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제6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결산 [2]
2006-09-22
글 : 박혜명
정리 : 김희정 (베이징 통신원)
사진 : 이혜정
황금사자상 수상작 <스틸 라이프>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보편적 울림

스틸 라이프

<스틸 라이프>의 이야기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다. 양쯔강이 관통하는 중국 펑제(奉節)현 싼샤(三峽)지역을 무대로 삼은 이 영화는 16년 전 집을 나간 아내를 찾는 남자의 여정과 2년간 헤어졌던 남편을 찾으러 가는 여자의 여정을 평행으로 겹쳐놓고 있다. 이야기의 큰 분량은 아내를 찾아나선 남자에 관한 것이다. 남자는 아내가 보낸 엽서 하나를 손에 쥐고 싼샤지역에 들어선다. 마을 주민들에게 엽서에 찍힌 사진을 보여주며 “이곳으로 가는 길을 알려달라”고 부탁해보지만 다른 억양 때문에 의사소통이 쉽지 않을뿐더러 무관심인지 불친절인지 주민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남자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담배를 나눠주면서 환심을 사고 정보를 얻는다. 아내를 겨우 찾아냈는데,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의 부인이 돼 있다. 오빠가 진 빚 때문에 팔려가다시피 한 그녀를 되찾아오기 위해서는 3만위안이 필요하다. 남자는 일당 40위안의 막노동을 그만두고, 비록 목숨은 위험해도 일당을 200위안씩 받을 수 있는 탄광촌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한편, 남편을 찾으러 나선 중년 여성은 저녁마다 화려하게 조명이 들어오는 댐 위에서 한가로이 지내다가 남편과 조우한다. 별다른 해후의 과정없이 조용히 춤을 추던 와중에 여자가 “그만 헤어지자”고 한다. 그들은 그렇게 이별한다.

중국의 현실을 외면한 적 없는 지아장커는 <스틸 라이프>에서 남자와 여자 외에 싼샤지역을 또 하나의 캐릭터로 삼고 있다. 세계 최대규모인 싼샤댐이 자리한 이 지역은 댐 건설과 함께 주변 생태계 및 여러 환경의 변화로 곧 수몰될 운명에 처해 있다. 중국 정부가 건설 계획을 발표할 당시부터 그것이 주변 생태계 및 생활환경에 끼칠 부작용을 우려해 온갖 연구자료가 쏟아져나오게 만들었던 싼샤댐은 양쯔강의 홍수를 10년 주기에서 100년 주기로 완화시키는 대신 200만명의 강제 이주민을 발생시킬 문명의 유산이다. 남자가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엽서 속의 땅은 이미 물밑에 잠겼고 다른 땅들도 곧 사라질 것이다. 주민들은 하나둘씩 짐을 싼다. 누군가는 동쪽으로 갈 것이고, 누군가는 북쪽으로 갈 것이다. 떠날 곳이 딱히 없고 떠날 마음도 없어, 다리 밑 움막 같은 벽돌집에 몸을 숨기는 노인도 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그들의 삶은 그 자리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담배를 나누고, 사탕을 나누고, 술을 나누고, 차를 나누면서 싼샤의 주민들은 각자의 삶을 공동체 안에서 영위해간다. 지아장커는 알 듯 말 듯 희미한 자막을 스크린 구석에 넣어 영화를 네개의 챕터로 나누고 있다. “싼샤지역의 보통 사람들 집에 들어가보면 그들이 얼마나 가진 게 없는지 알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담배, 술, 사탕, 차는 중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의존하는 기본적인 물질들이다.” 이 영화의 중국어 원제는 <싼샤후런>(三峽湖人)이며, 영어 제목인 <스틸 라이프>는 ‘정물’을 의미한다. 싼샤지역 주민들의 일상 속에 흩어진 정물들을 응시하는 <스틸 라이프>는 그래서 인간의 삶의 조건들을 성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내와 남편을 찾으러 나선 외부인들의 시선은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창이 되고, 두 인물이 겪는 상실감은 싼샤지역을 뒤덮을 미래에 대한 예고편이 된다.

