 재현했다. <폴라 익스프레스>와 유사한 ‘휴먼애니메이션’이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어차피 판타지’라는 생각에 기대지 않고 모든 현상 뒤의 과학적 논리를 캐묻고, 가능한 한 물리법칙을 존중했다. 어떤 손이 방향타 역을 하는가? 망토는 초음속과 보통 속도에 어떻게 반응하며 휘날리는가?(망토 문제는 소니픽처스 이미지 워크가 따로 전담했다.) 여객기를 붙잡는 데 드는 힘의 양은? 그렇게 만들어진 비행기 구조 장면은 아이맥스영화로의 가공이 가장 기다려지는 신이 됐다(그러나 9·11 테러에 희생된 유나이트드93 여객기의 연상도 피할 수 없다). 한편 1편에 나온 “지구를 빛의 속도로 거꾸로 돌아 시간을 역류시킨다”는 식의 상상은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면 모든 지상의 사물이 대기권 밖으로 떨어져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슈퍼맨의 비행 이미지는 정과 동, 대범한 컷과 신중한 컷을 섞어 액션의 리듬을 만드는 브라이언 싱어 감독 스타일로 조율됐다. 여기서는 슈퍼맨의 비상 못지않게 활강과 추락의 감각도 중요하다. 종종 슈퍼맨은 클래시컬한 음악에 잠겨 발레에 나오는 공기의 정(精)처럼 움직인다. 돋보이는 것은 비행 고도의 조절이다. 회상장면에서 도약과 비행의 능력을 깨달은 어린 클라크는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처럼 들판을 겅중겅중 가로지른다. 그러다 지붕을 뚫고 바닥에 떨어지려는 찰나 소년은 멈춘다. 나른한 햇빛이 쏟아지는 적요한 오후. 딱 한뼘만큼 땅에서 떨어진 소년은 그 느낌을 충분히 음미한다. 리처드 도너 감독의 <슈퍼맨>에서 로이스와 슈퍼맨의 공중 데이트는 <타이타닉> 전까지 가장 환상적인 영화 속 데이트 이미지였다. <수퍼맨 리턴즈>에서 로이스는 이륙에 앞서 하이힐을 벗고 어린 여자애들이 아빠와 춤출 때처럼 슈퍼맨의 부츠에 맨발을 올린다. 물을 스치는 갈매기의 높이로 나는 두 사람에게 수면은 황홀한 거울이 된다. 슈퍼맨이 없는 동안 로이스가 고른 남자친구의 취미는? 빙고! 비행기 조종이다.

디지털 촬영 Digital Cinematography

한결 로맨틱해진 고해상도 이미지

<수퍼맨 리턴즈>는 소니와 파나비전이 공동 개발한 신형 제네시스 카메라로 촬영된 디지털영화다. 필름의 회화적 느낌을 애호해 오랫동안 디지털에 대해 보수적이었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하필 2억6천만달러짜리 블록버스터를 실험실로 택했다. 발단은 슈퍼35mm- <유주얼 서스펙트>와 <엑스맨2>의 포맷- 로 테스트 촬영한 결과를, 별뜻없이 돌린 구형 70mm카메라 촬영분과 비교해본 것. 70mm에 비해 35mm의 이미지는 너무 원시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미 희귀해진 70mm는 카메라의 크기가 야기하는 기동성 저하, 필름의 가격, 현상 시설 등 모든 면에서 불가능했다. 때마침 10년간 브라이언 싱어 감독과 협력한 뉴튼 토머스 시겔 촬영감독은 파니비전의 70mm 렌즈를 쓰되 하나의 칩에 1200만 메가픽셀로 이미지를 잡는 신형 디지털카메라인 제네시스의 가능성을 감독에게 귀띔했다. 실험 결과 그들은 입자가 거의 없고 훨씬 깨끗한 영상을 얻었고 시제품만 존재하는 이 카메라를 한대씩 만들어가면서 촬영한다는 별난 결정을 내렸다. 문제는 제네시스의 1차적 이미지가 다소 평면적이라는 점.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매일 촬영한 분량을 참조용 스틸에 맞춰 그때그때 보정하는 수고로 단점을 보완했다. 이 토론 과정은 싱어 감독의 비디오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http://www2.warnerbros.com /supermanreturns/videoblog/). 그래서 뭐가 어떻게 다르다는 거냐고?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고해상도 이미지는 한결 로맨틱하다. 기존 영화와 뭔가 다른 특별한 느낌이면서도 여전히 비디오 아닌 필름을 보고 있다는 기분을 준다”라고 설명했다. 영화지 <엠파이어>는 <수퍼맨 리턴즈>의 이미지가 앨프리드 히치콕의 <레베카> 같은 40년대 멜로드라마와 유사한 톤일 것이라고 짐작하기도 했다.

