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발견! <천하장사 마돈나> [2]
2006-08-28
정리 : 이영진
사진 : 오계옥
이해영·이해준 감독 인터뷰

“동구처럼 아버지를 한번 던져봤으면 했다”

-여고생 씨름부라는 소재에서 출발했다.

이해영=2003년 늦봄 아니면 초여름이었을 거다. 이만한 바퀴벌레가 날아다니는 월세방에서 오후 3시쯤에 아침을 먹다가 TV에서 여고생 씨름부 이야길 봤다.

이해준=재밌겠다면서 같이 노가리를 깠는데 여고생보다는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이면 어떨까 싶었고 곧바로 1시간 정도 시놉시스를 썼다. 천하장사라고 대강 이름을 붙여놓고 썼던 시놉시스가 지금 영화의 얼개가 됐다.

-연출에 욕심을 낼 만큼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나.

이해준=좋은 이야기는 무엇보다 한궤로 짜맞춰지는 느낌이 있는데, <천하장사 마돈나>가 그랬다. 전엔 기획을 받거나 누가 쓴 걸 각색해야 해서 그런 경험을 해볼 수도 없었고.

이해영=우리 오리지널 아이템으로 영화화된 건 <안녕! 유에프오> 하나밖에 없다. 나머지는 습작이거나 없어졌으니까. <천하장사 마돈나>는 첫눈에도 뭔가 메이킹의 가능성이 보이는 확실한 이야기였고, 그래서 놓치기 싫었다.

-각색을 의뢰받았다면 결과물이 좀 달랐을 것 같다.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이 씨름대회에 나간다는 상업적인 컨셉에 충실한 시나리오가 되지 않았을까.

이해영=누군가는 아버지와 동구의 이야기가 씨름 이야기의 진행을 위배한다고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영화가 풍부해진다고 봤다. 얇은 청소년 성장영화를 만들고 싶진 않았으니까.

이해준=여자가 되고 싶지 않은 감독 둘이 왜 이런 영화를 만들려고 할까 여러 번 자문했다. 한 아이의 성전환에 관한 드라마가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면서 그런 고민이 해결됐고.

-아버지와 동구의 이야기는 시나리오 초고 때보다 많이 늘어났는데.

이해영=사회적인 소수자들의 이야길 해보자면서 만든 캐릭터 중 탈북자도 있었다. 이발소에서 일하는 난정이라는 인물인데, 동구가 언니라고 부르는. 그때는 정말 소수자들의 퍼레이드 같은 영화였다. 그런데 너무 분위기가 우울하고, 무겁더라. 결국 소수자를 늘어놓지 말고, 직장을 뺏긴 아버지 부분을 늘려서 가족 이야기로 좀더 팽팽하게 만들어보자고 바꿨다.

-킥킥대고 웃을 수 있는 장면 다음에 곧바로 심각한 장면을 가져다 붙였다.

이해준=어떤 관객은 좀더 웃고 싶은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진짜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버지와 동구의 이야기였다. 그것을 좀더 대중적으로 풀려고 씨름이라는 수단을 빌려온 것인데.

이해영=동구가 샅바 매고 우승한다고 여자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버지를 넘어서야만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 이를테면 이 영화의 정점은 씨름대회 우승도 아니고 여자가 돼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아니고, 공터에서 엄마 옷을 입고 립스틱을 바른 동구가 아버지를 집어던지는 판타지 장면이다. 거기까지 영화가 달려가려면 불편한 도움닫기가 필요했다.

-누군가가 감독들의 유년 시절을 묻더라. 아버지와 동구가 맞부딪치는 2번의 판타지 장면에는 상당한 공포와 분노가 묻어 있는데.

이해영=누구나 다 있지 않나. 이런 이야기 아버지가 보면 안 되는데. (웃음) 초등학교 때 자고 있으면 아파트 복도 저 끝에서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아파트 문이 쾅 닫히면 방문을 닫아뒀어도 벽을 타고 술냄새가 전해져오고, 그런 날은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고. 그런 느낌을 구질구질하게 묘사하고 싶지 않아서 전반부는 공포영화 컨벤션을 끌어왔고. 공터에서 동구가 아버지를 뒤집기로 던지는 장면은 관객이 멍하게 바라봤으면, 그러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으면, 동구처럼 저렇게 아버지를 한번 던져봤으면 하는 마음을 갖길 원했다. 스탭들이 촬영 때 아버지가 화면으로 날아온다거나 동구쪽에서 볼 때 아버지가 멀리 날아간다거나 하는 식으로 찍어야 하는 것 아닌가 했는데 그런 느낌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평면적으로 찍었다. 120프레임의 고속촬영을 해서.

-씨름대회에 입장하기 직전에 동구와 아버지는 화해를 한 것인가. 좀 헷갈렸다.

