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발견! <천하장사 마돈나> [3]
2006-08-28
글 : 이영진
이해영·이해준 감독의 나의 첫 연출 원정기

2005.5.19/ 초고를 읽은 차승재 대표가 말했다. “돈 냄새가 나는 시나리오가 있고 기분이 좋아지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이 작품은 후자다. 기분 좋게, 한번 잘해보자. 노력하면 200만 못하겠냐.” 이런 말을 해주는 제작자라니, 감동이다. 그의 구두에 불광이라도 내주고 싶다.(이해영)

2005.8.11/ 역시 관건은 동구였다. 키 180cm 이상의 거대한 물살의 소유자. 우락부락한 외모이면서 어딘지 귀여움을 살짝 감추고 있을 것.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섬세한 목소리. 게다가 춤과 노래도 수준급인, 고등학생을 연기할 수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나이 어린 배우. 음, 첫 데뷔는 아무래도 애니메이션으로 해야 하는 게 아닐까….(이해준)

2005.10.4/ 아무 계획없이 보러간 <웰컴 투 동막골>에서 류덕환을 발견하다. 무엇보다 이 친구의 무표정이 좋다. 그저 가만히 있는 얼굴에, 이야기가 있다. 그 속에, ‘진짜’가 있다. 간단한 오디션을 치르고 나니 더욱 확신이 간다.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하나를 말하면 열개를 준비해오는 배우다. 감독들은 틀림없이 이 배우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이해영) 180cm 이상의 키도, 우락부락한 외모도, 넉넉한 살집도 없었지만, 목소리 하나만은 끝내줬다. 과장된 여자 연기를 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여성성을 전달할 수 있는 하늘이 내린 섬세한 목소리. 그것 하나에 우린 저당잡혔다.(이해준)

2005.11.3/ 덕환이와 씨름 선수 출신의 모델 이언, 살을 찌우기 위한 합숙을 시작했다. 덕환이는 앞으로 30kg, 언이는 20kg가량을 찌워야 한다. 벽장만한 냉장고에 칼로리가 높다는 먹을거리를, 문 열면 와락 쏟아질 만큼 가득 우겨넣고 돌아왔다. ‘내일 모레까지 냉장고를 모두 비우라’는 미션을 주고. 오해마시라. 전문가의 의학적 조언을 곁들인 ‘합법적인 사육’이었다.(이해영) 살찌우는 과정이란 게 달리 뭐가 있겠는가. 아침에 삼겹살, 점심에 삼겹살, 저녁에 삼겹살, 가끔 오겹살. 삼겹살로 점철된 오욕의 3개월을 넘어 좌우지간 덕환은 해내고 있다. 덕환은 눈물 같은 30kg의 살을 얻었고, 동시에 우리는 부담스러운 300kg의 책임을 얻었다.(이해준)

2005.12.20/ 동구 엄마가 문제다. 스타를 데리고 올 수도, 무난한 캐스팅도 싫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배우 리스트를 100명 정도 뽑은 다음, 가장 꼭대기에 써둔 이상아씨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첫 만남. “뭐야, 난 제목만 보고 내가 마돈나 역할인 줄 알았잖아. 빈정 완전 상했어.” 그녀의 첫마디에 느낌이 확 온다.(이해영)

2006.2.23/ 새해 새벽에도 여전히 간식은 ‘삼겹살’이다. 덕환에게 말했다. “황정민이 그랬잖냐, ‘60여명의 스탭들이 차려놓은 밥상에서 배우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고. 알겠지? 배우는 그저 맛있게 잘 먹기만 하면 되는 거야.” 체중 증량으로, 댄스 연습, 씨름 연습으로 녀석은 이미 ‘천하장사 마돈나’인지도 모르겠다.(이해준)

2006.3.13/ 촬영 첫날. 설상가상, ‘32년 만의’ 꽃샘추위였다. 가공할 만한 칼바람, 심지어 인천엔 때아닌 함박눈까지 쏟아진다. 연안부두를 통째로 쓸고 닦고 말렸다.(이해영) 오후가 되자, 또, 거짓말같이 날이 갠다. 김무령 PD에게 슬쩍 물어본다. “혹시 첫 촬영날 비나 눈 오면 대박이라는 말 없나요? 언뜻 들었는데.” 그녀의 한마디, 싸늘하다. “없어. 그것만 없어.”(이해준)

