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9·11 테러는 할리우드를 어떻게 바꾸어왔나 [1]
2006-09-13
글 : 문석

그것은 세계의 큰 변화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슬람 대 기독교라는 ‘문명의 충돌’,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의 붕괴, 거대한 환상의 현현 등 관점에 따라 해석은 다를지언정 9·11 사태가 향후 세계에 씻을 수 없는 영향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이는 없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2001년 9월11일을 21세기가 진정으로 도래한 시점으로 파악하더라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 망각할 수 없는 새로운 시간대의 시작점에서 우리는 영화에 관심을 기울이려 한다. 그건 9·11을 다루는 두편의 영화- <플라이트 93>(9월8일)과 <월드 트레이드 센터>(10월20일)가 곧 국내에서 개봉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는 세상을 보여주는 거울이면서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강력한 매체 아닌가. 과연 9·11이 일으킨 거대한 진동은 그 뒤 5년 동안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또 그 5년간 영화가 바라본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나.

할리우드는 진정 세계무역센터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에서 벗어났는가. 세기 초의 대사건이 일어난 지 5년 만인 올해, 미국에서 9·11을 정면으로 다루는 최초의 할리우드영화가, 그것도 2편이 약간의 차이를 둔 채 개봉됐다는 사실은 그동안 이 사건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할리우드가 서서히 반응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4월28일 개봉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플라이트 93>(원제 ‘United 93’)은 알려진 대로 펜실베이니아에 추락한 유나이티드 항공기 내부를 세밀한 붓으로 묘사한다. 국회의사당 또는 백악관을 향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비행기는 더 큰 희생을 낳아서는 안 된다는 승객의 용기로 허허벌판에 떨어졌다. <플라이트 93>이 비행기, 항공통제본부, 군 사령부 등 내부공간에 시선을 집중하는 데 비해 8월9일 미국 전역에서 개봉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외부에서 바라본 9·11 테러를 그린다. 실화에 바탕한 이 영화는 두명의 항만 경찰에 초점을 맞춘다. 이 영화는 세계무역센터 안에서 구조작업을 하다 무너져내린 빌딩 더미에 갇힌 두 사람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이들을 구해내는 한 예비군을 번갈아 비추며 평범한 사람들의 영웅주의를 예찬한다.

<플라이트 93>

할리우드의 9·11 프로젝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 개발 중인 소니의 <102분>은 세계무역센터의 빌딩 내부로 시선을 돌린다. AA 11편이 빌딩에 첫 번째 충돌을 일으킨 9월11일 오전 8시46분부터 첫 번째 타워가 무너진 오전 10시28분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그릴 계획이다. 미국의 작가 조너선 사프란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파라마운트와 워너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포레스트 검프> <뮌헨> 등의 시나리오작가 에릭 로스가 각색 중인 이 영화는 9·11 테러로 숨진 아버지의 유품 속 열쇠의 정체를 밝히는 한 소년을 그린다. 소니는 또 9·11 당시 백악관에서 테러 담당관으로 일하던 리처드 A. 클라크의 회고록 <모든 적들에 맞서>의 영화화를 추진 중이다. <크래쉬>의 폴 해기스가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 영화는 9·11 당시 백악관의 혼란과 오류를 지적할 것으로 보인다. TV의 반응은 영화쪽보다 한 걸음 빠르다. 이미 케이블 채널 <A&E>는 올해 1월 <플라이트 93>을 방송해 이 채널 사상 최고인 600만 시청자를 흡수했다. <ABC>는 다가오는 9월10일과 11일 6부작 미니시리즈 <9·11로 가는 길>을 방송한다. 하비 카이틀이 FBI요원으로 출연하는 이 드라마는 9·11 테러와 관련된 이야기를 총체적으로 보여줄 전망이다.

9·11 직후, 할리우드를 장악한 애국주의 물결

9·11 프로젝트를 쏟아낼 채비를 하고 있는 할리우드의 요즘 모습은 5년 전과 비교했을 때 생경하게까지 느껴진다. 테러 당일인 2001년 9월11일, 뉴욕 지역 극장들은 일제히 문을 닫았으며, 며칠 사이 콜롬비아 테러리스트에 대한 복수극 <콜래트럴 데미지>, 휴대용 폭탄이 등장하는 배리 소넨필드의 코미디 <빅 트러블> 등은 개봉 연기를 발표했으며, 뉴욕의 스카이라인이 등장하는 <스파이더 맨>과 <맨 인 블랙2> <타임머신> 등은 촬영지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심지어 로맨틱코미디 <세렌디피티>와 TV시리즈 <섹스&시티>에서 세계무역센터가 등장하는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CG로 들어냈고, <라스트 캐슬>은 뒤집혀 있던 포스터 속 성조기를 바로 세워야 했다.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은 이전, 이후의 에피소드와는 완전히 무관한 테러 관련 에피소드(3시즌 에피소드1)를 단 10일 만에 급조하기도 했다.

