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감독 이준익, 그는 누구인가? [3]
2006-09-29
글 : 이종도
글 : 오정연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이준익 감독 인터뷰

-영화 잘 봤습니다.
=괜찮았어?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기자들이 나오자마자, ‘형, 담배. 형, 불’ 그 놀이하다가 자장면집 갔다던데. 자장면집에 누군가 갔더니 앞에 다른 기자들 다 거기 모여 있더래. 누구는 낮술 풀고는 새벽 두세시까지 노래방에서 영화에 나온 노래를 찾아 부르면서 난리를 쳤대. 다 울고….

-노래가 많이 나오는데 저작권 문제는 다 잘 됐나.
=신중현 선생에게 시나리오 보여드렸지. 다 읽어보고 너무 좋아하시는 거야. 신중현의 <미인>을 박민수가 세번 부르지. 그리고 내가 김추자의 <빗속의 여인>을 죽이게 좋아하거든. <님은 먼 곳에> 할까, <빗속의 여인> 할까, 고민하다가 <빗속의 여인>을 쓴 거야.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는 2천만원 주고 샀지. 오지 오스본의 <Goodbye to Romance>는 이것저것 다 해보니까 1억원이 들어가는 거야. 그래서 빼버렸어.

-올해가 가장 바쁜 해겠다.
=빚이 있을 때 더 바빴지. 빚 몇 십억원씩 지고 살아봐. 그거 얼마나 바쁘겠어, 막느라고.

-어려서부터 록을 좋아했나.
=그럼. 초등학교 때 18번이 CCR의 <프라우드 메리>였는데. <가문의 부활: 가문의 영광3> 오늘 시사회했다던데, 어땠어?

-여기 오느라 못 봤어요.
=추석 때 <타짜>하고 <라디오 스타>하고 <가문의 부활…>하고 셋이 붙겠지. 그런데 <라디오 스타>는 아예 타 영화사에서 취급도 안 했대. 아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 둘이 나왔는데 그렇게 무시하는 거, 그거 잘못된 거 아냐? 대한민국 영화 100년 역사를 가지고 50년 동안 주연을 한 안성기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무시하는 게 이상한 거지. 안성기는 50년, 박중훈은 21년. 주연만 21년이야. 그건 아무나 이룩해낼 수 있는 게 아니지. <라디오 스타>에서 증명하고 싶었던 데는 그런 선배 영화배우에 대한 가치 존중의 의미가 있었어. 그런 배우들이 앞으로 죽죽 나올 텐데, 최민식, 송강호, 한석규, 이런 배우들이 그 뒤를 이어서 튼튼하게 해야 밑의 애들이 배울 롤모델이 생기는 거지. 아니, 뭐 누가 지금 인기있다지만 내년에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알아. 그것에 쏠려서 부화뇌동하면 안 되지.

-그런 오기도 있었겠다.
=그럼. 또 우린 따뜻한 곳에서 잠을 자면 두드러기가 나요. 웃풍이 확 좀 불어줘야, 쏴 해서, 긴장이 싹, 닭살이 싹, 돋으면서. (웃음) 그런 거 아냐? 인생이? 등따시고 배부르면 그땐 곪는 거야, 신김치밖에 더 돼, 그게?

-안성기 배우는 언제부터 좋아했나.
=<만다라>를 보는데, 번뇌에 대해 온몸으로 보여준 모습이 아직도 선명해.

-최석환 작가 컨셉만 듣고 물건이 될 거라고 생각했나?
=물건이라 생각 안 했어. 정승혜 대표가 물건된다고 해서. 아, 씨, 난 원래 <황산벌>이나 <왕의 남자>나 얘기가 좀 세잖아. 극렬한 걸 좋아하거던. <라디오 스타>는 민숭민숭한 거야. (하지만) 눈앞에 뭔가 미션이 주어지면 그냥 그걸 미친개가 물고 덤비듯이 하는 스타일이라, 정해지면 당이 명령하면 나는 무조건 해. (웃음)

-감독님이 당 아니었나.
=아냐. 난 당원이야. 우린 당수없어. 다 아나키스트야. 개별적인 존재들의 거대한 방향성은 존재하지. 근데 그것이 뭐 어떤 목표지향형은 아니야. 주어진 환경지향이지.