렉스 루더 Lex Luthor

수퍼맨을 증오하는 땅 투기꾼 악당

만화 <슈퍼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다종다양한 악당 가운데 <수퍼맨 리턴즈>는 전작 장편영화에서 활약한 렉스 루더를 다시 한번 슈퍼맨의 숙적으로 골랐다. 애초 작가들은 다른 악당들도 넣어보았다고 하지만,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예나 지금이나 렉스 루더의 본질은 병적인 땅 투기꾼이다. 리처드 도너 감독의 <슈퍼맨> 1편에서는 미국의 서해안선을 고쳐 소유지의 매매차익을 노리고, <슈퍼맨> 2편에서 슈퍼맨을 팔아넘기는 대가로 호주를 요구했던 과대망상가 렉스 루더는 <수퍼맨 리턴즈>에서 아예 신대륙을 만들어 땅장사를 하려고 든다(렉스 루더는 <슈퍼맨4>에도 등장하지만 태작인 3, 4편은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일이라는 것이 전 지구적 여론인 듯하다). 블록버스터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인 케빈 스페이시가 연기하는 새로운 렉스 루더는, 희화화된 용렬한 소인배였던 진 해크먼의 루더에 비해 훨씬 고전적인 악당이다. 그는 “붉은 망토나 휘날리고 다니며 능력을 인간에게 나눠주지 않는 신이라는 족속”을 증오한다. 그리고 자기야말로 신의 재산을 훔쳐 인간에게 돌리는- 그리고 최대 지분은 자기가 갖는- 프로메테우스라고 외친다.

세트 Set

해체-조립에서 농사까지, 꼼꼼하게 완성한 세트

<수퍼맨 리턴즈>는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과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를 만든 호주 시드니의 폭스 스튜디오 세트 전체를 활용해 촬영됐다. 미국 캔자스주로 설정된 켄트 농장과 집의 야외 세트는 호주 뉴 사우스 웨일스 지방 탐워스에 지어졌다. 세트팀은 이 집을 할리우드에서 지어올린 다음 해체해 호주로 실어나르고 다시 재조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클라크가 걷고 달리는 들판의 재현을 위해 스탭들은 자체 관개시스템을 만들어 때 아닌 옥수수 농사까지 지어야 했다. 슈퍼맨이 생부(말론 브랜도)의 메시지를 받고 소명을 깨닫는 ‘고독의 요새’는 전편의 스케치를 따랐지만 360도 촬영이 가능하도록 건설됐다. 옥상에 지구본이 올라앉은 <데일리 플래닛> 사옥의 외관은 실제 지하철역 입구를 이용해 꾸몄지만, 건물 내부는 청소용구 창고까지 꼼꼼히 지어진 세트다. 양식은 아르데코풍이지만 평면 TV나 현대적 편집 시스템을 도입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엑스맨2>에 등장한 백악관 오발 오피스나 <데일리 플래닛>의 편집장 사무실에 있는 고위인사의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일을 즐긴다고 한다.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브라이언 싱어 어워드’ 상장 액자는 미술팀의 ‘농담’이다. 요동치는 여객기 실내와 렉스 루더의 요트까지 포함하면 <수퍼맨 리턴즈>의 세트는 80여개다.

숫자 Number

60벌의 의상, 시간당 60만달러의 손해, 4억달러로 추정된 비용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에 따르면, 워너의 한 간부는 <수퍼맨 리턴즈>의 카메라가 돌아가기도 전에 이미 이 프로젝트가 5천만달러를 잡아먹었다고 밝혔다. 이 대부분은 결국 버려진 시나리오의 개발 작업에 투자됐는데, 출연이 무산된 니콜라스 케이지도 1100만달러, 팀 버튼도 약 270만달러의 대가를 받았다고 한다. 호주 촬영에 이견을 보인 McG는 달리 보수를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DC 코믹스는 새 슈퍼맨 영화 개봉에 맞춰 4권의 새로운 만화를 출간할 예정이다. 브랜드 라우스가 입은 슈퍼맨 슈트는 60벌. 크리스토퍼 리브에게 제공된 스판덱스 의상은 여벌까지 8벌이었다. 신형 제네시스 카메라 고장으로 빚어진 촬영 지체는 시간당 60만달러는 잡아먹었다고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불평했다. 이래저래 <수퍼맨 리턴즈>와 관련되어 들어간 돈은 로케이션 유치를 위한 호주의 세금 감면 정책에도 불구하고 4억달러에 달하지 않겠냐는 것이 업계의 소문이라고 <선데이 타임스>는 전했다. 과거 모든 슈퍼맨 관련 영화가 벌어들인 미국 수입을 합치면 약 3억3천만달러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 인터뷰