9·11 직후 할리우드는 대혼란 속에 빠져든 것처럼 보였다. 무거운 문제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심리 탓인지 극장은 관객으로 넘실거렸으나 ‘과연 할리우드는 이전과 같은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는 <타임>의 칼럼니스트 제임스 포니워직의 이야기와 비슷했다. “9·11 직후에는 대중문화가 좀더 애국적이거나 좀더 향수지향적이거나 또는 자성적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많은 이들은 이 ‘예측’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화염과 연기를 뿜고 있는 세계무역센터의 모습은 “이것은 영화가 아니라 실제상황입니다”라는 리포터들의 거듭된 언급이 없었다면, 십중팔구 훌륭한 CG로 표현된 블록버스터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세계무역센터의 모습은 너무나 현실적이었기에 오히려 지극히 가상적이라는 느낌을 전달하는 역설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슬라보예 지젝에 따르면 “우리는 실제로 제3세계의 공포를 우리의 사회적 현실의 일부가 아닌 그 어떤 것으로, 다시 말해 (TV)스크린에 허깨비 같은 출현으로 (우리에게) 존재했던 그 어떤 것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9월11일 벌어진 일은 이런 환상적인 스크린상의 출현이 우리의 현실로 들어온 것이다.” 과연 어떤 영화가 이 강력한 의미망을 갖고 있는 이미지와 대항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할리우드로 하여금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영화에서 본 게 아니라면 누구도 그런 잔학한 행위를 상상하거나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우리 할리우드 영화인들이 이런 테러를 가능케 할 만한 분위기를 조장하고 그들에게 노하우를 가르친 셈이라고 믿고 있다”고 ‘자기반성’한 로버트 알트먼의 이야기처럼, 9·11 테러의 모습은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아랍풍 복제품처럼 보였다. 곧바로 할리우드는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겠냐’며 워싱턴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2001년 10월 중순부터 12월까지 칼 로브 백악관 보좌관을 비롯한 정계 인사들과 잭 발렌티 미국영화협회(MPAA) 회장 등 할리우드의 고위층은 일련의 회합을 가졌다. 사소한 말실수에도 ‘매국노’, ‘반미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을 수 있었던 당시의 살벌한 분위기는 ‘할리우드가 결국 워싱턴의 뜻을 고분고분 따를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를 실어줬다. 이런 전망대로라면 스크린에 복귀한 람보와 코만도가 노구를 질질 이끌면서 아랍을 향해 M-60 기관총을 치켜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블랙 호크 다운>
<우주전쟁>

그리고 과연! 2002년의 박스오피스는 이 비관적인 전망을 현실화하는 듯했다. <블랙 호크 다운> <위 워 솔저스> <썸 오브 올 피어스> <콜래트럴 데미지>, 그리고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까지 등장해 “학살극의 전성기”(짐 호버먼)를 구가했다. 호버먼은 “80년대 후반에 들이닥친 베트남전 영화의 열풍 이후 전쟁영화가 이렇게까지 대량으로 양산되고 또 수지맞은 적은 없었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이들 영화가 기획된 것은 9·11 훨씬 이전이었지만, 미국 정부와 군이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2003년 3월 ‘악의 축’ 이라크를 상대로 한 전쟁이 시작되면서 애국주의 물결은 할리우드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9·11의 징후적 기운을 반영한 스필버그 영화들

그러나 9·11로 짓눌렸던 사회 분위기가 서서히 풀려나면서 2003년 이후 할리우드는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애국적이지도 않고, 반성적이지도 않은 오락영화는 다시 폭력과 테러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9·11의 어둠을 모두 걷어낼 수는 없었다. <25시>(2002)는 세계무역센터의 테러 현장을 영화 안에 집어넣은 첫 영화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제작 도중 9·11을 맞이했고, 곧바로 시나리오를 수정해 극중 두 남자가 대화하는 장면 뒤로 구조작업이 한창인 ‘그라운드 제로’를 롱테이크로 담았다. 이후 <화씨 9/11>을 제외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9·11의 징후를 담고 있는 영화들이 쏟아져나왔다. 거대한 음모이론 속에 이라크 전쟁을 끌어들이는 <맨츄리안 켄디데이트>, 9·11 사태의 미국적 버전인 인종차별을 다룬 <크래쉬>, 이슬람 세계를 향한 십자군 원정기 <킹덤 오브 헤븐>, 현재의 정치지형 속에서 가해자의 반성을 담고 있는 듯한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 9·11 사태의 또 다른 본질인 석유문제를 다룬 <시리아나>, 무기거래의 정치학을 다루는 <로드 오브 워>, 9·11의 이미지와 뉘앙스를 곳곳에 품고 있는 <인사이드 맨>, 철권통치와 테러리즘을 다루는 <브이 포 벤데타> 등이 그들에 속한다.

