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 베니스의 떠오르는 별
유머는 만국공통어다. 에마누엘레 크리알레즈의 <황금의 문>(Golden Door/ 112분/ 이탈리아·프랑스/ 경쟁부문)은 이탈리아 민족 특유의 해학적 시선으로 역사에 접근하는 영화다. <황금문>의 시대적 배경은 유럽인들의 미국 이주가 붐을 이루던 20세기 초반의 대이민 시대다. 이탈리아 촌구석 시실리섬의 만쿠소 가족은 노모까지 합세해 미국 이민을 감행한다. 만쿠소는 집채만한 양파와 닭, 은화들이 매달린 나무가 찍혀 있는 거짓말 같은 흑백사진을 본 뒤로 미국에서의 풍족한 삶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그 길은 쉽지 않다. 전쟁통의 피난선 같은 배에 몸을 실어 미국에 도착해보니 각종 신체검사에 방역·위생검사, 심지어는 그림판을 맞추는 등의 지능검사가 기다리고 있다. <황금의 문>은 이 짜증스럽고 비합리적이며 인종차별적인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그 위에 만쿠소의 순박한 시선을 한겹 덮는다. 이로 인해 생기는 해학적 미덕은 영화가 견지하는 비판적 의도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먼저 받아들이게 한다. <황금의 문>의 이야기는 각종 검사에 심한 거부반응을 일으키던 만쿠소의 노모가 결국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함으로써 열린 결말을 택한 채 끝을 맺는다. 크리알레즈 감독은 첫장편 <우리가 남남이었을 때>(1997)로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두번째 장편 <레스피로>(2002)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뉴욕의 한 박물관에서 대이민 시대의 증거들을 보고 그 시대 유럽 서민들의 용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이번 영화의 연출목적을 가볍게 설명했지만, 기자들은 이 영화가 역사를 대하는 진지함과 진심에 도달하기 위한 휴머니즘을 현명하게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벨기에 출신인 호아킴 라포스의 <사유 재산>(Private Property/ 105분/ 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 경쟁부문)은 공생할 수도, 공생하지 않을 수도 없는 가족의 역설적인 성격에 접근하는 영화다. 티에리와 프랑수아 형제는 이혼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아침이면 한켠에서 엄마가 샤워를 하고 아들이 이를 닦을 만큼 이 가족에겐 각자의 사적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엄마는 새 남자친구와 자동차 뒷좌석을 열어 섹스를 하고, 동생은 형 몰래 여자친구와 섹스를 하느라 신음소리도 내지 못한다. 4:3 TV화면 비율로 찍힌 이 영화는 시종 갑갑한 느낌을 준다. 동시에 그 좁은 화면은 절대 혼자 식사하는 법 없는 이 가족의 묘한 친밀함을 시각화한다. 실제 친형제인 두 배우 제레미 레니에와 야닉 레니에가 캐스팅된 것도 연기력만으로 보여줄 수 없는 형제애를 표현하기 위한 의도라고 감독은 밝혔다. 엄마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이혼했고 가족은 영원히 화합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동생의 돌연한 폭력으로 인해 형이 사고를 당하면서 우스운 모양새로 한데 모이게 된다. ‘사유 재산’이라는 제목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가족적 연대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인정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감독은 이번 영화가 자신의 2004년 장편데뷔작 <사적 광기>(Private Madness)와 이전 단편들의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밝혔다. <사적 광기>는 그해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을 수상했다.
러시아 감독 이반 비리파에프의 데뷔작 <유포리아>(Euphoria/ 75분/ 러시아/ 경쟁부문)는 함께 있음과 행복이 일치하지 않는 열정적 사랑에 대한 영화다. 함께 있어서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는 그 사랑이 절대적이지 않다고 믿게 되지만 <유포리아>는 그 역설성이 사랑의 절대성을 완성시키는 한 단면일 수 있다고 말한다. 베라는 폭력적인 남편과 그 사이에서 난 딸과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다. 외딴곳에 지어진 그녀의 집 주변을 맴도는 남자 파벨은, 한때 그녀와 지독하게 사랑했던 연인이다. 파벨과 베라는 서로의 관계가 더이상 예전 같을 수 없음을 알고 헤어졌지만 완전히 서로를 놓지 못했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베라는 마침내 파벨과 도망치고 남편은 그들의 유포리아, 곧 행복을 막기 위해 뒤를 쫓는다. 비리파에프 감독은 이 영화가 “예기치 못한, 순수하면서도 무자비한, 잔혹한 사랑에 관한 영화”라고 설명하고 있다. <유포리아>는 남부러시아 돈강 주변 스텝지대에서 촬영됐다. 스크린 위로 광대히 펼쳐지는 초원과 강줄기, 뻥 뚫린 하늘 아래 보잘것없는 인간들의 사랑은 힘겹고 무기력하다. 그럼에도 그 사랑은 근원적이며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과 떼놓을 수 없다. 러시아영화 특유의 시적인 화면이 이 영화의 연애학을 철학으로 승화시켜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