“엑스맨에 대한 관심도 모두 슈퍼맨 때문이었다”

LA=황수진/ 자유기고가

-<엑스맨2> 이후 항간의 예상과 달리 <수퍼맨 리턴즈>로 옮겨갔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몸이 두개라서 프로젝트 둘 다를 할 수 있었다면 좋아겠지만, 일단 워너브러더스에서 <수퍼맨 리턴즈>를 내 방식대로 만들 수 있는 자유를 주었기 때문에 <수퍼맨 리턴즈>를 선택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슈퍼맨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슈퍼히어로물 장르에 빠지게 된 것도 다 슈퍼맨 때문이었다. 슈퍼맨 때문에 나중에 엑스맨도 접하게 되었으니까.

-현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만화에나 나올 듯한 악당과 대결하는 슈퍼맨의 설정이 위험한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나.
=슈퍼맨은 2차대전 중에 해외 전선에 투입되는 군대를 위한 엔터테인먼트로서의 프로파간다적인 역할을 통해 그 인기가 급상승했다. 그렇지만 슈퍼맨이 유럽으로 가서 나치를 무찌른다거나, 히틀러를 혼내준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현실 속의 문제는 현실 영웅의 몫이었으니까. 슈퍼맨은 철저히 판타지 속에서 판타지 속의 악당을 무찌름으로써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그가 악당을 무찌르는 방식과 태도를 통해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한다. 2006년의 슈퍼맨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라크로 날아가진 않는다.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슈퍼맨을 게이로 바라보고 싶어하는 시각이 팽배하고, 가톨릭 커뮤니티에서는 슈퍼맨 속에서 예수의 모습을 찾고자 한다. 이런 각자의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슈퍼맨은 최고의 슈퍼히어로다. 당연히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슈퍼맨에게 투사할 수밖에 없다. 사실 슈퍼맨에게서 유대-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78년 오리지널 <슈퍼맨>은 성경의 모세 이야기가 그 원형이었으니까. 그리고 몸에 쫙 달라붙는 타이츠를 입는 캐릭터는…. (웃음) 나는 캐릭터에 내재된 전통과 새롭게 선보이는 이야기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데 특별히 신경을 썼다. 캐릭터는 변화한다기보다 서서히 진화한다는 쪽이 더 정확하다. 슈퍼맨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은 초창기 슈퍼맨에게는 없었다. 그는 초고층 빌딩 사이를 뛰어넘으면서 활동했다. 중요한 것은, 슈퍼맨이 가진 여러 요소들 중에서 지금의 나에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을 잘 잡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슈퍼맨처럼 입양된, 외동아들이다. 게다가 그와 같은 푸른 눈이다. (웃음) 너무나 좋은 부모님 밑에서 부족함없이 사랑받으면서 자랐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뿌리에 대한 비밀스러운 환상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따라 78년 <슈퍼맨>을 극장에서 본 순간, 슈퍼맨은 내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슈퍼맨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2006년에 1978년작의 속편을 만드는 것에 대해 부담감은 없었나.
=그래서 현대적인 이슈들도 함께 다루면서 그 미묘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또한 너무 오래전이라서 원작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졌다 하더라도, 귀에 익숙한 슈퍼맨 음악과 같은 외적 장치들을 통해 어린 시절 보았던 슈퍼맨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려고 했다 .

-전세계 팬들의 뇌리에 영원한 슈퍼맨으로 남아 있는 크리스토퍼 리브와 만난 적이 있는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본 적은 없지만 <유주얼 서스펙트>로 칸영화제에 홍보차 들렀을 때 호텔에서 테니스를 치는 그와 잠시 지나친 적은 있다. 그때가 95년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뉴욕에 돌아왔을 때, 그가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말 충격이 컸다. 그렇게 운동신경이 뛰어난 사람이 이제 걸을 수 없다니 말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뉴저지에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던 어머니가 인터넷을 통해 그의 어머니 바버라 존슨과 교류하게 되었던 것이다. 정말 대단한 분이다. 크리스토퍼 리브는 사고 이후 어머니와 함께 사회활동을 계속 해왔던 걸로 알고 있다. 사고 이전이나 이후 크리스토퍼 리브의 변함없는 모범적인 삶은 경탄할 만하다. LA= 황수진/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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