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6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1]
2006-09-22
글 : 박혜명
사진 : 이혜정
취재지원 : 김은정 (로마 통신원)

제63회 베니스국제영화제가 지난 9월9일 폐막했다. 올해의 베니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깜짝 상영작’으로 영화제 기간 중 뒤늦게 공개된 경쟁작 <스틸 라이프>의 황금사자상 수상,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미국영화 <할리우드랜드>의 벤 애플렉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사실, ‘은사자발견상’이라는 없던 상을 급조하여 이탈리아영화 <황금문>에 트로피를 안긴 것. 이런 것들은 하나의 이벤트로서 베니스영화제를 흥미롭게 만든 부분이다. 전세계의 동시대 영화들을 아우르는 시사회장으로서는 브라이언 드 팔마와 올리버 스톤, 스티븐 프리어즈와 알폰소 쿠아론, 차이밍량과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오시이 마모루와 대런 애로노프스키를 모두 아울렀다는 점에서 당분간 기억될 만한 영화제다.

흥미로웠던 11일간의 영화축제를 결산하며, 우선 지아장커의 황금사자상 수상작 <스틸 라이프>와 평생공로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린치의 3시간짜리 판타지극 <인랜드 엠파이어>를 자세히 소개한다. 올해 베니스가 부른 거장들의 놀라운 성취 또는 정체된 행보를 정리하면서, 별들의 전쟁 속에 발견한 보석 같은 신예들의 작품 또한 일별했다. 폐막날까지도 취재 경쟁이 뜨거웠던 레드 카펫의 풍경을 마지막에 덧붙였다. 어쨌거나 영화제는 막을 내렸다. 또 다른 축제가 시작될 날까지 목마른 기다림도 다시 시작됐다.

경쟁부문(베네치아63)

황금사자상(작품상) <스틸 라이프>(지아장커, 중국)
은사자상(감독상) <공공장소에서의 사적인 두려움>(알랭 레네, 프랑스)
은사자발견상(특별상) <황금문>(에마누엘레 크리알레즈, 이탈리아)
심사위원 특별상(심사위원 대상) <다라트>(마하마트 살레 하룬, 프랑스·차드)
남우주연상 벤 애플렉(<할리우드랜드>, 미국)
여우주연상 헬렌 미렌(<더 퀸>, 영국)
신인연기상 이실드 르 베스코(<언터처블>, 프랑스)
기술공헌상 에마누엘 루베츠키(<칠드런 오브 맨> 촬영, 미국)
각본상 피터 모건(<더 퀸>, 영국)
특별사자상 장 마리 스트라웁, 다니엘 위예(<그들의 이런 만남들>, 이탈리아)
평생공로상 데이비드 린치

오리존티 부문

오리존티상 <말 등 위의 법정>(리우지에, 중국)
오리존티 다큐멘터리상 <잎새들이 부서졌을 때: 4막의 레퀴엠>(스파이크 리, 미국)

오페라프리마

미래의 사자상(데뷔작품상) <카닥>(피터 브로센스, 제시카 우드워스, 몽골·미국)

“깜짝 상영작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 <코리에레 델 라 세라>는 제63회 베니스국제영화제를 결산하며 이 같은 헤드라인을 뽑았다. 깜짝 상영작으로 영화제 중반에 급히 경쟁부문에 합류한 <스틸 라이프>의 황금사자상 수상은 이미 많은 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올해 베니스의 가장 큰 이변으로 기록됐다. 강력한 황금사자상 후보로 점쳐졌던 <공공장소에서의 사적인 두려움>의 알랭 레네는 감독상인 은사자상을 수상한 데 그쳤다.

<황금문>과 4:3 박빙의 승부

사실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황금사자상을 놓고 벌어진 최종 경합의 라이벌은, 알랭 레네의 <공공장소에서의…>가 아니라 이탈리아 감독 에마누엘레 크리알레즈의 <황금문>이다. 이탈리아의 또 다른 중앙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는 경쟁부문 심사위원 미켈레 플라치도(이탈리아 감독 겸 제작자)의 말을 고스란히 인용해 황금사자상 심사 당시의 정황을 전하고 있다. “박찬욱, 비가스 루나 그리고 나는 <황금문>에 표를 던졌다. 나머지 네명(카트린 드뇌브, 카메론 크로, 파울로 브랑코, 술판 카마토바)이 지아장커를 옹호했다. 결국 4 대 3, 한표 차이로 지아장커가 이겼다.” 이 말을 받아 <코리에레 델 라 세라>는 “<황금문>이 황금사자상을 못 가져간 대신 ‘발견’(revelation) 딱지가 붙은 은사자상을 얻어갔다”는 해설을 덧붙였다.