9·11을 영화 안에 징후적 기운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흥미로운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다. 그가 9·11 이후 가장 먼저 내놓은 영화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였다. 이 미래의 범죄를 예방하는 예지자와 수사관 이야기는 “발생할 수 있는 테러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며 애국법 등을 만들어 개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던 당시 미국 정부를 꼬집는 듯 보였다. 또 같은 해에 나온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항공테러의 위협이 없던 낭만적인 시대를 묘사한다. 9·11 이후 기획된 스필버그의 첫 영화는 <터미널>(2004)이다. JFK 공항에 갇혀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 이 영화는 타자를 수용하는 미국의 태도를 온건하게 비판한다. 9·11의 흔적을 가장 짙게 담고 있는 영화는 <우주전쟁>(2005)이다. 스필버그 자신이 “9·11 이후의 공포를 보여주려 했다”는 이 영화는 그 파괴적인 이미지와 두려움에 떨며 허둥지둥 도망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포스트 9·11 신드롬을 포착한다. 정치적 입장이 다소 애매했던 <우주전쟁>과 달리 그해 말에 발표된 <뮌헨>은 명백히 ‘반테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부도덕성을 꾸짖는다. 마지막 대목에 출현하는 세계무역센터의 모습은 9·11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그의, 그리고 미국인들의 무의식을 반영하는 듯하다. “9·11 이후 만든 스필버그의 모든 영화에서는 그 트라우마에 대한 답이 읽힌다”는 짐 호버먼의 지적은 타당해 보인다.

9·11로 피해를 입은 영화들

마케팅 중단부터 무기한 개봉연기까지

급작스레 일어난 9·11 테러는 일부 영화에도 테러에 버금가는 상처를 입혔다. <콜래트럴 데미지> <빅 트러블> <배드 컴퍼니>처럼 9·11 사태로 개봉을 연기했던 영화들이 피해를 본 건 당연한 일. 한창 진행 중이던 마케팅이 중단되면서 김이 샜기 때문이다. 또 세계무역센터가 배경이었던 <스파이더 맨>과 <맨 인 블랙2>는 부랴부랴 다시 촬영을 해야 했다. <폰 부스>는, 애초 2001년 가을 개봉이 잡혔으나 9·11 사태로 한 차례 연기했다가 주연배우 콜린 파렐이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로 스타로 부상하자 2002년 11월로 개봉일을 잡았다. 잘되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던 상황, 하지만 그해 10월 워싱턴, 메릴랜드 등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난 총기 테러사건으로 개봉은 또다시 연기돼 결국 2003년 3월에야 미국에서 선보일 수 있었다. 필립 노이스 감독의 <콰이어트 아메리칸>도 피해자다. 이 영화는 2001년 말 개봉을 계획하면서 2001년 9월10일 편집본 시사를 가졌고, 주연인 마이클 케인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감’이라는 칭찬을 들었지만 바로 다음날 일어난 테러 때문에 개봉은 무기한 연기됐다. 50년대 베트남을 배경으로 해 두 남자와 한 여성의 삼각관계를 그리는 이 영화에는 음모를 꾸미는 CIA요원이 삼각관계의 한축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2001년 토론토영화제에 출품됐던 <버팔로 솔저스>도 운이 나쁜 편이다. 독일 주둔 미군의 온갖 비리와 악행을 그린 이 영화는 첫 상영 이후 호평을 받았지만, 이어진 테러로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더욱 불운했던 것은 미라맥스다. 배급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미라맥스가 이 영화를 구매하기로 계약한 날이 9월10일이었기 때문이다. 1944년 폴란드의 한 수용소에서 나치에 협력한 유대인들을 그린 <그레이 존>은 9월11일 토론토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테러 사태로 주최쪽이 당일 행사를 모두 취소하는 바람에 이 영화는 이틀 뒤에야 상영됐고, “사람들이 부담스러운 주제를 거부하는 시기” 탓에 큰 반응을 몰지도 못했다. 모든 일에는 반대편이 있는 법. 9·11이 결과적으로 도움을 준 영화도 있다. 보스니아 전장 한복판으로 추락한 비행사의 이야기 <에너미 라인스>는 2002년 1월 개봉예정이었으나 2001년 11월로 긴급 ‘소집’됐으며,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랙 호크 다운>도 2002년 3월 개봉될 계획이었지만 2001년 12월 부분 개봉을 단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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