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미지의 독립장편영화 세편 [3] - <생산적 활동>
2006-08-15
글 : 정재혁
오점균 감독의 <생산적 활동>

아침드라마의 진부함에 도전하다

섹스할 장소가 없어 이곳저곳을 헤매는 청춘 남녀의 이야기 <생산적 활동>은 일상에 대한 유쾌한 도발 같았다. 여관에 들어갈 돈도 없이 동네 골목과 화장실을 오가는 발걸음. 그 진지함의 아이러니가 섹스라는 행위의 전복성을 부각시켰다. 일상에서 발견한 위트, 일상을 배반하는 유머. 오점균 감독의 단편 <생산적 활동>은 2003년 미쟝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비롯, 각종 영화제에 진출하며 화제를 모은 히트작이다. 가난과 욕망이라는 물질적 조건의 차이를 인간의 성적 욕구로 치환한 작품. 영화를 본 관객은 가볍지 않은 주제를 발랄한 문체로 끌고 가는 감독의 재치에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오점균 감독은 동명의 장편영화를 선보였다. 기혼 여성이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난다는 내용. 주인공들은 나이를 먹었지만, 섹스는 역시 정면에 등장한다. 단편영화의 장편 버전? 주인공들의 10년 뒤 모습? 오점균 감독은 아니라고 답한다.

“마케팅의 실수로 이번 영화가 전작의 장편 버전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중간에 제목을 바꿨지만 영화의 원제는 <바이 바이 로맨스>다. 영화사에서 제의받은 시나리오로 만들었다.” 오점균 감독의 말대로 <생산적 활동>의 장편은 단편과 매우 다르다. 장편에선 일단 섹스를 할 공간이 충분하다. 성공한 사업가의 아내 미유(임서희)는 최소한 30평은 넘어 보이는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고, 여관이 아닌 모텔에 갈 돈도 넉넉하다. 단편에서 내러티브로 기능했던 가난이란 설정이 장편에선 결혼이란 제도로 대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를 풀어가는 방식도 달라진다. 단편이 하나의 설정에서 시작된 상황극이었다면, 장편은 아침연속극을 연상시키는 드라마다. 강압적인 남편 재성(노현복)과 일탈을 꿈꾸는 아내 미유, 우연히 등장하는 한 남자 동휘(이용재), 그리고 이어지는 불륜과 이혼. 진부한 이야기의 흐름이 단편과 명백한 선을 긋는다. “전주영화제 상영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도 영화가 왜 이렇게 진부하냐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진부한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 받은 시나리오는 그야말로 아침드라마였다. 하지만 거기서도 하고 싶은 말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사랑을 억압하는 사회적 제도, 여기로부터 일탈을 꿈꾸는 미유. 그 정도의 자유스러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장편은 단편과 공통점을 갖기도 한다. 인간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 적극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 이에 대해 오점균 감독은 “미에도 권력이 작용하는 것 같다. 이미 전제된 미라는 정의 속에서 추로 간주되는 것들, 우리는 이것들의 맨 모습을 보려하지 않는다. 섹스에 더 적극적인 여자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라고 말한다. 영화가 결말에 이르면 이 같은 메시지는 좀더 명확해진다. 잠시 다퉜던 동휘와 미유는 설원 위에서 함께 대소변을 보고 화해를 한다. 배설로 치유되는 상처. 제도를 비웃는 오줌과 똥. 카메라는 대변을 보는 남자배우의 엉덩이를 로앵글로 잡고, 관객은 섹스보다 더 충격적인 배설신과 마주한다. 오점균 감독의 말을 빌리면, 이는 미적 권력에 대한 노골적인 저항.

미술을 전공하다 뒤늦게 영화판에 뛰어든 오점균 감독은 올해 발표한 영화 <생산적 활동>이 장편 데뷔작이다. “미술은 하나의 주제를 깊이 파고든다. 그래서 점점 혼자 고립되어 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영화는 함께하는 작업이지 않나. 평소 영화를 좋아했지만, 장이모 감독의 <붉은 수수밭>을 여러 번 보면서 감독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사실성이다. “사실적인 영화, 비장함이나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영화, 가볍게 흘러가는 영화가 좋다. 권력으로 뭉쳐진 무언가를 해체시켜버리는 자유로움, 이것이 나에겐 주제다.” <생산적 활동>은 16회 촬영으로 한달 안에 완성된 독립 장편영화다. 1억원의 제작비가 들었고 케이블채널 OCN이 부분 투자했다. “영화사에선 개봉을 못해도 케이블에서 틀자고 하더라. 하지만 난 단관이라도 개봉을 했으면 좋겠다. 단편을 할 땐 못 느꼈지만, 장편을 해보니 좀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지 못한다는 게 많이 아쉽더라.” 그는 현재 철거민과 조폭을 소재로 충무로에서 코믹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상업영화를 찍는다고 나의 어떤 부분을 포기하는 건 아니다. 똑같은 메시지를 대중적인 어법으로 푸는 법을 배우고 싶다. 그것이 생산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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