2년 전 지아장커는 중국 현대화가 리우샤오동의 개인 작업 여행을 뒤쫓아 다큐멘터리 <동>(東)을 찍고 있었다. 화가가 머문 두곳 가운데 첫 번째 지역이 싼샤였고 지아장커는 그때 얻은 영감으로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곳 사람들은 풍요롭지 못하고 빈곤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삶에 대한 열정을 바꾸진 못했다. 그들은 오히려 생명력이 넘친다. 보통 사람들이 가진 그런 생명력은 나에게 전혀 새로운 감동이었다.” 감독은 이 지역을 스탭들과 함께 여섯 차례 방문하면서 매번 두달씩 머물며 영화를 완성했다. <스틸 라이프>는 완결된 시나리오없이 장면을 찍어가면서 즉흥적으로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유릭와이의 카메라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사실적인 화면 안에서도 시적인 영감을 빚어내고, 중국 서민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수식없는 태도는 선전문구없는 이 영화에 짙은 사회성을 부여한다. “어떤 조건에서도 삶은 움직인다. 나무처럼, 그것은 자유롭게 자란다.” 화가 리우샤오동이 <동>의 카메라를 똑바로 들여다보며 했던 말이 공명하면서, <스틸 라이프>는 중국과 중국인이라는 경계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보편적 울림이 된다.

“중국 청년감독들에 대한 긍정이 이번 수상의 의의다”

황금사자상 수상한 <스틸 라이프>의 자이장커 감독 인터뷰

*본 인터뷰는 영화제 기간 중 열린 공식 기자회견 내용과 폐막 뒤 중국 현지언론 <남도주간>(南道周刊)과의 단독 인터뷰를 함께 발췌, 정리한 것이다.

-당시 상을 받았을 때 의외였나.
=꽤 의외였다고 할 수 있다. 시상식 전날 영화제쪽에서 우리에게 남으라고 알려왔다. 우리는 대충, 오리존티 부문 다큐멘터리상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특별히 중요한 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작 다큐멘터리상은 스파이크 리에게 돌아갔다. 우리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고 영화제쪽이 실수를 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 황금사자상 발표를 듣고서야 침착해졌다. 사실 전체적으로 보면 의외만은 아니다. 지난 10년간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과 <스틸 라이프>를 함께 찍었고 영화제에 나란히 초청, 상영돼 더 완성된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작품 모두 상을 받았지만 <스틸 라이프>는 뒤늦게 초청을 받았다. 어떤 사연이 있었는가.
=베니스영화제는 3월 초부터 영화 선정을 시작했다. 마르코 뮐러 집행위원장은 내 두 작품을 모두 알고 있었고 최소한 한 작품이라도 참가하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난 다큐멘터리 <동>의 작업을 먼저 시작했다. 상영시간이 70분 내외라 후반작업 부담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극영화 작업은 비교적 복잡한데다 마침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해결해야 할 집안 일이 있었다. 뒤에 마르코 뮐러가 <동>을 보고서 영화제에 반드시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 뒤에도 프로듀서에게 연락해 <스틸 라이프>의 1차 편집본을 볼 수 없느냐고 물어왔다. 편집본을 본 뒤 뮐러는 우리가 가능한 한 빨리 작업을 마치길 바랐지만 난 영화를 급하게 마무리짓고 싶지 않았다. 언제 이 작업이 끝날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틸 라이프>는 영화제 라인업 공식 발표 때 리스트에 없었다. 뮐러는 ‘깜짝 상영’ 부문을 언급하면서 “한번 시도해보자. 영화제가 끝나기 전까지 완성할 수 있으면 ‘깜짝 상영’ 부문에 넣자”고 했다. 우리가 베니스행 비행기를 타기 하루 전까지도 이 불확실한 상황이 계속됐다.