이해영=아버지가 동구에게 말하잖나. 앞으로 안 보겠다고. 연출부들도 시나리오 모니터 때 갑자기 동구와 아버지가 화해하는 게 좀 뜬금없지 않냐, 라고 하던데. 그게 아니다. 헤어지는 거다. 헤어짐만이 서로를 인정하는 방식이다. 보수적인 아버지가 동구를 받아들일 순 없을 것이고, 또 아버지에게 동구의 상황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 또한 잔인하다. 서로가 서로를 완벽하게 존중할 수 있는 건 두 사람이 다신 안 보는 것이고, 그게 가장 해피한 방법이다.

이해준=그 장면을 보면서 설마 아버지와 아들인데 헤어지겠어 하는데, 그건 두 사람 모두 한 핏줄 아닌가 하는 우리의 관념 때문이다. 그런 관념만큼 무서운 폭력이 어딨나.

-동구가 왜 여자가 되고 싶은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추측하면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가.

이해준=그런 위험한 유추는 배제했다. 트랜스젠더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 잘못 알고 있던 게 있었다. 왜 여자가 되고 싶어했을까. 이유가 뭘까. 근데 그게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성이 여자인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항변했다. 혹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구나. 영화에는 여자가 되고 싶다는 것 하나만 있어도 되겠구나 했다. 시사 끝나고 한 관객이 인터넷에 동구가 여자가 되는 걸 모성애의 부재로 끌고 가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는데 안 그래서 좋았다고 쓴 걸 봤는데 만족한다.

이해영=카피에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이라고 쓰여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여자가 되고 싶을 뿐인 소년이다. 프롤로그를 쓰윽 지나가는 한 장면으로 만든 것도 왜 동구가 여자가 되려고 하는지에 관한 이유를 묻거나 설명하려 들까봐 그랬다. 사실 계속 고민한 것 중 하나가 마지막 장면에서 동구가 꼭 수술을 하고 노래를 불러야 하나 하는 거였다. 그런데 트랜스젠더들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가 수술을 받다가 죽더라도 여자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을 수 있다면 단 하루라도 좋다고 했다. 결말은 다른 여지가 없었다.

-실제 트랜스젠더들을 많이 만났나.

이해영=다 쓰고 몇분 만났다. 어마어마한 이야기인데, 그거 듣고 나중에 한줄도 못 쓸까봐. “내가 뭐가 아쉬워서 당신들에게 내 이야길 해주느냐”며 소금을 뿌리신 분도 있었고. (웃음) 만나본 분 중에 영어학원 선생님이 한분 있었는데 그분의 도움이 컸다. 시나리오도 봐주셨고, 나중에 기꺼이 출연도 해주셨는데, 편집하면서 그 장면이 빠졌다. 죄송하다. DVD에는 넣을 거다.

-극중 동구는 누구의 어떤 도움없이 알아서 성장해간다.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백윤식 선생이 맡은 감독 역할을 작게 만든 것도 일부러 의도한 건가.

이해준=뭘 안 하는 역할이다.

이해영=아니, 많은 걸 주는데. 샅바를 매주면서 동구에게 철학을 주고, 마지막에는 화장실에서 행복 이야길 하면서 관객에게 이 영화는 이런 영화야라고 마무리도 해주고. 또 중간에는 간혹 웃겨주고. 사실 시나리오에서의 감독은 좀비 같은 산송장 인물이었는데. 백윤식 선생님의 경우, 너무 젊고 멋있고 활기차다 보니 처음엔 그림이 잘 안 그려졌는데, 그걸 메워주셨다.

-유머를 전하는 방식을 보면 일본 청춘물의 느낌이 있다.

이해영=초난강 때문에 그런가. 일본어 대사도 나오고. (웃음) <으랏차차 스모부>랑 똑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봤는데, 그건 씨름하고 스모하고 똑같다고 말하는 것처럼 무식한 짓이다. 대사나 컷 구성방식이 후련하게 긁어주는 게 아니라 가렵더라도 뒀다가 쓱 넘어가는 얄미운 화법 때문이라면 그렇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벤치마팅한 게 있다면 두 가지인데. 하나는 덩치2의 캐릭터다. 김용훈에게 <이나중 탁구부>의 다나까처럼 해달라고 했고, 또 하나는 후루야 미노루의 작품 중에 내가 좋아하는 <두더지>에서 “너 눈이 짝짝이다∼”라는 대사를 따온 거다.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이해준=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들이 좀 썰렁하고 과장되지 않은 영화들이다. 일본영화가 굳이 아니더라도 그런 취향의 영화들은 있지 않나. 이를테면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나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처럼. 사실 덩치들의 캐릭터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의 밴드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씨름부 덩치들을 비롯해 보조캐릭터를 소모품처럼 사용하지 않는 게 좋았다.

이해영=기타노 다케시처럼 모든 인물에게 애정어린 시선을 주고 싶었다. 추리닝을 목 끝까지 올려 입고 다니는 그의 찌질한 인물들은 언제나 생동감이 넘치지 않나.

