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감독 이준익, 그는 누구인가? [1]
2006-09-29
글 : 이종도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1200만 관객을 끌어모은 <왕의 남자> 감독의 후속작. 당연히 큰 관심이 쏟아질 법한데 <라디오 스타>는 소소한 영화 크기만큼이나 파묻혀 있었다. 모두들 <타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가문의 부활>이 경쟁할 거라고 예상했다. 20년 넘게 주연을 한 안성기 박중훈 두 거목의 출연은 오히려 낡은 느낌을 줬다. 그러나 기자, 배급, 일반시사회에서 <라디오 스타>는 ‘웃으면서 동시에 눈물을 흘리는 기묘한 경험’(황진미)을 안겼다. 새삼 이준익이라는 인물의 개성과 크기와 두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이준익 감독은 1천만 관객을 동원한 뒤 바로 작품에 뛰어들었고, 벌써 차기작 두편을 준비하고 있다. 관객 수뿐 아니라 충무로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시대가 그를 택한 것일까, 그가 시대를 만들어가는 것일까. 변두리 리그의 대변자 이준익, 그의 됨됨이와 영화 인생을 살피고 감독론을 보탰다.

이중인격자. 위선자. 한입 가지고 두말 하는 사람. 경솔한 사람. 허위의식을 싫어하는 사람. 이준익 감독이 스스로를 소개하는 말들이다. 그런데 앞에 그런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 유쾌하고 솔직한. 그리고 끝에는 변두리 리그의 대변자라고 붙여야 한다. 올해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영화인을 꼽을 때 이준익과 봉준호를 거론해야 할 것이다. 두 사람은 마이너리티 정서를 상업영화판으로 형식화-미학화해 끌어올린 공로자다. 특히 이준익의 행로는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영화광고, 외화수입, 제작, 감독 등 공중전 시가전까지 모두 겪은 백전노장이자, 수십억 빚더미를 즐겁게 껴안으면서도 쉴새없이 일거리를 만드는 영화공장장이자, 충무로 감독의 은퇴시기라 부르는 40대 후반으로 갈수록 뒤늦게 만개하는 늦깎이의 행보라서 그렇다.

CEO 이준익의 힘

‘뜻 맞는 동지랑 평생 가는 거지’ 하다가도 이준익 감독은 ‘인생은 혼자서 가는 거야, 그렇지?’ 하고 되묻는다. 잘 들어보면 앞뒤가 안 맞으면서 또한 잘 맞는다. 이준익 감독과 15년째 고락을 함께하고 있는 영화사 아침 정승혜 대표는 ‘CEO로서 모든 책임감과 의무감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증언한다. “완벽했다. 오랜 기간을 빚에 시달리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월급 밀린 적이 없다. 직원들 불편하게 한 적도 없고.” 아마 이 감독 생일 때 직원, 제작부, 연출부가 몰래 놀러가서 부암동의 좁아터진 집에 풍선을 걸고 깜짝파티를 준비한 이유는 이런 데 있을 것이다. 정 대표는 인간적인 면에서 그가 탁월한 조율사라고 말한다.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최상의 것을 얻어낼 수 있는지를 잘 안다.”

그러나 인간적인 매력만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이재에 대한 무욕과 투명함 또한 영화적 동지들과 함께 오랜 세월 함께 할 수 있던 동력으로 보인다. 이준익 감독은 이번 영화 감독료를 받아 회사 경상비로 일부를 썼다고 한다. 공동제작자로서 수익 일부분을, 그리고 러닝 개런티 15%를 받게 될 터지만 말이다. 이준익 감독과 역시 오랜 동지인 조철현 타이거스 픽처스 대표는 제작현장이나 시사회 뒤풀이에서 쓴 비용을 제작비로 청구하지 않고, 예정한 제작비를 넘기지 않고 오히려 남기며, 자기 카드가 ‘빵구’가 나도 제작비를 유용하는 법이 없는 투명성이 씨네월드라는 영화제작집단의 자부심이라고 말한다. “<왕의 남자>처럼 수익이 남는 영화는 대개 잡음이 있게 마련인데, 이준익 감독 덕분에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고 그는 덧붙인다. 금전 관리에서 누수가 없고 공사구분이 뚜렷하다는 얘기다.