황금사자상 수상자인 지아장커

어떤 면에서는 지아장커의 수상을 충분히 예견할 만한 했다. 지아장커는 2000년 <플랫폼>과 2004년 <세계>에 이어 올해로 세 번째 베니스 경쟁부문에 진출했으며,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마르코 뮐러는 중국학 박사 학위를 가진 중국통이다. 뮐러는 집행위원장 임기 2년째였던 지난해, 중국영화 특별전을 마련한 바 있다. 폐막 직후 중국 현지 언론인 <남도주간>은 지아장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다큐멘터리 <동> 상영 때 마르코 뮐러가 ‘이 영화의 추가분이 있다’라는 말을 했고, 그전에는 ‘경쟁부문에 비밀스러운 작품이 수면으로 올라왔다’ 했다”며 “집행위원장이 당신 영화를 편애하고 있는 듯하다”는 말을 짓궂게 던지기도 했다. 물론 지아장커는 “전체 심사위원단은 매우 독립적이며, 조직위원회 사람들은 심사에 전혀 관여하지 못한다”는 말로 집행위원장의 심사과정 개입 가능성을 부정했다.

카트린 드뇌브에게서 트로피를 받아든 지아장커는 “‘깜짝 상영작’ 초청만으로도 좋았는데 상까지 받을 줄은 몰랐다. 이 상은 내가 지난 10년간 작업한 것에 대한 긍정적 화답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한 존경이다. 지난 10년간 나는 변화하는 중국과 그 변화가 보통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을 줄곧 찍어왔다. 이번 수상은 바로 그런 것에 대한 긍정과 더불어 일종의 존경의 표시라 생각한다”며 이번 황금사자상이 자신의 영화인생 10년과 중국 서민들의 인생 고락을 모두 보상해주는 상징적 의미임을 선언하듯 밝혔다. 중국 언론은 지아장커의 수상에 대해 “중국 6세대 감독군을 대표하는 승리”라는 데 공통된 기쁨을 보였다. <신민완보>는 “지아장커는 6세대 감독의 선봉장”이라며 “이번 수상은 로우예, 왕샤오솨이 등 6세대 감독들이 유럽영화제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후 중국영화를 빛낸 첫 자리이자 6세대 감독들의 전체적 위상을 만들었다는 의의도 있다”고 썼다.

<더 퀸>은 각본상과 여우주연상, 벤 애플렉은 남우주연상

황금사자상의 또 다른 후보로 거론됐던 스티븐 프리어즈의 <더 퀸>은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아갔다. 각본을 쓴 피터 모건은 수상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곧 사임하게 될 토니 블레어에게 감사한다”는 재치를 보였고, 엘리자베스 2세 역으로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던 여배우 헬렌 미렌은 “어떤 자리에서든 자신의 새 영화를 소개한다는 것은 아이가 첫걸음마를 뗄 때처럼 매우 떨리는 일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다. 이 영화의 아버지인 피터 모건, 이 영화의 어머니인 스티븐 프리어즈, 아, 그는 정말로 따뜻한 사람이다. 나는 이 둘이 만든 영화의 DNA에 불과하다”라며 우아하고 겸손할 뿐 아니라 지적이기까지 한 소감을 남겨 다시 한번 환호를 받았다. 남우주연상 수상자 벤 애플렉은 호명과 동시에 폐막식을 지켜보던 기자들로부터 야유를 받아야 했다.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 결과”(카트린 드뇌브)인 헬렌 미렌과 달리 벤 애플렉은 <황금문>의 빈센초 아마토와 <칠드런 오브 맨>의 클라이브 오언 등 다른 쟁쟁한 후보를 제친 결과였다. 벤 애플렉은 <할리우드랜드>의 미국 개봉차 LA에 가 있느라 식에 불참했다. 다행인지도 몰랐다. 아니었으면 애플렉은 기자들이 심사위원장 드뇌브를 향해 “왜 벤 애플렉인가?”라고 묻는 꼴을 봐야 했을지도 모른다. 애플렉의 수상 소감은 관계자를 통해 간단히 전해졌다. “영광이고 고맙다. 이 감사함에 빨리 보답해야 할 텐데.”

평론가들의 지지를 등에 업었던 두편의 아시아영화, 차이밍량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혼자 잠들고 싶지 않아>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상 사타왓>은 어떤 메아리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베니스영화제가 아시아에 할당한 트로피의 나머지는 오리존티 부문에서 또 다른 중국 감독 리우지에의 <말 등 위의 법정>으로 향했다. 알랭 레네와 함께 경쟁부문에서 유럽 예술영화의 명예를 대변했던 장 마리 스트라우브의 <그들의 이런 만남들>은 영화제의 지난 20년간 세 번째 주어지는 특별사자상을 건네받았다.

