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얘기가 아니다, 보호의 모티브가 중요하다”
-이미 여러 매체에서 <괴물>에 대한 극찬을 내보내고 있다.
=인터넷으로 좀 봤다. 아, 이럴 때 빨리 개봉을 해야 하는데. (웃음) 왜 개봉을 안 하는 거야. 이런저런 결점들이 드러나기 전에 빨리 개봉하고 끝났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어떤 결점이 있다는 건지 알려줄 수는 없나.
=비밀이다. (웃음) 나만 아는 결점들이 수두룩 빽빽하다.
-시사회 끝나고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택시를 타고 강변북로를 달리는데, 마침 비도 오고, 정말이지 한강이 낯설어 보이더라.
=그랬다니 다행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가 개봉하고 인기를 끌면서 일본에선 라퓨타 신드롬이란 게 생겼다더라. 직장인들이 점심시간마다 뭉게구름 안에 성이 실제로 있기라도 한 것처럼 오랫동안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는 거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사람들이 <괴물>을 보고 한강 둔치에서 괴물을 찾아 헤맨다거나 그러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실제 장소를 보고 영화를 구상한 건데, 사람들은 영화를 본 뒤 역순으로 영화를 떠올리며 그 장소에서 그런 상상을 하는. 피터 잭슨이 자기네 나라를 중간계라고 뻔뻔스럽게 찍듯이, 우리가 만날 보는 한강을 그런 모험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도 재밌었다.
-칸 버전과 국내 개봉 버전은 어떻게 다른가.
=편집은 그대로 놔둔 채, 색보정을 계속했다. 사운드 이펙트도 수정했고, 음악은 교체되거나 추가된 게 있다.
-후반작업의 결과에 대해서는 만족하나.
=일부 허접하고 썰렁한 장면도 있지만, 심지어 <킹콩>처럼 압도적인 비주얼 이펙트를 자랑하는 영화도 한 장면씩 뜯어보면 썰렁한 장면이 있다. 할리우드영화에 비해 손색없는 CG도 있고, 80% 이상은 만족스럽다. 전체적으로는 이런 예산으로 이렇게 했다는 것에 만족한다.
-CG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공들인 장면을 꼽자면.
=할리우드에서 흔히 ‘머니샷’이란 말을 쓰더라. 비주얼 이펙트를 화려하게 구사해야 하는 장면을 말하는데, 이를테면 이 영화에서는 괴물이 동작대교를 수직으로 타고 올라가서 마치 평양 서커스단처럼 곡예를 하면서 이동하는 장면. 남일과 희봉이 괴물을 쫓아가면서 괴물의 현란한 움직임이 포함된 롱테이크인데, 할리우드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은 별로 없었다. 오퍼니지 관계자들도 그 장면의 애니매틱스(동영상 콘티)를 보면서 정말 잘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일종의 도전이라고 좋아했다. 그리고 은신처의 클라이맥스에서 괴물이 기묘한 모션으로 다가오는 장면도 있다. 수십번 이상을 수정했는데, 심지어 미국 사람들 앞에서 내가 직접 괴물 연기를 하기까지 했다. (웃음)
-워낙 속을 썩인 터라, 이제는 괴물을 보면 반갑기도 하고 원수 같기도 하고, 그럴 것 같다.
=아마존 같은 데서 실제로 괴물을 포획해서 영화를 찍는 상황을 꿈으로 꾼 적이 있다. 괴물이 계속 말을 안 듣고, 촬영을 안 할 때면 얌전하다가도 촬영만 들어가면 난동을 부리는 거다. 그래서 “아, 왜 쟤는 통제가 안 되냐, <플란다스의 개> 때 강아지도 저렇지도 않았다”, 이러다가 깬 적이 있다. (웃음) 원래는 DVD에 그런 장면도 넣으려고 했었다. 이를테면 (송)강호 형이 피곤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쟤가 원래 말을 잘 듣는데 오늘 날씨가 너무 더워서 진행이 더뎌졌네”라고 말하면, 그 뒤에는 괴물이 난리치고 조련사가 달래면서 다랑어 던져주는 게 보이는 식으로. (웃음) 돈이 모자라서 포기했다.
-영화 속에서 괴물이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잡아먹는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어떤 사람은 죽이기만하고, 어떤 사람은 죽이지 않고 은신처에 데려가고.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지능이 발달한 괴물이라서 감정적으로 히스테릭하게 반응할 때가 있다. 나쁜 짓 할 때만 눈을 빛내는 악동이랄까. 절대적인 나이는 6살이지만 인간의 나이로 환산하면 하이틴 정도라고 생각했다. 괴물의 몸이 기형이다 보니 항상 고통스러워한다는 설정도 있다. 사람도 항상 어디가 아프다 보면 성격이 나빠지고 신경질적이 되는 것처럼 괴물도 상시적인 통증에 시달리다 더욱 포악해진 거다.