80년대 후반 영화광고 시장을 ‘도리’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도 큰 밑천이다. 영화광고사 ‘씨네시티’ 시절 이준익 감독에게 모든 영화들이 모이다보니 씨네시티가 ‘정거장’ 노릇을 했고 거기에 각종 영화 정보들이 집결했다. 방대한 정보도 정보지만 거기서 영화정보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한다는 데서 조철현 대표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늘 관객에게 예민한 촉각을 세운다. 광고를 내면 시간대별로 광고 반응을 체크한다. 전화가 왔으면 느낌은 어땠는지, 영화를 보고 싶어 물어본 건지 면밀히 체크한다. 매주 토요일 개봉할 때면 극장 앞에서 줄을 보면서 모양까지 봤다. 줄이 두줄 세줄 엉켜 있는가 아닌가, 연령과 성비는 어떤가, 줄 선 사람들은 어떤 패션을 입었는가를 본다. 다음날 광고에서 비주얼과 카피가 달라진다.”

아마 초등학교 때 야구부 포지션이 포수여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포수 출신 감독이 많은 까닭은 포수가 내야와 외야 전부를 굽어보는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역시 야구선수 출신인 조 대표의 가설이다.

영화감독 이준익의 힘

이준익 감독은 스스로 불을 질러야겠다고 생각해서 나중에 영화에 뛰어들었다고 고백을 했다. 조 대표도 광고를 많이 하면서 영화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들었을 거라고 말한다. 순수 회화를 전공한 아티스트 기질도 한몫했을 거라는 분석을 더한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사 아침, 영화사 타이거 픽처스로 씨네월드가 나뉠 때 자신이 그린 자화상 석점을 두 동지들과 평생 영화를 같이하자는 뜻으로 나눠 가졌다고 한다. 예술적인 경영인으로서 또는 삶 자체도 예술을 닮으려 하는 영화감독으로서 이준익다운 발상이다. 현재는 그런 예술가다운 자의식보다 관객을 의식하는 감독으로서 재능이 더 두드러진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영상에 대한 감각, 기억력, 내러티브에 대한 집중력도 비상하다고 조철현 대표는 말한다. <대부2> <고스트> 등 외화 시사를 보러 가면 영어를 잘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보다 더 줄거리 파악을 잘한다는 것이다. 광고를 하려면 무슨 의도로 만들었는지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광고인 출신 이준익 감독은 내러티브에 대한 훈련이 철저히 되어 있다는 게 조 대표의 증언이다. “내가 <저수지의 개들>을 번역했는데 리와인드하면서 수십번을 봤다. 이 감독은 한번 봤고. 몇달 뒤에 얘기를 나누는데 나보다 더 잘 기억하고, ‘커트바리’(컷과 컷 연결)도 더 잘 기억하는 거다. (자기가 머리가 나쁘다고 하는데) 절대 그는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다. 미술을 전공해 비주얼 기억력도 탁월하다. <키드 캅>을 할 때 아무 연출 경험도 없어 걱정했는데 몇편 해본 사람 같더라.”

감독으로서 그는 앞으로 더 나아갈 사람이라고 주위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꾸준히 이 감독과 작업을 했고 두편의 차기작인 <매혹>과 <백탑파>(<열하일기>로 알려진 북학파를 다룬 사극)에서도 함께할 정진영은 “<왕의 남자> 때 질적으로 달라진 것 같다. 이제 그의 의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점점 더 현명해지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직관이 빛을 발하고 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며 어디로 갈지 짐작할 수 없다”고 말한다.

<키드 캅>
<황산벌>

함께하는 배우들은 이 감독의 인간적인 품성과 연기 디렉션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정진영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연기지도’를 장점으로 꼽는다. 박중훈은 이 감독의 인간적 매력을 먼저 앞세운다. “감독의 기능이 는 것도 있지만 먼저 좋은 사람이기에 매력이 있는 것이다.” 전형적인 덕장이며, 아웃사이더를 위한 영화를 만드는 만큼 영화 제작과정에서도 상처를 안 주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란 게 박중훈의 기억이다.