-이전 작품 <플랫폼>과 <세계>가 모두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는데 이번에 결국 상을 탔다. 적절한 시기라고 보는가, 좀 늦었다고 보는가.
=스탭들은 늦었다고 판단한다. 모두들 2000년의 <플랫폼>이 아깝게 상을 놓쳤다고 생각한다. 당시 중국 평론가들을 포함해 국제 평단은 이 영화가 반드시 베니스를 들끓게 할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영화제 데일리 평점에서도 우리 영화가 제일 높았고 모든 매체들이 우리가 황금사자상을 탈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아무 상도 못 탔다. 그때는 좀 섭섭했다. 그럼에도 내 입장에선 여전히 기쁘고 놀라운 일이며 비교적 행복이 일찍 왔다고 생각한다. 다섯 번째 영화에, 서른여섯살에, 내 생각엔 꽤 괜찮다.

-일부 평단에서는 <스틸 라이프>를 일컬어 “도시의 삶과 시골의 삶의 현실을 기록한, 전통적인 강직함으로의 회귀”라고 쓰고 있다. 당신은 <스틸 라이프>가 <세계>와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영화적인 후퇴라고 보는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학적으로 <세계>가 매우 엄격하고 신중한 영화였다면 <스틸 라이프>는 그런 미학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매우 자유롭게, 직관과 감성을 갖고 촬영에 임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스틸 라이프>는 내 영화 안에서 또 하나의 미학적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세계>와 같은 과정이 없었다면 <스틸 라이프>와 같은 결과도 없었을 것이다. 난 모든 감독들이 다 성장의 과정을 갖는다고 생각하고 그런 점에서 <세계>는 내가 피할 수 없는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본다.

-<스틸 라이프>를 보면 매우 초현실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나비가 날아가는 장면이랄지, 사람들 사이로 철사가 지나가는 장면이랄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나.
=산샤는 중국 고대부터 지금까지 매우 신비로운 지역 중 하나다. 그곳엔 각양각색의 설화가 남아 있다. 지금 중국사회는 큰 변화를 겪고 있고 많은 사람들과 사건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 신비로운 공간에 툭하면 비가 내리고 기후도 불안정하다. 이는 중국의 복잡다양한 변화들과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 풍경이고, 더불어 나에게는 많은 초현실주의적 상상이 일었다. 그러나 그런 상상들조차 그 공간의 현실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로우예 감독이 올해 영화를 중국 정부의 검열을 거치지 않고 칸에 출품하는 바람에 중국 정부로부터 5년간 중국 내 촬영금지를 당했다. 이를 어떻게 보는가.
=난 우리가 중국영화의 환경 개선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의가 들 때도 많지만 물러서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한 국가가 영화에 상상력의 공간을 주지 못한다면 그 나라의 영화는 반드시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중국의 경우는 새로운 소통문제를 포함해 더 많은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난 로우예의 문제도 반드시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정부와 일종의 대화 창구가 마련됐다. 그 창구를 이용해야 한다. 우리의 더 많은 요구가 현실화되도록. 난 이것이 중국 감독들이 반드시 해야 할 노력이라고 본다.

-장이모, 첸카이거 등 5세대 감독들은 3대 국제영화제에서 인정을 받은 다음 중국 내에서도 지위를 인정받고 투자도 쉽게 받을 수 있었다. 당신의 수상 역시 이런 면에서 변화를 가져올 거라 생각하는가.
=그런 식의 전환이라면 <플랫폼> 때 이미 시작됐다. <플랫폼> 이후 내 영화의 투자는 이미 순조로웠다. 내가 어떤 영화를 찍겠다고 하면 기본적으로 2∼3개월 안에 제작비를 마련할 수 있다. 내 생각에 이번 수상의 의의는 중국 청년감독들에 대한 국제영화제의 긍정이라고 본다. 장위안, 왕샤오솨이, 로우예 등 모두들 열심히 노력해왔고 약속이나 한 듯 중국 당대 현실에 주목했으며 중국 서민들의 생활을 스크린에 옮겨 그에 대해 존경을 표하고자 했다. 이런 노력을 견지해온 것이 지금의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고 보고 나에게도 그것이 더 중요한 수상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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