-당의 운명은 평당원까지 참여해서 결정하나?
=그렇진 않고. 음, 다는 아니지. 소수. 핵심멤버. 조철현 대표, 정승혜, 최석환 작가, 나, 또 우리는 조직이 탄력적이라 친한 박중훈, 정진영 배우도 끼어들고. 좀 이상해. 회사도 아니고, 회사 형태를 띠고 있는 클럽이야, 서클. 그러니까 정진영이 만날 그래, 이게 무슨 회사냐고, 동아리지.

-모자는 언제부터 썼나?
=<황산벌> 찍으려고 할 때. 그전까지는 내가 제작자 역할을 더 많이 했잖아. 근데 <황산벌> 감독을 할 수 없이 내가 해야 되니까, 머리를 확 깎았는데, 너무 없어 보여. 그래서 수염을 길렀지. 거기에 모자쓰고.

-중절모가 자기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데.
=좋지. 괜찮아. 야, 나이 먹은 것은 훈장이야.

-원래 불안, 걱정, 조바심이 없는 성격이에요?
=왜 없어. 엄청 많지.

-근데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낙관주의자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내가 위선주의자라고 만날 그러잖아. 난 위선자야. (웃음) 정말 위선자야, 내가 봐도. 속과 겉이 너무 달라. 속으로는 조바심이 나도 겉으로는 비실비실 웃고 있고. 완벽한 위선자지.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나.
=28억원. 원래 31억원이었는데 그것도 다 안 썼어, 또. 다 못 썼어. 다 찍고 나니까 3억원 남았대. 촬영기간도 줄었어. 찍다보니까 안 찍어도 되는 거 안 찍고 하니까.

-그럼 미리 왕창 찍어놓고 자르는 게 아니라 딱 쓸 만큼만 찍어둔다는?
=그럼. 난 디렉터스 컷이 없어. 찍어서 붙이면 그게 다야.

-필름도 적게 썼겠어요.
=10만자. 아, 그것도 많이 쓴 거야. 헬기 뜨고 인서트가 많아서, 촬영기사가 들고 찍은 게 한 3만자 돼. 내가 찍은 건 7만자도 안 돼.

-본인의 연기는 어떻게 생각하나.
=후지지. 그 영화에서 제일 못한 게 나야. 아, 씨. 나 연기 정말 하고 싶은데 실력이 없어서. 연기수업을 받아야 되는데 시간이 없네.

-튀지는 않던데.
=두번 나오는데 처음은 괜찮은데 두번 째 게 후져. 조감독 보고 오케이 잘 넣으라니까 대충 간 거 같아.

-책을 많이 읽나.
=안 읽어. 가방끈이 짧은데 언제 책을 읽나.

-그래도 늘 보면 세상사에 대해 자기 나름의 어떤 견해가 있어요.
=있지. 관점이 있지. 경험이지. 경험. 난 학습이 잘 안 돼. 난독증이라니까. 글 보면 헷갈려서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전에 감독 되려면 뭘하나요, 그랬더니 인문학을 많이 알아야지, 그랬는데 그러시면 안 되죠.
=난 장점이 있어. 인문학을 많이 공부한 친구들이 옆에 많아. 조철현 대표, 최석환 작가. 독서량이 얼마나 많은지 무슨 책 얘기가 나오면 세상에 안 읽은 책이 없어요. 지식인을 옆에 두면 서당개 삼년에 풍월 읊는다고, 다 되더라고. 좋은 친구들, 동지가 밑천이지, 뭐. 오히려 머리가 비어 있으니까 내가 훨씬 수용력이 좋아.

-편집하면서 13번이나 울었다는데 어떤 점에서 그렇게 눈물이 났어요?
=눈물은 세월이 만들어주는 것 같은 걸 느꼈는데 박민수, 최곤 이 두 사람이 20년 동안 먼 길을 와서 영월에서 벼랑에 섰다, 그 세월이 보이는 거야. 두 얼굴에서. 술 마시고 뚝방길을 걷는데 술 취한 석영을 등에 지고 터벅터벅 가잖아. 최곤이, 형 힘들지 하고 묻잖아. 그게 더블미닝이잖아. 물리적으로 힘들어서 힘든 것도 있겠지만. 그때 박민수가 아, 얘 왜 이렇게 무겁냐며 물리적인 의미로 받지. 근데 최곤이 다시 심리적으로 물어본다고. 우리 찢어질까. 그러면 박민수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면서 ‘아, 내가 열심히 할게’. 근데 거기서 가슴이 찢어지지. 안 그래? 그건 최고의 신이야. 갈 데 없는 인간들이야. 이거 보고 눈물 안 나냐?