여기에 덧붙일 것. 이준익의 성취가 남다른 점은 동지들과 이루는 상승 효과다. 이준익은 조철현, 정승혜, 최석환 등 여러 명과 뇌를 공유하고 서로에게 지점과 분실을 내며, 정서적 안전망으로 서로를 굳건하게 맺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남들이 하나의 아이디어를 내 힘겹게 앞으로 나아갈 때, 이들은 동시다발로 아이디어를 뭉쳐 굴린다.

인간 이준익의 힘

영화사 사무실로 꾸준히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 소리가 날아든다. 한 케이블 방송국에서 인터뷰 일정이 잡히자 정승혜 대표가 짜증을 낸다. “이 감독이 철이 없어서 우리가 너무 고생한다. 거절을 못한다. 조리있게 일을 해줘야 하는데 사고를 많이 친다”는 게 작은 불평거리다. 영화사로 들어왔다가 거절당하자 감독쪽으로 연락을 넣어 성사시킨 데 대한 불만이다.

거절을 못하거나, 소박하다 못해 욕심이 없는 것도 이준익 감독의 개성이다. 요즘은 밀리오레에서 4만8천원짜리 바지를 혼자 사입기도 하고 제때 맞춰 옷도 입지만 <황산벌> 촬영 때는 등산복 하나로 끝까지 갈아입지 않고 버티기도 했다. 남의 말을 잘 듣지만 자신의 사생활에 관해서는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위험하다’는 직원들의 반발에 부딪혔지만 부암동 집에서 충무로까지 스쿠터로 통근을 하기도 했다. 고집을 부리고 타고 다니다가 사고를 당한 뒤로는 스쿠터 출퇴근은 자제한다.

이 감독의 사생활은 알려진 게 별로 없다. 20대 아들딸이 있다는 정도다. 충무로의 오래된 맛집들을 다니는 걸 좋아하지만 된장비빔밥이나 해장국, 과메기 등 수수한 음식을 좋아하고 4천원짜리 백반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집에서 혼자 끓여 먹는 생생우동도 아주 좋아한다. 인사동 ‘빈’에서 자몽 주스와 섞어 먹는 보드카를 좋아하지만 주당은 아니다. 여자들을 무서워하고 ‘거짓말을 잘해서’ 믿지 않는다지만 정승혜 대표는 ‘요즘 주변에 여자들이 몰려서 이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이준익 감독은 일중독자다. ‘자고 일하고, 일하고 자고’가 자신의 일상이라고 말한다. 극한까지 가서 노동의 땀방울을 흘릴 때, 탈진까지 간 상태에서 머리가 핑 돌 때 행복하다고 말한다. “체력, 정신, 두뇌, 모두 극한까지 가보는 거야. 끓는 온도, 또는 빙점에 도달했을 때 그 희열이 제일 즐거워.” <왕의 남자> 촬영을 마치고 바로 <라디오 스타>에 뛰어들었고 올 가을 <매혹>, 내년 봄 <백탑파> 촬영 일정이 잡혀 있을 정도로 그는 자신을 몰아세운다. 휴가차 해외여행이니 하는 것도 없다. 촬영장에서 스탭들과 야구를 하거나, 아마 5급 실력으로 강우석 감독이나 조철현 대표와 바둑을 두거나, 가끔 당구를 치는 정도가 그의 취미라면 취미다. 주말엔 인사동에 나가 전시회를 보고, 스쿠터를 타고 동네를 쏘다닌다.

이준익 감독은 젊은 날 서울극장 앞에서 자신의 영화를 보러 새까맣게 몰려든 인파를 보며 느긋하게 시가를 한대 피우는 모습을 상상했다. <달마야 놀자> <황산벌>과 <왕의 남자>에 이어 <라디오 스타> 때도 그 시가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껴둔 시가 담배 냄새가 향긋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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