2006.3.18/ 천막이 전부인 씨름 연습장을 과장하지 않으면서 영화적 공간으로 꾸민다고 수영장을 만들기로 한 것까진 좋았는데. 빗속에서 공사를 강행하느라 스탭들이 셋이나 다쳐 나갔다. 도대체 어쩌자고 그런 아이디어를 냈을까. 고생하는 미술 스탭들 앞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티낼 수도 없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꼿꼿하게 버텨야 한다. 그게 아무렇지 않게 묵묵히 일하는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이해준)

2006.3.24/ 신인감독으로서 이 대배우를 어떻게 핸들링하나. 촬영 첫날. 감독 둘이서 하나같이 코만 질질 흘리며 대소변 못 가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백윤식 선생은 스스로 작품 전체의 균형을 단단히 잡아놓는다. “내가 인생을 좀 살았잖나, 딱 보면 보이거든. 가만히 여기 촬영하는 걸 보니까, 준비도 성실히 한 거 같고, 뭐 괜찮게들 하고 있는 거 같네. 감이 좀 와. 잘들 해봐.” 사석에서의 그 말씀이 고스란히 힘이 된다.(이해영) 백윤식 선생은 거대한 산이었다. 에베레스트라도 넘는 양 비장한 각오로 눈 딱 감고 들러붙어 귀찮게 하길 일주일째. 겨울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야외 화장실 세트. 밤 10시가 넘었는데, 비좁은 변기 안에 꼼짝없이 몇 시간을 앉아 계신 선생님께 벌써 8번째 테이크를 주문하고 있다. “그러니까 ‘삑사리’ 버전을 해달라는 거 아냐?… 한번 가보자고.” 그는 험한 산이 아니라 굽어보고 품어주는 낮고 넓은 산이었다.(이해준)

2006.3.25/ 스케줄에 쫓겨 하루에 수십컷씩 해치워가는 살인적 일정. 찍다 지쳐 쓰러져 조명 세팅을 기다리는 중 모친 신 여사에게서 전화 한통이 걸려온다. 신 여사,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대뜸 이러신다. “배우들 힘든 거 생각하지 말고 계속 찍어. 응? 맘에 들 때까지, 계속 더 찍고 더 찍고 해.” 아아, 어머니!(이해영) 문세윤, 김용훈, 윤원석. 이른바 덩치 3인방. 어서 빨리 보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이들의 옷을 갈기갈기 찢어 벗기고 빨간색 팬티를 입혀 모래 위를 마구 나뒹굴게 하고 싶은 변태스러운 상상에 안달이 났던 3개월.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씨름부를 찾아온 동구를 말없이 바라보는 첫컷을 시작으로 이들의 물오른 반라를 맘껏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단발머리 간호사 속에 숨어 있던 배우의 얼굴, 세윤. 말없이 말을 할 줄 아는, 용훈. 우리 영화의 3할이라 감히 말해주고 싶은, 원석. 세 덩어리가 마치 변신 크로스 합체된 듯 한 덩어리가 되어 펼친 살의 향연. 괴물아, 게 섰거라. 우리 영화엔 괴물이 셋이나 있다! 이들의 촬영이 끝나갈 때쯤 조감독 승용에게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영화의 제목을 <괴물들>로 바꿔볼까?” 그 뒤 3일간 조감독과 약간 서먹서먹했다.(이해준)