-배우들을 보면 감독님 영화에서 되게 자유스러워 보여요.
=맘대로 하게 놔두니까 그렇지. 난 디렉션이 별로 없어. 배우랑 나랑 충돌할 일이 없어. 한번도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어. 옛날에 한번 박중훈이랑 세게 충돌했다가 바로 그날 새벽까지 술 먹으면서 ‘쇼부’ 딱 보고 끝냈지. 박중훈은 관객은 어차피 박중훈 코미디에 대한 어떤 그런 것이 있으니까 코미디하자, 그러고 난 하지 마라, 그러면서 싸우다가 결론은 코미디 안 했잖아. 그 다음부터는 싸울 일이 전혀 없지. 배우랑은 그때 말고 부딪친 적이 한번도 없어. 그리고 배우 말이 대부분 다 맞아.

-연출하면서 제일 신경을 많이 쓰는 게 어떤 건가.
=시나리오 설정. 신 설정. 배우가 연기를 못한다는 것은 그 배우가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라 신 설정이 잘못됐기 때문이야. 배우의 연기가 이상하게 안 붙는다면 배우의 연기를 바꾸는 게 아니라 신 설정을 바꿔버려. 신의 설정, 그야말로 신의 컨셉. 예를 들어 코미디로 설정했는데, 해보니까 앞뒤하고 느낌이 안 맞아. 직감적으로. 그럼 이걸 코미디가 아니라 진지한 신으로 가자. 바꿔보면 딱 맞는 거야. 어떤 건 반대로. 진지하게 시나리오를 썼는데 현장에서 진지하게 하니까 재미가 없어. 그럼 이걸 유니크하게 가보자. 바꿔버리는 거지. 그래서 난 시나리오 안에 배우를 맞춘다거나 카메라 안에 배우를 맞추지 않아. 배우에 맞춰서 시나리오를 바꿔버려. 왜? 시나리오는 짧은 시간 안에 책상머리에서 공상하면서 쓴 거 아냐. 얼마나 부정확하겠어. 안 그래? 현장 가보면 이게 잘못됐다는 게 금방 나오지. 그럼 바로 바꿔야지.

-그럼 바로 최석환 작가와 연락하나?
=연결되면 하고, 기본적으로 우리끼리 하지. 연출부하고. 야, 이거 신 잘못됐다, 바꾸자. 그러면 다 모여서 의논해서 바꾸고, 배우 불러서 잘못됐으니까 이렇게 바꾸려고 하는데 어떻소. 그럼 아, 좋아요. 그럼 오케이. 아니면 최 작가랑 자주 전화하니까 전화에 대고, 야, 이거 너 신 잘못됐어. 너 다시 써서 이메일로 날려봐. 그래서 온 거 봤는데, 엿같이 날아온다? 그럼 야, 씨, 너 빠져. (웃음) 어떤 때는 최 작가가 와. 온 김에 떡 본 김에 제사나 지내자. 너 이거 바꿔봐. 그냥 두서가 없어. 일관성이 없어, 난.

-그럼에도 일관성이 있는데 관객의 반응이랄까. 이야기를 보는 사람의 반응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것 같은데.
=그럼, 상업영화의 목숨이 그건데. 상업영화 감독과 작가의 차이가 뭐냐면 작가주의 감독은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걸 찍어. 그리고 상업영화 감독은 관객이 보고 싶은 걸 찍는다고. 난 내 생각이 별로 중하지 않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관객인데. 촬영감독은 최초의 관객이라고. 그런 그 사람의 생각이 관객일 가능성이 높잖아. 배우도 마찬가지지. 배우이면서 한명의 관객인 거야. 나는 다 물어봐서 찍어. 나도 한명의 관객이니까.

-영화를 보면 마당극을 보는 느낌이 들어요. 관객에게 들어와서 같이 놉시다, 그러면서 관객에게 여지를 많이 주는데.
=당연하지. 관객한테 맞췄으니까. 텐션이라는 거는, 관객은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따라가는 거야.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관객의 갈등이 일치하지 않으면 관객은 다른 생각한다고.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관객과 일치시키는 방법은 주인공의 멘털 안에 관객이 들어와 있어야 돼. 컷 바이 컷을 난 긴장의 문을 여는 식으로 연출한다고. 크게 보면 신 바이 신. 이 컷에서 저 컷으로 넘을 때는 긴장이 없으면 안 넘어 가. 긴장은 뭐냐하면 밝은 방에 있다가 문을 탁 열어 껌껌하면 소름이 싹 돋잖아. 이게 텐션이야. 끊임없이 방문을 여는 거야. 천컷이면 천개의 문을 여는 거야. 영화를 보다보면 그 다음 컷이 어떻게 될지 문을 열기 전까지는 상상을 못해. 그냥 따라가게 돼 있어. 평범한 이야기잖아. 이게. <왕의 남자>처럼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게 아니라 일상적인 리얼리티 영화인데, 다음 신이 예측이 잘 안 돼. 그러니까 아무 생각 못하고 끌려오는 거야.