체면과 실리 모두 챙긴 63번째 행사

평생공로상 수상자 데이비드 린치

제63회 베니스국제영화제는 고르고 화려했던 라인업만큼이나 상을 분배하는 데 있어서도 무척 현명했고, 더 나아가서는 얄미울 만큼 영리하게 입장을 정리했다. 영화제의 미래에 대한 투자인 것처럼 중국영화를 전폭 지지하는 한편, 유럽 거장들에 대한 예우와 할리우드 영화인들의 자존심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지난해 비교적 공평한 상 분배를 하면서도 할리우드산 영화 두편에 황금사자상(리안, <브로크백 마운틴>)과 각본상(조지 클루니, <굿나잇 앤 굿럭>), 남우주연상(데이비드 스트라태언, <굿나잇 앤 굿럭>) 등 주요 부문 트로피 세개를 안겼던 것을 떠올리면 베니스영화제의 균형감각은 날로 세련되어지는 것 같다. 폐막식을 몇 시간 앞두고 9월9일 오전 현지에서는 마르코 뮐러의 사직설이 터지는 해프닝이 있었다. 뮐러는 “로마영화제와 관련한 논란 때문에 이런 루머가 생긴 것 같다. 베니스영화제는 로마영화제보다 훨씬 메리트있는 영화제이고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일”이라는 말로 상황을 가볍게 일축해 불씨를 껐다. 조화를 중시하는 현 집행위원장은 과거 알베르토 바르바라와 모리츠 데 하델른이 3년, 2년씩 바람처럼 머물다 간 자리에서 아직 최선을 다할 의지가 있음을 밝혔다. 그리하여 베니스는 평온하게 내년을 기약할 수 있게 됐다.

“이것 말고 당신이 원한 대답이 또 있나?”

흥분한 기자들과 카드린 드뇌브가 시상식 기자회견장에서 나눈 말 말 말

지아장커의 황금사자상 수상, 벤 애플렉의 남우주연상 수상, <황금문>의 은사자 발견상 등 예외적인 사건들로 인해 폐막 직후 기자회견장 분위기는 말 그대로 공격적이었다. 그 공격은 납득할 만하기도 했고 어이없기도 했다. 각 부문 수상자들이 기자회견 단상을 들고 나는 동안 카트린 드뇌브는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자리를 줄곧 지키며 수상 결과를 일일이 해명해야 했다. 흥분한 기자들과 드뇌브 사이에 오간 말 말 말.

-<황금문>에 은사자 발견상을 주었는데, 이 영화가 에마누엘레 크리알레즈 감독의 데뷔작도 아닐뿐더러, 베니스의 발견이라고 하기엔 감독이 이미 칸영화제에 진출한 경력이 있다.
=사람들은 기억력이 생각보다 아주 짧다. 4년 전에 칸에 갔던 일은 다 잊어버렸을 것이고, 그러므로 ‘발견’이라고 부르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똑같은 퀄리티와 똑같은 수준의 영화를 놓고 어떤 영화에 상을 주고 어떤 영화를 버려야 할지 선택하기가 우리로서는 무척 어려웠다. <황금문>은 매우 훌륭한 영화였고 우린 이 영화를 영화제 수상작에 포함시키고 싶었을 뿐이다.

-남우주연상 후보가 많았다. 어떤 점에서 벤 애플렉이 적절하다고 생각한 건가.
=심사위원단 모두 벤 애플렉이 받는 것에 동의했다. 개인적으로도 긍정적 결과라고 믿는다. (기자와 눈싸움을 하다 여유롭게 웃으며) 이것 말고 당신이 원한 대답이 또 있나?

-<스틸 라이프>는 ‘깜짝 상영작’이었고 그래서 상당수 기자들은 이 영화를 못 봤다. 당신도 이 사실을 알지 않나? 어떻게 이 영화를 황금사자상으로 결정하게 됐나.
=<스틸 라이프>는 심사위원단을 감동시킨 작품이다. 아름다운 촬영, 완성도 높은 스토리, 정치적 메시지에 대한 무게까지 영화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추었다.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만 매우 특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온갖 공격성 질문에 시달리던 카트린 드뇌브는, 기자회견 단상에 오를 다음 수상자들을 기다리며 숨을 돌리던 중 불쑥 이렇게 입을 열었다. “난 폐막식 기자회견이라고 해서 나 말고도 다른 심사위원 멤버들이 다같이 기자회견 단상에 올라올 줄 알았다. 그래서 함께 질문을 받을 줄 알았다. 나 혼자 이 많은 질문들을 감당하게 될 줄은 진짜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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