이해준=이 장면에서 웃겨야 해, 그래서 이 인물이 필요해, 뭐 이런 식으로 캐릭터를 삽입하지 않았다. 이 인물은 이 장면에서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까, 고민이 달랐다고 본다. 배우들도 그 때문에 더욱 열심이었다. 김용훈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대사 한마디 없지만 리딩할 때마다 나왔고, 덩치들의 경우 이름을 따로 안 불렀더니 나중에 자신들이 직접 성 짓고, 이름 붙이고, 알아서 다 했더라. 우리만 모르게.

-매번 동구 역에 류덕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정말인가.

이해영=그럼 그렇게 이야기해야지. 농담이고. <웰컴 투 동막골>을 보는데, 그 영화가 클로즈업이 많고 고속촬영한 장면도 많잖나. 그런데 거기서 덕환의 얼굴이 딱 동구 같았다. 쌍꺼풀도 없고, 코는 좀 둥그스름하고. 그리고 목소리. ‘어머’ 같은 스테레오 타입화된 감탄사를 쓰지 않더라도 여성을 표현할 수 있는 목소리가 좋았다.

-원래 동구는 키도 크고, 몸무게도 105kg 정도였다.

이해영=덕환보다 주장으로 나오는 이언을 먼저 캐스팅했다. 임필성 감독을 통해 씨름선수 출신 모델이라고 들어서 만나게 됐는데, 나중에 덕환이를 캐스팅하고 나서 고민이 생겼다. 키 차이가 무려 22cm가 나는데 씨름이 가능한가. 그런 난관은 둘이 연습하면서 극복해냈는데, 지금 보면 덕환이가 언이 밑으로 파고들어서 샅바 잡고 바둥거리는 얼굴이 너무 맘에 든다.

이해준=김지혜 작가가 나중에 그러더라. 동구의 큰 키는 여성이 되고 싶은 동구의 콤플렉스였지만, 덕환의 작은 키는 씨름대회에서 우승해야 하는 동구의 콤플렉스가 됐다고. 듣고보니 그렇더라.

-기자시사회 때 무대인사를 하는데 주인공을 한참 못 찾았다. 살을 너무 많이 빼서. 딴 사람 같던데 좀 서운하지 않나.

이해준=당연히 서운하지. 살 빠진 모습 보면서 원래 덕환이가 저런 모습이었구나 싶더라. 옆에서 지켜보진 못했지만 오바이트하면서 살 찌우던 덕환이의 고통이 물리적으로 느껴졌다.

이해영=그런 거 알지만 그래도 덕환이 보면 ‘내 동구 내놓으라’고 그런다. 저 작은 덕환이가 그동안 27kg짜리 동구를 입고 있다가 이제 벗었구나. 무서운 놈이구나.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 박수치는 우리도 무섭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해준=첫 장면에서 마돈나의 실제 뮤직비디오를 쓰고 싶었는데 결국 저작권이 해결되지 않아 못했다.

이해영=씨름장면. 딱 1회차만 더 찍었어도 좋았을걸 한다. 스스로 굉장히 꼼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러 번 보니까 저질러놓은 실수도 너무 많더라. 동구와 엄마가 버스 안에서 대화하는 장면에서 버스 안 볼록거울에 의상팀이 쭈그리고 졸고 있는 모습이 보여서 나중에 부랴부랴 CG로 지우기도 했고. (웃음) 좋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아니라 나쁘지 않은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들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들인가 새삼 느꼈다.

-결별설도 나돈다.

이해영=결별하라면 해야지, 뭐. (웃음) 역할 분담을 전혀 안 해서 의견 차이가 좀 있긴 했다. 배우에게 내가 말하고 있으면 해준이가 툭 자르고 들어와서 그게 아니라고 하거나 그 반대 경우도 많았다. 하루에 평균 30컷씩 찍어야 하는 상황이라 나중엔 거리가 있어도 싸울 시간이 없어서 넘어가게 되더라. (웃음)

이해준=싸움이야 시나리오 작업할 때도 많이 했으니까 당황하진 않았는데, 연출부가 힘들었을 거다. 두 감독에게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었던 연출부들이 눈치보면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걸 모니터로 많이 봤으니까.

이해영=둘이어서 좋은 적도 있다. 씨름대회 마지막 4회차 찍을 때는 하루에 100컷을 찍어야 해서 둘이 나눠 찍었다. 둘 다 남기남 감독님 속도로. 중간에 만나서, 다 찍었냐, 뭐 찍었냐, 그렇게만 묻고.

이해준=같이 일하는 것보다 같이 사는 게 좀 불편하긴 하다. 둘 다 늦잠을 잔 적이 있다. 8시까지 인천에 가야 하는데 봤더니 7시15분이더라. 둘 다 차도 없는 뚜벅이인데다, 에라 모르겠다, 샤워나 하고 가자, 그랬는데 제작부에서 전화가 왔다. 촬영버스를 보냈다면서. 나중에 둘이 올라타는데 혼자면 뭐 그럴 수도 있지 해주겠지만, 둘이다 보니까 ‘아 저것들이∼’ 하는 눈총 분위기였다.

이해영=나도 그렇다. 돈 벌면 동거는 그만하고 빨리 독립해야지, 뭐 그런 생각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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