-그 밖에 괴물의 생태에 대해서, 영화에선 확실하게 설명이 안 된다.
=보통 이런 영화에는 과학자가 나와서 작정을 하고 설명을 해주곤 하는데, 이처럼 하자 많은 가족들로 영화를 끌어가다 보니 과학자가 나올 수가 없었다. 나중에 DVD에는 오디오 트랙 하나를 할애해서 우리가 설정했던 괴물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기회를 가질까 한다.
-장르적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색다른 괴물영화를 만들려 했던 흔적이 엿보인다. 개인적으로 가장 신경을 썼던 설정이랄까,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표면적으로는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웠지만, 자세히 보면 가족 얘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누가 누구를 보호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가족들이 애타게 구하려드는 현서는, 비좁은 하수구 은신처에서 자기보다 연약한 애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처음엔 전혀 인연이 없던 사람들이 그렇게 보호하고 보호받는 관계를 맺으면서 쭉 연결고리를 갖는다. 일종의 선(善)순환 고리. 그 반대편에는 독극물에서 괴물, 바이러스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가 있다. 그런 선순환 고리가 가족보다 큰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괴물영화에서 중요한 건 괴물에게 사람이 어떻게 잡아먹히느냐,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가 괴물을 어떻게 죽이느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보호의 모티브, 그리고 먹는 장면이 반복된다. 한국어로 거둬먹인다는 게 결국 영어로 feed 아닌가.
-괴물로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 정도다. 서스펜스, 혹은 서프라이즈. <괴물>은 둘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
=둘 다이기도 하다. 시사회 때는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스크린이 아니라 관객을 보고 있었다. “자, 5초 뒤면 놀랄 텐데” 생각하면 사람들이 “으악!” 하면서 놀라더라. (웃음) 굉장히 말초적이고 관습적인 서프라이즈지만, 즐겁게 찍었다. 내가 더 좋아하는 건 서스펜스다. 숨통을 죄어오는 긴장감. 그건 주로 은신처에서 드러난다. 좁은 공간에 가장 연약한 아이들과 가장 흉측한 괴물이 함께 있고, 그 은신처 안에는 더 작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서 오밀조밀한 사태들이 벌어진다. 그런 장면을 구상하면서 영화적인 재미를 느꼈다.
-적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한곳에 뭉쳐 있어야 영화적으로 더 힘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이 영화에서는 클라이맥스에 인물들이 모두 흩어진다.
=시나리오를 썼을 때도 그런 면이 좋다는 사람과 이상하다는 사람, 두 부류로 나뉘었다. 보통은 흩어져서 소개됐던 인물들도 클라이맥스에서는 모이게 마련 아닌가. 이 영화처럼 릴레이를 하는 식으로 흩어진 인물을 좇아가는 방식이 신선하게 보일 수도 있고, 칸에서도 그런 점 때문에 반응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게 가능했던 건 현서를 구출해야 한다는 강력하고 구체적인 미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인물들이 모두 흩어지고 각자 시험에 드는 막막한 느낌, 특히 그들이 흩어진 직후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처음으로 한강에서 멀어지면서 갑자기 시내 한복판이 나오는데, 남일이 마치 도시에 숨어든 수배자처럼 등장한다. 그가 마스크를 쓰고 도시의 뒷골목을 걸으면, 완전히 달라진 세팅과 분위기가 펼쳐지면서 그간의 사건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역시 결국은 현서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바통이 남일에서 남주에게 넘겨지면서 흩어졌던 가족이 모두 한 장소로 수렴되는. 거기서 리듬을 놓치지만 않으면 충분히 이런 내러티브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가족 각각의 이야기는 그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는 공간에서 펼쳐진다. 남일이 돌아다니는 골목 등의 공간은 왠지 80년대나 90년대 초의 느낌이다.
=흩어져서 제일 득을 본 게 남일인데, 유일하게 여유공간을 가진 인물이다. (웃음) 시나리오를 쓸 때는 과거로의 여행 같은 느낌이었다. 80년대 말이나 전대협이 맹활약하던 시기랄까. 남일이 바꿔 입는 옷 역시 90년대 초 복학생 패션이다. 사실 남일은 <괴물>에서 유일하게 실제 모델이 있는 캐릭터다. 대학 동기 중에 불평불만 많은 투덜이 스머프 같은 친구가 있었다.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백수가 아니라 시내 모 유명 백화점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는 점 정도.