-동시대 감독들 중에 감독님이 자극이 된다거나 질투하는 감독이 있나.
=임상수 <바람난 가족> 보면 질투에 휩싸여. 너무 좋아. 죽음이야. 섬뜩하잖아. 매신이 넘어가는데 미치겠더라고. 근데 <그때 그사람들>은 열나 후지게 찍었더만. 왜 그렇게 왔다갔다하냐. 오락가락해, 얘기가. 선명성이 떨어지는 거야. 뭘 얘기하는지는 알지. <바람난 가족>은 뭘 얘기하려는지를 정확하게 때린 거야. 근데 <그때 그사람들>은 뭘 얘기하려는지가 자꾸 새나가는 거야. 그 다음 <오래된 정원>은 기대가 돼. 홍상수 영화 좋고. 홍상수의 일상이 가진 섬뜩함은 참 좋다고 생각해. 나한테 없는 거지. 그래서 좋은 거야. 박찬욱도 좋고. 봉준호도 좋고. 대단한 감독들이지.

-그런 사람들의 영화를 볼 때 어떤 감정을 느껴요?
=빨리 배워야지. 배워서 써먹어야지. (웃음) 근데 돌아서면 까먹더라고. 볼 때 그뿐이야. 결국 내 스타일대로 찍고. 기억력이 좋아야 잘 써먹는데, 기억력이 나빠서.

-근데 감독님 영화는, 무슨 족보인지 잘 모르겠어요.
=돌연변이야. 나는 아카데믹한 영화학습을 받은 적이 없고. 영화를 아카데믹하게 배운 사람들은 영화에서 영화를 따오는 거야. 그전의 영화에서 배운 것들을 더 발전시켜서 영화적 사고를 한다고. 나는 ‘야메’니까, 내가 생각하는 영화 철학은 영화는 세상을 담는 그릇이야. 남의 영화를 따라하는 게 아니고. 세상을 영화로 담아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의 이야기를 선택하고, 그것을 영화적으로 또 어떤 세계를 영화적으로 창조하려고 하고. 그렇다고 내가 남의 영화를 많이 안 봤느냐? 난 한국 사람이 못 본 영화도 무지하게 봤어. 외국영화 수입하느라고 하다 못해 아프리카영화부터 남미영화, 얼마나 많이 봤겠어. 그러다 멕시코영화에 빠져서 <산타 상그레> 수입했다가 홀랑 망하고. 한때 로저 코먼 B급영화에 빠져서 <공포택시>했다가 12억원 홀랑 까먹고. 그러니까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 그래서 다 지워버렸어. 너무 많이 보니까 어설픈 흉내를 내다가 죽도 밥도 안 되더라고. 이제는 TV고 신문도 안 보고, 그동안 내가 아는 세상만으로도 다 얘기 못하고 죽을 것 같아서 그냥 세상을 담을 뿐이지.

-독학한 사람들 보면 자기가 알고 있는 세상에 대해 굉장히 자신감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불안함에 시달리잖나.
=글쎄. 나는 뭐 열등한 게 자랑이거든. (웃음) 열등한 게 불안하지 않아. 그게 행복해. 왜, 메울 게 있잖아. 그게 에너지고. 콤플렉스가 나에겐 큰 에너지기 때문에 이제 그게 서서히 없어져서 불안해. 콤플렉스를 더 만들어야 돼, 빚이 콤플렉스였는데 빚도 없고. 옛날엔 공부를 못해서 아는 게 없는 게 콤플렉스였는데 영화 찍다보니까 사극 같은 거 하나 찍으려면, 공부 많이 해야 돼. 그래야 아귀를 맞추지. 거짓말도 앞뒤가 맞아야 하지. 그러다보니까 이제 콤플렉스를 더 찾아내야 돼. 나는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것이 나의 에너지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콤플렉스나 열등의식으로 불안한 게 아니라 그게 있으면 든든해. 그게 없어지면 불안해. 안 그러냐? 나만 그런가?