2006.5.6/ 내일 새벽이 첫 촬영인데, 오늘 밤 11시에 초난강을 처음 만났다. “제가 그냥 한국말로 해도 문제없으시죠?” 첫마디를 건넸더니 그가 대답한다. “문제, 많아요.” 맙소사. 완벽한 소통을 하기엔 아직 그의 한국어가 서툴다. 캐릭터는 둘째치고, 의상 피팅도 못했다. 그렇다고 잠을 안 재우기엔 너무 스타다. 눈앞이 캄캄하다. 이튿날 첫 촬영. 초장부터 난관이다. 기나긴 한국어 대사에 마임까지 곁들여야 하는 롱테이크. 영화 규모상, 감독 입지상, 일정은 곧 목숨이었고, 조금도 머뭇거릴 수 없었다. 급한 맘에 원하는 뉘앙스의 형용사 열댓개를 줄잡아 열거했다. 이것 참, 내가 들어도 어쩌란 소린지. 일단 가보면 알겠지, 눈 질끈 감고 테스트도 없이 슛을 들어간다. 그런데 현장의 모니터 속에는, 두서없이 내뱉은 형용사 열댓개의 뉘앙스가, 고스란히, 정확하게 구현되어 있다. 어찌된 일일까. 알고 보니 그는 잠을 쪼개가며 배역 연구와 연습을 했다고 한다. 예습하는, 게다가 ‘형용사’를 연기할 줄 아는 ‘해외스타’라니. 브라보다, 초난강.(이해영)

2006.5.15/ 다들 우려했었다. ‘그럼 큐 사인은 누가 해요?’, ‘하나는 인천에서 찍고 하나는 부산에서 찍나?’ 감독이 둘이라는 게, 도대체 어떤 건지 우리조차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하기야 감독을 해본 적 없으니 감독 둘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뭔들 안 그렇겠는가. 그냥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고…. 좋을 땐 오래두고 가까이 사귄 벗이고, 나쁠 땐 세상에 살다살다 이런 개새끼는 내 생전 처음 보는 그런 개새끼이고. 하긴 이제까지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도 늘 그랬다. 달라질 건 딱히 없었다. 우리야 그만큼 인이 박혀서 ‘좋다고 물고 빨다가도 싸우면 진짜 물고…’를 현장에서 반복하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고생은 고스란히 스탭과 배우에게 돌아갔다. 동구와 주장의 감정신을 촬영 중이었다. 방금 연기를 마치고 돌아온 덕환에게 해영이 한마디 한다. “방금 네가 한 연기가 명사라고 친다면 좀더 형용사 같은 연기를 해줘.” 나도 한마디 한다. “야야, 나도 못 알아듣겠다. 그냥 힘 빼고 좀더 편하게 가자.” 해영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아니, 그게 아니라….” 덕환을 버려둔 채 우리끼리 붙고 앉았다. 잠시 보던 덕환이 그제야 한마디 한다. “그냥 제가 알아서 해볼게요.” “어? 어… 그럴래, 그럼?” 잠시 뻘쭘해진 우린 말없이 덕환의 연기를 지켜본다. “오케이! 애가 참 잘하네, 그지?” “다 컸네, 다 컸어.”(이해준)

2006.6.8/ 4일 동안 200컷 넘는 씨름장면을 찍었다. 2대의 카메라로 시작했던 촬영은 결국 스테디캠에 테크노 크레인까지 4대의 카메라로 늘었고, 모니터도 4개로 늘었다. 동구의 최종 결승 촬영엔 4대의 카메라로도 모자라 아예 촬영팀을 둘로 찢었다. 아래서는 내가 카메라 3대로 경기를 찍고, 2층에서는 해준이가 아버지, 종만, 동철 그리고 관중의 반응 숏들을 찍는다. 식사도 건너뛰며 이어진 논스톱 19시간. 모니터 앞에서 숨죽여 각혈하며 도닦은 시간들이었다.(이해영)

2006.6.17/ 인천에서 시작해서 인천으로 다시 왔다. 동구 아버지 김윤석 선배와 마지막 촬영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게 영광이다. 세트 촬영 때 슛 들어가기 전에 소주 한병을 비우는 선배를 보고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만만해?’로 시작한 그의 첫 대사를 듣는 순간.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조금은 나른해진 촬영 중반, 정신을 바짝 들게 하는 그의 살벌한 연기. 사람이 사람에게 이토록 자극을 줄 수 있는가. “나 반드시 복직한다… 내가 이대로 그냥 당할 거 같애?” 으르렁거리는 선배의 대사를 끝으로 3개월 촬영도 막을 내렸다. 여기는 월미도, 새벽 3시. 언제나 춥기만 하던 바닷바람이 처음으로 시원하다.(이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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