-아무래도 영화 속 정치적 함의를 짚지 않을 수 없다. 운동권이었던 남일의 과거, 막판의 거대한 시위대가 중요하게 등장하고, 무엇보다도 미국이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맥팔랜드의 독극물 한강 방류사건을 비롯해서 실제로 미국이 저질렀던 사건을 노골적으로 환기시키는 것도 있고.
=사실 단순한 거다. 누구든 한강에서 괴물이 나오는 영화를 구상한 사람이라면, 맥팔랜드 사건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나. 환경단체에서 들으면 펄쩍 뛸 일이지만, 나는 신문을 보면서 바로 시나리오에 대입할 수 있겠다며 좋아할 정도였다. <고질라> 같은 영화에도 히로시마 원폭 투하가 원인으로 제공되지 않나. 그런 사건들은 역사적인 사건이면서 동시에 장르의 강력한 출발점이 된다. 그 밖에도 괴물에게 있는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한 화학약품의 이름인 에이전트 옐로우는 고엽제를 말하는 에이전트 오렌지에서 따온 말이고, 괴물로 인한 바이러스가 없다는 영화 속 미군의 대사, ‘노 바이러스’는 누구나 짐작하듯 이라크전 이후, 살상무기가 사실은 없었다는 미국의 발표를 연상시킨다. 그런 것들은 이미 상식적으로 알려진 것들이고, 그게 시나리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뿐이다. 잔돈을 뜯어가는 공무원, 가진 것 없는 애들의 진을 빼먹는 흥신소 애들, 이상한 캐릭터의 경찰 등 여러 풍자의 층이 있고 미국은 그 일부일 뿐이다. 물론 비중이 유난히 큰 건 사실이지만.
-미국에서 파견된 의사로 등장한 배우는 왠지 눈에 익다.
=폴 라자라는 배우인데 <양들의 침묵>에서 조디 포스터가 누에고치를 들고 찾아가는 곤충 전문가 중 한명이다. 딱 한 장면에 나오지만 굉장히 인상적으로 봤는데, <맨츄리안 켄디데이트>에 또 짧게 나오더라. 그걸 보면서 다시 떠올라서 캐스팅했다.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이나 공동체를 흔드는 존재는 바깥에 있는 무언가로 설정된다. 박해일은 도시에서 온 존재고, 괴물은 미국이 만든 존재, 즉 외부자들이다.
=경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외부가 내부가 되고 내부가 외부가 되지 않나? 영화에서도 괴물보다는 그 괴물을 둘러싼 다른 것들이 이 가족을 더 힘들게 한다.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를 있다고 말하는 미국이나 무능력한 정부 등. 사실 그런 것들은 던져진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를 포위하고 있던 것인데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재앙을 통해서 마침내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한국영화 초유의 비주얼 이펙트 영화를 만들었다.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지 않았을까.
=그런 게 어딨나, 온통 고생한 거지. (웃음) 그간의 고충은 책으로는 도저히 정리가 안 되고 말로 설명해야 한다. 그냥 찍어서 보내면 CG를 해주는 게 아니라서, CG를 할 수 있게끔 조건을 갖춰서 찍는 게 어려웠다. 누가 이렇게 3D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면, 붙잡아서 앉혀놓고 모든 걸 설명해주고, 마지막에는 사서 고생하지 말고 멜로드라마 찍으라고 말하고 싶다. (웃음)
-괴로운 점 중 하나는, 괴물이 나오는 장면에서 정해놓은 대로 유동성없이 찍어내야 한다는 것 아니었을까.
=그렇다. 즉흥성이 전혀 발휘될 수 없다. 그런 즉흥적인 설정을 넣으면서 지루함을 달래고, 계획이 없던 걸 얻은 뿌듯함을 얻곤 했는데, <괴물>은 계획을 실현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이런 비주얼 이펙트 영화는 CG뿐 아니라 전반적인 시스템과 스케줄이 체계적이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어려웠다.
-이후 작품은 어떤 게 있나.
=착한 예산, 적은 예산의 영화를 생각하고 있다. 아주 파괴적인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로, 가제는 <마더>. 내년 하반기에 촬영이 들어가는 게 목표다. 그 다음에는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설국열차>. 규모도 있고 비주얼 이펙트도 있는 거라서 <괴물>과 연달아 작업하기 힘든 영화다.
-마지막으로, 흥행을 어떻게 전망하나.
=해외에 미리 판매한 덕분에 지금 얘기되고 있는 할리우드 리메이크건만 잘 성사되면, 그것만으로도 손익분기점은 넘길 수 있을 텐데. 뭐, 할리우드에서 다시 만들면 당연히 다른 얘기가 되겠지. 미시시피강이나 허드슨강에서 괴물이 나오려나?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