-혹시 이건 일종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고도의 위선이나 위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럴 수도 있겠다. 위선의 본질이 그럴 수도 있겠어. 근데 그렇게 보이든 저렇게 보이든 난….

-감독님이 제일 싫어하는 게 또 위선이잖나.
=아, 그건. 위선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왜 싫어하냐. 위선 부리면서 위선 아니라고 거짓말하니까 싫어하지. 위선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너무 좋아해, 난. 이해가 되냐? 난 위선자 좋아한다니까. 위선자라고 말하는 사람. 거짓말쟁이가 싫어, 난. 말이 안 되나?

-원래 감동받으면 잘 우세요?
=잘 울지. 마라톤 보면 펑펑 울어. 신문사 마라톤 대회 보면 그냥 눈물이 나. <라디오 스타> 시사 때도 울었어. 성기 형이랑 둘이 울다 나왔는데 <한겨레> 임범 기자가 감독이 자기 영화 보고 우냐고, 그래서 네 눈을 봐라, 그런데 자기도 울었어.

-작가가 자기 영화 보고 우는 건 좀.
=난 내 영화를 남의 영화 보듯이 하니까. 난 관객으로 내 영화봐. 그러니까 난 머리가 빈 거야. 메멘토라고. (웃음) 만날 연출부들에게 얘기해. 난 메멘토니까 어제 회의한 거 오늘 까먹고 엉뚱한 소리한다고. 감독님 어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요. 아, 야, 내가 그랬냐, 까먹었다, 야(갑자기 이주일 버전으로. 웃음).

-이번 영화 만족스러우세요?
=난 만족을 몰라. 어디가 만족인지를 몰라. 그냥 하는 거야.

-특별히 아쉽지도 않다는?
=그렇지. 있는 여건 안에서 최선을 다했으니까. 난 조건반사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주어진 조건에 반응할 뿐이야. 억지로 뭔가 해내려고 강박적으로 하지 않아. 그냥 주어진 대로 그날그날. 만족한지 아닌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 난. 그림을 그릴 때 그러거든. 붓을 놓는 순간이 완성이야, 끝이 없거든. 한달 동안 한장을 그려도 붓을 놓으면 완성이지, 더 그리라면 할 수 있어. 크랭크업했으니까 완성된 거지. 만족이란 게 있을 수가 없지.

-지금까지 한 배우들이 좋은 배우지만 톱클라스는 아닌데.
=인기있는 배우는 아니지. 그런 배우는 별로 안 좋아해. 불편해. 저 인기 때문에 해줄 게 많잖아. 돈도 많이 줘야 하고. 요구사항도 들어줘야 하고. 귀찮잖아. 배우의 티켓 파워는 허상이야. 그게 유효하지 않다는 거야. 그거는 영화 100년사가 그랬어. 어제오늘 일이 아니야.

-앞으로도 계속?
=원칙은 없어. 그냥 스케줄 맞는 배우랑 하는 거지…. 시나리오 줬는데 스케줄 안 되면 못하는 거지. 그 배우할 때까지 기다리냐, 그럼?

-안성기 배우가 그러더라. 미미한 단역들까지 챙겨서 책임지는 게 아름다웠다고.
=<황산벌> 때도 그랬고, <왕의 남자> 때도 그랬고. 서로 그 역할을 맡은 거지 누구 인생이 더 크고 작고가 아니라는 거지. 영월이라는 공간은 최곤, 박민수에게 삶의 막다른 곳이야. 삶의 20년 여정 끝에 벼랑에 선 거라고. 갈 데가 없어. 그러니까 거기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세히 보이는 거야. 그러니까 거기를 오기 전까지는 주마간산이야. 와서 보니 사람들이 보이는 거야. 그들의 삶이 우리의 삶보다 초라하지 않은 거야. 단역에는 스탭들이 많아. 고석동이라고 실업청년 역은 연출부야. 그리고 또 철물점 박 사장은 조명기사 강광원이야. 첫신에서 웨이터는 제작부 막내 강원이야. 또 꽃집 총각, 그거 미술감독 황인준이야. 그리고 농협 아가씨, 우리 총무과 과장 이순금이야. 그냥 눈에 띄니까 갖다 박은 거지. 영화는 또 한 장소에서 다 찍어. 방송국? 그게 영월 군청이야, 서울 방송국. 영월 안에서 다 해결했어. 거의 남기남식으로. 절대 멀리 안 가.

장소협찬 목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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